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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의 말에 다연이가 고개를 돌렸다.
“안녕, 다연아.”
“안뇽, 오빠.”
다연이가 손을 흔들자 민우가 웃는다.
하민이와 민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고. 그런 하민이의 옆에서 지민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저게 보통 남매의 모습인 것 같다.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는 오빠와 그런 오빠가 한심스러운 동생.
민우는 그렇게 웃으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 했지만 옆에 있던 어머니의 만류에 그대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가지 말고 앉아. 또 네 마음대로 하면 다시 안 온다고 했지?”
민우의 어머니는 민우가 저번에 했던 일이 많이 기억에 남았는지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민우도 그런 엄마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도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다.
민재와 하민이만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었다.
나는 이제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고 다연이를 본다.
히죽히죽 웃고 있는 다연이. 오늘 친구들이랑 논 것이 좋았던 모양이다.
“다연아, 오늘 많이 재밌었어?”
“응! 진짜 진짜 재밌었어. 매일 우리 집에서 놀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다행이네.”
이렇게나 기뻐하는 다연이의 모습을 보니 문득 사진으로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다연아, 오빠 봐. 사진 하나만 찍자.”
“응!”
한껏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양 손을 허리춤에 올려놓은 채 포즈를 취했다.
그 모습이 꼭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처럼 자신만만해 보인다.
나도 요즘 들어 주책이 심해진 것 같다. 원래 휴대폰 카메라는 사용하지 않는 수많은 기능들 중 하나일 뿐이었는데.
찰칵.
"귀엽게 찍혔어."
"오빠는 그 사진으로 뭐 할 거야?"
"가지고 있어야지. 그래야 나중에 다연이가 커서도 볼 수 있잖아."
"맞아. 그래서 나도 오빠 사진 찍는 거야."
다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
그 때 다연이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지 소리쳤다.
"왜?"
"오늘 친구들이랑 놀 때 사진 찍을 걸. 잊어버리고 있었어. 오늘 놀았던 것도 나중에 기억하고 싶은데."
"내일도 재밌는 일이 많을 거야. 그 때 사진 찍자."
"응. 나는 내일도 우리 집에서 놀았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알고 있어. 매일 우리 집에서 놀면 오빠가 힘들다는 거. 그래서 내일은 안 놀 거야."
"그래, 기특하네."
나는 그런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디에서 뭘 하고 놀았는지 모르겠지만 다연이의 머리카락은 많이 헝클어져 있었다.
“뭐 하고 놀았어?”
“옥상에서 놀았어. 빨강이랑 파랑이랑 같이.”
“그래.”
그래서 이렇게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구나.
다연이는 그대로 폴짝 뛰어가서 의자에 앉는다.
“나도 밥 먹을래.”
다연이의 친구들도 모두 테이블에 앉아있었기에 다연이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다연이의 건너편에 선생님을 앉게 했다.
저녁이라도 대접해야지.
“뭐 먹고 싶어?”
“음... 나는...”
다연이가 그렇게 말하면서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다른 친구들이 뭘 먹는지 보고 있는 것 같다.
“친구들이 다 똑같은 걸 먹고 이써. 저게 뭐야?”
민우처럼 다른 친구들도 모두 제육덮밥을 먹고 있었다.
민우가 먼저 메뉴를 고르고 민재와 하민이가 같은 걸 골랐다. 그래서 전부 제육 덮밥을 먹게 된 거다.
“제육 덮밥. 다연이도 먹어봤잖아.”
“마자. 나도 먹었찌.”
다연이는 고개를 까딱이면서 그 맛을 떠올린다.
금세 표정이 좋아진 걸 보면 내 생각이 맞는 것 같다.
“다연아도 저거 먹을래?”
“응. 그럼 선생님은 뭐 먹을 거예요?”
다연이가 나 대신 선생님까지 챙겨 준다.
선생님의 대답도 다연이와 똑같이 제육 덮밥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선생님의 표정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린이집을 나와서까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금방 음식을 만들어서 내놓았다.
모든 테이블이 제육 덮밥으로 가득 차는 이상한 상황이지만 정작 아이들과 부모님들은 상관없는 것 같았다.
맛있게 잘 먹고 있다.
다연이껀 따로 그릇에 담아서 건내 준다.
앞에 놓인 제육 덮밥을 잠시 감상하던 다연이는 이내 숟가락을 집어들었다.
“맛있게 먹어 오빠. 선생님도요.”
“그래, 다연이도 맛있게 먹어.”
그렇게 저녁을 먹기 시작한다.
다연이는 서툰 솜씨로 덮밥을 대충 섞은 다음, 숟가락 가득 담아서 입에 넣었다.
제육 덮밥은 양념이 많이 있는 음식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먹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입가에도 많이 묻고 기름기도 많았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매웠기 때문에.
물론 아이들 몫의 덮밥에는 최대한 매운맛을 뺐지만 그래도 살짝 매콤한 감은 남아있을 거다.
고기에 양념을 배이지 않았다면 그건 제육 덮밥이라고 부를 수 없었으니까.
“마시써.”
다연이의 입가에도 양념이 잔뜩 묻어 있었지만 다연이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밥을 먹는다.
기름기가 가득한 밥알. 그리고 그 옆에 함께 올려져 있는 덮밥의 메인 재료인 삼겹살까지.
다연이가 입을 벌려서 숟가락 가득 담은 밥알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우암...”
나도 다연이를 따라서 식사를 시작한다.
내 것은 살짝 매콤한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한 입 먹자마자 입안에서 매운 향이 감돈다.
지금까지는 다연이와 같이 있어서 매운 음식을 못 먹었는데 오랜만에 먹으니 좋다.
“오... 오빠 껀 엄청 매운 냄새가 나.”
“응, 다연이 껀 일부러 매운 냄새는 뺐어.”
다연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해서 밥을 먹는다.
이대로 제육덮밥의 매운 맛을 느끼는 것도 물론 좋지만 계란 프라이와 곁들여 먹는 것도 좋다.
나는 옆에 올려 놓은 계란 프라이를 숟가락으로 살짝 푹 떠서 덮밥과 함께 먹는다.
입 안에 퍼지는 매운 맛과 함께 계란의 담백한 맛이 느껴진다.
좋은 조합인 것 같다.
나는 입 안에서 맛을 음미한 다음 다연이를 본다.
“우아암.”
다연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진공청소기처럼 제육덮밥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런 다연이를 보고 있으니 왜 할머니들이 먹성 좋은 아이를 좋아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실제로 그런 다연이를 보고 있으니 안 먹어도 배부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서 다연이가 수저를 내려 놓았다.
“우아.. 마시따..!”
다연이가 맛있게 먹어서 다행이다.
잠시 후, 나와 다연이는 식당 앞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과 선생님을 배웅하기 위해서 였다.
“안녕, 다연아.”
“안뇨옹. 잘 가.”
다연이가 손을 열심히 흔들자 혜원이네 가족이 점점 멀어진다.
이제 남은 건 민우와, 민재, 하민이 뿐이었다. 그리고 하민이의 옆에 있는 지민이와 선생님도.
어떨결에 같이 식당을 나서게 된 아이들이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다.
민재와 하민이는 노골적이었고 민우는 애써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하민이는 그러다가 다연이에게 말했다.
“다음에 또 놀러 올게. 그 때는 내가 선물도 줄거야.”
하민이는 그렇게 말하고서 민우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엄청 좋은 걸로.”
“응, 고마워.”
다연이는 그 말에 익숙하게 말했다.
하민이가 그렇게 말하니 민우는 그제야 아이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모른 척 무시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해선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모양이다.
“나도 줄게. 스티커보다 더 좋은 거.”
“고마워, 오빠!”
다연이는 다시 밝게 대답했다.
정작 다연이는 아이들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을 모르고 있었다. 그냥 좋은 선물을 준다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민우는 그렇게 아이들을 의식하다가 아이들 쪽으로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하민이와 민재는 그런 민우를 보고선 살짝 움찔거렸다.
“안녕, 나는 최민우야. 8살. 너희는 몇 살이야?”
그 말을 듣고 둘은 더욱 몸을 움찔거렸다.
아이들은 민우가 8살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태까지는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다. 민우가 이렇게 직접 이야기하는 이유도 그것과 관련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민우도 아이들이 다연이의 친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일부러 나이를 물어보는 것도 뻔했다.
“6... 6살.”
살짝 뒤로 물러서던 하민이가 겨우 대답했다.
“그러면 내가 형아야. 나는 8살이고 너희는 6살이니까.”
민우가 그렇게 말하자 민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형아..”
6살에게 8살은 엄청 큰 차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단지 나는 아이들이 그렇게 대화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민우는 하민이를 보며 말했다.
“너한테도 나는 형아야.”
그러자 하민이가 대답한다.
“응, 형아.”
의외로 담담한 모습이다. 싫어할 줄 알았는데.
그러자 민우가 한 술 더 떴다.
“그리고 존댓말도 해야 돼. 나도 형아들한테 존댓말 해.”
그 말을 들은 민우의 어머니가 아이를 다그치며 꼭 나이가 많다고 존댓말을 쓰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민우의 표정을 보니 왜인지 모르게 그 말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단지 하민이와 민재에게는 존댓말을 듣고 싶었던 거 같다.
기선제압 비슷한 거려나.
그러자 하민이가 대답한다.
“아니야. 다연이도 존댓말 안 하니까 나도 안 할 거야. 민재도 안 할 거야.”
“.....”
그 말에 잠시 생각하던 민우가 말했다.
“알겠어. 존댓말 안 해도 돼.”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대신 형아라는 해야 돼.”
“....응.”
그렇게 못마땅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친구들은 결국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안녕, 잘 가.”
“안녕.”
그렇게 아이들을 떠나 보낸 후에야 식당은 잠시 조용해졌다.
얼마 안 가 다시 손님들이 몰려 올 것 같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선생님이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연이 인기 많네?”
“내가 인기 많아요...?”
“응.”
다연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두리번거렸다.
그래도 인기가 많다고 하니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럼 선생님도 갈게.”
“네, 빠이빠이에요.”
“안녕.”
다시 손을 흔들자 선생님이 사라진다.
“빠이빠이? 그 말 어디에서 배웠어? 귀엽네.”
“수박이가 티비에서 그렇게 말해. 끝날 때 빠이빠이, 이렇게 말해.”
다연이가 요즘 즐겨 오는 애니메이션을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나서 나는 다연이와 같이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득 다연이가 위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언니 온다.”
다연이의 손가락 끝에는 그 말처럼 예나가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네.”
“조금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텐데.”
다연이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기 떄문일 거라 생각했다.
“다연아!”
저 멀리에서 예나가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더 빠른 속도로 걸어온다.
“언니!”
“다연아.”
숨을 훅 하고 내쉬는 예나.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몇 번 더 숨을 고르더니 다연이를 붙잡고 말했다.
“언니랑 같이 언니 학교에 놀러 가자.”
“응...?”
그 말을 들은 다연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강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