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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동생이 생겼다-92화 (92/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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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100점 짜리 파전이야! 엄청 맛있을 거야.”

완성된 파전을 테이블 위에 내놓으니 다연이가 그렇게 말했다.

초록빛의 파전. 거의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다연이도 풀보다는 고기를 좋아한다.

그런 다연이에게 초록색의 파전은 고기보다 맛있게 보이지 않을 거다. 하지만 파전 군데군데 박혀 있는 오징어가 그런 생각을 말끔히 지운 것처럼 다연이는 설레는 얼굴로 파전을 보고 있다.

“오··· 진짜 마싯겠다···”

파전 가장자리에는 살짝 탄 흔적이 있다. 검게 그을린 자국은 아이러니하게도 파전을 더욱 맛있어 보이게 한다.

갈색으로 탄 흔적은 뜨거운 프라이팬 위를 견뎌낸 훈장처럼 형광등의 불빛을 반사시킨다.

“말랑말랑해.”

다연이는 젓가락으로 파전을 툭툭 찌르며 말했다. 딱딱하게 탄 자리 이외에는 그펀지처럼 말랑하다.

젓가락으로 찌를 때마다 박혀있는 오징어가 꿈틀거린다. 그러자 그 사이에서 하얀 김이 슬금슬금 밖으로 나온다.

“호오.. 빨리 먹자.”

“그래.”

우리는 그제야 식사를 시작한다.

테이블 위에는 파전 이외에도 여러 가지의 반찬들이 올라와 있지만 아이들의 손은 파전을 향해서만 가고 있다.

서툰 젓가락 질을 하던 다연이는 결국 한 점도 뜯어내지 못했다.

"젓가락 하는 거 너무 어렵따."

나는 그런 다연이에게 파전을 떼어준다.

부추도 많이 들어가 있지만 오징어도 하나 박혀있다.

파전만으로도 맛있는 음식이지만 감초 역할인 오징어의 식감도 빼먹을 수 없다. 특히 다연이 같은 아이라면 더 그렇다.

"여기에 찍어 먹으면 돼."

나는 간장을 내밀었다.

파전 조각을 간장에 찍어 먹은 다연이가 웃는다.

"마시따! 오징어가··· 오징어가 마시써!"

버터 구이로 먹을 때와는 또 다른 맛인가 보다.

나도 이어서 한 점 집는다.

바삭한 겉 면와 그에 반해 촉촉한 속. 어금니로 씹으니 와그작하는 옅은 소리가 들리고 그 뒤로 적당히 구워진 속이 말캉하게 씹힌다.

그 맛에 익숙해질 때쯤 파전에 매달려 있던 오징어 조각의 식감이 느껴진다.

"맛있지?"

다연이가 물었다.

"응."

내가 한 음식이지만 정말 맛있다고 생각했다.

내 요리 실력이 그 정도로 뛰어나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금 이 파전이, 비 내리고 있는 바깥이,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아이들과 잘 어울린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잘 어울리는 음식을 먹고 있으니 왠지 나른한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할머니가 비가 오는 날 나와 예나에게 이렇게 파전을 해주곤 하셨던 것 기억난다.

“맛있어요.”

“그래.”

“이거 먹고 있으니까 할머니 보고 싶다. 그쵸?”

“응.”

그 말을 들은 다연이도 옆에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

.

.

월요일 아침, 오늘부터는 식당을 일찍 열기로 했다.

등교하는 학생들을 손님으로 받아야 된다는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 예나의 조언 때문이었다.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에 문을 여는 게 좋겠다는 말.

오늘부터 시작하는 새 메뉴도 있으니 그러는 편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 다연이는 자고 있다. 평소보다 일찍 식당 문을 여는 것이었기에 어젯밤 다연이에게 미리 말해뒀다.

깼을 때 내가 옆에 없을 거라고. 그러면 1층으로 내려오면 된다는 것도 말해줬다.

“알게써. 그럼 혼자 일어나면 무서우니까 수박이 가지고 와도 돼?”

다연이가 했던 말이다. 나는 응, 이라고 대답했고.

지금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지만 솔직히 올 지는 잘 모르겠다.

보통 학생들은 집에서 밥을 먹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아침을 나와서 먹는 애들이 많을까.

“음..”

잠시 생각해보니 아침엔 바쁘니 못 먹고 나올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건 오늘이 지나봐야 아는 거지만.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누군가가 식당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누구지. 아는 얼굴은 아닌데.

교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학생인 것 같다. 예나와는 명찰 색깔이 다르니까 다른 학년의 학생 같다.

남학생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말한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쭈뼛거리며 들어오던 남학생이 내게 물었다.

“다연이는요?”

지나가는 학생의 입에서 다연이의 이름이 나오니 조금 놀랐다. 하지만 저번에 봤던 다연이의 일기장을 떠올리니 납득할 수 있었다.

벌써 다연이가 이만큼 유명하다.

“자고 있어요.”

“아.. 저 그러면 그거.. 하나만 주세요. 이름이 뭐더라··· 어제 다연이 인별에 올라온 거요.”

“아, 네. 알겠습니다.”

다연이 말대로 다연이의 일기장은 다연이만의 소유가 아닌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다 보고 있다.

나는 남학생에게 새 메뉴를 건네준다.

“오.. 이렇게 생겼구나. 다연이 인별에는 빈 그릇만 올라와 있어서 몰랐어요. 그래서 더 궁금했는데.”

주말에 예나의 말대로 하길 잘했다. 비록 예나는 할 일이 많을까봐 그랬던 거 겠지만 결국에 도움이 됐다.

음식 사진을 올리지 않는 편이 더 궁금하게 만들었구나.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그렇게 남학생이 가려던 찰나에.

"흐암."

다연이가 터벅터벅 걸어 나온다. 아직 잠이 완전히 깨지 않았는지 눈을 비비고 있었다. 그리고 한 손에는 수박 인형을 들고 있다.

"우와..! 다연이다."

"안뇽.."

남학생이 작게 말했고 다연이는 대충 대답한다.

"오··· 인사했어..!"

남학생이 감탄하고 있을 때 뒤따라 다른 학생이 들어온다. 둘은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저기 봐. 다연이다."

"안녕."

다연이는 점점 늘어나는 학생들의 시선에 슬금슬금 복도 쪽으로 뒷걸음질 친다.

아이들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아··· 안뇽."

"오..!"

다연이의 인사에 늘어난 학생들이 호들갑을 떤다.

다연이는 관심 받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축제 때, 그렇게 식당 홍보를 하진 못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갑작스런 관심과 늘어나는 눈들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오빠.. 나.. 올라가서 씻고 있을게.."

"혼자 씻을 수 있어?"

아직 혼자 머리를 감기엔 어린 나이다.

"모.. 몰라."

그리고 후다닥 올라가 버린다.

모여있던 학생들이 덩달아 아쉬운 목소리를 낸다.

"아.. 나중에 오면 다연이 또 볼 수 있죠?"

"네, 아마도요."

그제야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음식을 주문한다.

학생들이 시킨 메뉴는 떡꼬치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김밥이었다.

"혼자 먹긴 조금 많은데. 혹시 작게 만들어 주실 수 있어요? 절반 정도로요."

"네."

아침이라 그런지 학생들이 바라는 양이 적다. 여학생들은 더 그랬고.

다음에는 학생들에게 아침으로 줄 메뉴를 알아봐야겠다. 이렇게 좋아해주니 새 메뉴를 개발할 의욕이 생긴다.

“안녕히 계세요.”

마지막으로 여학생이 떠나고 나서 식당이 조용해졌다. 거리에도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 걸 보니까 등교 시간이 지난 모양이다.

“...전부 갔어?”

그 때 다연이가 기둥 뒤에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응.”

“휴..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

“사람들 많은 거 싫어?”

“아니, 그런데 저 사람들은 나를 너무 좋아해. 그래서 조금 피곤해.”

다연이는 대형 팬미팅을 끝내고 온 걸그룹의 유명 멤버처럼 말했다.

“그래, 다음에는 한 명씩 다연이랑 이야기하라고 해야겠다.”

“음··· 아니야. 그래도 저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니까 그렇게 말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할 수도 있어.”

“착하네.”

다연이는 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듯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어린이집 갈 준비해야겠다.”

“그래.”

나는 다른 날처럼 등원 준비를 위해 움직인다.

.

.

.

“여기 튀김이랑 떡볶이 2인분씩 주세요!”

“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바쁘다. 엄청 바쁘다.

손님들로 붐빌 거라고 대강 예상하기는 했지만 너무 많다. 그래서 오늘도 다연이를 데리러 가지 못했다.

지금은 저녁 시간이지만 손님들은 학생이 많다. 분명 내가 학생 때는 급식을 먹었는데 요즘은 그게 아닌 것 같다.

“아니에요, 아저씨.”

그 말을 예나에게 하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그게 아니라 아저씨 음식이 맛있어서 오는 거에요. 다연이 일기장 덕분인 것도 맞고.”

지금 예나는 손님 역할이다. 평일에도 알바를 하긴 하지만 오늘은 그 날이 아니다.

“그래도 너무 많은데..”

“제가 많이 올 거라고 했죠? 애들 다연이라면 무조건 온다니까요. 아, 그리고 당연히 아저씨 음식이 맛있기도 하고요.”

“그래, 고마워.”

오늘은 특히 튀김이 많이 팔렸다. 새로운 튀김이 떡볶이와 잘 어울리는 모양이다. 떡꼬치도 그렇고.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메뉴 변화라고 해봤자 극적으로 맛있거나 새롭지 않으면 하루만에 이렇게 팔릴 리가 없다는 걸. 그리고 이게 다연이 덕분이 크다는 것도.

“여기 튀김 4인분이랑 떡꼬치 주세요!”

“네.”

이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다. 얼른 움직여야 되니까.

보통은 축제 시즌이 끝나면 이렇게 바쁠 일은 없다. 그럴 수도 없었다. 여기는 줄을 설 정도로 유동 인구가 많은 편이 아니니까.

그런데 오늘은 축제 만큼 바쁘다. 어쩌면 더 바쁜 것 같기도 하다.

한창 일을 하고 있을 때 다연이가 식당 안으로 발을 디딘다. 뭔가 다짐을 했는지 표정은 굳건하고 자세도 단단하다. 꼭 돌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장한 표정을 짓는다.

“우와! 안녕, 다연아.”

오늘 아침의 다연이였으면 뒷걸음질을 쳤겠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런 표정과는 안 어울리게 한 손에는 혜원이 아빠의 손을 잡고 있다. 같이 오면서 서로 이야기를 했는지 혜원이 아빠도 웃으면서 다연이를 본다.

“안뇽!”

다연이가 크게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다연이를 본다.

“안녕!”

“맛있게 먹어요! 우리 오빠가 한 거니까 맛있어!”

다연이의 말을 들었던 학생들이 감동받은 얼굴을 했다.

다연이는 돌같은 얼굴을 하고 단단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 자리에서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던 다연이는 당당하게 주방으로 왔다.

“나 잘해찌?”

“응, 잘했어.”

그 말을 들은 다연이는 순식간에 어깨에서 힘을 빼고 축 늘어뜨린다.

“휴.. 내가 조금 피곤해도 손님이 좋으면 나도 조아.”

“그래.”

어린이집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에 계속 그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나는 혜원이 아빠에게 인사를 한 뒤, 보답으로 좋은 요리를 약속하고 보낸다.

파도처럼 밀려왔던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졌다.

거대한 뭔가를 상대했던 것처럼 주방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에 반해 홀은 깔끔하다. 학생들이 깔끔하게 쓰고 갔다.

고등학교 학생들은 전부 착한 것 같다. 다연이를 대하는 태도를 봐도, 쓰레기 하나 없는 홀을 봐도 그렇다.

“오늘 손님 엄청 많았지?”

“응, 너무 많아서 재료를 거의 다 썼어. 나중에 사러 가야겠네.”

“그래!”

그래도 고비는 지났다.

힘들긴 하지만 오늘 매출을 확인하는 순간 피로가 날아갔다.

내일도 이만큼 팔려면 벌써 지쳐선 안 된다

“오빠 재료 사러 갈 때 나도 같이 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응, 오늘 혜원이가 말해줬는데 마트에 엄청 맛있는 새로운 초콜릿이 생겼대! 그거 먹고 싶어.”

“그래, 그럼 가자.”

나는 다연이에게 새 초콜릿을 사주기 위해서 밖으로 나선다.

.

.

.

다시 주말이 찾아왔다. 오늘은 주말이긴 하지만 식당 문을 여는 날이다.

그러면 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하..”

온 몸이 뜨겁다. 기침이 나오진 않지만 열이 꽤 높다.

아무래도 며칠 간 무리해서 일했더니 몸이 아픈 모양이다. 오랫동안 감기도 안 걸릴 정도로 건강했었는데 오랜만에 아픈 걸보니 지난 일주일 동안 바쁘긴 했던 모양이다.

오늘은 예나도 오지 말라고 말했다. 식당 문도 열지 않기로 결정했고.

“다연아, 가까이 오지 마.”

혹시 아픈게 옮을 까봐 다연이와도 거리를 벌린다. 지금 다연이는 나와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아있다.

표정도 우울하다.

“많이 아파?”

“...응.”

조금 많이 아프다.

다연이는 한동안 우울한 얼굴을 하다가 다시 비장한 얼굴로 바뀌었다.

저러는 걸 보니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모양이다.

“그러면! 오늘은 내가 오빠 밥해 줄게! 오빠는 거기에 누워있어!”

다연이가 다시 돌처럼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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