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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연아···!"
"안뇽. 밥 먹으러 왔어?"
"응, 다연이도 밥 먹으러 왔구나?”
“응!”
둘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뒤에 있던 민우가 비장한 얼굴로 민재를 가리킨다.
“너, 오지 마.”
꽤 묵직하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갑작스럽기도 했지만 민재는 별 다른 표정 변화 없이 민우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살짝 미소짓는다.
“왜 웃어?”
민우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뒤에서 지켜보던 민우의 어머니가 말했다.
“너, 손님한테 무슨 말버릇이니!”
“어.. 엄마..?”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민재가 흐뭇하게 미소 짓는다.
“너보다 동생인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면 돼? 빨리 미안하다고 해.”
“아.. 안 되는데···”
“빨리!”
“.......미안.”
분명 다연이에게 들었을 때 민재라는 아이는 조금 소심한 아이였다.
다연이와 대화하는 모습에서도 그렇게 보였었고. 그런데 지금 민재는 그런 성격과는 반대로 활짝 미소지으면서 민우에게 말했다.
“응!”
결국 민우는 민재를 노려보다가 엄마의 손에 이끌려 사라졌다.
“안뇽, 나중에 봐.”
다연이는 그런 민우에게도 밝게 말했다. 너무 밝아서 그런지 끌려가던 민우도 작게 손을 흔들었다.
"잼밌다."
"뭐가?"
다연이가 베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친구도 만났고 민우 오빠도 만나서."
"그래, 재밌었겠네."
"응, 그래서 나 민재랑 놀고 있어도 돼?"
"그래, 놀고 있어. 고기 오면 말해줄게."
"응!"
밝게 말한 다연이는 친구가 있는 방향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아직 다연이는 친구가 좋을 나이니까. 앞으로는 더 할 거고.
다연이가 친구에게 블루베리 주스가 얼마나 맛있는 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손을 하늘 높이 뻗으며 주스가 이 만큼 맛있었다고 이야기할 때쯤 고기가 온다.
"다연아, 고기왔어."
내 말에도 다연이는 조금 있다가 대답했다.
"으응. 근데 나, 조금만 더 놀다가 가면 안 돼?"
"그렇게 해."
어느 샌가 아이들에게 다가와서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민우 때문인 것 같다.
민재는 그리 달갑지 않은 것 같지만.
"맛있게 드세요, 아저씨."
"그래, 고마워."
"뭘요, 와 주셔서 감사해요."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가인이가 가져다 준 양념 갈비를 내려다 본다.
양념에 잘 재운 갈비. 갈색빛에 달콤한 향이 피어오른다.
"흐음.."
콧 속을 자극하는 냄새. 달콤한 냄새가 뱃 속까지 닿는 것 같다.
최근 들어서 분명 고기를 먹는 일이 잦았지만 캠핑을 다녀온 이후에는 더운 날씨 때문에 조금 참고 있었다. 그렇기에 눈앞에 있는 돼지 양념 갈비는 나를 더욱 배고프게 만들었다.
나는 다연이가 있는 곳을 바라본다.
"블루베리로 만든 주스야! 민우 오빠한테도 줬어."
"..! 형아, 나도 다연이가 가지고 온 주스 줘."
"...시른데."
다연이가 놀고 있는 동안 나는 고기를 굽고 있어야겠다.
어차피 다연이는 맛있는 고기만 만들어 주면 되니까.
고기는 여러 번 구워 봤지만 식당에서 굽는 건 처음이다.
다연이가 오기 전에는 다른 식당에는 잘 가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할머니와 둘이서 고깃집에 갈 이유도 없었다.
할머니는 다른 식당에 가기보단 나를 시켜서 고기를 굽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셨으니까.
나는 불판이 충분하게 달궈졌는지 확인한다.
"따뜻해.."
다 된 것 같다.
온도를 확인하고 곧바로 양념 갈비 하나를 집어든다.
양념를 잘 머금은 갈비. 동그란 그릇 위로 고기에 흡수되지 않은 양념이 톡톡 떨어진다.
이렇게 고기를 들고 있으니 양념의 달콤한 향기가 더 잘 나는 것 같다.
나는 그대로 양념 갈비를 불판 위에 올린다.
보통의 삼겹살을 구울 때는 요란한 첫 소리는 금방 사라지고 이어서 기름이 끓는 자극적인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양념 갈비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겉면에 베여있는 양념이 불에 달구어지는 소리.
물이 끓는 것과 비슷한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퍼지는 향긋한 냄새. 굽기 전에 피어나던 향기와는 다르다. 훨씬 자극적이고, 배고프게 만든다.
"고기?"
그리고 그 냄새는 다연이를 돌아보게 만들기 충분했다.
"고기 굽고 있어. 놀다가 와도 돼."
내 말에 다연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친구들에게 고기 먹고 놀자고 인사한 뒤에 자리에 앉는다.
"고기 먹고 싶어. 고기는 맛있잖아."
"그래."
"혜원이랑 같이 놀러가서 먹은 고기도 맛있었어."
"그거랑은 조금 다를 거야. 이건 양념 갈비거든."
"양념···!"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는 모르는 것 같지만 좋아하는 걸 보니 다행이다.
양념 갈비는 아이들이 먹기엔 더 좋다. 무엇보다 달콤하고 맛있으니까.
양념 갈비가 불판 위에서 구워지고 있을 때 서빙을 맡고 있던 가인이가 콜라 한 병을 가지고 온다.
“다연이 이거 먹어.”
“우오··· 이거 콜라야..”
다연이가 손가락으로 콜라를 톡톡 건드리면서 말했다.
“그래, 콜라.”
“사실 나도 알고 있어.”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오빠가 시킨 거야?”
“아니, 내가 가져온 거야. 다연이 먹으라고.”
“오··· 고마워, 언니.”
“그래.”
가인이가 만족한 얼굴로 방긋 웃고선 다시 돌아간다.
“콜라 열어죠!”
“응.”
나는 다연이 말대로 콜라를 가득 따라준다. 탄산이 만들어낸 기포가 컵에 스멀스멀 차오른다.
혹시 넘칠까 하는 걱정도 했지만 넘치려던 때에 다시 스르르 줄어들었다.
“마싯는 콜라다!”
정말 다연이는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먹는 걸 참 좋아한다.
나랑 비슷하게.
“고기랑 같이 먹어도 맛있어.”
“맞아!”
특히 달짝지근한 양념 갈비와 콜라를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 입 안에 남은 달콤한 맛을 탄산으로 해결해주니까.
먹기 좋게 자르고 불판 위에서 몇 번 굴려주니 알맞게 익었다.
이렇게 불판 위에서 고기를 굽는 것도 몇 번 해 보니 익숙하다. 오늘 구운 고기가 예전에 캠핑장에서 구웠던 고기보다 맛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자, 다 됐다. 먹자.”
“오··· 고기가 반짝반짝해.”
양념이 고루 배어서 잘 익은 고기는 다연이 말처럼 겉면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반짝이도 먹어야지.”
그리고 다연이가 고기를 입에 문다.
“오···! 이건..!”
다연이가 요리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대사를 읊는다.
눈을 감은 다연이는 마치 맛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오오..! 엄청 사탕 같고, 캠핑가서 먹었던 삼겹살 가타..! 이거는···!”
고기를 꿀꺽 넘긴 다연이가 이어서 말했다.
“최고로 맛있어! 솜사탕 삼겹살이다!”
“풉!”
그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손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아는 사이는 아니다. 그냥 다연이의 표현이 웃겼던 것 같다.
“이게 웃긴 말이야?”
“응, 다른 사람들은 웃겼나봐.”
다연이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선 그렇게 말했다.
“그렇구나.. 나는 오빠가 안 웃어서 원래 솜사탕 삼겹살이라고 하는 줄 알았어.”
다연이는 평소에도 이런 신기한 말들을 많이 썼다. 다연이가 알고 있는 단어를 조합하다보니 나온 말이라고 생각했다.
다연이가 말한 솜사탕 삼겹살이라는 말도 많고 많은 다연이 언어 중 솜사탕을 붙여서 말하는 말의 하나였다.
예를 들어서 예전에 다연이가 말했던 솜사탕 국물인 식혜처럼.
“원래는 안 그래.”
“음.. 그렇구나.”
다연이 덕분에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이런데도 다연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오래된 걱정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감정이라는 것도 배우는 거니까. 특히 아이라면.
“맛있으면 많이 먹어. 다연이가 마음껏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으니까.”
“얼마만큼이나 남아있어?”
“이만큼.”
내가 남은 고기를 보여주자 다연이가 깜짝 놀랐다.
“오..! 이렇게나 많이! 그러면.. 내가 다 먹을게. 나는 이거 다 먹는 사람이야!”
“그래.”
다연이의 그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손님이 다시 웃었지만 다연이가 반응할 틈은 없었다.
벌써부터 내가 덜어준 고기들을 집어 먹는 중이었으니까.
“우왐왐맘.”
다연이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
.
.
“다연아, 언제까지 먹을 거야?”
민우와 민재가 다연이 뒤에 서서 물어본다.
아이들은 밥도 다 먹어서 이제 다연이와 놀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다연이의 식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이거 다 먹는 사람이라서 계속 먹을 거야.”
“먹기 싫으면 다 안 먹어도 되는데.”
“나는 다 먹고 싶은데?”
먹성 좋은 것까지 나랑 비슷한 것 같다.
“그래, 그러면 먹기 싫을 때까지 먹어.”
“먹기 싫은 때는 없을 것 같아.”
“..그래.”
다연이는 그 말을 끝으로 고기를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고 다른 아이들은 뒤에서 다연이를 멍하니 지켜본다.
“다연이는 엄청 많이 먹어. 우리 엄마가 밥 많이 먹으면 키 많이 큰다고 했는데.”
“우리 엄마도.”
뒤에 서 있던 아이들은 다연이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연이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열심히 고기를 먹을 뿐이다.
어느덧 다연이 앞에 쌓아둔 고기가 바닥을 드러냈다. 그 만큼 많이 먹었고 또 맛있게 먹었다.
민우와 민재는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자기들끼리 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위바위보.”
이상한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다연이가 뒤돌 때까지 시선을 멍하니 둔 채 가위바위보만 반복하고 있었다.
“다 먹었어?”
“응! 엄청 마시따!”
드디어 지루하던 가위바위보가 끝났다.
기뻐하던 것도 잠시, 민재의 엄마가 말했다.
“민재야, 이제 가자.”
“이제 다연이랑 놀아야 하는데···”
그렇게 말해봤지만 어쩔 수는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신난 사람은 민우 밖에 없었지만 얼마 안 가 민우도 마찬가지의 처지가 됐다.
이제는 다연이가 가야하기 때문이다.
“.... 나중에 아저씨 식당에 가면 같이 놀자..”
“응! 그 때는 친구들이랑 다 같이 노는 거야! 저번처럼!”
“응···”
다연이만 만족스러웠던 저녁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계산대로 향했다.
“너무 맛있어서 배가 터질지도 몰라.”
다연이가 부푼 배를 통통 두드리면서 말했다.
부푼 배를 보니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맛있었어?”
가인이가 묻는다.
“응! 언니가 준 고기 엄청 맛있어!”
다연이의 칭찬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어보였다.
“너, 너무 귀엽다.”
다연이를 흐뭇하게 보던 가인이가 갑작스럽게 말했다.
다연이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한다.
“음.. 맞아!”
이제 다연이도 자기가 귀여운 걸 알고 있는 건가.
“언니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맞는 거야!”
뭐, 아무래도 좋다.
내가 계산 하려 하자 가인이와 민우의 엄마가 나와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유, 안 받아도 돼요. 주스까지 주셨는데.”
“그래도 주스랑 고기를 바꾸기에는···”
“저희 애들이 신세 많이 지는 거 알고 있어요. 저희도 한 번 보답하고 싶어서 오시라고 한 거예요. 그리고 다연이가 귀엽기도 하고요.”
민우의 엄마가 익숙하게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맞아. 귀여워.”
그리고 옆에 서 있던 민우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너는 다연이 좀 그만 귀찮게 해.”
“아니야, 다연이도 나, 좋아해. 맞지?”
민우가 기대된다는 눈빛으로 묻는다.
다연이는 잠시 기다리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좋아.”
“와!”
민우가 그 말에 손을 높이 뻗으며 외쳤다.
뭔가 그 말을 오랫동안 기다린 것 같다. 정작 다연이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지만.
“감사합니다. 나중에 저희 식당에도 오세요.”
“네, 조심히 가세요.”
우리는 인사를 하고 고깃집을 나선다.
다연이가 민우에게 말했다.
“안녕, 오빠. 우리 다음에 놀자.”
“응! 다음에 놀아!”
민우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힘이 넘쳐 보였다.
우리가 식당에서 멀어지기 시작할 때 민우의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누나, 들었지? 다연이가 나 좋대!”
“그건 네가 아니라 너랑 노는 게... 아, 아니다. 됐어."
“뭐가 아니야? 다연이가 나 좋다고 했는데?"
“음··· 그냥 너 마음대로 생각해.”
“아싸! 나중에 김민재 오면 다 말해야지!”
마지막 말 만큼은 선명하게 들린다.
그 목소리를 듣고 다연이가 내게 물었다.
“민우 오빠는 민재한테 뭘 말한대?”
“다연이가 민우랑 노는 게 좋다고 말했던 거.”
“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다연이에게 말했다.
“민우는 다연이가 엄청 좋나봐. 다연이도 알고 있어?”
저번에 다연이를 보러 식당까지 찾아왔을 정도니까.
다연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한다.
“음.. 응, 나도 오빠 좋아.”
“오···”
다연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줄 몰랐다.
“같이 놀면 재밌잖아. 그리고 나는 친구들 전부 좋아해.”
역시 다연이는 친구로서 좋은가 보다.
“그리고 나는 오빠도 좋아. 오빠랑 같이 놀면 친구들이랑 노는 것만큼 재밌어!”
“그래? 다행이네.”
내 반응 때문에 재미없어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다행이다.
“응! 우리 집에 가서 또 놀자!”
“그래.”
나는 다연이와 손을 잡고 혼자였을 때는 한 번도 걷지 않았던 길을 걸어갔다.
혼자였을 때는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이에 맞지 않게 집으로 가는 길에 무섭기도 했었다.
“근데 우리 빨리 가자. 조금 있으면 과일 수호대 할 시간이란 말이야.”
“그래, 그러면 뛸까?”
“응.”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옆에는 다연이가 있으니까. 그래서 내일도 오늘과는 다를 거란 것도 알고 있다.
“빨리 뛰어야 돼! 아니면 못 볼 수도 있어.”
평소보다 조금 다급한 다연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는 그런 다연이를 어깨에 메고 달렸다.
“빨리 가자!”
내 어깨에 매달린 다연이가 웃으면서 소리쳤다.
물리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