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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뒤로 슬금슬금 내뺀다. 그리고 예나의 손을 꼭 잡았다.
오빠가 당부했던 수많은 말들 중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강아지 아빠가 돌아가고 나서 다연이에게 했던 말이다.
'모르는 사람이 어디 가자고 해도 절대 따라가면 안 돼. 이번에는 오빠랑 같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다연이 혼자 있을 때 모르는 사람이 말 걸면 안 돼요, 라고 말하고 오빠한테 빨리 말해야 하는 거야.'
'사탕 준다고 해도?'
'응, 만약에 모르는 사람 따라가면 오빠 못 볼 수도 있어.'
'....!'
그러면 안 되기 때문에 다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사람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귀여워라."
다연이는 그런 선생님의 말에도 예나의 손을 꼭 잡는다. 그리고 작게 물었다.
"저 사람 누구야?"
"학교 선생님, 언니랑도 알고 있어."
"정말?"
"응."
서로를 알아본 예나와 선생님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다연이는 그 모습에 조금 안심이 돼서 휴, 하고 한숨을 내쉰다.
"어린이집 선생님도 선생님인데 학교 선생님도 선생님이야."
예나와 선생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다연이가 작게 말했다.
다연이에게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엄청 좋았으니까.
그래서 선생님이 좋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옆에 서 있는 남자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다.
큰 키에 정장차림. 다연이는 잘 모르지만 원래 꼭 정장을 입고 올 필요는 없다. 특히 주말에는 더더욱.
그런데도 남자 선생님은 정장을 빼입은 채 다연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엽네."
남자 선생님이 말했다.
다연이는 그 말에 선생님의 눈을 더 똑바로 바라본다.
다연이는 그 눈이 왜인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오···!"
그때 다연이는 그 눈빛을 어디서 봤는지 단번에 떠올렸다.
"오빠다..!"
오빠랑 똑같은 눈빛이다. 기분이 잘 드러나지 않고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 하지만 다연이는 오빠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오빠가 그런 눈을 하는 건 다연이를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응..?"
그 옆에서 대화를 나누던 예나는 그제야 남자 선생님을 똑바로 바라본다.
아저씨와 비슷해 보이는 분위기. 이렇게 정면으로 보는 건 처음이지만 목소리도 듣고 조금 살펴보니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이 학교에서 무뚝뚝한걸로 나름 유명한 선생님이었다. 그런 모습이 아저씨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다.
멀리서만 봐서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는데.
"너 누구야? 예나 동생인가? 너무 귀엽다."
여선생님이 그렇게 물었지만 다연이는 대답하지 않고 멍하니 남선생님만 바라보고 있었다.
남선생님도 가만히 다연이를 보고 있다.
예나는 다연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다연이는 새로운 사람을 좋아하긴 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상대를 멍하니 보고 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혹시 예나가 그랬던 것처럼 아저씨 생각이 나서 그런 걸까.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남선생님이었다.
"나, 너 알아."
"...?"
그제야 다연이의 표정이 흐트러졌다.
그나저나 다연이를 알고 있다니.
다연이도 그 말이 이해되지 않는단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선생님 몰라요."
그래서 다연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남선생님이 말한다.
"너, 인별하지?"
"어···?"
다연이가 놀란 얼굴로 선생님을 바라보고, 다시 예나를 바라본다.
"어떻게 알아요..?"
"학생들이 보더라. 그래서 알아."
"오···"
그 말에 여선생님이 말했다.
"우와··· 너 그런 것도 해?"
"네.. 일기장이에요."
다연이가 작게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도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여선생님의 말에 남선생님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한다.
"....귀엽더라고요."
여전히 굳은 얼굴이었지만 예나는 알 것 같았다.
저 선생님도 아저씨와 비슷한 스타일 같다고. 나이도 비슷한 것 같은데 만나게 된다면 친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랑 비슷해."
다연이도 그런 선생님을 보고서 오빠와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된 이유가 오빠랑은 다를 것 같지만 그래도 성격은 비슷하다.
그 때 여선생님이 물었다.
“그런데 너희들은 왜 여기에 있니? 오늘 주말이잖아?”
“아··· 다연이랑 놀아준다고요.”
“아, 이 애기랑?”
“네.”
다연이도 옆에서 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나가 그렇게 말하자 남자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다연이는 그런 남자를 계속해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음··· 너희 여기서 뭐했어?”
그렇게 묻는 남자의 목소리가 착 내려앉는다.
다연이는 그렇게 무거운 목소리는 처음 들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저 남자 선생님이 오빠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다연이랑 같이 놀고··· 사진 찍었어요···”
예나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를 듣는다면 누구나 그럴 것 같다. 하지만 다연이는 아니다.
그냥 계속해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혹시.. 그러면 안 되는 건 가요···”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선생님의 표정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무서운 인상이다.
아저씨도 비슷하긴 하지만 아저씨는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아저씨의 표정이 바뀌는 건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렇기에 무서운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아저씨와는 조금 다르다.
“.....”
선생님은 잠시 조용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 그 사진 인별에 올릴 거니?”
“응···?”
뜻밖의 말에 다연이가 목소리를 흘렸다.
그 말에 선생님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진다.
예나는 그 때 알았다. 저 표정은 화난 얼굴이 아니라 뭔가에 집중할 때 생기는 표정이라고.
“네.”
그리고 선생님이 혼자서 고개를 끄덕인다.
“왜 그러세요..?”
선생님은 그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고 품속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펜과 수첩이었다.
“사인해 줄 수 있니?”
“오···”
다연이는 감탄을 내뱉으며 선생님이 건네 준 펜과 수첩을 들었다.
“그런데 나는요. 사인이 뭔지 몰라요.”
선생님의 그런 행동을 예상하지 못한 예나는 다연이의 말에 급하게 정신을 차렸다.
저런 표정으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진짜 팬이신가 보네요···?”
예나처럼 멍하니 있던 여선생님이 말했다.
당황한 듯 머뭇거리는 목소리였다.
“네. 조금요.”
그런 말과는 너무 다른 행동이다. 예나와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했고.
“선생님, 나는 사인이 뭔지 몰라요.”
대답을 하지 않으니 다연이가 선생님을 툭툭 건드리며 다시 물었다.
“음··· 그냥 그림 그려도 돼.”
“그림···?”
“응.”
다연이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림은 집에서 많이 그려봤다. 스케치북 위에 주로 그렸던 건 오빠였다.
오빠랑 다연이랑 그리고 집. 다연이는 그 집도 오빠도 좋았으니까.
그 전에 아빠랑 있었던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걸 그려야 한다. 다연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다시 뭘 그릴 지 생각해본다.
“음···.”
그리고 결정했는지 곧 펜을 든다.
다연이가 잡은 펜이 수첩 위에 흐르듯 휘날린다.
뭘 그릴 지는 이미 생각해뒀기 때문에 남자선생님의 손바닥 위에 수첩을 얹은 채 열심히 뭔가를 그렸다.
“다 됐따.”
완성된 건 물고기 한 마리였다.
그림이라고 해도 물고기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오빠나 집이나 다연이를 그릴 수는 없었으니까.
“다 그렸어요. 엄청 귀여운 물고기.”
다연이의 물고기 그림을 받은 선생님이 멍하니 그 그림을 본다.
선생님은 정말로 다연이의 팬이었다.
얼마 전,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한 어떤 아기에 대해서 알게 됐다.
저 앞 식당에 있는 아이라는데 처음엔 그저 그랬다. 그냥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
딱 그 정도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달랐다. 여러 번 보다 보니 팬이 될 정도로.
그런 일들은 선생님의 생각까지 바꿔놓았다.
여태까지는 한 번도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다연이의 인별 계정을 보게 된 뒤부터 달라졌다.
결혼해서 아이도 갖고 싶어졌다. 이왕이면 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선생님은 여자친구가 없었지만.
“고마워.”
담담하게 말했지만 진심이다.
다시 올라가서 학생들에게 자랑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다연이가 말했다.
“내가 그린 물고기, 처음으로 주는 거에요. 몰고기는 선생님만 가지고 있는 거야.”
“.....”
선생님은 다시 한 번 다연이가 준 물고기를 본다.
작은 물고기다. 당장이라도 파닥거리면서 움직일 것 같다.
선생님은 그 그림을 보고 만약 자식이 생긴다면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생각일 뿐이지만.
“고마워. 잘 가지고 있을게.”
남선생님은 다연이가 준 수첩을 품 속에 고이 집어 넣는다. 구겨지지 않게.
그렇게 수첩을 집어 넣으니 종소리가 들린다.
자습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시작된 모양이다. 그와 동시에 위 층에서 아이들이 내는 소음이 들려온다.
그리고 터벅터벅, 아이들이 내려오는 소리도 들린다.
“애들 오나 보다.”
그리고 다연이와 아이들에게 말했다.
“빨리 가. 3학년 애들도 다연이 다 알고 있어서 들키면 피곤할 거야.”
담담하지만 예나는 선생님이 걱정을 담아 한 말이라는 걸 알고 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러면 가 볼게요.”
그 때 계단 위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어? 애기다. 애기가 왜 여기에 있지?”
아직 그 애기의 정체가 다연이인지 모르는 모양이다.
예나는 그 목소리를 듣고서 왜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다고 생각했다.
저 사람들이 다연이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얼마나 피곤해질지도.
그래서 예나는 다연이를 훅 안아 올린다.
“가인아, 뛰자.”
예나의 품에 안긴 다연이는 혼자 평화롭게 선생님들이 있는 방향을 바라본다.
그리고 손을 흔들었다.
“안뇽, 선생님!”
“안녕.”
손을 흔들거리는 다연이가 빠르게 멀어진다.
다연이에겐 지금 상황이 그저 재미있는 모양인지 웃고 있었다.
예나의 움직임에따라 다연이도 들썩거린다.
“나중에 우리 오빠 식당에 와요!”
“응.”
선생님은 그런 다연이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연이를 본 것에 대한 소감을 작게 내뱉었다.
“귀여워.”
“선생님은 정말 보이는 거랑 많이 다르네요.”
“....네.”
선생님은 귀여운 걸 좋아한다. 취미는 귀여운 동물 사진을 모으는 것일 정도로.
물론 다른 동료 선생님들에겐 말하지 않은 취미였다.
동물 말고 처음으로 봤던 아이가 다연이 였을 뿐이다.
“저는 그냥 귀여운 게 좋습니다.”
그렇게나 귀여운 게 좋아서 꿈이 동물원 직원이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 선생님이 됐고 지금까지 이 직업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다연이를 보기 전까지는.
지금은 아주 조금 후회가 된다.
다연이를 보니 귀여운 것들에 다시 관심이 생긴다.
귀여운 동물들에 둘러쌓이는 삶도 좋았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이제 와서 그렇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다른 생각이 들었다.
“빨리 결혼해야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심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