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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올리자마자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아직은 눈에 보일듯 말듯한 연기였다.
“고기 냄새!”
아이들의 말처럼 고기 냄새가 난다.
저녁 하늘 아래서 이렇게 고기 냄새를 맡고 있으니 더욱 배가 고파온다.
나는 이어서 불판 위에 고기 여러 점을 늘어 놓았다.
“이거 다 먹어?”
다연이가 옆에 놓여 있는 고기 덩어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응.”
“너무 많아.”
“많아도 다 먹을 수 있어.”
아이들 눈에는 많아 보이는 모양이다.
그 사이 나는 고기가 잘 구워지는지 살펴본다.
코를 찌르는 냄새와 기대감에 잔뜩 젖어 있는 아이들의 눈빛을 받으면서 고기를 뒤집는다.
“오..!”
뒤집은 면이 잘 익었다.
갈색빛으로 변한 겉면에는 고기에서 빠져 나온 기름이 지글거린다.
“우와···”
아이들이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을 때, 혜원이 부모님이 뒤 쪽에서 고기와 함께 곁들여 먹을 것들을 준비하고 있다.
상추와 깻잎, 마늘과 고추 등등 삼겹살과 잘 어울릴 만한 음식들이 테이블 위로 올라온다.
그 사이에 나는 고기를 다시 뒤집는다.
“됐네.”
골고루 잘 익었다.
겉면에 잔뜩 칠해져 있는 기름기와 보기 좋게 물든 색깔,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냄새까지.
나는 가위를 가져와서 먹기 좋게 삼겹살을 자른다.
딱딱, 하는 소리와 동시에 불판 위에 쌓여 가는 고기들.
날카롭게 잘린 단면에는 아직 익지 않은 속살이 선홍빛의 색깔을 띠고 있다.
소고기였다면 곧바로 먹어도 상관없을 테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삼겹살이다. 물론 소고기보단 값이 떨어지지만 그것이 맛 또한 떨어진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삼겹살도 나름의 독특한 맛이 있으니까.
오늘 하루 종일 노느라 나름 힘들었다. 그 때문인지 더 배고프다. 꼬르륵 거리는 뱃 속의 신호와 굽기 시작한 때부터 계속해서 콧 속을 자극하는 고기 냄새.
지금 나는 너무도 배고프다.
“우와···. 맛있겠다···”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불판 위에 뒹구는 고기 조각들. 그 위를 열심히 구르는 동안, 속 살도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이제 조금만 더 있다가 잘 익은 고기들을 밖으로 빼내면 된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것이 있다.
“얘들아, 고기 먹어볼래?”
“네!”
바로 아이들의 입맛을 돋구는 것.
아직은 뜨거운 고기를 후, 불어서 식힌 다음 아이들에게 하나씩 먹인다.
“맛있어?”
“음··· 맛있어요..!”
아이들이 동시에 오물거리면서 다시 의자로 돌아간다.
아이들은 여태까지 논다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심지어 하루 종일 먹을 거라며 사다둔 과자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기에 먼저 잘 익은 삼겹살로 아이들의 입맛을 돋구어준다.
“다행이네.”
나는 접시에 삼겹살 조각들을 담는다.
따뜻하게 잘 익은 고기. 밤이지만 지금은 여름이라서 조금 더운 감이 있다. 그럼에도 캠핑장에서 먹는 삼겹살은 그 찝찝한 기분을 넘어서는 맛이다.
“엄청 많다아···”
다연이가 그렇게 말했만 이제 몇 줄을 구운 것뿐이다.
게다가 아직 소시지도 남았다. 불판에 구워 먹기 위해서 사 놓은 기다란 소시지.
나는 소시지에 길게 칼집을 내놓은 다음, 불판 위에 얹는다.
기름진 삼겹살이 굴렀던 자리, 그 위로 돌아다니는 소시지의 겉면도 금세 기름기에 절어진다.
캠핑장의 그리 밝지 않은 불빛과 불판 밑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이 기름진 소시지에 비친다.
마치 반짝거리는 다연이의 새 장난감을 보는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맛있지는 않겠지만.
“저거는 검은 색이야!”
타이밍을 놓친 소시지 몇 개가 검게 그을렀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시간에 맞춰서 굴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 심하게 타지만 않으면 먹는데에 지장은 없으니까.
다만 탄 부분은 아이들 말고 내가 먹어야겠다.
마지막으로 소시지도 먹기 좋게 자르면 완성이다. 이제 맛있게 먹을 일만 남았다.
“다 됐습니다.”
“오··· 맛있겠어요.. 너무 배가 고파서 그런가..”
혜원이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서 접시를 가져간다.
분명 맛있게 먹을 일만 남았지만.. 아직 구워야 할 고기는 많이 남았고 아이들도 배고프다.
고기를 구우면서 먹는 수밖에.
“제가 빨리 먹고 교대해 드릴게요.”
혜원이 아빠가 말했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러진 않았으면 했다.
조금 배고프거든.
“얘들아, 너희들은 와서 밥 먹어.”
“네!”
나도 고기를 구우면서 몇 점을 집어 먹는다.
“음···”
맛있게 잘 익었다.
삼겹살의 포근한 식감과 한 입 베어 물자 새어나오는 고기의 맛.
맛있다. 아주.
나는 고기를 한 점 맛 본 뒤, 이어서 바로 고기 한 점을 더 집는다.
이번에는 비계가 있는 부분.
내가 집을 나와서 처음으로 고기를 먹었을 때는 살코기가 있는 부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맛있었으니까.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보니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은 비계도 나름 맛있다는 것.
사실 나름이 아니라 많이 맛있다.
내가 삼겹살의 맛을 온전히 느끼고 있을 때, 다연이가 내 앞으로 걸어 나온다.
“왜 그래?”
“이거 먹어.”
그리고 다연이가 작은 쌈을 내밀었다.
“아저씨가 오빠한테 주면 엄청 좋아할 거래.”
나는 그 말을 듣고 혜원이 아빠가 있는 곳을 바라본다.
엄지 손가락을 내밀고 있는 혜원이 아빠. 나도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좋은 사람인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이거 먹어.”
“응, 고마워.”
다연이가 준 쌈을 받아 먹는다.
작은 손에 맞게 아주 작은 쌈. 그래도 그 안에 있여야 할 건 전부 들어가 있다.
고기와 김치, 마늘도.
“켁..!”
그러다 갑자기 느껴지는 매운 맛에 헛기침을 한다.
평소에 마늘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건 너무 맵다.
“왜? 매워?”
“응, 조금.”
다연이가 구운 마늘 대신 생마늘을 넣은 모양이다.
입 안에서 화끈한 기운이 차오른다.
“어.. 어떡해. 물 줄까? 물?”
“응.”
다연이는 허둥지둥 대면서 내게 물을 내밀었다.
물 한 모금에 매운 맛이 사라진다.
“괜찮아?”
“응, 맛있었어.”
다연이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를 보고 있는 혜원이 아빠에게 나도 엄지를 보여준다.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눈물이 날 정도로 매운 맛 때문인지, 다연이 덕분인지, 나는 그런 행동을 했다.
“맛있죠?”
“네, 맛있네요.”
혜원이 아빠의 물음에 대답한다.
어느 정도 고기를 구웠을 때 혜원이 아빠가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뭔가를 내밀면서 자리를 바꾼다.
“술이네요.”
“네, 오늘은 술 한 잔 해야죠?”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나는 술을 싫어하지 않는다.
물론 안 좋은 기억이 있긴 하지만 그런 기억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지 술에 대한 기억은 아니다.
아버지는 술이 없었어도 다른 걸 핑계 삼아 때렸을 테니까. 오히려 술이 그런 아버지를 재워줬다.
그래서 딱히 술에 대해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 사람에게 술은, 많고 많은 수단 중 하나일 뿐이었으니까.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었기에 평소에는 술을 먹지 않는다.
다만 문제인 건.
“그런데 제가 술을 잘 못해서요.”
내가 술에 약하다는 것.
“상관없어요. 어차피 맥주고, 중간에 마시기 싫으면 그냥 안 마시면 됩니다.”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놀러왔으니 보통 사람들처럼 시간을 보내 보려고 한다.
이렇게 보통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보통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네, 그러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캔맥주를 받는다.
치익.
뚜껑 따는 소리가 경쾌하다.
***
한편, 다연이는 아직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다.
“맛있어?”
혜원이 엄마가 묻는다.
“네! 오빠가 한 거라서 더 맛있어요!”
“맛있다니 다행이네.”
뒤에 있던 오빠가 그렇게 말했다.
“응!”
크게 대답한 다연이는 다시 쌈을 싸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오빠에게 정말 맛있는 쌈을 싸주고 싶다. 아까는 엄청 매웠으니까.
상추 위에 구운 마늘과 밥 조금, 그리고 고기 많이. 다연이는 오빠가 좋으니까 고기도 세 개나 넣었다. 마지막으로 쌈장도 조금 발라주면 아주 아주 맛있는 쌈이 완성된다.
“오빠!”
다연이가 오빠에게 달려간다.
“왜?”
“이거 먹어! 이번에는 진짜 맛있는 쌈!”
“그래, 고마워.”
다연이는 오물오물 쌈을 먹는 오빠가 꼭 영상에서 본 귀여운 햄스터 같다고 생각했다.
“햄스터야.”
햄스터도 키우고 싶지만 오빠는 안 된다고 말했던 것도 문득 생각난다.
“맛있네.”
“다행이다!”
다연이는 오빠가 맛있게 먹었다면 아무래도 좋다.
그리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간다.
밥을 다 먹은 다연이는 혜원이와 같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밥을 다 먹었으니 이제 혜원이와 놀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연이는 혜원이와 같이 놀기 위해 자리를 옮긴다. 테이블에는 혜원이 부모님과 다연이의 오빠가 이야기 한다고 시끄러웠기 때문에.
“우리 뭐 하고 놀까!”
혜원이가 묻는다.
잠시 고민하던 다연이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지민이한테 전화하자.”
놀러 오기 전에 지민이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꼭 전화하겠다는 말. 곧 그 말을 떠올린 혜원이도 그래, 라고 대답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휴대폰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연이는 오빠에게로 간다.
“오빠.”
“응?”
그렇게 찾아간 오빠는 평소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얼굴도 조금 빨갛고 살짝 신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웃고 있는 건 절대 아니었지만.
“오빠, 왜 그래?”
“술 마셔서 그래.”
오빠는 술을 아주 조금만 마신 것 같다. 그런데도 얼굴이 빨갛다.
꼭 옥상에서 곧 열릴 방울 토마토 같다고도 생각했다.
“나, 휴대폰 줘. 지민이한테 전화할래.”
“그래.”
하지만 다연이는 오빠가 늘 평소처럼 같은 얼굴로 있는 것보다 이렇게 빨간 얼굴로 바뀌는 것도 나름 좋다고 생각했다.
평소의 오빠에게선 볼 수 없는 모습이니까.
휴대폰을 들고 도착한 다연이는 바로 지민이에게 전화했다.
전화번호는 방학 날, 오빠 휴대폰에 저장 해놨기 때문에 바로 알 수 있었다.
화상 전화로 했다. 그래야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곧 지민이의 부모님이 전화를 받았고 지민이가 전화를 넘겨 받는다.
“안녕!”
화면 너머의 지민이도 말했다.
“안녕.”
아이들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오늘 계곡에서 놀았던 이야기부터 새로운 친구를 만났던 것까지.
“우와··· 재밌겠다아.”
지민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연이는 그런 지민이에게 나중에 같이 놀자고 말했고 지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연이가 오늘 꼭 지민이에게 전화하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지민이가 실망하지 않았으면 했으니까. 오늘 재밌었던 만큼 지민이도 같이 좋았으면 했다.
그 때 화면 너머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뭐해, 바보야.”
“하민이 너, 엄마가 그런 말하지 말라고 했지?”
“아, 서지민이 먼저 나한테 바보라고 했어.”
익숙한 목소리다. 다연이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하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민이가 말했다.
“지금 다연이랑 전화하고 있어.”
“다연이?”
하민이가 그렇게 말하더니 잠시 조용해진다.
그리고 천천히 화면 안으로 들어온다.
“안녕.”
하민이가 수줍게 인사했다.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