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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선물!"
다연이가 손에 든 뭔가를 내밀었다.
"내가 오빠 먹으라고 언니한테 사 달라고 했어."
다연이가 내민 건 토스트와 딸기 스무디였다.
스무디는 만들자마자 바로 가져왔는지 아직 차가운 기운이 감돈다.
"맛있는 토스트랑 주스야. 이거는 엄청 차가운 거고 이거는 엄청 따뜻한 거. 근데 지금은 다 식었을 것 같아."
"고마워."
스무디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지만 토스트는 몇 번 먹어봤다.
할머니가 식당 메뉴에 있는 것 말고 다른 것도 먹으라고 학교 근처에서 사 봤기 때문이다.
다연이에게 선물을 받아서 기쁘긴 하지만 돈은 예나가 냈을 거다. 그래서 나는 다연이에게서 음식들을 받고 예나에게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나는 식당 안으로 들어와서 음식들을 놓은 다음, 돈을 꺼냈다.
옛날에는 예나에게 가끔 용돈을 주곤 했다. 예나는 나에게 동생 같은 아이였으니까.
물론 이런 것도 할머니에게서 배웠다.
전에는 용돈을 준다는 의미를 몰랐었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자."
"오··· 용돈.. 아저씨한테 오랜만에 받아보네요. 그런데 이제 이런 거 안 받아도 되는데."
"앞으로 다연이랑 잘 놀아주라고. 둘이서 맛있는 거라도 사 먹어."
"음··· 네, 감사합니다."
할머니를 보고 따라하게 된 거지만 매번 이렇게 용돈을 줄 때마다 늘 어색하다.
안 하던 행동을 해서 그런가. 그래도 거절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빠, 나 오늘 뭐하고 놀았는지 물어봐 줘."
그 때 가만히 보고 있던 다연이가 말했다.
"뭐 하고 놀았어?"
"나 오늘 학교에서 사진도 찍고, 물고기도 그리고, 같이 빵도 먹었어! 맛있는 빵."
"그래, 재밌게 놀았나 보네."
"응!"
다연이는 내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짜 재밌게 놀았던 모양이다. 지금 다연이의 모습을 보면 알겠다. 신나있다는 걸.
나는 가만히 다연이를 보고 있던 예나와 친구에게 말했다.
"들어와서 있다가 가."
"아, 아뇨. 괜찮아요. 저희는 가 볼게요."
"언니, 가는 거야?"
"응, 다연이는 쉬고 있어. 오늘 저녁에 다연이가 찍었던 사진 언니 인별에 올릴게."
"알겠어."
다연이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왜. 다연이랑 놀다가 가지."
"할 일이 있어서요. 조금 있으면 기말고사기도 하고, 다연이 사진도 골라야 하고요."
"음··· 그래."
"그럼 가볼게요. 안녕, 다연아."
"안뇽, 언니!"
같이 놀다와서 그런지 다연이는 홀가분하게 예나를 보냈다. 그리고 뒤돌아서 나를 본다.
“우리 맛있는 빵 먹자.”
“그래.”
아니면 빨리 빵이 먹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테이블 위에 다연이가 가져온 빵과 주스를 올려 놓았다.
“이제 먹어.”
“다연이는?”
“나는 많이 먹어서 괜찮아. 안 먹어도 돼.”
“그래.”
나는 다연이의 바람대로 테이블 위에 먹기 좋게 토스트를 펼쳐 놓는다.
하지만 다연이는 그런 말과는 달리 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안 그런 척 했지만 사실 먹고 싶어하는 것 같다.
“먹을래?”
“아··· 아니야. 이건 오빠 꺼니까.”
“먹어도 돼. 오빠는 아까 밥 먹었거든.”
그제야 다연이의 얼굴이 밝아진다.
“정말? 그러면 오빠 배 안 고파?”
“응, 하나도. 그러니까 먹어도 돼.”
“오···.”
그럴 줄 알고 다연이가 먹기 좋게 토스트를 자르는 중이었다.
“스무디도 나눠먹게 컵 하나 더 가져올래?”
“응!”
다연이는 그렇게 말하고 의자에서 풀썩 내려온다. 그리고 익숙하게 컵을 가지고 되돌아왔다.
나는 스무디도 먹기 좋게 나눈 다음 다연이에게 건네준다.
“맛있게 먹어.”
“오빠도!”
그리고 빵을 먹기 시작한다.
다연이가 준 거라 그런지 더 맛있는 것 같다. 예전에 사 먹었던 토스트 맛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
.
.
“오늘은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될 것 같아. 너무 많이 먹었어.”
식당을 접고 다시 밤이 됐다.
다연이는 가끔 먹던 야식도 먹지 않겠다고 말한 뒤 내 휴대폰으로 인별을 들여다 본다.
오늘 찍은 사진 때문이었다.
“여기 있다.”
"뭐가?"
"오늘 찍은 사진."
다연이는 휴대폰을 내밀어서 내게 사진들을 보여준다. 오늘 학교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확실히 내가 찍는 거랑 많이 다르구나.
다연이가 훨씬 더 예쁘게 나온 것 같다.
"오늘 예쁜 옷 입고 가길 잘한 거 같아."
"그래, 많이 예뻐."
"여기 내가 그린 그림도 이따."
다연이가 보여준 건 칠판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었다.
평소에 그린 걸로 봤을 땐 다연이 본인을 그린 것 같은데.
"칠판에 그림 그려써."
"잘 그렸네."
사진을 보고 있을 때 예나에게 메시지가 왔다.
[잊어버리고 사진을 안 보냈네요. 이거 오늘 찍은 사진이에요.]
우리는 고맙다고 답장한 뒤 다시 인별을 보기 시작한다.
"이제 다 봤으니까 글자 읽어줘."
"응."
다연이는 방싯 웃으면서 말했다.
"음··· 보자. 여기서부터 읽어줄게."
"웅."
[다연이 학교 왔었구나···]
[내 자리에도 앉아줘. ㅠㅠ]
[그림 안 지웠지? 내일 일찍가서 다연이 그림 영접해야겠다..]
내가 글자를 읽어주니 다연이거 말했다.
"헤··· 글자가 엄청 귀여워. 나도 빨리 글자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 열심히 공부하면 읽을 수 있을 거야."
다연이는 댓글들을 읽더니 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오늘 만났던 선생님 사진이야. 이거 글자 읽어줘."
"그래."
나는 그 글을 보고 읽으려 했지만 글자를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뭐라고 적혀 있어? 글자는 엄청 귀여운데."
"....이거는.. 글자긴 한데.."
적혀 있는 글자는 이거 였다.
[ㅎㅎ]
딱히 의미는 없었기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잠시 고민하다가 말한다.
"웃는 거야. 선생님이 다연이랑 만나서 좋았나봐."
"오··· 그렇구나."
다연이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방으로 쪼르르 달려가더니 책 하나를 가져온다.
한글 공부 책이었다.
"나 이거 가르쳐줘!"
조금 있으면 잠들어야 할 시간이지만 상관없을 것 같다.
"그래. 여기 앉아."
"응!"
그 날 다연이는 공부하다가 내 무릎을 베고 잠들었다.
***
"더워어···"
시간이 조금 흘러서 여름이 됐다. 오늘은 식당이 쉬는 날이다.
다연이 말처럼 날이 더웠기 때문에 집 안에 있는 모든 창문을 열어놨다.
"뛰어다니면 더워. 창문 앞에 앉아있으면 괜찮을 거야."
"웅.."
다연이 창문 쪽으로 기어가서 그 앞에 눕는다.
나는 여름을 대비해 씻어 놓은 선풍기를 손으로 만져본다.
다 마른 것 같다.
"선풍기 다 말랐으니까, 틀어 줄게."
"응."
사실 그렇게 더운 날씨는 아닌데 다연이가 옥상에서 놀다와서 더위를 많이 타는 것 같다.
"우아아.."
선풍기를 틀자 다연이가 그 앞에서 소리를 낸다.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나는 가만히 다연이를 지켜보다가 말했다.
"더운데 시원한 거 먹을까?"
더울 땐 선풍기도 좋지만 시원한 음식도 같이 먹는다면 더위가 빠르게 날아갈 것 같다.
"응, 시원한 거. 근데 시원한 거 뭐 먹어?"
미리 생각해 놓은 음식이 있다.
나는 어제 사 놓은 수박을 떠올렸다.
"수박 화채."
"오.. 화채. 뭔지 몰라."
"그래, 해 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맛있을 거야."
"수박은 아는데."
어제 작은 수박을 사서 절반 정도 먹었다.
남은 수박은 조각내서 냉장고 안에 넣어 뒀는데 지금이 딱 먹기 좋은 때인 것 같다.
"그럼 오빠는 수박 화채해줘. 나는 오빠가 달라는 거 줄게."
"응."
내가 화채를 만들기 시작하려고 하니 다연이가 필요한 것들을 갖다준다. 나는 다연이가 건네주는 사이다를 받아서 옆에 놓아둔다.
수박 화채를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사이다와 설탕, 수박만 있으면 가장 기본적인 화채는 만들 수 있다.
"이거는 어떡해?"
다연이가 내민 건 통조림 복숭아였다. 수박을 살 때 같이 사둔 통조림.
다연이가 먹고 싶어해서 사 뒀던 건데 아직 먹지 않고 남아있다. 통조림을 사오고 난 뒤에는 다연이가 눈길을 주지 않아서 혹시 끝까지 냉장고에 남게 되지 않을까 걱정됐던 음식이다.
"그거도 먹고 싶어?"
"응."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한다.
그런거면 복숭아도 화채에 같이 넣어도 될 것 같다.
나는 다연이에게 통조림도 받은 다음 화채 만들기를 시작한다.
먼저 볼이 넓은 그릇에 사이다를 따른다.
탄산이 터지는 특유의 청량한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이 보글거리며 올라온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흐르니 그릇에 동그란 기포가 맺힌다.
그 위로 설탕을 섞는다.
솨아아.
파도 치는 것 같은 소리가 그릇에서도 들린다.
탄산 특유의 소리가 더위를 가시게 만든다. 다연이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는지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보고 있다.
"금방 만들어 줄게."
"응."
그 다음은 복숭아 통조림이다.
나는 복숭아도 꺼낸 다음 먹을 만한 크기로 자른다. 나 혼자 먹는다면 조금 큼직하게 잘랐을 테지만 다연이도 같이 있기에 당연히 작게 잘랐다.
한 입에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다연이의 작은 숟가락에서 흘러내리지 않을 만한 크기.
잘라놓은 복숭아에서 단내가 피어오른다.
그런 향긋한 냄새가 더운 공기와 섞이면서 더 진하게 다가온다.
그 냄새가 입 안에 침이 고이게 만든다. 나는 작은 복숭아 조각 하나를 다연이 입에 넣어주고 나서 사이다를 부어놓은 그릇에 복숭아를 넣는다.
"오···"
"맛있지?"
그 말에 다연이가 끄덕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모 모양으로 썰어놓은 수박을 담으면 수박 화채는 끝이다.
"맛있겠다."
"그럴 거야."
숟가락은 다연이가 미리 준비해둬서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화채를 먹기 위해 바로 테이블로 향했다.
"수박이가 화채가 됐어."
"그러네."
다연이는 어느 새 가져온 수박 인형을 손에 쥐고 있었다.
수박 화채를 먹는다고 해서 준비한 모양이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다연이가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먹어 봐."
"알겠어."
다연이는 작은 숟가락으로 수박 한 조각을 퍼서 입에 넣는다.
그리고 오물오물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마싯따. 엄청 시원해."
화채에 선풍기까지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만 하다.
"국물도 먹어 봐."
"응."
후루룩 넘어가는 사이다와 수박 주스에 다연이가 상쾌한 표정을 짓는다.
"캬아. 마시따!"
그런 다연이의 표정을 보고 나서,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수박과 통조림에서 나온 복숭아, 그릇에 가득 차 있는 국물을 가득 담아서 입에 넣는다.
아삭한 수박과 상쾌한 사이다, 그리고 달달한 복숭아가 잘 어울린다.
게다가 시원하기까지하니 여름과 정말 잘 어울리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수박이는 맛있어. 어제 먹은 수박도 맛있었는데 이건 엄청 맛있따!"
"더 먹고 싶으면 더 먹어도 돼."
다연이가 좋아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부 먹어치울 것처럼 먹는 다연이를 보고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엄청 맛있어서 많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맛있게 먹어주니 그것만으로도 좋다.
"많이 먹어."
"응!"
나도 좋아하는 수박 화채지만 그만 먹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
.
.
휴일이 지나고 다시 식당을 열어야 할 때가 왔다.
평소처럼 다연이는 어린이집에 가 있었고 나는 혼자서 장사를 하고 있다.
날이 흐려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평소보다 손님들은 많이 없다.
쿠르릉!
그렇게 식당에서 서 있을 때 천둥 치는 소리가 들린다.
"비가 오려나."
아침부터 날이 어두웠는데 기어이 비가 쏟아질 모양이다.
곧이어 내 걱정처럼 비가 오기 시작했다. 조금 많이 쏟아진다.
이제 다연이도 데리러 가야 하는데.
마침 시간도 다 돼서 우산을 들고 식당을 나선다.
띠리링.
그 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
"누구지."
나에게 전화를 할 사람은 예나 밖에 없었지만 그것마저도 한 달에 한 번 오면 많이 온 거다.
딱히 전화를 자주하진 않았으니까.
혹시 예나일까 하고 휴대폰을 들었는데 다른 이름이 적혀있었다.
"혜원이 아버지?"
전화를 한 사람은 혜원이의 아버지였다.
나는 저번에 연락처를 교환했을 때를 떠올렸다.
"무슨 일이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전화를 받는다.
끄덕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