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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단연 미역국일 거다.
왜 그렇게 된 건지 이유는 잘 모르지만 생일을 맞으면 누구나 미역국을 먹곤 한다. 지금 이렇게 주방에 서 있는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나도 다연이에게 미역국을 먹이고 싶다는 생각. 무엇보다 내가 해준 미역국은 먹어본 적이 없으니까.
다연이가 일어나기 전에 얼른 완성시켜야겠다.
다른 재료들을 준비하기 전에, 먼저 그릇에 미역을 담아둔다. 미역을 불리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리기 때문에 미리 해야 한다.
그 동안 나는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한다. 간장과 다진 마늘, 소고기 등등. 필요한 것들이 준비되면 본격적으로 미역국 만들기를 시작한다.
“오.”
잠깐 불려놓았던 미역이 금새 커졌다. 분명 불리기 전에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연이가 봤다면 신기하다고 했을 것 같다.
나는 불린 미역을 꺼내서 도마 위에 올려 놓는다. 이대로 먹기엔 너무 길다. 자르지 않으면 국수처럼 먹어야 될 수도 있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고 준비가 끝난 미역은 옆으로 치워둔다.
이 다음은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할 차례다. 오늘 할 음식은 소고기 미역국이다. 평범한 미역국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소고기가 들어간 것이 더 맛있을 거니까.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다연이가 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미역국을 싫어하지 않게 소고기가 떠다니면 좋을 것 같다.
처음 할 일은 된장찌개를 만들 때처럼 소고기를 먼저 구워주는 일이다.
참기름과 함께 넣은 고기가 자글거리면서 구워져간다. 된장찌개를 할 때와는 다르게 집에서 요리를 해서 그런지 훈기와 함께 고기 굽는 냄새가 더 짙게 느껴진다.
“흐암.”
그 때 뒤에서 다연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막 일어난 모양이다.
“오빠, 뭐해?”
“미역국.”
“그러쿠나.”
다연이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지 대충 대답한 다음 의자에 앉는다.
아직은 일어날 시간이 아닌데 벌써 일어났다.
“왜 벌써 일어났어.”
“나도 몰라. 일어났는데 아무도 없어서 나왔어.”
“그래.”
이제 옆에 아무도 없는 상황이 와도 침착하게 일어나서 걸어온다.
나는 그렇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다연이는 아직 잠이 오는지 크게 하품을 한다.
"아함.."
하지만 지금은 요리를 하고 있는 중이니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참기름을 섞은 소고기가 충분히 구워지면 그 위에 적당히 자른 미역을 넣어준다. 그리고 간장을 넣어서 휘휘 저어준 다음 충분히 물을 채운다.
"오.. 조용해져따."
고기를 굽느라 시끄럽던 냄비 안이 다연이 말처럼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제 남은 건 다진 마늘을 조금 넣고 끓이는 것 뿐이다.
"미역국 다 했어? 완성인 거야?"
"완성은 아닌데 조금 놔두면 돼. 그 때까지 씻자."
"응."
티는 안 냈지만 다연이도 은근 기대가 되는지 그렇게 말했다.
기다리는 동안 등원 준비을 해야겠다.
.
.
씻고 나니 미역국이 완성됐다.
옅은 초록빛의 미역국을 두 그릇에 나눠담고 다연이에게 건네준다.
"우와, 초록색이다아."
초록색을 멍하니 보고 있던 다연이가 말했다.
"근데 초록색은 채소자나.. 나는 고기가 좋은데.."
"응?"
"헙.. 아니다. 내가 잘못 말했어. 미안.. 초록색 맛있따. 하하.."
다연이는 과장되게 웃으면서 작은 숟가락으로 미역국을 휘적거린다.
그러고 보니 다연이는 미역국을 먹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다연이가 집어든 미역에서 국물이 뚝뚝 떨어진다.
"채소 아니야. 한 번 먹어봐. 맛있을 거야. 소고기도 들어있어."
"고기..!"
눈을 반짝인 다연이가 미역국을 뒤져서 고기를 찾아낸다.
"고기다!"
"그래."
그리고 다연이가 미역국을 먹기 시작했다. 시작은 소고기 뿐이었지만 점점 늘려가면 될 거다.
나도 그런 다연이를 따라서 한 숟가락 들었다.
먹기도 전에 올라오는 비릿한 냄새. 하지만 식욕을 떨어뜨리는 냄새는 아니다. 오히려 다른 재료들과 살짝 섞인 비릿한 향이 미역국의 맛을 기대하게 만든다.
숟가락에 떠 있는 기름. 참기름 냄새도 희미하게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나보가 먼저 국물을 먹은 다연이가 외쳤다.
"마시따!"
나도 다연이를 따라 국물을 먹는다.
"흠."
소고기로 우려낸 육수가 미역과 잘 어울린다. 소고기의 담백한 맛이 느껴지고 뒤따라 깊은 국물의 맛도 같이 따라온다. 다진 마늘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충분히 맛있다.
다연이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 다음, 소고기와 미역을 같이 담아서 한 입에 털어 넣는다.
잘근잘근 씹히는 고기와 미끄러운 미역. 여기에 밥 한 술까지 더해주면.
"크으..! 마시써."
정말 맛있어진다.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낸 다연이는 먹방을 하는 밥돌이처럼 입에 밥을 욱여 넣었다.
나는 이어서 밥을 먹다가 다연이에게 물었다.
"오늘 다연이 생일인 거 알고 있어?"
일어나서 지금까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기에 내가 먼저 물어본 거다.
요 며칠 간의 반응을 보면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알고 이써. 그래서 오빠가 선물 미리 줬잖아."
"그래."
사실 선물은 아니지만 이전에 다연이가 선물 대신 고기를 사달라고 해서 왕창 사줬었다.
고깃집 간판을 본 다연이가 충동적으로 했던 말이었지만 다연이 덕분에 부자가 됐으니 그 정도는 아깝지 않았다.
그렇다고 선물을 챙겨주지 않을 건 아니지만 다연이는 정말 내가 사준 고기가 생일 선물 대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다연이가 말했다.
"어··· 그런데 마리야.."
"응."
"나, 다른 선물 또 받아도 괜찮아. 그러니까.. 나 선물 또 줘도 괜찮다는 말이야."
"그래."
그래도 다른 선물을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눈치를 보며 말하던 다연이가 다시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생각해 놓은 선물이 있다. 다연이에겐 말 하지 않았지만. 전에도 같은 생각을 했지민 선물이란 몰라야 더 좋은 법이니까.
밥을 열심히 먹던 다연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 먹어따. 우리 빨리 식당에 가자. 다른 언니들 보고 싶어. 선물··· 아니 언니들이랑 인사하고 시퍼."
"그래."
다연이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축하를 받고 싶은 것 같다. 아니면 선물을 받고 싶어 한다던가.
오늘이 다연이의 생일이라는 걸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예나와 친구들 덕분이기도 했고 다연이의 일기장 덕분이기도 했다.
"빨리 가야 돼."
"알겠어."
미역국을 해주느라 평소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얼른 내려가야겠다.
"옷은 내가 입을께! 오빠는 다른 거 해!"
"응."
오늘따라 더 의욕이 넘쳐보이는 다연이가 방으로 도도도 달려간다.
.
.
.
학생들이 많이 왔다. 새 메뉴를 만들었던 첫 날에 비해 최근에는 학생들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식당이 붐빌 정도로는 왔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학생들이 줄을 서 있었다. 못 먹고 나온 아침을 때우려고 온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연이를 만나기 위해서 온 거 였다.
선물이 쏟아졌고, 다연이는 실없이 웃고 있다.
"허헣."
그런 다연이의 손에는 산더미 같은 과자와 자그마한 인형이 있다.
모두 학생들에게 받은 선물이다.
"이제 나는 부자야. 인형이랑 과자 부자."
"좋겠네."
"좋아! 매일 생일이었으면 좋겠다."
정말 많이 받았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쌓인 인형과 과자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다연이 말처럼 정말로 부자가 된 것 같다. 이 정도 과자면 하루종일 먹어도 줄지 않을 것 같다.
"우와, 진짜 많네."
뒤늦게 찾아온 예나가 중얼거렸다.
"그러치. 내가 엄청 귀엽다면서 이거 다 나한테 줘써. 나는 이제 부자야."
다연이가 테이블 위에 쌓인 인형과 과자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이 정도 기세면 정말 과자만으로도 부자가 될 수 있을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았다.
"언니도 다연이 주려고 이거 가져왔는데."
"뭐야..?"
다연이는 그렇게나 선물을 많이 받았으면서 선물 이야기를 하니 의자에서 털썩 내려와 예나에게 다가갔다.
"이거 엄청 좋은···"
"조은.. 뭐야?"
뜸 들이는 예나를 따라서 다연이도 기대감에 가득 찬 눈으로 물었다.
묘한 미소를 짓던 예나가 뒤에 숨겨 놓았던 것들을 번쩍 내민다.
"과일 수호대 피규어!"
"오···!"
예나가 내민 것은 다연이가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피규어들이었다. 그래봤자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았지만 다연이는 그것도 좋은 듯했다.
"우와...! 내가 받은 선물 중에서 제일 조아! 수박이도 있네!"
"그래!"
"오.. 엄청 머싯는 선물이야... 고마워!"
다연이가 받은 산더미 같은 선물들 속에 예나가 준 피규어도 추가됐다.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피규어. 지금 다연이도 피규어와 똑같은 자세로 서서 피규어를 지켜보고 있다.
"너무 조타!"
예나는 그런 다연이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해지는 모양이다.
받은 선물이 저렇게나 많은데 그 중 예나의 선물이 가장 좋다고 말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 때 다연이는 뭔가가 생각 난 듯 말했다.
"아, 마따. 내가 언니 선물이 제일 좋다고 했던 거. 언니 친구들한테는 말하면 안 돼. 말하면 슬퍼할 거야."
"알겠어. 절대 말 안 할게."
"조아!"
다연이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나가 돌아가고, 우리도 어린이집으로 갈 시간이 왔다.
다연이와 나는 준비를 다 끝내고 밖으로 나온다.
등원 하는 다연이의 손에는 과자가 잔뜩 있었다.
"이거 친구들이랑 선생님한테 줄 거야. 언니랑 오빠들이 나한테 선물로 준 거라고 말하면서! 그러면 엄청 좋아하게찌? 내가 엄청 인기 많은 거니까!"
"그럴 거야."
오늘의 주인공인 다연이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저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다연이에게 선물을 줄 때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진다.
지금 다연이는 이미 나에게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할 거니까. 놀란 모습이 궁금하다.
"빨리 가자."
다연이가 나를 보며 말했고.
"응."
나는 대답했다.
***
다연이의 생일이 오기 하루 전 날, 어린이집 친구인 민재와 하민이에게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둘은 다른 아이들이 모르게 어린이집에 붙어있는 놀이터 구석에서 대화하고 있는 중이다.
시끄럽고도 조용하기도 한, 오묘한 분위기 속에서 민재가 입을 열었다.
"내일 다연이 생일이래."
"나도 알고 있어."
둘의 대화 주제는 바로 다연이의 생일 선물로 뭘 줘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단순히 그것 뿐이라면 좋겠지만 고민은 그게 끝이 아니다.
민재와 하민이에겐 경쟁자가 있다. 크다면 아주 큰, 작다면 또 작은 경쟁자.
"민우 형보다 더 좋은 선물을 줘야해."
"야, 우리 둘이 있을 때는 형이라고 하지마! 민우라고 해."
민재의 말에 하민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경쟁자는 바로 다연이가 있는 식당에 혼자 찾아왔다던 두 살 차이나는 8살 초등학생인 민우였다.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