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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선생님이?”
“응! 여기에 봐. 선생님이라고 적혀 있잖아.”
다연이가 휴대폰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다연이는 똑똑하긴 하지만 아직 글자는 잘 모를텐데.
“이거 어떻게 읽었어?”
“나는 똑똑하잖아! 저번에 오빠가 가르쳐준 거 다시 생각해냈찌!”
진짜 똑똑한 것 같다. 그걸로 알아내다니.
그나저나 선생님이 무슨 일로 전화하신 걸까.
“빨리 받아.”
“응.”
나는 다연이의 재촉에 전화를 받는다.
“여.. 여보세요..?”
선생님의 목소리가 조금 떨린다. 나는 바로 왜 그런 건지 물어봤다.
“그게.. 사실 전화 안 하려고 했는데.. 조금 무섭거든요..?”
“네?”
그게 무슨 소린지 되물었더니 태풍이 불고 있는 지금이 무서운 거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아까 전에 다연이의 말이 떠오른다. 무서우면 우리 집에 와도 된다는 말.
내 옆에서 귀를 바짝 붙인 채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다연이가 밝게 웃으면서 말한다.
“내가 말해찌! 무서우면 우리 집에 와도 돼요!”
다연이가 옆에서 그렇게 말했고 선생님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혼자 살아보는 건 처음이라서···"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이해가 된다.
처음 해보는 건 당연히 무섭기 마련이니까.
다연이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말했다.
"선생님, 무서우면 우리 집에 와요! 엄청 가까우니까 괜찮아."
"그래, 고마워 다연아."
나는 그렇게 말하는 다연이를 옆에 두고 우선 해야할 것들을 말해줬다.
할머니의 노트에 적혀있는 방법들을 읊는 것뿐이었지만 그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다연이가 우리 집에 오라는 말을 한 번 더 한 뒤에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오··· 그러면 선생님 오는 거야?"
설렌 듯한 눈을 하고 있는 다연이에게 내가 말했다.
"아니.."
"음.. 선생님이 안 온다는 건 안 무섭다는 뜻이니까 괜찮아. 그러면 우리는 빨리 맛있는 거 먹자."
"그래."
그래도 아직까지는 바람이 약하다.
가볍게 창문을 때리는 정도. 하지만 곧 강해질 거다.
그럼에도 다연이는 창밖의 상황에 신경 쓰기는 커녕 내가 만들어 준다고 말한 간식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다연이는 안 무서워?"
"응, 그냥 바람이만 불잖아. 혼자 있으면 무서운데 아니라서 괜찮아."
"...그래."
"근데 선생님은 혼자 있어서 무서울 텐데. 다시 전화해서 우리 집에 오라고 하까?"
설레는 다연이의 얼굴을 보니 선생님에 대한 걱정보다는 우리 집에서 같이 놀았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커 보였다.
"아니, 선생님은 어른이잖아. 혼자서도 잘하셔."
"음··· 그건 맞아."
"그래, 우리는 바람 더 세지기 전에 간식이나 만들자."
"간식!"
태풍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한 만큼 이제 태풍이 지나갈 동안 해야 할 것들을 준비해야 했다.
나와 다연이가 할 건 밀린 애니메이션을 보는 일이지만 그동안 먹을 간식도 필수다.
"우리 오늘 뭐 먹는다고 했더라?"
"팝콘이랑 오징어 버터구이."
"오징어는 처음이야. 팝콘은 먹어봤는데."
많고 많은 간식들 중에서 팝콘과 오징어 버터구이를 고른 이유는 영화관 같은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다연이가 먹고 싶어했다는 거고.
간식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다연이는 먼저 팝콘을 말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찾아보다가 오징어 버터구이를 선택했고.
"오징어도 맛있을 거야. 오징어잖아."
"어.. 근데 오빠는 오징어 버터구이라는 거.. 먹어봤어?"
자고로 음식이란 만들기 전에 먼저 그 음식을 먹어봐야 한다. 당연한 말일지 모르지만 그래야 그 음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
그런데 나는 오징어 버터구이를 먹어본 적이 없다.
우선 오징어 버터구이는 분식집과 너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먹을 이유도 없었고.
“안 먹어 봤는데도 맛있게 만들 수 있는 거야?”
“....아마도.”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맛있게 만들 수 있을지.
그냥 다연이가 먹고 싶다고 해서 만드는 것 뿐이고.
“음··· 나는 오빠가 요리 잘 하는 거 알아.”
“고마워.”
“...그런데 오징어는 잘 못 만들 것 같아.”
바람이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 속에서도 다연이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려온다.
내가 오징어 버터구이를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다.
"...잘 만들 수 있어."
"..아니야."
레시피도 익히고 영상도 열심히 봤다.
잘 만들 수 있을 거다. 아마도.
"그러면 오빠가 만들테니까 다연이가 지켜봐."
"음··· 알겠어."
다연이 입 맛은 생각보다 정확하다. 맛 없으면 안 먹을 수도 있다.
나는 냉장고에서 오징어를 꺼내 조각조각 손질한다.
한 입에 먹을 수 있게, 그래도 너무 작지는 않게.
식칼로 오징어를 자르니 톡톡, 하는 작은 소리가 들린다.
이 정도 크기면 적당하겠지.
"오빠, 여기는 조금 더 작게 잘라야 돼."
"그래."
나는 다연이의 피드백을 수용하면서 오징어를 잘라간다.
마무리는 간단하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풀고 오징어를 구워주면 끝이다.
치이이.
오징어가 프라이팬을 뒹구는 소리가 들린다. 바깥의 바람 소리도 크게 들리지만 다연이는 오징어만 보이는 듯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렇게 구르면 더 맛있어 질 거야.”
“응.”
다연이는 드라마 속 시어머니처럼 말한다.
오징어는 버터를 머금으면서 갈수록 반짝인다.
“반짝반짝.”
나는 다연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부드런하게 오징어를 굴린다. 그리고 그 위로 달짝지근한 설탕을 약간 뿌려준다.
온 집 안에 버터 냄새가 가득하다. 태풍 때문에 창문을 못 열어서 더 그렇다. 이래서 냄새가 나는 음식은 하지 않으려 했는데.
“오..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나잖아..!”
그래도 다연이가 좋아하니 괜찮겠다.
젓가락으로 오징이 하나를 집으니 말랑말랑한 감촉이 느껴진다. 젓가락 너머로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적당하게 따뜻한 훈기와 자극적인 냄새. 그리고 바깥에서 몰아치는 태풍까지.
꼭 겨울에 따뜻한 전기장판 아래에서 귤을 먹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제 다 됐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에 음식이 완성됐다.
솔직히 조금 걱정된다. 정말 맛있게 만들어졌을지.
이제는 다연이의 평가만 남았다. 만약 여기서 합격을 받지 못한다면 오징어 버터구이는 내가 다 먹어야 된다.
“그럼 나, 하나 줘. 먹어 볼래.”
“그래.”
나는 살짝 긴장하고서 다연이에게 오징어 하나를 내밀었다.
“어때?
오물거리면서 가만히 나를 보는 다연이. 고개를 끄덕이지도, 웃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오징어를 꿀꺽 삼킨다.
“음···”
나는 다연이의 말을 기다린다.
“마시따! 그것도 엄청 맛있어!”
“후··· 다행이네.”
다연이가 맛있다고 해주니 안심이 된다. 내가 꾸역꾸역 다 먹을 필요는 없겠구나.
나는 열심히 만든 오징어 버터구이를 그릇에 담고 거실로 걸어나온다.
바깥은 여전히 바람이 세게 불고 있다.
“빨리 과일 수호대보자.”
“그래.”
그렇게 자리에 앉으려던 때 휴대폰이 다시 울린다.
이름을 볼 필요도 없이 다연이의 선생님이었다.
“여보세요.”
“저.. 저기.. 조금.. 아니, 많이 무서운데.. 어떡하죠..?”
다짜고짜 이렇게 묻는 걸 보니 정말 많이 무섭긴 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다연이 말처럼 우리 집에 오라고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집 안도 그렇게 무서운데 어떻게 바깥에 나올 수 있을까.
“괜찮아요. 제 말대로 했으면 창문 깨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 그래도··· 정전 되면 어떡해요.”
내가 그 집에 살았을 때 정전이 됐다면 그대로 잠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와 다르단 걸 알고 있기에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내가 고민하고 있던 사이에 다연이가 말했다.
“그러면 우리 집에 와요! 나중에 바람 많이 안 불 때!”
“그렇게··· 해도 돼요..?”
선생님이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많이 무서운 모양이다.
“네, 오실 거면 나중에 문자라도 보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평소 선생님의 목소리와는 많이 다르다. 특히 다연이나 다른 아이들 앞에서는 늘 평온하던 선생님이 많이 무서운 모양이다.
“그러며언.. 선생님 오는 거야?”
“몰라, 조금 더 기다려 보자.”
“응.”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잊어버리고 만들지 않았던 팝콘을 튀긴다.
팝콘은 마트에서 팔고 있는 제품을 사서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한 거라 시간은 얼마 들지 않았다.
휘이잉.
그러면서 바깥을 보니 아까보다 바람이 많이 사그라 들었다.
설마 선생님이 진짜로 오시진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 만들어진 팝콘을 전자레인지에서 꺼낸다.
.
.
“선생님!”
얼마 안 있어서 선생님이 정말로 우리 집에 왔다. 조금 겁에 질린 얼굴이다.
진짜 찾아올 정도로 겁이 많은 모양이다.
바깥에서 불던 바람은 선생님이 식당으로 들어오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거세게 불었다.
아까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진 것 같다.
“죄.. 죄송합니다아··· 친구라도 있었으면 친구 집에 갔을 텐데··· 친구가 없어서···”
저번에 타지에 살고 있어서 친구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우리는 다시 2층으로 올라왔다.
문을 열자마자 풍겨오는 버터구이와 팝콘의 냄새. 향긋하다.
조금 전에 겪었던 바깥의 바람과는 많이 다르다. 초 가을인데도 아직 더운 날씨지만 바깥에 부는 태풍 때문에 온도가 조금 낮아진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건지 집 안의 훈기가 더 반갑다.
“우와··· 맛있는 냄새..”
다연이의 손을 잡고 따라오는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이 그렇게나 무서워하시니 오늘은 같이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는 편이 다연이도 좋을 거고.
나는 선생님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집 안으로 들어와서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자리를 잡는다.
선생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자기는 신세 지는 거니까 아무래도 상관없다면서.
“과일 수호대 보기 전에 선생님 이거 먹어 봐요! 엄청 맛있어요. 우리 오빠는 이거 오늘 처음 해보는 건데도 엄청 맛있어!”
“그래···?”
“네!”
선생님은 다연이 말을 따라서 오징어 구이를 집는다.
때때로 창문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 때문에 움찔하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다연이의 권유 때문에 오징어 버터구이를 입에 넣었다.
나도 하나 집어서 먹어본다.
“음···”
“맛있네요..”
선생님 말처럼 맛있다.
나는 오징어 버터구이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지만 대충의 맛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 안에 들어간 재료들의 맛은 알고 있었으니까.
버터와 오징어, 그리고 설탕까지. 찍어 먹을 소스로는 마요네즈를 준비했다.
살짝 매콤한 맛이 들어가 있으면 더 좋다고 들었지만 다연이가 있어서 그러진 않았다.
오징어 구이의 맛은 정말 딱 맥주를 부르는 맛이었다. 살짝 느끼하고 충분히 질기다.
그래서 더 맥주가 생각난다. 나는 술을 즐기지 않지만 맥주가 생각날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다.
게다가 처음 입 안으로 넣을 때 느껴지는 버터의 고소한 향기. 그 향기가 지금 이 상황과 얼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시끄러운 바깥과 그에 비해서 조용한 집 안. 그리고 입 안을 채우는 고소한 오징어까지. 이 셋의 조화가 생각보다 좋은 것 같다.
“진짜 오늘 처음하신 요리에요..?”
“네! 오빠는 이거 먹어본 적도 없대요!”
“우와··· 정말요..? 진짜 대단하시네요..”
선생님이 오징어를 오물거리면서 말했다. 그 말처럼 선생님은 거의 존경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본다.
그 정도는 아닌데.
“그러면 우리 이제 과일 수호대 보자! 나 이거 엄청 보고 싶었어!”
나는 재촉하는 다연이의 말을 따라서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10분이나 20분 정도였을 거다.
[애벌레를 물리치자!]
티비 속에서 과일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변신을 하려던 찰나,
불이 꺼졌다. 당연히 티비도 보이지 않는다. 정전이 된 모양이다. 대신 아까보다 배는 더 강해진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안 돼! 수바기..!”
그리고 아쉬움에 젖은 다연이의 처절한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온다.
어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