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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동생이 생겼다-83화 (83/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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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나의 물음에도 남자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런 예나의 말에 대답한 건 뒤에 있던 여자 선생님이었다.

"밥 먹으러 왔지. 우리는 방학에도 일해야 하거든."

"아.."

예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살짝 아쉬워하는 얼굴로 자리에 다시 앉았다.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선생님도 얼른 앉아요. 거기 서 있지 마시고."

"네···"

둘은 자리에 앉는다.

이렇게 남자를 마주하고 있으니 왜 다연이가 나랑 비슷하다고 했는지 정말 잘 알 것 같았다.

나조차도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녕.”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인사에 다연이가 반갑게 대답한다.

지금 다연이는 기분 좋아 보인다. 친한 사람들과 있어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다연아, 이거 볼래?”

분명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식당에 왔을 텐데 아이들은 다연이와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지금 예나는 뭔가 대단한 종이접기를 들고와서 다연이에게 보여주는 중이었다.

“우와..! 이거 볼래.”

옆에 앉은 선생님들도 그런 다연이를 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다연이를 좋아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래도 여긴 식당이다. 먹는 게 우선이어야지.

“...뭐 먹을래?”

그래서 내가 그렇게 물었다.

“음··· 뭐 먹을까..? 그러고 보니 뭐 먹을지 생각도 안 하고 왔네요. 다연이만 생각했어요.”

“오··· 이건 무슨 종이야?”

“새우! 다연이가 새우 봤다고 말했잖아!”

“맞아.”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일단은 같이 온 선생님들에게 똑같이 물었다.

주문으로 들어온 건 쫄면 두 개.

선생님의 주문을 듣고 예나와 아이들도 뒤늦게 쫄면을 선택했다.

쫄면은 우리 식당의 여름 메뉴다. 냉면 같은 경우는 새로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육수 같은 재료들도 냉면 전문집이 아니다 보니 직접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 식당에선 냉면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여름 메뉴를 정하지 않을 수도 없어서 할머니가 만든 것이 쫄면이었다.

쫄면은 면과 양념장, 그리고 몇몇 다른 식재료들만 있으면 만들 수 있으니까. 게다가 상대적으로 여름에 외면받는 김치찌개나 다른 뜨거운 메뉴들에 비해서 선택받을 확률도 높다.

“아, 맞다! 나 진짜 새우 보고 싶은데. 언니, 새우 보여줘.”

“알겠어. 잠시만.”

예나와 친구들은 다연이와 놀게 내버려두고 요리를 시작하기로 했다.

“귀여워···”

선생님들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다연이를 본다.

내 생각엔 이번 손님도 다연이가 오게 만든 것 같다. 다연이가 복덩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그 틈에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서 쫄면을 준비한다.

가장 먼저 면부터 익히기로 한다. 안에 들어갈 다른 재료들은 그 사이에 준비하면 되니까.

쫄면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매콤하고도 아삭한 식감이다.

물론 시원한 음식이라는 것도 여름의 인기 메뉴에 한 몫하지만 아삭한 채소들이 만드는 식감과 그것만으로는 심심할 수 있는 맛의 틈을 채워주는 매콤함.

그리고 한 젓가락 먹었을 때 느껴지는 그 모든 식감과 맛의 조화도 좋다.

“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괜히 내 입맛이 돋구어지는 것 같다.

점심으로는 쫄면을 먹을까.

“새우는··· 진짜 물고기랑 비슷한거같아. 나는 종이 새우가 더 좋아. 아니면 구운 새우. 나, 계곡에서 진짜 물고기 봤는데 종이 물고기가 더 예뻐."

뒤에서 다연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랑하느라 신난 목소리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쫄면에 들어갈 재료들을 썰기 시작한다.

먼저 양배추를 꺼낸다. 쫄면의 아삭한 식감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당연히 양배추일 것이다.

씹으면 들리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하얀 색깔도 좋다.

찹찹찹.

물기를 약간 머금은 양배추가 날카로운 칼에 썰리면서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칼질을 하면서 소리가 조금 요란해졌다. 그러자 다연이가 내가 있는 쪽으로 돌아본다.

“오빠 요리한다!”

이 다음은 오이.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삭함의 절정은 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기도 하니 선생님들에게 먼저 물어본다.

“저희는 상관없어요.”

“네.”

예나와 친구들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 오이도 얇게 썰어 놓는다. 쫄면의 매콤함을 잡아주면서 식감도 더해주는 재료다.

마지막으로 깻잎과 상추도 조각내서 준비한다.

재료가 많이 들어가지만 과하지는 않게 양을 적당히 조절한다. 뭐 하나 돋보이지 않게. 그래서 잘 어울리게.

이번에는 다연이와 친한 사람들이니 특별히 다양한 재료들을 넣었다.

그러고 있을 때 주방을 가득 채우는 습한 기운이 느껴진다.

바깥에 내리고 있는 비와 더해져서 숨을 턱 막히게 하는 습기다. 이렇게 느껴지는 걸 보니 면이 다 삶아진 모양이다.

나는 냄비에서 꺼낸 면을 찬물에 헹군다.

뜨거운 물에 삶아서 축 쳐진 면을 차가운 물에 헹구고 있으니 다시 탱글해지는 기분이 든다.

차가운 물 속을 유유자적 헤엄치는 면발은 자연스레 완성된 쫄면의 모습이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그 맛도 같이.

아무래도 오늘 점심으로는 정말 쫄면을 먹어야 될 것 같다.

“후... 오빠, 더워?”

다연이가 내게 묻는다.

“응, 조금.”

습한 날씨 때문인지 조금 덥게 느껴진다.

“땀 닦아!”

다연이가 휴지를 내밀면서 말했다.

작은 손으로 직접 닦아준다.

“고마워.”

“응!”

이제는 마무리 해야 될 시간이다.

완성된 면을 그릇에 담는다. 이런 면을 담을 때는 꼭 사용해야 하는 그릇이 있다.

바로 쇠그릇. 그래야 조금 더 시원해 보여서 그런 것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밑에 깔리는 쫄면. 그리고 그 위로 하나씩 올라가는 각종 식재료들.

처음엔 별 것 없던 면에서 매콤한 양념이 더해지고 아삭한 식감을 채워줄 채소가 올라간다.

양념의 붉은 빛으로 모두 섞여야만 비로소 쫄면이 완성되지만 그건 오로지 손님의 몫이다.

“다 됐습니다.”

주방의 습기를 이겨내고 만든 쫄면을 서빙한다.

다연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나는 다연이에게 건네줬다. 두 개 전부 들고 가기엔 조금 무거우니까.

“이거 먹어요.”

“고마워..”

무뚝뚝한 남자 선생님이 작게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저 표정의 목소리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내 생각보다 다연이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많구나.

“다연아, 나도!”

“나도!”

다연이의 서빙을 원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내가 쟁반 위에 쫄면들을 얹은 채 들고 있으면 다연이가 하나씩 밀어서 주는 방식으로 서빙했다.

다른 손님들도 많이 없어서 상관은 없었다.

“근데.. 그거 맛있겠다아..”

다연이가 예나의 쫄면을 보고선 말했다.

붉은 양념을 보고 맵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그걸 넘어서서 먹어 보고 싶은가 보다.

“그러면 내꺼 줄까? 그래도 돼요?”

예나가 내게 묻는다.

“응.”

“오..! 그럼 내가 접시 가져올게!”

그렇게 말한 다연이는 주방으로 후다닥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다.

예나가 쫄면을 덜어주니 다연이 전용 젓가락을 사용해서 면을 길게 집는다.

“다연아, 이거 매운 거야.”

“응, 알고 있어. 오빠가 말했잖아.”

“그래.”

매워하면서도 먹어 보고 싶은 욕심이 더 강한 모양이다.

도저히 말릴 수가 없다.

다연이 전용 젓가락에 쫄면을 길게 감아서 한 입 왕, 하고 먹는다.

“오오···! 맛있어!”

그래도 조금 매운지 다연이의 목소리가 커졌다.

“맛있는 매운이야···!”

그렇게 말한 뒤, 물 한 컵을 몽땅 들이킨다.

매워도 맛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다연이는 웃고 있었다.

“나도 빨리 오빠처럼 매운 거 먹어도 안 매운 사람이 되고 싶어.”

다연이는 꼭 장래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면 다연이가 빨리 크면 돼. 예나처럼 키가 크면 안 매울지도 몰라.”

“우오··· 그러면 밥 많이 먹어야겠지..?”

“응.”

“그럼 오늘부터 밥 많이 먹을게!”

“그래.”

원래도 많이 먹는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냥 다연이 표정을 보니 그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끝낸 선생님들이 먼저 식당을 나선다.

무뚝뚝하다던 남자 선생님은 어느 새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생님, 오빠가 한 음식 맛있었어요?”

다연이의 물음에 선생님도 대답한다.

“응, 엄청.”

“..!”

그 말에 옆에 있던 여자 선생님이 더 놀란 얼굴로 말했다.

“우와··· 저, 선생님이 뭔가를 맛있다고 하는 건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아요···!”

살짝 감격에 젖은 얼굴이다.

“....맛있었습니다. 내일도 또 올게요.”

“또 와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는 다연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눈에 띠게 미소를 짓는다.

“올게.”

“우와···”

그 모습에 여자 선생님이 감탄 섞인 목소리를 낸다.

“오···”

그건 다연이도 마찬가지였다.

내 생각일 뿐이지만 아마도 지금 다연이는 남자 선생님을 보면서 나를 떠올리고 있을 것 같다.

“우오..”

그런 생각이 맞다는 것처럼 다연이가 나를 본다.

나는 그런 다연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미소 지어 보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안뇽!”

다연이가 식당을 나서는 선생님을 보면서, 그리고 번갈아 나를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

.

.

“나는 방학이 좋아···”

다연이가 방 바닥에 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다.

저렇게 말하지만 사실 어린이집 방학은 저번 주에 끝났다. 저번 주만 하더라도 다연이는 방학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는데.

아직도 그 때 다연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 심심해서 방학 빨리 끝났으면 좋게따.’

분명 그렇게 말했었는데 일주일만에 달라졌다.

“왜 방학이 좋아?”

“오빠랑 놀 수 있으니까. 친구들이랑 만나는 것도 좋은데 그래도···. 노는 게 더 좋아.”

“노는 거?”

“아.. 아니! 잘못 말해따.. 오빠랑 있는 게 더 좋다고오..”

아마 처음 다연이가 말했던 것처럼 노는 게 더 좋은 모양이다.

이제 여름도 거의 끝나가지만 아직 날씨는 많이 덥다.

거의 녹아내린 다연이를 붙잡아주는 건 선풍기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런 선풍기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어···? 선풍기야, 왜 그래..?”

투덜덜, 하는 소리를 내다가 끝내 멈춰버렸다.

“헉.. 크.. 큰 일 났다아..!”

뭔가 일이 잘못 풀리고 있다는 걸 짐작한 다연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나에게 달려왔다.

“서.. 선풍기가 아야 했어..! 오빠가 고쳐줘!”

“흠.. 안 될 것 같은데..”

방금 들린 그 소리대로라면 선풍기가 완전히 고장난 것 같다.

그런 거면 정말 큰 일인데.

툭툭.

선풍기 버튼을 아무리 눌러 봐도 작동할 생각이 없다.

아무래도 정말 망가진 것 같다.

“으아..! 큰 일이야!”

다연이는 정말 더웠던 건지 처음 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에어컨은?”

“그것도 망가져서 월요일에 고쳐주시는 분 부른다고 했잖아.”

“맞아..!”

다연이가 더욱 절망스런 얼굴을 했다.

정말로 저런 표정은 처음 본다.

“나.. 나 녹으면 어떡해..? 너무 더워서 녹아버리는 거야..! 그러면 나는 물이 돼!”

남은 시간을 선풍기 없이 보내는 게 그렇게나 무서웠는지 머릿속에 있는 말들을 여과없이 흘려보내고 있었다.

“물이 되면 오빠 못 만나자나! 그러면 나는 구름이 되는 거야···?”

“아니..."

이제 나도 이해 못할 지경까지 갔다.

“구름은 푹신한데··· 푹신한 구름 솜사타앙···”

뭔가 방법을 구하긴 해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여름은 막바지에 접어들었기에 밤이 되면 그리 덥진 않다. 밤까지만 버티다가 샤워시켜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다연이를 시원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솜사탕 국물은 식혜야...”

나는 냉동실 문을 열고 아이스팩 하나를 꺼낸다. 혹시 쓸 일이 있을까 싶어서 냉장고에 넣어 놨던 거다.

수건으로 아이스팩을 돌돌 말고 나니 시원한 팩이 완성됐다. 나는 그걸 다연이에게 선물한다.

“자, 이거. 시원할 거야.”

“오..!”

***

오빠한테 시원한 팩을 받은 다연이가 고맙다고 소리쳤다.

“그래, 저녁까지는 이거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샤워하고 자자.”

“응!”

다연이는 이제야 시원해졌다. 식혜가 될 걱정은 이제 할 필요가 없다.

이런 걸 만든 오빠가 신기했다. 그리고 선풍기도, 이것도 없이 지내는 오빠는 더더욱 신기하다.

“조금만 기다려. 오빠가 블루베리 주스도 만들어 줄게.”

“우와! 알겠어!”

게다가 주스까지 만든다.

다연이는 그런 오빠가 엄청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오빠 뒤에 털썩 주저 앉은 다연이는 주스를 만드는 오빠를 지켜본다.

언제 주스가 완성되는지 궁금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그냥 오빠 뒤에 있고 싶다.

그렇게 있다 보니 문득 다연이는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가끔 다연이에게 장난을 치곤 했던 오빠가 떠올라서 그런 것도 있다. 사실 아주 많이 그렇다. 물론 작은 장난이었지만.

“오빠, 이리 와서 앉아 봐.”

그래서 다연이도 장난을 쳐보기로 했다.

“왜?”

“그냥!”

다연이는 뒤를 보이며 쪼그린 오빠에게 다가가 아이스팩을 감싼 수건을 푼다.

갑자기 시원해지면 놀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마침내 다연이가 오빠의 뒷 목에 아이스팩을 갖다 댄다.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는 덤이었다.

“으아..!”

놀란 오빠의 목소리. 다연이의 장난이 아주 잘 먹힌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빠가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걸 느꼈다.

“어···”

왜냐하면 뒤돈 오빠의 얼굴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혹시 너무 차가웠나? 그래서 오빠가 너무 많이 놀란 건가?

“....”

“어··· 오빠, 괜찮아..?”

오빠는 어두운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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