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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가 튀김을 뱉는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게 그렇게 맛없었나, 아니면 사실 지금까지 내가 한 음식을 다연이가 억지로 먹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질려서 뱉어버린 게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다연이가 말했다.
"뜨거워.."
"뜨거워?"
다연이는 혓바닥을 내민 채,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헥헥 거리고 있는 다연이. 아무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많이 뜨거웠던 모양이다.
튀김이 완성되자마자 갖다주긴 했는데 늘 잘 먹어서 알아서 잘 식혀 먹을 거라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늘 그랬던 것처럼 식히고 먹으라고 말할 걸.
왜 오늘만 잊어버렸을까.
나는 순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 채 서 있다가 뒤늦게 물을 뜨러간다.
"혀가 뜨거워.."
"이리 와."
일단 차가운 물을 입에 머금고 있게 했다.
다연이는 입 안 가득 물을 머금고 나를 본다. 다연이가 뱉어낸 튀김은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미안.."
다연이는 곧 괜찮아졌는지 물을 머금은 채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방금 뜨거웠는데 다 나았어."
다행이도 데이진 않았다. 먹자마자 바로 뱉어서 그런 것 같다.
다연이는 저번처럼 튀김을 오물거렸고 최고로 맛있다면서 박수를 쳤다.
"내가 손님이었으면 내가 가진 돈 다 줬어!"
"그래."
다연이의 표정을 보니 정말 그럴 것 같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예나가 온다.
"안뇽!"
"안녕."
식당으로 들어온 예나는 물기를 툭툭 털었다.
"비 와?"
"네, 조금이긴 한데 오고 있어요. 왜 갑자기 비가 오는 거죠··· 아침에 확인했을 땐 비가 안 온다고 했었는데.."
예나의 말에 일기예보를 다시 확인해보니 비로 바뀌어있다.
“조금만 더 일찍 바뀌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러게.”
그래도 비가 쏟아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냥 가느다란 비가 안개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비다.”
다연이가 바깥으로 손을 뻗으면서 말했다.
“들어와. 젖어.”
“응.”
비가 묻은 손을 보던 다연이가 바지춤에 슥슥 닦고 내 옆으로 온다.
지금은 고안한 음식들을 예나에게 검사 받아야 할 시간이다.
“그러면 그 때 말했던 음식들, 해 올게.”
“네에.”
나는 음식을 하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고 다연이는 서빙하는 종업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나를 따라온다.
“나는 뭐하면 돼?”
다연이가 종업원 역할을 하게 된 이유는 다연이의 부탁 때문이었다. 자기도 뭔가를 하고 싶다는 부탁.
그래서 나는 예나에게 줄 음식을 만들테니 다연이는 실제로 손님을 대하듯 예나에게 하라고 말했다. 일종의 식당 놀이인 셈이다.
“이거 가져다 줘."
"응."
나는 포크와 앞접시를 건네준다. 딱히 필요할 것 같진 않지만 다연이의 식당 놀이에 조금 더 현실감을 주고 싶었다.
“여기 있씁니다.”
다연이가 서툴게 말했다.
“이거 뭐야? 다연이가 서빙하는 거야?”
“네에.”
평소의 내가 그랬듯 존댓말로 대답한다. 그리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하면 되지?”
“응, 잘했네.”
정말 잘 한 것 같다. 나중에 다연이가 크면 식당 서빙을 시켜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묵 다 먹었으니까 나는 이거 갖다주는 사람할래.”
“그렇게 해.”
나는 다연이가 나름의 서빙을 하는 사이, 음식을 완성시킨다.
준비한 음식은 떡꼬치 사이사이에 튀김을 끼워넣은 것과 당장 내일부터 새로 팔게 될 튀김들이다. 그리고 튀김과 어울릴 떢볶이 국물도 준비했다.
마음 같아서 떢볶이 한 접시를 주고 싶지만 지금은 식사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간단하게만 준비한다.
“나는 뭐 들고 가?”
나름의 서빙을 마친 다연이가 내게 물었다.
“....튀김 들고 가.”
“알겠어.”
정말 다연이가 나중에 커서 서빙할 수 있을 나이가 된다면 서빙을 시켜야겠다. 잘 하네.
그리고 더 나중에는 식당을 물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음식을 가져다 준다.
“오..! 이게 아저씨가 말했던 거구나!”
“응.”
예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소떡소떡이랑 비슷한 거 맞죠?”
“맞아. 근데 우리 식당엔 소시지가 없잖아.”
그래서 소시지 자리를 튀김으로 대신했다.
나름 맛있기도 했고 학생들이 오며가며 사 먹기에도 좋을 것 같아서 그랬다.
“그리고 이거는 맛있는 튀김이야. 아니, 튀김이에요.”
이어서 다연인가 설명한다. 진짜 서빙하는 종업원처럼.
존댓말까지 쓴다.
“이건 무슨 튀김인가요?”
“음··· 어.. 모르게써. 그냥 먹어.”
이름에 대해 고민하던 다연이는 그냥 포기하고 자리에 앉는다.
덩달아 존댓말로 대답하던 예나도 더 물어보지 않고 다연이가 서빙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오.. 맛있어요. 확실히 이게 더 잘 어울리네요.”
기존의 튀김들은 확실히 구식이긴 했다. 떡볶이와도 이게 더 잘 어울리고.
“다연이도 먹을래?”
“응.”
다연이는 절대 배부르지 않는 모양이다.
“좋아요. 이 정도면 다른 애들도 좋아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일단 아저씨 음식은 맛있으니까요.”
“마찌, 오빠가 한 건 맛있어. 그래서 나도 계속 먹는 거야.”
다연이가 그렇게 말하고선 튀김을 집어 먹는다.
예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그러면 이제 하나 남았지.”
“뭐?”
“다연이 일기장에 올리는 거! 이거 엄청 맛있었다고 올리면 돼."
“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뭐가 좋다고 했었찌?”
“식당에 손님들이 많이 오지! 그러면 아저씨가 다연이랑 더 잘 살 수 있고!
“오오! 그러면 빨리 올려야 겠다.”
다연이는 익숙하게 내 휴대폰을 가져와서 다연이의 일기장을 열었다.
“우와, 많이 올렸네.”
“응, 내 일기장이니까.”
“다연아, 내가 사진 찍어줄게. 다연이는 빈 그릇 들고 있어.”
예나의 말에 내가 물었다.
“왜 빈 그릇이야? 새로 하면 되는데.”
“그래야 진짜 맛있는 음식 같잖아요. 그리고 다시하면 귀찮기도 하고.”
예나의 말을 들어보니 그렇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빈 그릇을 들고 어색한 미소를 짓던 다연이의 사진은 금방 일기장에 올렸다.
다연이는 굳이 잘 나온 사진을 고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예쁘다는 예나의 말 때문에 다연이의 일기장에는 빠르게 사진이 올라갔다.
“후.. 이제 손님 많이 올 거에요.”
“응.”
굳이 새 메뉴 때문이 아니더라도 일기장 때문에 많이 올 것 같다.
재료는 충분히 사다뒀으니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식당은 언제 문 열어요?”
“오늘은 주말이니까 지금부터 열어야지. 준비도 다 됐어.”
오늘은 새 메뉴의 테스트를 위해 예나에게 빨리 오라고 부탁했었다. 그래서 이제야 식당 문을 열게 됐다.
“그러면 열심히 일 합시다.”
“오늘은 나도 일할 거야!”
예나의 말을 따라서 다연이도 크게 외쳤다.
.
.
.
시간이 조금 지나서 점심을 먹을 때가 됐다.
하지만 다연이와 예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점심 때까지 손님들은 거의 오지 않았다.
“왜 이렇게 한가하죠. 이러면 알바비 받는 것도 미안해지는데···”
옆에서 고민하고 있던 다연이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런지 알 것 같아! 바로 어제 많이 와서 그래. 많이 와서 많이 먹었어. 그래서 아, 배불러 하고 오늘은 안 먹는 거야.”
“그··· 그런 건가?”
예나가 대답했지만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원래 식당은 점심, 저녁 장사야. 그래서 오전에는 잘 안 오는 거고. 예나, 너는 식당에서 일해봤잖아?”
“아.. 그러네요. 잊어버렸따.”
그렇게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도 바깥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주르륵 내리지 않고 분무기처럼 흩날리고만 있다.
“점심으로는 뭐 먹을래?”
내가 그렇게 물으니 다연이가 대신 대답한다.
“나는 그거 먹고 시퍼! 그거.. 파전!”
“파전?”
“응, 저번에 내가 동영상 봤거든? 비 오는 날에는 파전을 먹어야 한대!”
요즘 다연이가 주구장창 보고 있던 영상이 음식에 대한 영상이었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집에 파전을 만들 만한 재료들이 있다. 다연이가 원하는 점심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그러면 조금만 기다려.”
나는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한다. 쪽파와 부침가루, 고추와 오징어 남은 것들이다.
다행이도 저번에 오징어 버터 구이를 먹은 뒤로 다연이가 종종 오징어 요리를 해달라고 말한 덕에 남은 오징어가 조금 있다.
오징어가 없어도 파전을 만드는 데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으니까.
우선 쪽파를 썰기로 한다.
파전의 주인공이나 나름 없으니까. 그리고 파가 없는 파전은 파전이 아니다.
초록의 쪽파를 뭉텅이로 모은 다음 칼로 툭툭 썬다. 바깥에 널려 있는 풀을 자르는 것처럼 무심한 소리를 내지만 막상 파전으로 완성되면 바깥의 풀과는 비교도 안 될 거다.
내가 한창 요리에 집중하고 있을 때 밑에서 다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왜?”
“나도 도와주면 안 돼?”
“다연이가 도와주기엔 너무 힘들텐대.”
“괜찮아, 나 이제 많이 컸잖아. 벌써 이만큼이나 컸어.”
다연이가 복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복도 쪽에는 여태까지 다연이의 키를 잰 자국이 남아있는 기둥이 있다.
몇 개월 사이 벌써 그만큼이나 자란 거다.
그런 다연이를 내버려두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나름의 일거리를 말해줬다.
“그러면 오빠가 요리하고 있는 동안 다연이가 밥 먹을 준비해줘. 접시 놓고, 수저 놓는 거.”
“나는 오빠 요리 도와주고 싶은데..”
그건 조금 더 큰 다음에 해도 된다는 말을 하고선 다시 요리에 집중한다.
오징어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어갈 재료인 고추를 앞에 두고 고민에 빠진다.
이걸 넣는 게 맞는 걸까. 고추가 들어가지 않으면 맛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연이가 먹을 거니까 고추를 안 넣는 게 맞긴 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빼버리기로 했다. 이건 다연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시작한 요리니까 다연이 입맛대로 해야 한다.
열심히 썬 재료들을 한 곳에 모아 주고, 부침 가루와 물을 넣는다.
끈적하게 섞이는 재료들. 왜인지 이대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건 생각으로 남기고 재료를 열심히 섞는 데에만 집중한다.
너무 강해서 재료들이 부서지지 않게, 하지만 너무 약해서 각자 따로 놀지 않게 섞는다.
장갑을 낀 손길에 따라서 부드럽게 움직이는 덩어리들을 불에 달구어 놓은 프라이팬 위에 올린다.
치이이.
여태까지 식당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소리를 들었다.
튀김이 튀겨지는 소리, 고기를 굽는 소리, 심지어 다연이와 같이 살면서는 더 많은 소리를 들으며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도 비와 가장 잘 어울리는 소리를 고르라면 단연 파전을 굽는 소리였다.
작은 빗소리가 파전 아래에서 들리는 것 같다. 너무 강하지 않게 들리는 소리가 좋다.
“오.. 좋은 소리. 파전을 만들면 좋은 소리가 나구나.”
어느 새 준비를 마친 다연이가 옆에서 나를 지켜본다. 의자 위에 올라와서 보고 있다.
한 손으로는 내 어깨를 잡고 있었다.
“이제 더 재밌는 걸 할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니 다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파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비라는 건 사실이지만 프라이팬을 잘 휘둘러서 한 번에 뒤집는 것도 나름 파전 요리의 유명한 퍼포먼스다.
파전을 만들 때면 이런 퍼포먼스를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나는 숨을 가다듬고 파전을 뒤집는다.
공중에서 핑그르르 도는 파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다연이의 입이 천천히 벌어진다.
나름대로 완벽했다. 완벽한 스냅이었고 완벽한 타이밍이다. 이제 제대로 프라이팬 위에 안착하는 일만 남았다.
“돼따!”
다연이가 크게 외쳤고 공중에서 돌던 파전도 다시 떨어진다.
착.
완벽하게 뒤집어졌다. 흐트러짐도 없고 반대쪽이 타지도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환하게 미소짓던 다연이가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100점! 나는 오빠 파전한테 100점을 줄게!"
나는 100점 짜리 파전을 접시 위로 옮겨 담는다.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