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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헤헤."
학교 밖으로 나온 예나와 친구는 숨을 헐떡였지만 다연이는 아니다.
오빠가 안아준 적은 많았지만 지금처럼 빠르게 뛰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조금 재밌다.
"후···"
다연이는 예나의 품에서 다시 내려온다.
방금전까지는 학교 안이 조용했는데 이제는 시끄러워졌다.
"다연이 완전 인기 많네.."
"음.. 맞는 것 같아. 나 인기 엄청 많나 봐."
다연이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자만 같은 게 아니라 다연이의 팬이라던 선생님도 만났고 다연이가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큭큭, 그래."
"그런데 그 선생님은 오빠랑 비슷한 것 같아."
"언니도 그렇게 생각해."
당연히 똑같지는 않았지만 그 선생님은 오빠랑 비슷한 느낌이 난다.
"선생님이 내가 그린 물고기를 좋아해서 다행이야."
"선생님이 좋아했었어?"
"응, 엄청 좋아했어."
그런 감정이 선생님의 표정에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예나는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연이는 조금 다르게 봤나 보다.
아저씨랑 같이 살아서 다연이는 그런 무표정도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그려준 물고기, 이렇게 조심조심 가져갔잖아."
다연이는 선생님의 행동을 따라하면서 말했다.
"그래, 다연이 말이 맞는 것 같아."
"마자."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행동을 따라하는 다연이의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그럼 이제 갈까?"
"응!"
그렇게 말하고 가려던 때 휴대폰 벨이 울린다.
예나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누구에게서 걸려온 전화인지 알 것 같았다.
"누구야?"
"아저씨."
"오빠?"
"응, 다연이 오빠 맞아."
다연이는 정확하게 오빠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웃었다.
"빨리 받아봐."
"응."
예나는 다연이 말을 따라 전화를 받고 스피커로 바꾼다.
"아저씨."
"오빠, 안녕!"
다연이 오빠는 잠시 아무 말도 없더니 곧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연이야?"
"응, 나야."
"...별일 없었지?"
"있어! 나, 언니들이랑도 놀았고 언니 선생님하고도 놀았어."
오빠는 다시 아무 말도 없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 일 없었구나."
"네, 별일 없었어요."
"다연이는 잘 놀고 있어? 투정 안 부리고?"
"네, 투정은 원래 안 부렸는데요."
"어디 다친 곳은 없지? 그리고 그 선생님은 누구야? 나쁜 사람은 아니지?"
"아, 그 선생님은···."
"배는 안 고프대? 이제 점심인데 밥은 식당와서 먹어. 준비해 놓을 테니까. 뭐 먹을래?"
휴대폰에서 오빠의 목소리가 정신없이 쏟아지고 있다.
다연이는 그런 휴대폰을 보면서 혹시 오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 오빠가 이렇게 많이 말하는 거 처음 들어봤어."
"나도."
그러자 휴대폰이 잠시 조용해진다.
다연이는 오빠의 목소리를 이렇게 빠르고, 오랫동안 들어본 적은 처음이다.
다연이는 그런 목소리를 듣고 다른 오빠의 모습에 재밌다고 생각했다.
".....시끄러웠어?"
오빠가 그렇게 말했다.
"아니, 괜찮아."
"아저씨, 저희 밥 먹고 갈 거라고 말했잖아요. 대답도 하셨으면서."
"......그래? 잘 기억 안 나네."
"네, 그랬어요."
그러자 다시 조용해졌다.
예나는 웃으면서 아저씨에게 말한다.
"아저씨, 진짜 동생 바보네요. 아저씨가 그렇게 걱정하는 거 처음 봐요."
"우리 오빠 바보 아닌데?"
다연이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니가 그런 뜻으로 말을 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아, 다연아. 이건 그런 뜻이 아니라.... 다연이 오빠가 다연이를 엄청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거야."
"오··· 그런 뜻이구나. 그런거면 맞는 것 같아. 오빠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건 처음이니까."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납득했다.
"그래. 그러면 다연아, 밥 맛있게 먹어."
"응, 맛있는 거 먹을 거야."
"그래."
예나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조금 우울하다고 생각했다.
아저씨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오빠 안뇽."
"안녕."
그렇게 전화가 끊겼다.
"언니, 우리 뭐 먹으러 가?"
"음··· 뭐 먹을까."
잠시 생각하던 예나가 말했다.
"토스트 먹을래?"
"토스트···?"
"응, 학교 앞에 있는데."
"그거 먹고 바로 집에 가는 거야?"
"당연히 아니지. 맛있는 거 먹으러 더 많이 돌아다닐 거야."
"우와···"
다연이는 소리를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빨리 가자."
"응."
다연이는 곧바로 학교 앞 토스트 집으로 향했다.
"오···"
낡은 건물. 다연이의 집도 똑같이 오래됐지만 느낌은 다르다.
다연이 집은 포근한 느낌이었다면 토스트 가게는 정반대였다. 딱딱하고 말 그대로 낡아보인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연이 집과는 다른 느낌의 포근함이지만 나름대로 좋은 기분이 든다.
"음···"
그리고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
여기는 입구에서부터 맛있는 냄새가 난다는 것.
"마싯는 냄새···"
오빠 식당에서 맡았던 냄새와는 또 다르다.
"들어가자."
"응."
다연이는 언니를따라 안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인사가 오가고 다연이가 의자에 앉는다.
다연이가 시킨 건 햄과 치즈가 들어가 있는 토스트다. 이 메뉴를 선택한 이유는 그냥 맛있어 보여서 그랬다.
언니한테 물어보니 그렇다고 말했었고.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면 완성될 거야."
"응."
다연이는 대충 대답하고 난 뒤, 아저씨가 토스트 만드는 모습을 지켜본다.
오빠랑은 다른 요리를 하는 거라서 다연이는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다연아, 뭘 그렇게 봐?"
"빵이 만들어 지는 거 보고 있어."
다연이는 눈을 떼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아저씨의 손길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사각형의 빵을 프라이팬 위에 올린다.
그 밑에는 버터로 프라이팬을 흥건하게 적셔 놓았다. 흥건한 버터 위로 식빵이 올라가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굽기 시작한다.
"빵이 지글지글.."
다연이는 지글거리는 빵은 처음본다.
전부 잼을 발라 먹거나 오빠가 만들어준 감자 샐러드를 얹은 채 먹은 것이 전부였다.
지글거리는 빵을 감상하던 다연이와 눈이 마주친 식당의 아저씨가 말했다.
"맛있겠지?"
조금 자신감이 담겨 있는 목소리였다.
"네.."
"조금만 기다려. 맛있게 만들어 줄 테니까."
"네.."
예나는 기계처럼 대답하는 다연이를 카메라로 찍었다.
"귀여워.."
다연이는 그런 말은 제대로 듣지도 않은 채 지글거리는 빵을 보고 있다.
그렇게 멍하니 요리 과정을 보고 있으니 문득 다연이는 어제 봤던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열심히 움직이던 과일과 채소 캐릭터들.
그래서 그런지 토스트의 요리 과정도 애니메이션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식빵이다···"
그 말과 동시에 모든 요리 재료들이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처럼 움직인다.
프라이팬 위에 누워있던 빵이 벌떡 일어난다.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다.
빵은 저벅저벅 걸어가서 준비된 접시 위에 털썩하고 누웠다.
그 다음은 계란이다. 잘 구워진 계란은 흐느적거리는 몸을 애써 가누면서 식빵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나는 식빵 위에 올라가는 계란이야.]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털썩 엎드리는 계란. 다연이는 그런 계란의 모습이 귀엽고 웃기다고 생각했다.
"계란이가 올라갔어."
"그렇네."
이번에는 예나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럼에도 다연이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다음은 양상추다.
원래 하나였던 양상추는 서걱서걱 썰리더니 수많은 양상추로 바뀌었다.
그렇게 조각난 양상추도 어김없이 식빵 위에 올라간다.
"흠흠."
숨을 깊게 들이마시니 맛있는 냄새가 따라 들어온다.
이제 다연이 눈에서 애니메이션 필터가 꺼졌다. 다연이 눈 앞엔 맛있는 토스트만 있을 뿐이다.
"자, 다 됐습니다. 맛있게 먹어라, 애기야."
"나는 다연이에요."
"그래, 다연아. 맛있게 먹어."
"네."
다연이는 토스트에 손가락을 살짝 대어본다.
"앗, 뜨거."
"괜찮아?"
"응, 괜찮아."
그래도 별로 뜨겁진 않다.
맛있을 것 같다.
"다연아, 내가 잘라 줄게. 조금만 기다려."
"응."
다연이는 잠시 기다리면서 토스트를 구경한다.
언니가 토스트를 자르기 시작하자 그 사이로 아주 가느다란 김이 올라온다.
오늘은 날이 따뜻했기에 가느다란 김은 금새 사라진다.
"후후."
아주 조금 남아있던 김 마저도 다연이가 후 하고 바람을 불자 그대로 흩어져서 사라진다.
"이제 먹어도 돼."
"그럼 이제 먹을게."
"그래, 맛있게 먹어."
다연이는 눈앞에 있는 토스트가 너무 맛있어 보였기 때문에 언니들에게 맛있게 먹으라고 말할 틈도 없이 조각난 토스트를 입으로 집어넣는다.
"후...후.. 뜨거워어···"
"뜨거우면 얼른 뱉어."
언니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해보니 안 뜨거운 것 같다.
막상 먹어보니 뜨겁지도 않은데 그렇게 생각해서 뜨겁게 느껴진 것 같다.
"아니네, 안 뜨거워."
다연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오물오물 토스트를 먹기 시작한다.
포근한 식빵과 그 사이에 끼어있는 계란. 아직 어린 다연이가 먹기에도 충분히 부드러워서 쉽게 먹을 수 있다.
"왐왐."
포근한 식감의 틈에 아삭한 양상추와 다른 채소들도 들어가 있으니 먹는 맛이 살아난다.
자극적인 맛 사이에서 간간이 느껴지는 케첩의 맛까지. 다연이는 이 집의 토스트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맛있따···!"
아주 맛있다.
"정말?"
"응, 그래도 오빠가 한 음식이 더 맛있어···"
그래도 당연히 오빠 음식이 더 좋다.
물론 그 말은 언니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아저씨가 들으면 기분 안 좋을 테니까.
그런 말을 하니 문득 오빠가 생각난다. 어린이집에 갈 때 말고는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다.
특히 주말에는 거의 처음이었다.
"오빠도 이거 좋아하겠지?"
"음··· 아마도? 왜? 이거 아저씨한테 주고 싶어?"
"응."
"그래, 나중에 사 가자."
"오..! 알겠어."
오빠도 맛있는 걸 많이 먹는다면 좋을 거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금은 토스트를 먹는 것에 집중한다.
***
여기는 식당이다.
원래는 다연이랑 같이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서 있는 식당.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음···"
사실 알고 있다. 다연이가 없어서 그런 거다.
게다가 외로운 느낌과 같이 다연이가 걱정도 된다.
잘 놀고 있을지, 혹시 별일은 없는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차려놓은 밥을 먹는다.
아무렇게나 한 볶음밥이다. 다연이가 없으니까 맛있게 할 필요도 없다. 나는 밥을 입안에 집어 넣었다.
제멋대로인 밥알들이 입안을 맴돈다. 맴도는 만큼 밥알을 씹는 횟수도 늘어난다.
원래 이렇게 맛이 없었나.
밥을 다 먹고 난 뒤, 그릇들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간다.
바쁘기라도 하면 시간은 잘 가겠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도 손님도 많이 없다.
이렇게 밖에서 다연이가 올 때까지 앉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원래는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다연이랑 같이 산 시간보다 혼자 있었던 시간이 훨씬 많았는데.
나는 다연이가 선물해준 사탕을 물고서 바깥에 앉아있는다.
"아···"
사람들이라도 구경할까 싶어서 밖으로 나왔는데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심심하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을 때쯤, 저 멀리서 작은 발소리가 들린다.
"오빠!"
다연이는 양손에 뭔가를 잔뜩 들고 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들고 있는 무언가 때문에 뛰지는 않았다.
"안녕."
"안뇽!"
재밌게 놀다가 온 것 같아 다행이다.
수박 화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