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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동생이 생겼다-94화 (9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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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돌이?

다연이가 외친 이름을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늘 다연이가 보고 있던 영상의 주인공. 때문에 다연이는 가끔 그 영상에 나오는 음식들을 해달라고 말하곤 했었다.

푸근한 인상에 꽤 큰 덩치. 다연이가 가끔 인형 같다고 말했었다.

“밥도리는 왜 여기에 와써요?”

다연이가 커다란 눈으로 묻는다.

“음··· 밥 먹으러?”

“우와..!”

나도 왜 왔는지 궁금해진다. 저렇게 유명한 사람이 우리 식당에는 왜 왔을까.

촬영하러 왔다고 하기에는 손에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나는 다연이가 보는 영상을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이런 식당에 직접 찾아와서 먹는 스타일의 영상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밥도리는 여기에서 살아요?"

다연이가 설레는 목소리로 물었다.

최근에 한창 밥돌이의 영상에 빠져 있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파전도 그 영상을 보고 만들어 달라고 했던 거였으니까.

다연이의 입장에서는 아이돌을 만난 거나 마찬가지다.

다연이의 설레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밥돌이의 대답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밥돌이가 여기 근처에 산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밥돌이에게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응, 여기는 아니고 근처에.”

“우와아..!”

그 밥돌이가 여기에 살고 있다니. 다연이는 놀란 얼굴로 나를 본다. 저렇게나 동그란 눈은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다연이가 다시 말했다.

“밥도리는 원래 여기 살았어요? 왜 나는 몰라찌?”

계속되는 다연이의 추궁에 나는 다연이를 말렸다. 밥돌이의 개인 정보를 알아내는 것도 좋겠지만 일단은 우리 식당의 손님이니까. 주문부터 해야한다.

손님을 기다리게 둘 수는 없었다.

“다연아, 조금만 있다가 물어보자. 밥돌이 아저씨 음식 주문해야지.”

“아..! 마자. 밥돌이 아저씨 밥 먹으러 왔는데 내가 까먹고 이써따. 미안해요.”

다연이의 말에 밥돌이도 푸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괜찮아.”

이어서 밥돌이가 주문했다.

떡볶이 5인분에 튀김 5인분, 그리고 김밥, 떡꼬치 등 포장해 갈 수 있는 거의 모든 메뉴들을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라면 하나도 덧붙여서.

주문을 받긴 했지만 혼자 먹기엔 너무 많은 양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일행이 있는 거겠지.

“다른 분들은 얼마나 계세요? 나무젓가락 넣어 드리려고요.”

“아, 이거 다 저 혼자 먹을 거에요. 집에서 먹을 거니까 젓가락은 없어도 되고요. 이걸로 먹방 찍으려고 하거든요. 그리고 라면 하나는 여기서 먹고 갈게요.”

“우와···!”

밥돌이의 말에 다연이는 다시 놀란 얼굴을 했다.

다연이는 밥돌이의 요리를 좋아한다. 맛있는 요리를 하고 또 먹으니까. 하지만 밥돌이에겐 그런 모습만 있는 건 아니었다.

바로 많이 먹는 것. 다연이도 그걸 좋아한다.

아마 그 이유는 다연이가 먹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밥돌이는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이 먹으니까.

“엄청 많이 먹어요..!”

“응, 너 나 알고 있다고 했지?”

“네! 엄청 많이 봐써요. 저번에 파전 먹는 것도!”

다연이는 파전 먹는 영상이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내가 해준 파전이 그 정도로 맛있었기 때문이 아닐지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뿌듯해진다. 다연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 때 다연이가 밥돌이에게 물었다.

“근데 밥도리는 언제부터 여기에 살아써요? 처음부터? 아니면 이사와써?”

"나 원래 여기 살고 있었어."

"오아···!"

나도 조금 놀랐다. 다연이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밥돌이가 이 근처에 살다니. 그런데 나는 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걸까.

“저, 여기에도 가끔 왔었는데.”

“정말요?”

“네, 가끔.”

다연이가 놀란 얼굴로 나를 본다. 나도 놀란 얼굴로 다연이를 본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리고 나도 너 알고 있어.”

밥돌이가 다연이에게 말했다.

“나는···! 유명해요!”

“큭큭, 그래. 너 다연이 맞지?”

“네에!”

놀라운 일의 연속이다. 여기 사는 것뿐만 아니라 다연이도 알고 있다니.

설마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다연이가 많이 유명해졌나.

그러고 있을 때 밥돌이가 말했다.

“사실 내 동생이 저기 고등학교 다니거든.”

“우와아!”

지금 다연이는 거의 넘어가기 직전이다. 그만큼 많이 놀랐다.

“동생이 말해 주더라고. 귀여운 애가 여기 있다고. 예전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계속 놀라다가 기어이 뒤로 넘어진 다연이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찍은 채 계속 놀라는 중이다.

“마자..! 나 귀엽찌!”

다연이는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밥돌이가 자기 동생의 이름을 말해줬다.

“어..! 나 그거 누군지 알아요! 예나 언니 친구랑 똑같이 이름이다!”

“응? 너 내 동생 알고 있니?”

“네!”

사진까지 보여주고 나서야 같은 사람인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언니는 나한테 말 안 해줘찌?”

“음.. 걔가 원래 그런 거 말하는 걸 싫어하거든. 내가 영상 찍는단 거.”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밥돌이는 꽤 유명하니까 누군가가 계속 묻는다면 숨길수도 있었겠다.

“신기하다. 나중에 언니한테 물어봐야지.”

다연이가 그렇게 말하는 사이, 주문했던 라면이 완성됐다.

먹방 하는데 필요하다며 산더미처럼 주문했던 음식들에 비해 라면은 달랑 하나였다. 그 모습을 신기한듯 보고 있으니 밥돌이가 말했다.

“아, 워밍업이요. 라면을 좋아하기도 하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서 라면을 먹기 시작한다.

“우와, 말랑말랑.”

다연이는 뒤에서 밥돌이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말했다. 다연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평소와도 조금 다른 얼굴을 했고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인형 가타..”

밥돌이는 그런 다연이를 한 번 보더니 신경을 쓰지 않고 이어서 밥을 먹는다.

후루룩.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빨려 들어가던 면발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먹방으로 유명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와 똑같은 라면이지만 밥돌이가 먹어서 그런 건지 더 맛있어 보인다.

광고처럼 면발이 입을 친다. 거기다 밥돌이의 감탄사까지 더해지니 정말 티비에 나오는 광고 같았다.

"크으..!"

그만큼 맛있게 먹고, 보는 사람도 먹고 싶게 만든다.

“우와··· 라면이 엄청 마싯게 보인다아···”

밥돌이는 멍하니 보고 있는 다연이의 시선에도 아랑곳않고 순식간에 라면 하나를 해치웠다.

꽤 정성을 쏟아 만들었던 라면이 너무 빠르게 사라졌다. 그래도 밥돌이가 맛있게 먹어서 라면을 해준 나까지 기분 좋아진다.

“크하, 동생 말처럼 진짜 맛있어요! 특히 지금은 옛날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아요!”

덩치 큰 밥돌이가 호탕하게 말했다.

다연이는 그런 밥돌이를 대단한 눈으로 바라본다.

“엄청 머싯따..”

다연이는 잘 먹는 사람이 좋은가 보다.

밥 먹는 모습을 보고 멋있다고 말하다니.

“맛있어요?”

“응! 진짜 맛있네!”

“우리 오빠가 한 거에요!”

“그래? 아빠가 아니라 오빠였구나!”

“네!”

그러고 둘이서 호탕하게 웃는다.

나는 둘을 보다가 주문한 것들을 완성시키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간다.

“밥도리! 나, 싸인 해주세요!”

“그래!”

성격도 비슷한 게 서로 잘 맞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밥돌이도 푸근한 인상처럼 좋은 사람인 것 같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주문했던 모든 음식이 완성됐다. 한꺼번에 많은 주문을 받는 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내 음식들이 유명한 사람의 먹방 영상에 쓰일 거라고 생각하니 대충 만들 수는 없었다.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고 다연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도 좋은 사람이고 싶기도 했다. 음식을 맛있게 잘 만드는 좋은 사람.

“싸인이다!”

밥돌이의 싸인을 받은 다연이가 종이를 들고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다가 완성된 종이 물고기를 들고 다시 후다닥 나온다.

“싸인 줬으니까 이건 선물이에요!”

“고마워! 나중에 사람들한테 자랑할게!”

“네!”

나는 완성된 음식을 포장하고 건네준다.

“먹방하는데 쓰실 거라고 했죠?”

“네, 식당 홍보도 해드릴게요. 제가 원래도 여기 음식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가끔 동생한테 사오라고 해요.”

가끔 예나 친구가 음식을 포장하러 올 때가 있더니 밥돌이 때문이었나보다.

그런 밥돌이를 가만히 보고 있던 다연이는 뭔가 결심한 듯 말했다.

“나.. 사진 찍어 주세요..!”

“사진?”

“네! 밥도리랑 같이 사진 찍고 시퍼! 식당 앞에서!”

“사진 좋지!”

밥돌이는 호탕하게 웃은 다음 다연이랑 같이 식당 앞으로 가서 사진을 찍는다.

다연이의 바람대로 한 장은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한 장은 밥돌이의 휴대폰으로 찍는다.

나중에 밥돌이가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내면 되니 딱히 걱정할 건 없었다.

“사진은 나중에 보내드릴게요. 번호 주세요.”

“네.”

번호를 주는 동안에도 다연이는 신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후.. 후.. 밥도리랑 사진 찍었어···”

이쯤되니 여태까지 음식을 보려고 영상을 봤던 건지 밥도리를 보려고 봤던 건지 모르겠다.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나서 밥돌이가 돌아가려던 때 뭔가가 생각났는지 다시 다연이에게 다가와 물었다.

“다연아, 혹시 아저씨가 방송 때 다연이랑 같이 찍은 사진 보여줘도 돼? 얼굴은 가릴게. 그냥 자랑하고 싶어서. 다연이랑 같이 했던 이야기도 사람들한테 해주고.”

방송인들에겐 이런 소소한 이야기도 시청자와 같이 나누는 걸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른 방송을 잘 보는 편은 아니지만 방송을 하려면 그래야 할 것 같다.

밥돌이의 말에 다연이가 대답한다.

“네! 대신 우리 오빠가 요리 엄청 잘한다는 것도 말해줘야 해요!”

“그래! 알겠어! 그러면.. 다연이 너, 내 방송 보고 있지?”

“네!”

“오늘 7시 조금 넘어서 할 거니까 잘 보고 있어야 돼. 알겠지?”

“알게써요! 내가 볼게!”

“좋아!”

그러고 한참을 인사하던 둘은 드디어 헤어졌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데도 그새 친해진 것 같다.

“안뇽, 밥도리!”

“안녕, 다연이!”

이렇게 보니 둘 성격이 다른 듯 비슷하다. 같은 성격은 아니지만 둘이서 대화할 때는 죽이 척척 맞는다.

밥돌이가 돌아간 뒤에 다연이가 말했다.

“밥도리 엄청 머시따. 맞지?”

“그러네. 엄청 착하고 좋은 사람인 것 같아.”

“마자! 그래도 오빠가 더 머싯는 건 알고 있어. 더 마싯는 요리를 하는 것도.”

“그래.”

다연이가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말했다.

“그러면 빨리 가서 밥도리 방송 기다리자!”

“알겠어.”

뜻밖의 인연이 생긴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유명인과 아는 사이라니.

이런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싫진 않았다. 오히려 더 좋았지.

혹시 우리 식당이 더 유명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농담 같은 생각을 했다.

.

.

.

시간이 지나고 밥돌이의 방송이 시작됐다.

나는 손님을 기다리면서, 다연이는 밥돌이를 기다리면서 영상을 본다.

“안녕, 밥순이들!”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드디어 밥돌이가 나왔다.

전에 봤던 것처럼 밝은 모습이다. 아까보다 더 밝은 것 같기도 했다.

“안뇽, 밥도리!”

들릴 리는 없겠지만 다연이는 웃으면서 그렇게 외쳤다.

된장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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