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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동생이 생겼다-84화 (8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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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워···”

“응..?”

많이 차가웠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오빠가 뒤돌아서 손울 보여준다.

“손이 차가워..”

오빠 손에 묻어 있는 보라색. 그건 아마도 주스일 거라 생각했다.

"이거 주려고 했었는데.."

오빠가 살짝 주눅이 든 목소리로 말했다.

컵에 담긴 주스다. 방금 전까지 만들고 있었던 블루베리 주스.

아마도 아이스팩 때문에 놀라서 주스가 튀었던 모양이다.

"어··· 미.. 미안해.."

다연이 주려고 만든 주스였을텐데. 놀라게 해서 주스가 오빠 손 위에 올라갔다.

"많이 차가웠어?"

"아니, 그냥 놀라서."

오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게 원래 오빠 표정인지, 굳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정말 괜찮아..?"

괜히 미안해진 다연이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응, 괜찮아. 근데 다연이 주스가 줄었어."

오빠는 주스 생각만 하고 있었다.

다연이 때문에 바닥에 떨어진 주스.

"미안.. 다음에는 안 그럴게."

"....그래도 괜찮아. 주스 가지고 있을 때는 안 되지만."

다연이가 친 장난에 오빠가 놀란 건 좋았지만 주스를 들고 있을 땐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 다음에는 오빠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 장난칠 거야."

"....그래."

다연이 오빠는 그렇게 깨달았으면 다행인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장난은 계속 칠 거라는 말도.

"그럼 주스 먹을래?"

"응!"

다연이가 바닥에 떨어진 주스를 보면서 크게 외쳤다.

***

블루베리 주스. 옥상에 있던 블루베리 나무에서 따온 걸로 만들었다.

비록 많진 않지만 주스로 만들어두면 몇 번 먹을 수 있을 거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가능할 거고.

얼려 놓은 블루베리를 우유와 꿀을 넣어서 갈아 만들었다.

달콤한 향과 함께 먹기도 좋은 색을 내고 있다. 우윳빛과 섞여서 약간은 햐안 색을 띠고 있었고 미쳐 갈리지 않은 블루베리 덩어리도 보인다.

시원해서 다연이도 좋아할 거다. 망가진 선풍기를 대신해서 만든 거기도 하고.

그래도 시원한 주스라도 있으면 조금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만든 거다.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다연이의 장난에 조금 엎지르고 말았다.

그래도 당연히 기분이 나쁘진 않다. 오히려 좋았지.

이제 완전히 남매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다연아, 바닥에 떨어진 건 오빠가 치울게."

다연이는 주스를 받아들고 나서도 떨어진 주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아쉬운 모양이다.

"음.. 이거도 먹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괜찮아, 남은 거 많으니까. 그거 먹자.”

“응.”

이제 이런 일에도 예전처럼 안절부절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내가 다연이를 버리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으니까.

두 손으로 컵을 받아든 다연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주스를 쭉 들이킨다.

블루베리의 보랏빛에 우유의 하얀 색깔이 섞였다. 그래서 더 먹기 좋은 연한 보랏빛으로 바뀌었다.

꿀떡꿀떡 넘어가는 주스에 미쳐 갈리지 않은 블루베리 덩어리가 보인다.

“크으..!”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내며 컵을 내려 놓는 다연이의 입가에 주스가 묻어있다.

“마시따!”

“다행이네.”

“엄청 시원해!”

다연이가 엄지 손가락을 척 내밀면서 말했다.

저런 건 어디에서 배웠는지 모르겠다.

“이제 안 덥지?”

“응! 엄청 시원해.”

“그것도 다행이네.”

나는 주스가 묻은 다연이의 입가를 닦아주고 남은 블루베리 주스를 통 안에 넣어서 냉장고 안에 넣어둔다.

한 병 가득 채우고도 조금 더 남았다. 넣은 블루베리 양에 비해서는 꽤 많이 남았다. 함께 넣은 우유 때문일거라 생각했다.

“그건 어떡할 거야?”

“다연이도 먹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나눠주자.”

“다른 사람 누구?”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다연이 선생님.”

“오··· 좋아! 오빠도 선생님이 좋은 거구나!”

“응.”

당연히 좋다. 다연이 선생님이니까.

“좋아, 좋아.”

내 말에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작게 말했다.

.

.

.

그 날 저녁, 다연이를 씻기고 재우겠다는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우리는 집 밖으로 나서는 중이다.

“씻으니까 시원하다.”

낮 동안 땀에 절어서 샤워를 한 번 시켰다.

찝찝하면 안 되니까.

“우리 어디 간다고 했었지?”

“예나 친구네 식당.”

우리가 이렇게 밖으로 나오게 된 건 문자 한 통 때문이었다.

저번에 다연이와 같이 학교로 놀러가기도 했던 예나 친구 가인이의 문자였다. 번호는 다연이 덕분에 알고 있었고.

가인이네 집이 고깃집을 오픈했다고 했었다. 꽤 예전의 일이지만 내가 할 일이 많아서 미뤄두다가 오늘은 무조건 오라는 연락을 받고 지금 다연이와 같이 가는 중이었다.

“예나 언니 친구면··· 민우 오빠 누나네?”

“맞아.”

예전에 식당에 혼자서 찾아왔던 민우의 누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이거 들고 가는 거지?”

“응.”

다연이가 내 손에 있는 블루베리 주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뭐라도 가져갈 게 있을까 생각하다가 다연이 허락을 받고 선택한 물건이다.

이런 건 처음 가 봐서 뭘 선물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티비에서 자주 봤던 음료수라도 사가려고 했는데 그것보다 더 좋은 게 있었다.

오늘 만들어 놓은 블루베리 주스.

“아..! 그런데 이거 선생님 준다고 했잖아!”

다연이는 그제야 생각난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원래는 그러려고 했었는데 어쩔 수 없게 됐다. 방울 토마토라도 드려야지.

“어쩔 수 없지. 방울 토마토라도 드리자.”

“음··· 블루베리 주스가 계속 만들어지면 좋을 텐데···”

“그래.”

“그러면 전부 줄 수 있잖아.”

“맞아, 다연이 착하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 때 다연이가 주변을 살피더니 갑작스레 자기 입을 막는다.

“헙..! 여기 선생님 집 앞이잖아..! 선생님한테 들키면 안 되는 거야.”

“그래, 조용히 하자.”

“응.”

다연이는 전에 살던 원룸 빌라 앞을 지나갈 때 까치발로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우리가 갈 고깃집은 우리 식당과 꽤 떨어진 곳이다. 걸어서는 갈 수 없다.

그래서 오늘은 버스를 타고 갈 거다. 택시도 좋지만 이번에 갈 곳은 버스를 타도 금방 도착하는 곳이니까.

버스를 타고 가니 금방 도착했다.

“도착!”

다연이 말처럼 우리는 가인이네 고깃집 앞에 도착해서 간판을 올려다본다.

‘불타는 고기.’

누구의 센스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에는 오래 남을 것 같은 이름이다.

“나 저거 읽을 수 있어!”

“읽어 봐.”

최근 들어 티비나 영상을 보면서 나와 같이 한글 공부를 시작한 다연이는 이렇게 바깥에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간판을 읽는 것을 버릇으로 삼고 있었다.

그래야 다연이의 한글 실력이 더 빨리 늘 테니까. 새로운 책을 볼 때마다 매번 나에게 책을 가져와서 읽어달라는 것이 귀찮았던 건 절대 아니다.

“불! 내가 보는 만화에서 사과가 변신할 때 막 불이 붙거든! 그래서 알고 있어!”

다연이가 보는 애니메이션이라면 하나 밖에 없다. 늘 보던 과일들이 나오는 만화다.

과일들이 싸우는 게 이상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연이가 보는 거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맞아. 똑똑하네. 다른 글자는?”

“어··· 음··· 다른 건 모르겠어··· ‘불’만 알게따.”

“그래, 그것도 많이 아는 거야. 나중에 열심히 공부하자.”

“응!”

나는 다연이에게 식당 이름이 ‘불타는 고기’라는 걸 말해주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간다.

“어서오세요!”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사람들로 가득 찬 테이블이 보인다.

저녁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손님들이 너무 많다.

“어! 아저씨랑 다연이! 오셨네요.”

“응, 네가 오라고 했잖아.”

“여태까지는 안 오시더니.”

가인이가 서빙을 맡고 있었다. 오늘은 주말이라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안녕, 언니!”

“안녕, 다연이!”

둘은 친자매처럼 손을 맞잡으며 인사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예나가 알았다면 조금 섭섭해 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거 주고 싶어서 가지고 왔는데.”

나는 블루베리 주스를 내밀면서 말했다.

오픈 기념 선물로 내밀기에는 많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우와.. 이거 아저씨가 직접 만든 거예요?”

“응, 우리 오빠가 옥상에 블루베리 따서 만들었어!”

“오··· 맛있겠다. 감사합니다. 부모님께도 말씀 드릴게요.”

“응.”

주스 병을 잘 챙긴 가인이가 다시 말한다.

“이제 안으로 가요!”

우리는 식당 안 쪽에 자리잡은 테이블로 향했다.

사람들로 붐비는 식당. 그 안에서 정확하게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 시선은 내가 아니라 다연이를 향해 있었다.

“오빠, 뭐 봐?”

아무것도 모르는 다연이가 묻고, 나는 말 없이 손가락으로 시선이 오고 있는 곳을 가리킨다.

“오···! 민우 오빠다!”

시선의 주인은 민우였다.

다연이를 보려고 식당까지 찾아왔었던 아이. 그리고 가인이 동생이기도 한 8살 아이.

“안녕.”

“안뇽!”

민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난 다음, 말했다.

“나.. 여기에 다연이 오는 줄 몰랐어. 오늘 왜 온 거야?”

“오빠랑 같이 고기 먹으러! 고기는 맛있으니까.”

민우는 그 말이 대단한 성인이 한 말처럼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머릿속에 집어 넣었다.

그 때 민우의 누나인 가인이가 다가와서 말했다.

“내가 오라고 했어. 너한테 말하면 또 난리 칠까봐 말 안한 거고.”

“나 난리 안 치는데···”

들키지 않았으면 했던 일을 들킨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인다.

“그래서 뭐 드실래요?”

“음.. 뭐가 좋을까.”

“다연이가 먹을 거면··· 돼지 양념 갈비도 괜찮을 거예요.”

돼지 양념 갈비라. 확실히 얼마 전에 삼겹살을 먹었으니까 양념 갈비를 먹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니까.

“그래, 그걸로 할게.”

“네, 바로 가져다 드릴게요. 민우, 너는 다른데 가 있어. 다연이 괴롭히지 말고.”

“나는 한 번도 다연이 괴롭힌 적 없어. 내 스티커도 줬단 말이야.”

“그래, 그래.”

가인이는 대충 대답한 다음 안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남은 민우는 다연이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안녕.”

“우리 아까 인사했는데!”

“어.. 맞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던 민우는 뭔가 좋은 방법이 생각난 듯 눈을 크게 뜨고선 말한다.

“잠시만 기다려.”

그리고 사라진다.

“뭐하러 간 거야?”

“몰라.”

잠시 후, 사라졌던 민우가 다시 돌아왔다. 손에는 하얀 그릇과 과자가 있다.

“이게 뭐야?”

“감자 샐러드. 내가 엄청 좋아하는 거야. 우리 엄마가 맛있게 만들어서.”

감자 샐러드라면 다연이도 지겹도록 먹어본 음식이다. 저번에 내가 해준 적이 있기 때문에.

“우와··· 고마워!”

“그리고 이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 너 주고 싶어.”

“우와아아아···. 이거도 엄청 고마워어..!”

다연이가 방긋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런 다연이의 반응에 민우도 조금 만족한 것 같다.

“내가 음료수도 갖다 줄게.”

“응!”

민우가 사라지고 일단 과자는 고기를 먹고 난 다음 먹을 수 있게 옆으로 치워 놓는다.

민우는 그 뒤로도 바쁘게 주변을 돌아다닌다. 그럴 때마다 테이블 위에는 새로운 것들로 쌓여가고 있었다.

“이것도 엄청 맛있는 거야.”

민우가 새로운 음식을 갖다줬을 때, 다연이는 민우가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뭐 보고 있어?”

“저기··· 민재다!”

민재면 다연이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다. 조금 소심했던 아이.

다연이의 말과 동시에 민우도 고개를 돌렸다.

“으··· 또 왔어..”

민우의 목소리가 작게 들린다.

다 먹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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