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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야?”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두고 예나와 다연이는 벌써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고 있는 중이다.
“엄청 마싯겠따.”
“그치?”
“응, 이제 생각났는데에.. 이거 밥도리 동영상에서 본 적 이써.”
“아, 민혜 오빠 말하는 거구나. 걔는 왜 여태까지 그런 걸 말도 안하고···”
예나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혼자 중얼거렸다.
“이거 봐. 밥도리 엄청 맛있게 먹어.”
다연이와 예나가 둘이서만 영상을 보고 있다.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집중하고 있다.
“나도 보여줘···”
내가 그렇게 말하니 다연이가 그제야 영상을 보여준다.
“이거야. 마싯는 밥 샌드위치. 샌드위친데, 밥으로 만들어써..!”
신기하게 생기긴 했다. 빵 대신 밥이 자리한 샌드위치다. 밥과 밥 사이에는 햄이나 상추, 계란 같은 것 들이 들어있다. 흔히 알고 있는 밥버거와 비슷한 모양이다.
이걸 아침 메뉴로 만들자는 말이다.
“음.. 근데 이거..”
“이거 좋지 않아요? 밥 샌드위치! 나도 먹고 싶다!”
“나도!”
다연이는 예나가 말하길 기다리다 곧바로 대답한다.
괜찮다. 아침으로 먹기도 좋고 만들기도 간단하다. 밥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서 새로운 재료를 살 필요도 없었고.
그런데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네?”
“이거랑 김밥이랑 다른 게 뭐야..?”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었다. 밥 샌드위치는 김밥과 모양만 다르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내 말에 다연이도, 예나도 멍한 눈을 한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연이가 대답했다.
“달라. 맛이가 다르자나. 그리고 모양도, 김밥은 김밥인데 이건 밥이랑 샌드위치야.”
“어··· 그렇구나···”
다연이는 그냥 밥 샌드위치가 먹고 싶은 모양이다.
“비슷한데.. 밥 샌드위치는 조금 더 맛있어요. 김밥처럼 채소는 안 들어가지만 대신 햄이 많이 들어가잖아요! 그러니까··· 김밥처럼 틀에 박힌 음식은 아니라는 거죠. 음··· 인스턴트에 가까운 맛이라고 해야 하나? 밥버거처럼요!”
밥버거라. 그건 먹어봐서 어떤 맛인지 알고 있다.
김밥보다 더 자극적인 맛. 예나 말처럼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나와 예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연이가 나를 쿡쿡찌른다.
“왜 그래?”
내 말에 다연이가 대답한다.
“음··· 사실 나는 뭐가 다른지 잘 몰라아···. 그냥 밥 샌드위치 먹고 싶따. 나, 하나만 해죠.”
나도 다연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 짐작은 했다.
다연이는 맛있는 걸 좋아하니까.
“알겠어. 어차피 한 번 해봐야 하니까 바로 만들어줄게.”
“오···! 밥 좋아! 밥도리 인형도 좋대!”
다연이의 손짓에 따라 인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그란 그릇에 담긴 흰 쌀밥을 캐릭터로 만든 인형이다. 저 캐릭터 때문에 앞으로 다연이가 쌀밥을 더 좋아하게될 것 같다.
우선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다연이가 내민 영상을 다시 확인한다.
레시피를 보고 만들면 되긴 하지만 대충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하니까.
영상을 틀자 밥돌이가 나와서 설명한다.
[짭쪼름하니 맛있네요. 제가 만들었긴 하지만 맛있어요. 잘 만든것같아요.]
그렇게 말한 밥돌이가 밥 샌드위치를 한 입 크게 문다.
그 커다랗던 샌드위치가 순식간에 절반이 사라졌다.
“밥도리는 최고야. 최고로 많이 먹어.”
다연이는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다음 다연이는 내 눈치를 보더니 덧붙였다.
“그래도 요리는 오빠가 제일 잘 해! 나는 알고 이찌.”
“그래.”
이제 대충 어떻게 생겼는지 알겠다. 그렇다면 이제는 요리할 시간이다.
내 행동을 유심히 보고 있던 다연이가 예나를 불렀다.
“언니, 빨리 와. 오빠 요리 시작해.”
“알겠어.”
인터넷과 영상을 보면서 레시피를 익힌 다음, 다연이가 원하는 밥샌드위치를 만들기 시작한다.
새 메뉴를 만들기 위함이라기 보단 평소처럼 다연이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다. 특히나 이런 눈빛으로 보고 있으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빨리 먹고 싶따. 밥도리가 한 것도 맛있다고 했으니까 오빠가 한 건 더더 맛있을 거야. 맞지, 언니?”
“응.”
나는 그런 눈빛을 받으면서 요리 과정을 떠올려본다.
사실 특별히 요리라고 할 것도 없었다. 밥 두 덩이를 준비하고 그 위에 햄과 계란, 채소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것 뿐이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을 덮어서 모양을 잡아주면 끝이다. 그게 다연이와 예나가 말하는 밥 샌드위치다. 김밥처럼 먹기 편하고 맛까지 좋다.
“오빠 그만 생각해. 나 배고파요오.”
내가 요리 과정을 멍하니 생각하고 있으니 다연이가 그렇게 말했다. 존댓말을 섞어 쓰는 걸로 봐선 많이 배고픈 모양이다.
“알겠어, 빨리 할게.”
나는 서둘러서 요리를 준비한다.
우선은 재료 손질부터. 일단 영상에서 나온 그대로 만들어본다. 자세한 건 차근차근 바꿔 나가면 될 거다.
지금은 다연이가 먹고 싶어하는 밥돌이 영상 속 밥 샌드위치와 똑같이 만들어야겠다.
깡통 햄부터 자르고 뒤이어 계란과 속에 들어갈 채소를 손질한다. 채소는 손에 잡히는 건 전부 넣었다.
상추도 넣고 오이도. 아삭한 식감을 살리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자극적인 다른 재료들 속에서 채소들도 나름의 힘을 쓰길 바란 마음도 있었다.
먼저 깡통 햄부터 프라이팬에 굽는다.
분홍빛의 햄이 먹음직스럽게 프라이팬 위에서 구워져 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분홍빛은 사라지고 옅은 갈색빛이 햄을 뒤덮는다. 그리고 따라서 올라오는 좋은 냄새.
“맛있게따아.. 햄만 먹어도 좋을 것 가타.”
다연이가 그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곁눈질을 하지만 이번 만큼은 나도 고개를 저었다.
“완성되면 더 맛있어질 거야.”
“으음··· 그렇게찌이··· 그래도 먹고 싶따..”
이왕이면 더 맛있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잘 구워진 햄을 덜어내고 다시 계란을 올린다.
치이이.
햄을 구울 때 프라이팬이 이미 달궈져 있었기 때문에 계란도 빠른 속도로 익어간다. 높은 온도에 계란이 그을리지 않도록 신경 쓴다.
계란은 완전히 익힌다. 그래야 덜 익은 계란 속이 터져서 흐를 걱정이 없을 테니까.
“오···.”
다연이는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다연이를 위해 서둘러 완성한다.
밥을 한 덩이 펼쳐서 모양을 잘 잡아준 다음, 그 위에 하나씩 재료들을 쌓는다. 마지막으로 초록 채소들이 올라간 다음에야 나머지 밥 덩어리를 올린다.
김으로 먹기 좋게 포장을 해준 다음 꾹꾹 눌러서 고정시키면 다연이가 그렇게나 원하던 밥 샌드위치가 완성된다.
빵 대신 밥이 자리한 샌드위치. 맛있을 것 같다.
“완성이다아!”
완성된 샌드위치를 본 다연이가 허겁지겁 달려와서 올려 놓은 그릇을 잡는다.
“이번에느은 내가 서빙 할 거야.”
“그렇게 해.”
조금이라도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는 걸 알고 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서둘러 자리에 앉은 다음, 칼을 이용해서 먹기 좋게 썰어준다.
다연이는 입이 작으니까 작게 조각내야 한다.
잘린 단면은 그럭저럭 보기 좋다. 김밥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우리 다 같이 먹자. 동시에 마리야!"
다연이의 말에 따라서 우리는 동시에 맛을 보기 시작했다.
"음···"
맛있다. 맛있는 재료가 들어갔기에 맛있는 건 당연한 말이지만 김밥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맛있찌?"
나는 다연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그래. 근데 오빠가 한 거라서 더 마싯따."
"다행이네."
적당히 간을 한 밥과 자극적인 맛의 햄, 담백한 계란의 조화가 좋다. 물론 채소도 그렇고.
토스트를 먹는 기분인데 맛은 김밥에 더 가깝다. 삼각김밥.
이 정도면 학생들에게 팔기도 좋고 다연이에게 만들어 주기도 좋은 것 같다. 물론 이런 음식만 먹이면 안 되겠지만.
"마시따아."
그래도 좋아하니 다행이다.
.
.
.
학생들이 등교하는 날, 아침. 식당 앞에는 학생들이 붐비고 있다.
어제 새 메뉴를 먹는 다연이의 모습을 찍어서 일기장에 올린 덕이다.
“많이 왔네에.”
다연이는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축구 감독처럼 식당 안을 천천히 거닐었다.
한 손에는 하얀 밥 인형을 쥐고 있다.
“안녕, 다연이.”
“안뇽.”
학생들의 인사에도 다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주변을 살피는 데 집중한다.
“우리 오빠가 한 거 마싯지?”
“응!”
“그래, 마자.”
다연이가 쿨하게 대답하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비장한 말을 남긴 뒤, 등원 준비를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많이 많이 먹어야 해. 그래야 좋은 거야. 나도 엄청 마싯게 멋었거든. 오늘도 그거 먹을 거야.”
“오..! 다연이랑 같은 밥 먹는 거네?”
“그래.”
안으로 들어가는 다연이의 뒷모습은 꼭 선수들의 훈련에 만족하는 감독의 모습 같았다.
학생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더 좋았다.
“다연이 말처럼 진짜 맛있어요! 아침으로 때우기는 김밥보다 더 좋아요.”
“마시써!”
다연이의 말투를 따라하는 학생도 있었다.
“나랑 똑같네..!”
그 말에 다연이도 큭큭 거리며 웃는다.
어찌됐든 그만큼 학생들의 반응이 좋다.
평도 좋았으니 계속 팔아도 되겠다.
“오늘 어엄청 많이 팔았네?”
엉망이 된 주방과 홀을 보면서 다연이가 말했다.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는 손님에는 익숙해졌지만 새로운 메뉴와 아침 시간대가 만나니 조금 낯설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주방이 더 지저분하다.
“응.”
다연이 말처럼 정말 많이 팔았다. 사실 요 며칠 간의 매출과 비교해도 오늘이 더 많을 정도로.
다연이가 해준 메뉴 선택이 옳았던 거다.
“그러면.. 우리 이제 부자야?”
나는 다연이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조금 부자.”
“오오..!”
나는 다연이와 같이 현금 출납기를 열어본다. 물론 카드도 많았지만 학생들인 만큼 현금을 쓰는 아이들도 많았다.
현금 출납기를 열자 돈이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쌓여있다. 그걸 본 다연이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우리 부자야! 이제 마싯는 것도 많이 사 먹을 수 있겠따! 오빠 옷도 사자! 따뜻한 옷.”
“그래.”
지난 시간 동안 했던 고민이 성과를 이뤘다. 앞으로도 오늘 같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적어도 다연이가 하고 싶은 것들은 전부 할 수 있을 테니까.
“일단 빨리 준비하고 어린이집 가자. 잘못하면 조금 늦겠다.”
“늦으면 안 돼!”
다연이가 그렇게 외친 다음, 도도도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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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뒤, 아침.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난다.
옆에는 다연이가 잠들어 있고 바깥은 아직 어둡다. 날이 갈수록 해가 늦게 뜬다.
평소와 비교해서 오늘은 몇 시간이나 일찍 일어났다.
이렇게 서둘러 일어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아침으로 꼭 해야하는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날이기도 했고.
다연이가 잠들어 있는 걸 확인한 다음, 주방으로 향한다. 그리고 커다란 냄비를 꺼내고 필요한 재료들을 꺼낸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건 단연 미역이었다. 미역을 꺼낸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은 다연이의 생일이니까.
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