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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동생이 생겼다-86화 (86/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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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조금 흘렀다. 입추를 맞았지만 아직은 조금 덥다.

그래도 여름이 지나간 것은 실감할 수 있었다. 선풍기를 달고 살았던 다연이가 이제는 그러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출근 시간이다. 다연이는 등원 해야 하는 시간이고.

평소엔 분주해야 하지만 오늘은 조금 여유가 있다.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일어나서 빨리 준비를 마쳤다.

"다연아, 뭐해?"

그런 와중에 다연이는 거실에 털썩 주저 앉아서 멍하니 티비를 보고 있었다.

"저기 예쁜 언니가 말하고 있는 중이야."

"그래."

아직까진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여유롭게 움직여도 될 거다.

나는 어린이집에 갈 때 필요한 것들을 챙긴다. 그래봤자 별 건 없었지만.

"오빠."

그 때 다연이가 나를 부른다.

"왜?"

"근데 태풍이 뭐야?"

"응..?"

예상하지고 못한 다연이의 말에 나도 다연이 옆에 앉아서 티비를 본다.

티비 속에서는 기상 캐스터의 말이 흘러나온다.

"....에서 올라오는 제 9호 태풍 '애벌레'가 이번 주말이면 상륙할 예정입니다··· 각 가정에서는 태풍에 대한 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꽤 큰 태풍이다. 이름도 징그러운 애벌레.

다연이는 그 말을 듣고서 큰 눈으로 티비를 가리킨다.

"우오···! 오빠는 애벌레가 뭔 줄 알지? 우리 오빠는 뭔지 알고 있어!"

다연이가 큰 소리로 내게 묻는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건지 알고 있다. 바로 태풍이 이름 때문이었다.

애벌레라는 이름이 다연이가 즐겨보는 애니메이션인 과일 수호대에 나오는 악당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컨셉은 과일 농사를 망치는 애벌레인 것 같은데 과일들이 변신을 해서 벌레들을 물리친다.

나는 아직도 그게 왜 아이들 사이에서 유명한 건지 잘 모르겠다.

"응, 과일 수호대에 나오는 악당이잖아."

"맞아! 악당들은 수박이가 물리치는데. 근데 태풍은 못 물리치지?"

"응, 태풍은 너무 크거든."

"얼마만큼이나 커?"

"....엄청."

"오···"

다연이는 잠시 상상하고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다고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이번 태풍은 5년 전의 태풍 '소나무'와 비슷할 것으로 보입니다..."

5년 전 태풍이라면 기억난다. 꽤 강한 태풍이어서 뒷처리를 하느라 애를 먹었다.

여기저기 창문도 깨졌던 것 같은데.

이번 주말까지 철저하게 준비해야겠다. 다연이가 말한 티비 속 예쁜 언니의 말처럼.

"수박이랑 사과가 애벌레 물리칠 수 있는데."

"맞아, 그런데 일단 어린이집에 가자. 더 늦으면 지각할지도 몰라."

"지각은 하면 안 돼. 얼른 가자!"

"그래."

그래도 일단은 다연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게 더 중요하다.

주말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 태풍 대비는 천천히 하면 될 것 같고.

"애벌레가 온다고 했으니까 나, 오늘은 언니가 준 수박이 가지고 갈래! 이거 가지고 가면 애벌레 물리칠 수 있으니까!"

"그래, 대신 잃어버리지 말고."

"응!"

나는 자신있게 대답하는 다연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

.

.

쌔앵.

시간이 지나고 다시 다연이를 데리러 가는 길, 아침보다 바람이 강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나 강한 태풍이 온다면 대비를 해야 하는데 여태까지는 내가 살던 집의 창문만 막으면 됐다. 하지만 식당은 조금 다르다. 창문도 훨씬 많고 이렇게 큰 집을 나 혼자 지킨다는 게 조금 감당이 안 되기도 했다.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도 식당은 할머니가 할 거라면서 나에게는 집에 가서 내 일이나 하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식당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막상 나 혼자 남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 새 다연이의 어린이집에 도착한다.

"오빠빠빠!"

오늘따라 다연이 기분이 좋아보인다.

"왜 이렇게 신났어."

"엄청 좋은 생각이 났거든!"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애벌레를 물리치는 방법!"

"애벌레?"

내가 다시 되물었지만 다연이는 대답 대신 집에 가면 설명해준다는 말만 했다.

나는 말하지 않는 다연이를 내버려두고 다연이 선생님에게 말을 건넨다.

"선생님 드리려고 방울토마토를 준비했는데 퇴근하실 때 식당에 들리세요. 저희 집 옥상에서 키우던 거 거든요."

"아, 그 때 옥상에서 봤던 거 말씀하시는 거죠?"

"네."

주스는 아쉽게 못 드리게 됐지만 그 대신 방울토마토는 드릴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이 열렸기도 했고 다연이는 방울토마토를 잘 먹지 않았으니까.

"토마토 엄청 맛있어요! 내가 먹어 봤는데 콜라 먹는 것 같아!"

이렇게 들뜬 목소리로 말하지만 나는 다연이가 방울토마토를 잘 먹지 않는단 걸 알고 있다.

그 이유가 방울토마토 말고도 맛있는 과일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도. 다연이가 이렇게 말하는 건 토마토를 빨리 가져가라고 그러는 걸지도 모른다.

"맞지, 오빠?"

"응, 맞아."

그 말에 선생님이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퇴근하고 가지러 갈게요."

선생님도 기분 좋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다연이에게 아까 말한 애벌레를 물리치는 방법이 뭔지 물어봤다.

“애벌레는 태풍이야. 맞지?”

“응.”

“어린이집에 있다가 생각났어. 태풍을 물리치는 방법! 근데 집에 가서 말해줄게. 여기서는 나도 몰라.”

“음.. 알겠어.”

여전히 다연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식당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을 때 2층에서 도도도 하는 발소리가 들린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다연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 있어! 애벌레를 물리치는 방법!”

다연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노트 한 권을 가지고 왔다.

낡고 오래된 노트다. 예전에 할머니께서 쓰셨던 것 같기도 한 그런 노트.

“이게 뭐야?”

“내가 말해짜나! 애벌레를 물리치는 방법이라니까! 수박이랑 사과한테 부탁 안 해도 악당을 물리치게 할 수 있는 방법이야!”

계속 멍하니 있는 나에게 다연이가 노트를 펴가면서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오빠는 수박이랑 안 친하지만 나는 수박이랑 친해. 그래서 내가 오빠한테 악당 물리치는 방법을 가르쳐 줄게.”

다연이는 내게 가르쳐 줄 수 있는 뭔가가 생겼다는 사실이 기쁜 듯 미소 지으면서 말한다.

“근데··· 나 저번에 오빠한테 말해준 적 있는데.”

“애벌레 물리치는 방법을?”

“그거 말고 이거 책 있는 거.”

다연이는 방금 가져온 노트를 만지작거렸다.

"내가 엄청 열씨미 공부해서 알게 된 거야. 오빠랑 같이 공부해서."

그렇게 말한 다연이는 노트를 얄심히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글자를 가리킨다.

"여기! 오빠가 태풍은 애벌레라고 해짜나."

“응.”

“여기에 태풍이라고 적혀 있어!”

정말 다연이 말처럼 태풍이라고 적혀 있었다.

정확하게는 ‘태풍에 대비하는 법’이라고 쓰여 있다.

“이거···”

노트에 쓰인 글은 할머니의 글씨였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셨던 게 생각난다. 노트에 글을 쓰는 건 특히 돌아가시기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많이 하셨던 행동이다.

“이거 오빠가 읽어봐도 돼?”

“응! 나는 글자 못 읽으니까 오빠 읽으라고 가지고 온 거야!”

“고마워.”

노트에 적혀 있는 건 제목처럼 태풍에 대비하는 방법이었다. 식당 문은 셔터를 내리고 빈 틈은 종이로 받쳐야 된다던지, 뒷마당과 이어져 있는 문은 노끈에 손잡이를 고정해야 한다던지 같은 설명들이었다.

그 밖에도 노트에는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이 쓰여 있었다. 태풍을 막는 방법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이걸 왜 이제야 발견한 거지.

“엄청 멋있찌? 내가 글자를 읽었어! 태. 풍!”

다연이의 한글 실력도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태풍이라는 말도 읽을 줄 안다니. 내 동생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대단한 것 같다.

혹시 다연이는 천재가 아닐까.

“응, 엄청 멋있어.”

“내가 글짜를 읽어서 오빠한테 알려준 거야!”

계속되는 칭찬에 다연이는 점점 자신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자기 허리에 양 손을 올리고선 고개를 끄덕거린다.

“대단해.”

“내가 어린이집에 가서 계속 생각해보니까 저번에 그 책에서 태풍이라는 글자를 봤던 게 생각나써! 그래서 오빠한테 바로 말해찌!”

자신감이 차오름에 따라서 다연이의 턱도 점점 올라간다.

“멋있어.”

“내가 오빠를 가르쳐줘찌!”

“최고야.”

“마자.”

나는 자신만만해 하는 다연이를 내버려두고 낡은 노트를 집었다. 아마도 이건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를 생각해서 내게 준 것 같다.

이 집에 대해 세세한 설명이 쓰여 있다.

자랑스런 얼굴로 있던 다연이가 내게 말했다.

“이거 저번에 오빠한테 말했어. 그런데 오빠는 할머니 물건에 함부로 손 대면 안 돼, 라고 말했어.”

“그랬구나, 미안해."

"괜찮아!"

나는 할머니가 가지고 계시던 책이나 노트들은 버리지 않았다. 혹시 실례가 될까봐 펴 보지도 않았는데 여기에 이런 게 적혀 있었구나.

태풍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런 노트를 발견해서 다행이다. 아마도 할머니가 나를 위해서 적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연이는 그런 내 모습을 한참 지켜보고 있다가 묻는다.

“나, 잘했지?”

“응, 엄청 잘했어. 다연이 없었으면 큰 일날 뻔했네.”

나는 주변에서 보고 들은 다른 엄마들의 말투로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내 주변에는 귀감으로 삼을 좋은 엄마들이 많았으니까. 나도 그런 엄마들에게서 다연이 키우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마자!”

그래도 아직 주말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점점 바람이 강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동안 준비하면 될 것 같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식당에 선생님이 찾아왔다.

어린이집에 다연이를 데리러 갔을 때 했던 말 때문이었다.

“우와, 방울토마토! 완전 예뻐요. 마트에서 파는 것 같아요.”

그 말에 옆에 있던 다연이가 말했다.

“그거 오빠가 선생님 좋아서 주는 거예요! 안 좋았으면 하나도 안 줬어! 오빠가 다 먹을 수 있는데 선생님 주는 거예요.”

“고마워요.”

그 말을 한 다연이는 다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선생님! 조금 있다가 태풍 온다고 해써요!”

“응, 선생님도 알고 있어.”

다연이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선생님께 그렇게 말했다.

“음··· 나는 태풍이 엄청 무서운 거 알고 있어요. 바람 엄청 많이 불고.”

“맞아, 무서운 거니까 다연이는 오빠랑 같이 있어야 돼.”

“맞아요! 그래서··· 어.. 선생님도 무서우면 우리 집에 와도 돼요. 오빠가 지켜줄 거야.”

다연이가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막상 그 말을 한 다연이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본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그래, 다연아. 무서우면 전화할게.”

그런 말에도 웃으면서 대답하는 선생님을 보며 어린이집 교사는 대단한 거라고 생각했다. 곤란할 수도 있는 질문에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걸 보면 대단한 게 맞다.

“네!”

.

.

.

분주했던 평일이 지나고 주말이 찾아왔다.

다연이의 악당인 태풍 ‘애벌레’는 저녁부터 영향이 미칠 예정이라고 해서 오늘은 저녁 장사까지만 한 뒤, 식당을 접고 할머니의 노트에 적힌 대로 태풍을 대비했다.

노끈으로 뒷마당 문 손잡이를 돌돌 감아서 옆에 고정되어 있는 곳에 묶어둔다. 다른 곳도 이것처럼 할머니의 말씀대로 대비를 하고 나니 조금 안심이 됐다.

이 정도면 태풍에도 끄떡 없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태풍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바람 소리가 거세고 창문이 흔들린다.

“바람이다아! 애벌레가 왔어!”

다연이는 전혀 주눅들지 않고 크게 말했다.

이제 남은 건 준비한 간식을 만들어서 다연이가 보고 싶어했던 과일 수호대라는 애니메이션을 몰아 보는 것뿐이다.

“이제 악당 물리치는 과일 수호대 보자!”

“그래.”

세차게 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간식을 준비하려던 때, 전화기의 벨소리가 들린다.

먼저 알아챈 다연이가 달려가서 휴대폰을 집었다. 그리고 말한다.

“선생님이 전화했어!”

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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