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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다연이는 뭘 좋아해?"
민재가 물으니 하민이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다연이는 뭘 좋아하더라.
"음···"
잠시 다연이가 어떤 말을 했었는지 생각해본다.
다연이가 좋아하는 건..
"물고기랑··· 과일 수호대랑··· 밥..?"
그것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다연이는 특히 밥 먹는 걸 엄청 좋아한다. 너무 좋아해서 매번 점심 시간마다 다연이가 받아온 밥들을 전부 먹고 더 달라고 말했던 게 생각난다.
"다연이는 밥을 엄청 좋아해."
“맞아.”
물론 다연이는 어린이집에서 주는 밥도 좋아하지만 하민이의 기억 속 다연이는 다연이 오빠가 만들어 준 음식을 가장 좋아했다.
“그러면.. 선물로 밥을 줘야 해···?”
“아니···..”
잠시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좋아할 수야있겠으나 그건 하민이가 준 선물이 아니라 다연이 오빠가 만들어 준 선물이니까.
"음···"
다시 생각해보자. 뭔가 좋은 방법이 있을 거다.
그렇게 잠시 생각하다가 민재에게 살며시 묻는다.
"민우는 뭐 주는지 알아?"
"음··· 저번에 고기 먹으러 가서 물어봤어."
"오··· 말해봐."
그러더니 민재는 잠시 고민한 다음 말했다.
"엄청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말했어."
"맛있는 거 뭐?"
"그거는.. 나도 몰라."
무조건 민우보다 좋은 선물을 줘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엄청 맛있는 거면 뭘까.
"그럼 우리는 뭐 줘야 돼?"
잠깐 고민하던 민재는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큰 소리로 말했다.
"생각나따!"
"뭐?"
"다연이는..! 과일 수호대를 조아하자나."
"응."
"그래서 다연이한테 과일을 주는 거지. 수박."
"오···"
좋은 생각인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수박은 커서 못 들고 가는데..?"
"어··· 저번에 엄마랑 같이 엄청 큰 마트에 갔는데 거기에 작은 수박이 이써써. 애플··· 수바기라고 적혀 있어따."
하민이는 여전히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엄마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구나.”
동시에 다른 생각도 든다.
민재와 같은 선물을 주면 안 된다는 생각. 민재가 수박를 가지고 갈 거니까 하민이는 다른 선물을 줘야 한다.
“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다연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뭐해?”
“아무것도··· 안 해.”
좋은 선물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다연이에게 들키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무슨 선물을 주는 건지 모르고 있으면 깜짝 놀랄테니까 만약 그렇게 되면 다연이가 더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때 다연이가 말했다.
“아니야, 무슨 말하는지 조금 들었어. 수바기 아야기 하고 이써찌?”
“어.. 맞긴 한데...”
“무슨 수바기 이야기하고 이써써?”
“어··· 밥 이야기..! 오늘 수박 나왔잖아.”
다연이는 그 말을 듣고 오늘 점심에 나왔던 수박을 떠올렸다.
맛있고 달콤한 수박. 그 이야기를 하니까 또 먹고 싶다.
“마자. 수박 나왔었찌.”
민재는 그렇게 말하는 다연이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다연아, 너는 수박이 얼마나 좋아?”
“엄청! 저번에 오빠가 수바기 화채를 만들어줬는데 엄청 맛있었어..!”
“그렇구나.”
민재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살짝 웃는다.
그 때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얘들아, 이제 들어가자.”
“네!”
“흠···”
아직 선물을 결정하지 못한 하민이만 혼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오늘은 다연이 생일이다.
나는 아이를 키운 적이 없어서 잘은 몰랐지만 다연이 나이대의 아이들은 생일 파티라는 걸 하는 모양이다.
언젠가 다연이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나도 생일 파티 하고 싶따. 내 생일에 다 같이 와서 놀았으면 좋겠어.'
다연이 입장에서는 그냥 흘린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잘 주워담았다.
나는 알겠다고 했었고, 그 날은 오늘이 됐다.
그렇다면 일단 필요한 건 케이크일 거다. 모양은 내야하니까.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에게 전화가 온다.
혹시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휴대폰에는 ‘밥돌이’라고 적혀 있었으니까.
나는 주저않고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밥돌이가 전화를 한 이유는 다연이 때문이었다. 다연이가 나도 모르는 사이, 밥돌이에게 오늘이 생일이라는 걸 말했던 모양이다.
“케이크는 제가 사 가겠습니다!"
"안 그러셔도 돼요."
"아닙니다! 다연이 생일이라는 걸 어제 들어서 생일 선물을 준비 못했습니다. 대신 케이크라도 사 갈게요!"
그런 거라면 알겠다고 했다. 밥돌이는 먹방과 요리 영상 찍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니 맛있는 케이크도 잘 고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케이크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기도 했었고.
"아, 그런데 다연이 생일 음식은 사장님께서 직접하시는 건가요?"
"네, 다연이는 시키는 것보다 제가 한 음식을 더 좋아해서요."
사실 이것도 다연이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나는 마리야, 오빠가 한 음식이 제일 마시써.’
오늘 아침,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전에 내게 했던 말이다.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떤 의미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말도 내가 오늘 어떤 걸 먹고 싶냐고 물었을 때 한참을 아무거나 좋다고 말하다가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직전, 툭 내뱉은 말이었기 때문에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그 때 밥돌이가 말했다.
“그러면 혹시 음식하는 거,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네..?”
“아, 이상한 건 아니고 저도 다연이 친구니까 뭔가 해주고 싶어서요. 뭐··· 영상각도 뽑을 수 있을 것 같고요.”
“아.”
거절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다연이도 밥돌이가 한 음식을 좋아하기도 하고 영상으로 봤을 때 밥돌이는 정말 요리를 잘하니까.
"네, 그런 거면 상관없습니다."
그 뒤에 밥돌이와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느끼기에 가장 어려운 건 요리를 하는 것보다 메뉴를 정하는 것이었으니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면서 낯설었으면 좋겠는데. 오랫동안 그런 이야기를 한 다음, 장을 보고 왔다.
어떤 음식을 해야할지 고민이 많았지만 밥돌이와 다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금방 결정했다.
잠시 후에 밥돌이가 식당을 찾아왔다.
밥돌이도 할 일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제 다연이의 말 때문에 미리 시간을 비워뒀다고 했다.
밥돌이 정도면 꽤 바쁠텐데 고맙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하며 들어오는 밥돌이의 손에는 케이크가 쥐어져 있었다.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많이 생각했었는데 이게 좋을 것 같아서 이걸로 사왔습니다! 다연이는 과일을 좋아하잖아요."
밥돌이가 내민 것은 과일 생크림 케이크였다. 가장 기본적이지만 밥돌이의 말처럼 분명 다연이가 좋아할 만한 케이크인건 확실하다.
즐겨 보던 애니메이션인 과일 수호대 때문인지 다연이는 과일을 정말 좋아하니까.
“다연이가.. 좋아하겠죠?”
“네, 좋아할 거에요.”
그리고 바로 요리를 시작한다. 나와 밥돌이가 빨리 움직이기는 했지만 요리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다연이가 올 시간이니까.
나는 요리를 준비하고, 밥돌이는 영상 찍을 준비를 한다.
뭔가 거창한 준비를 할 것 같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이마에 캠 하나를 달고 옆에 하나를 더 설치할 뿐이다.
“어.. 원래 장비 같은 게 더 많지 않아요?”
조금 신기해서 그렇게 물었다.
“있긴 한데 그렇게 하면 공간을 많이 차지해서요. 오늘은 영상이 목적이 아니라 다연이 생일 파티가 목적이니까요.”
“네.”
밥돌이는 좋은 사람인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바로 요리를 시작한다.
밥돌이와는 이미 파트를 정해놨기 때문에 각자 일을 한다. 고작 6살 아이의 생일일 뿐이지만 밥돌이는 열심히 요리에 임했다.
영상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연이를 위해서 그러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나는 다시 내 요리를 한다.
내가 할 건 돼지갈비찜이다. 생일 파티에 쓸 음식 치고는 조금 과분하지만 평소에도 다연이가 먹고 싶다고 말했던 음식이다. 오늘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당장 만들지 않고 아껴둔 음식이었다.
갈비찜에 쓸 돼지 갈비는 장을 보자마자 미리 물에 담궈 놓았다. 돼지 갈비는 먼저 핏물을 빼야 하기 때문에 그랬다.
나는 적당히 핏물이 빠진 걸 확인한 다음, 돼지고기를 끓는 물에 데친다.
“사장님은 돼지 갈비찜을 하고 있어요. 사장님도 요리를 되게 잘하시는 편이라서 기대되네요.”
밥돌이는 영상에 담을 생각인지 돼지갈비를 보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니 살짝 고갤를 끄덕인다.
이렇게 목소리를 들으니 나와 다연이가 유명인과 친구가 됐다는 게 실감이 간다.
나는 이어서 돼지 갈비찜을 준비한다.
다음은 양념장을 만들 차례다. 양념은 간장과 맛술, 설탕, 간 마늘, 생강 등등을 섞어서 만든다.
일단은 양념장을 만들기 전에 재료들만 준비해 놓은 뒤, 데친 돼지고기의 물을 빼주고 다시 냄비 안에 넣는다.
그 다음 재료들을 하나하나 추가한다. 양념장이 더해질 때마다 더 향긋한 냄새가 올라온다. 이대로 먹는다고 해도 맛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냥 그 만큼 좋은 향이 났고 완성됐을 때의 모습이 기대된다.
“흠..”
나는 그 냄새를 가득 담은 다음, 물을 추가하고 푹 끓인다. 돼지고기 갈비찜은 꽤 오래 끓여야 하기 때문에 그 동안 내가 할 건 다음으로 추가되는 재료들을 써는 일과 그 틈에 다른 요리를 하는 일 뿐이다.
참기름을 넣은 탓에 벌써부터 물 위에는 기름기가 떠다니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완성된 돼지갈비찜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것 같다.
달콤하고도 중독되는 향과 맛. 특히 고기를 좋아하는 다연이가 본다면 늘 그랬던 것처럼 맛있게 먹을 것 같다.
“우와, 이제 이대로 푹 끓이면 되는 거죠?”
어느샌가 밥돌이가 와서 물었다.
“네.”
“우와.. 진짜 맛있겠다··· 아직 완성도 안 됐는데 맛있을 것 같아요. 다연이도 보면 좋아하겠어요.”
밥돌이는 빙긋 웃은 다음, 자기 일을 이어서 한다.
밥돌이가 하고 있는 음식은 잡채였다. 문득 잡채를 보고 있으니 저번에 선생님이 해주신 잡채를 먹고 뱉어버렸던 다연이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래도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을 거다. 밥돌이는 요리를 잘 하니까.
그 때 밥돌이가 말했다.
“나중에 잡채 완성되면 맛 좀 봐주시겠어요? 저보다 요리를 잘하시니까 허락 받고 싶어서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고 밥돌이는 다시 혼잣말을 하며 요리를 이어나간다.
나도 재료 손질을 시작하려던 때, 식당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어.. 이지훈 님, 맞으시죠?”
택배 기사님이었다.
“네.”
나는 서둘러 나가서 물건을 받는다.
요리를 하고 있던 밥돌이는 나를 따라 나와서 물었다.
“그건.. 뭐에요..?”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상자. 하지만 꽤 중요한 것이 들어있다.
구하기도 힘들었고 혹시 다연이가 같이 있을 때 오면 어쩌나 불안하기도 했던 물건이다. 물론 그런 일은 없도록 손을 잘 써놨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면서 대답했다.
“다연이 선물이요.”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