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181 --------------
“안뇽!”
다연이도 반갑게 인사한다.
지금 다연이는 지민이에게 전화했는데 하민이까지 만났다. 그래서 더 좋다.
가만히 있던 하민이가 입을 연다.
“어디 갔어?”
“캠핑장! 오빠랑 혜원이 가족이랑 같이 왔어!”
“마자!”
혜원이도 기쁘게 맞장구 치면서 말했다.
그러나 하민이는 혜원이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오늘 뭐하고 놀았어?”
“계곡에서 물놀이! 오늘 물고기도 봤다? 엄청 미끌미끌 거렸어. 그리고 조금 무섭게 생겼어.”
“맞아. 다연이도 물고기 봐서 다행이다.”
그리고 하민이가 또 다시 묻는다.
“재밌었어?”
“응! 오늘 어엄청 재밌었어!”
다연이는 그 말대로 엄청 재밌었다. 오빠랑 이렇게 재밌게 논 것도 처음이고 혜원이랑 논 것도 엄청 재밌었다.
그렇게 하민이와 대화를 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지민이의 목소리가 작게 들린다.
“바보..”
“엄마 이거 봐. 얘가 또 나한테 바보라고 했어.”
화면 안에서 두 남매가 또 싸우기 시작한다.
다연이는 그 모습을 보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이와 하민이는 서로 싸워야 진짜다. 만약 지민이와 하민이가 싸우지 않는다면 그건 가짜 친구들이다.
“또 싸워.”
“마자.”
혜원이의 말에 다연이도 동의한다.
잠시 후 상황을 정리한 하민이가 다시 말했다.
“나중에 나랑도 같이 놀자.”
“응!”
그 말을 듣고 있던 화면 속의 하민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는 무슨, 여자친구랑 통화하니? 제발 지민이한테도 지금처럼 예쁘게 말해주면 안 되니?"
“...시러.”
다연이는 그 모습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 때 혜원이가 크게 말한다.
“나한테도 물어봐죠! 재밌었는지!”
“재밌는 거 알아. 다연이가 재밌다고 했으니까 혜원이도 재밌었겠지."
“마자!”
그런 하민이의 말투에도 혜원이는 밝게 대답했다.
다연이는 혜원이의 그런 밝은 목소리가 좋았다. 그래서 혜원이는 어린이집의 5살 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전부 혜원이를 좋아한다. 혜원이는 그 때마다 반갑게 손을 흔들었고.
물론 다연이도 혜원이가 좋다.
그 후로도 한참 더 통화를 하다가 아이들이 작별 인사를 했다.
“안녕, 우리 방학 끝나고 어린이집에서 만나자.”
“응! 안뇽!”
“안녕, 혜원이도 안녕.”
“안녕!”
강렬한 인사가 끝나고 화면이 꺼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 것 같았는데 순식간에 혜원이랑 둘만 남게 된 것 같다.
하지만 괜찮다. 다연이 옆에는 혜원이가 있으니까.
“재밌었다! 전화하길 잘한 거 같아!”
“맞아!”
아주 만족한 다연이는 오빠에게 휴대폰을 다시 되돌려 주려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혜원이와 같이 오빠에게 간다. 휴대폰을 갖다준 다음에 과자 먹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빠, 전화 다 했어..”
그렇게 말하면서 다가가는데 익숙한 얼굴의 어떤 언니가 자리에 앉아있다.
“안녕.”
“땨!”
아기와 함께. 오늘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만난 아기다.
아기는 아이들이 있는 쪽을 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기랑 놀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어.”
“오···!”
큰 언니가 낮에 한 약속을 지킨 거다.
아이들이 신기해 하며 아기의 볼을 콕콕 찌르고 있을 때, 저기에 앉아있던 오빠가 다연이를 부른다.
“다연아, 이리 와봐.”
“왜?”
가까이 다가가니 오빠가 뭔가를 내밀었다.
“뭐야?”
“새우. 저 분이 주셨어.”
다연이는 ‘저 분’이 아기의 언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구운 새우를 받아 먹는다.
“오···”
한 입 물자마자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동시에 퍼지는 처음 느껴보는 맛.
다연이는 그 맛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살짝 비릿하면서도 솜사탕처럼 포근하고, 막 구워낸 삼겹살처럼 따뜻하다.
새우는 맛있는 거구나.
“맛있어? 하나 더 줄까?”
“응.”
곧 이어서 오빠가 새우를 하나 더 까기 시작한다.
새우는 갈고리처럼 생겼다. 수염도 많고.
딱딱한 껍질을 벗기니 새우의 속살이 드러난다. 하얗고 무늬가 있다.
“자, 먹어.”
“알겠어.”
다연이는 오빠가 까준 새우를 홀라당 집어 먹는다.
“음···”
새우의 맛을 다시 한 번 음미한다.
바다가 생각나는 맛. 눈을 감고 있으니 어느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눈 앞에 바다가 펼쳐진다.
그 바닷속을 헤엄치는 종이 물고기와 계곡에서 만난 물고기.
“오오··· 바다가 보여..”
오빠는 다연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편 다연이의 상상 속 바다에는 새우가 추가됐다.
비록 잘 익은 주황색 새우지만 살아있는 새우의 사진을 본다면 금방 다시 바뀔 거다.
“맛있어 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오빠가 그렇게 말했다.
“맛있었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한 다연이는 오빠에게 맛있게 먹으라고 말해준 뒤, 아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기는 다연이와 혜원이와 같이 놀기 위해서 왔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까 전에 만난 8살 언니처럼 아기와 놀아주기로 했다.
“안녕, 아가야.”
“따아!”
귀엽게 소리치는 아기의 볼에 손가락을 가져다댄다.
푹 하고 들어갔다가 다시 튀어나오는 손가락. 말랑말랑하다.
“꺄아!”
아기는 지금 상황이 재밌다는 듯 웃는다.
“오··· 말랑말랑.”
생각보다 많이 말랑해서 이번에는 두 손바닥으로 볼을 만진다.
이번에는 더 말랑하다.
“우와··· 엄청 기분 좋아..”
“아기는 원래 기분 좋은 건가봐.”
“그런가 봐. 엄청 큰 언니도 아가를 좋아하는 거 보면 맞는 것 같아.”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든 아기는 기분 좋은 듯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 짧은 사이에 아기와 아이들은 친해졌고 테이블 위에 맛있는 새우들도 사라졌다.
“이제 아기는 가야 돼.”
그리고 낮에 봤던 언니도 가야한다.
“안녕, 아가야.”
“에···.”
아기도 가야 된다는 걸 알았는지 계속 웃던 표정이 축 늘어졌다.
“으에..!”
손을 뻗으면서 가기 싫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기도 잠을 자야 했으니까.
“안뇽..”
멀어지는 아기가 왜인지 모르게 안쓰러워 보인다.
결국 아기는 울음을 터뜨렸지만 이미 너무 멀어져서 아기의 우는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울지마..”
다연이가 작게 말했다.
아기가 가고, 먹다 남은 과자 봉지가 텐트 안에 뒹군다.
그리고 어른들도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잘 모양이다.
“이제 자자.”
“응.”
오빠의 말을 따라서 잘 준비를 모두 끝내고 작별 인사를 한다.
“안뇽, 혜원아.”
“안녕, 내일 보자.”
“응.”
1초 만에 헤어지고 다연이는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조용한 텐트 안. 드문드문 개구리 우는 소리도 들린다.
다연이는 오늘 여기로 놀러 와서 좋았다. 풍경도 좋고 새 친구도 만나서 좋았다.
무엇보다 오빠랑 같이 새로운 곳에 놀러 왔다는 것이 좋다. 오빠는 어린이집에 올 때 말고는 늘 식당에만 있으니까.
친구도 없고. 그래서 늘 식당에만 있었다고 했다. 다연이가 오기 전까지는.
다연이는 오빠가 많이 놀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언젠가는 웃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오빠.”
“응.”
“우리 내일 아침 먹을 거지?”
“다연이가 그러고 싶으면. 알람 맞출까?”
“아니,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깨워주기 하자.”
“응.”
그래서 다연이는 오빠에게 내일 아침, 캠핑장 주인 아주머니가 만들어주는 밥을 먹자고 말했다.
그건 새로운 일이니까.
혜원이 엄마에게도 물어봤지만 혜원이네는 이미 여기에서 먹은 적이 있어서 가지 않고 조금 더 자겠다고 했다.
조용한 밤 공기 사이로 조금씩 들리는 숨소리.
멀어서 귀여운 개구리 소리. 그리고 살짝 더운 공기에 섞여 들어오는 찬 기운.
“흠···”
작게 숨을 쉬고 있으니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그래서 다연이는 오늘이 좋았다.
***
꿈을 꿨다.
빈 식당에 혼자 있는 꿈을.
평소처럼 요리를 했고 손님을 맞이했고 다시 빈 식당을 청소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별 것 없는 꿈이었다.
그냥 원래 내 일상을 반복하는 꿈. 그런데 나는 그 꿈이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꿈 속의 나는 평소의 나답지 않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왜 울었는지도 모르겠고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왜 그렇게 이 꿈을 무서워했는지.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매일이 똑같은, 지옥 같던 시간에서 나를 구원해줬던 다연이가 없었다.
그리고 눈을 떴다.
“일어나..!”
다연이의 목소리다.
“밥 먹어야지..!”
눈을 뜨니 옆에선 다연이가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응··· 일어났어.”
나는 눈을 비비면서 꿨던 꿈을 다시 떠올려본다.
왜 그런 꿈을 꿨을까. 어제 술을 마셔서 그런 건지 처음으로 바깥에서 자서 그런건지 모르겠다.
다만 잠에서 깬 뒤에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혹시 내 옆에 아무도 없을 까봐.
그런 생각이 드니 이제야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전에는 외롭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았고 그래서 혼자 남겨졌을 때도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내가 다연이에게 배운 거다. 외로움에서 오는 슬픔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연이가 말했다.
“빨리 일어나야 돼. 아줌마가 밥 준다고 했던 시간이 다 끝나 간단 말이야.”
“그래, 얼른 가자.”
지금은 다연이의 말을 따르는게 먼저였기에 나는 급하게 일어나서 다연이를 따라 밖으로 나선다.
혜원이네가 잠들어 있는 텐트는 아직 조용하다.
“조용히 해야 돼. 안 그러면 혜원이가 깨.”
“알겠어.”
나는 다연이의 따라서 캠핑장 주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일어나자마자 움직이니 정신이 없다. 그냥 다연이를 따라서 움직일 뿐이다.
“다 왔따!”
우리가 조금 늦었는지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왔네.”
안 쪽에서 캠핑장의 주인 아주머니가 걸어나온다.
“왔어요.”
그리고 다연이가 인사했다.
아주머니는 마지막으로 올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지 우리들에게 음식을 나눠주자마자 음식을 담아 놓았던 그릇을 들고 집 안으로 사라졌다.
“이게 뭐야..?”
곧이어 다시 나온 아주머니가 음식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애기 오빠는 오이 냉국에, 콩자반이랑 오징어 젓갈, 그리고 동그랑 땡이고 애기는 오이 냉국 대신 식혜.”
“오··· 처음 보는 거야.”
“맛있게 먹어라.”
“네! 감사합니다.”
다연이는 어린애라고 식혜를 준 것 같다.
오이 냉국은 아마 못 먹을 테니까.
그나저나 생각보다 반찬의 가짓수가 많다. 아주머니 혼자서 하시기엔 꽤 많아서 힘드실텐데. 게다가 돈은 받지도 않는다.
“오빠, 아침 밥 먹어서 좋지?”
“응, 좋아.”
다연이는 아침에 나를 깨운 것이 자랑스럽기라도 한 듯 아까부터 계속해서 그렇게 물었다.
물론 나도 진심으로 좋았다. 다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좋다.
“혹시 나, 이거 먹어봐도 돼?”
다연이는 오이 냉국을 가리키며 물었다.
“응, 먹어 봐.”
보통 오이 냉국은 시원하지만 약간 매콤하게 만들기 때문에 다연이가 먹기에는 무리일거라 생각했지만 다연이라면 먹게 해 줄 때까지 물어볼 것 같아서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나···. 먹어 볼게..?”
다연이도 오이 냉국의 향에서 약간의 매콤함을 느꼈는지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래, 매우니까 조심하고.”
“응..!”
결심한 다연이가 오이 냉국을 숟가락으로 퍼서 입으로 가져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