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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는 멍하게 아이를 바라보며 작은 소리만 흘렸다.
다연이가 예쁜 건 사실이다. 나에게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나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처음 보는 남자아이가 찾아와서 그렇게 말하는 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연아, 너 쟤 누군지 알아?”
다연이는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다연이도 모르는 아이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그래도 아이의 얼굴을 보니 위험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너 누구야?”
내가 아이에게 물으니 아이가 부릅뜬 눈을 하고 말했다.
“저기 초등학교 1학년 3반 최민우입니다.”
민우는 손가락으로 저 멀리를 가리킨 다음 깍듯하게 인사했다.
그 강렬한 소개에 나는 멍하니 민우를 보고만 있었다. 다연이는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샌드위치를 오물오물 씹고 있었고.
“어.. 왜 왔어?”
그렇게 물으니 민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다연이 예뻐서요.”
그 말에 다연이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지만 샌드위치를 먹는 건 멈추지 않았다.
다연이보다 놀란 건 나였다. 누구라도 뜬금없이 남자 아이가 와서 저렇게 말한다면 당황하겠지만.
입 안에 있던 샌드위치를 다 먹은 다연이가 말했다.
“나도 알아. 어제는 몰랐는데 오빠가 예쁘다고 말해서 이제는 알고 있어.”
“맞아.”
둘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나만 혼자서 당황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누군가가 예쁘다면서 식당까지 찾아온다면 바로 경찰에 신고부터 했겠지만 그러진 않았다.
우선 초등학생이었고 저 얼굴엔 그런 의도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만의 생각이었지만.
“아니, 그게 아니라... 다연이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나는 일단 근본적인 것부터 물었다.
둘이 만난 적도 없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됐을까.
“휴대폰에서 봤어요. 인별.”
“...헉.”
다연이는 그제야 먹고 있던 샌드위치를 내려놓았다.
남자 아이가 저렇게 말하니 이제야 조금 와 닿은 모양이다.
“그리고 여기 앞에서도 봤어요. 저번에 축제할 때.”
축제할 때라면 다연이가 있는 힘을 다해 우리 식당을 홍보했었던 때를 말하는 것 같다.
“다연아, 너는 기억나?”
다연이는 내 말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데 너 혼자 왔어?”
“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여길 혼자 왔다니.
일단은 아이에게 이리 들어오라고 말했다.
“너, 어디 살아?”
“저쪽에 있는 아파트요. 엄청 가까워요.”
혹시 멀리서 여기까지 왔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 때 아이가 말했다.
“저희 누나가 다연이랑 친하대요. 그래서 저도 다연이 인별 봤어요.”
“..? 네 누나가 누구야?”
남자 아이의 누나는 예나의 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
“어..? 나 그 언니 알고 있어.”
“우리 누나야.”
그 말에 조금 안심한 다연이는 샌드위치를 마저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누구인진 알았지만 아직도 모르는 건 너무 많았다.
“민우야, 너 왜 왔어?”
민우는 그세 다연이에게 샌드위치 하나를 받아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다연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연이를 저렇게 보는 건 내가 용서할 수 없는데.
그 때 민우가 말했다.
“누나가 인별을 보여줬는데 다연이가 엄청 예뻤어요. 축제에서도 그렇고. 그래서 누나한테 여기 데려다 달라고 했는데 누나는 주말에만 된데요.”
“그래서?”
나는 살짝 목소리에 힘을 주어서 물었다.
“그런데 지금 오고 싶어서 왔어요.”
그러니까 처음 민우의 말처럼 진짜 다연이가 예뻐서 여기까지 온 거였다.
그 속에 다른 의미도 있을 테지만 나는 굳이 그것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누나나 엄마한테는 말했어?”
“아니요.”
막무가내로 여기까지 온 거다.
다연이 때문에 온 것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주 조금.
내가 다연이의 오빠라서 그렇기도 했다.
“그럼 내가 휴대폰 빌려줄게 너희 누나한테 전화해.”
“네.”
아이는 낯선 환경에도 거리낌 없이 휴대폰을 받아서 누나에게 전화했다.
민우의 누나는 나에게 죄송하다고까지 말했기에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요... 누나 올 때까지 여기 있어도 돼요?”
그 말에 다연이가 나를 본다. 멍한 얼굴로 봐서는 어떻게 하던지 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물어 봐야지.
“다연이는 어떻게 하고 싶어?”
다연이 때문에 왔으니 물어봐야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괜찮아. 여기 있어도 될 것 같아.”
다연이도 자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민우가 그리 싫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면 오늘도 언니 볼 수 있겠다.”
그나저나 이렇게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동생이 있으면서 왜 그렇게 다연이를 좋아한 걸까.
민우도 충분히 귀여운 것 같은데.
“너 예뻐서 왔어. 몇 살이야?”
“나는 6살.”
다시 생각해보니 안 귀여운 것 같다.
“나는 8살인데. 그래도 반말해도 돼.”
“8살...!”
항상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들만 보다가 8살인 민우를 보니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그렇게 말하던 민우는 문득 뭔가가 생각났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너 주려고 내가 뭐 가지고 왔어.”
“우와... 뭐야?”
낑낑대면서 민우가 꺼낸 것은 스티커였다.
빵을 사면 그 안에 있는 스티커. 그것도 꽤나 많이 있다.
“스티커. 너 주고 싶어.”
“우와...”
민우의 입장에서는 엄청 소중한 것일 텐데도 민우는 망설임이 없었다.
“고마워.. 오빠도 이거 먹어.”
다연이는 내가 만든 샌드위치를 건네준다.
민우가 먹는 것이 솔직히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다연이가 그러고 싶다는 걸 말릴 수도 없었다.
“맛있다.”
“우리 오빠가 한 거니까!”
다연이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하다가 뭔가 궁금해진 것이 생겼는지 민우에게 다시 물었다.
“민우 오빠, 오빠는 나 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존댓말 해야 하지?”
“아니, 안 해도 돼. 너는.”
“음... 알겠어.”
민우는 8살이라 그런지 다연이의 어린이집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확실히 조금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다.
두 살 차이가 이렇게 많이 드러나는 구나.
.
.
.
예나와 친구들이 하교할 때까지 민우는 이 곳에 있었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연이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좋은 듯 밝은 얼굴로 이 식당에서 대해서, 그리고 나에 대해서 설명했다.
내가 얼마나 요리를 잘하고 멋있는지에 대한 그런 이상한 이야기였지만 다연이는 좋은 것 같다.
“야, 최민우.”
그 때 예나와 친구들이 식당으로 왔다.
“누나.”
“너, 멋대로 여기 오면 어떡해? 아저씨하고 다연이가 힘들었잖아.”
그 말에는 민우 대신 다연이가 대답했다.
“아니야, 언니. 재밌었어. 민우 오빠가 스티커도 줬어.”
“어..? 너 저거 모은다고 한 거 아니야?”
“다연이 줬어. 주고 싶어서.”
담담한 민우의 말에 친구는 멍하니 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아저씨. 다음에는 혼자 못 오게 꼭 말해 놓을 게요.”
“나는 괜찮아. 다연이도 재밌게 놀았으니까 괜찮은 것 같고.”
“맞아! 나도 괜찮아!”
민우의 누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민우를 데리고 의자에 앉는다.
“아저씨, 그러면 저희 음식 시킬게요.”
민우를 데리러 나온 다고 밥도 못 먹었던 모양이다.
예나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래.”
나는 다시 이 식당의 요리사로 돌아왔다.
.
.
.
보글보글.
나는 또 다시 감자를 삶고 있다.
이 곳은 식당이 아니라 우리 집이다. 2층인 나와 다연이의 집.
식당이 끝난 이후에도 내가 요리를 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다연이가 배고프다고 했기 때문에.
내가 요리하겠다고 했을 때 다연이는 오빠 힘들어서 안 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다연이가 배고픈 채로 있는 것이 더 싫었다.
그렇게 늦은 밤도 아니고 다연이가 야식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으니 오늘은 내가 직접 해주기로 했다.
감자도 많이 남았고.
나는 완전히 삶은 감자를 덜어내고 불 위에 프라이팬을 올렸다.
다연이에게 만들어 줄 것은 삶은 감자를 버터에 구워낸 음식이었다.
“오빠, 나 휴대폰 줘. 인별에 사진 올릴 거야.”
“자.”
나는 다연이에게 휴대폰을 건네주고 다시 요리에 집중한다.
냉장고에서 버터를 꺼낸 다음 프라이팬에 올려준다. 그렇게 조금 기다리고 있으면 버터가 완전히 녹아 프라이팬을 가득 채운다.
버터에서 나는 특유의 향. 나는 그 향이 좋았다.
평소에 식당에서 하던 음식과는 다른 향이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치이이.
그 위로 삶은 감자를 굴리자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린다.
다연이가 이 소리를 듣고 처음 말했던 것처럼 비가 오는 것과 비슷한 소리다.
늘 요리를 할 때마다 비슷한 소리가 고막을 자극했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좋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어쩔 때는 얇은 비가 약하게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 또 다른 때는 폭우가 쏟아지는 것 같은 소리. 나는 그 미세한 소리의 변화가 좋았다.
내가 비 오는 날을 좋아하기 때문에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소리를 들을 때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으니까.
삶은 감자가 열심히 프라이팬을 구르자 흥건했던 버터는 어느 새 전부 사라져 있었다.
그만큼 감자는 더욱 맛있는 빛깔을 내고 있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감자다.
나는 맛을 보기 위해 하나를 집어 들고선 입 안에 넣었다.
바삭.
튀긴 것처럼 극적인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매혹적인 얕은 소리가 고막을 두드린다.
그리고 그 뒤로 느껴지는 잘 삶은 감자의 맛. 버터의 향도 베여 있었다.
하지만 자극적인 맛은 조금 부족하다. 마무리로 설탕과 소금을 넣지 않은 이유였다.
나는 그렇게 마무리를 짓고서 포크 두 개를 챙긴다. 거기다가 맛있는 오렌지주스로 한 컵 따른다.
텁텁한 감자에 오렌지주스는 좋은 조합이니까.
“다연아.”
그렇게나 좋은 조합임에도 나에게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다연이가 없으면 이렇게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전부 소용없으니까. 다연이는 나에게 그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였다.
말로 전부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만큼.
그러나 다연이가 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가 한 번 더 부르자 그제야 다연이의 발소리가 들린다.
“오빠! 이것 봐! 샌드위치 사진에 글자가 달렸어!”
후다닥 달려온 다연이는 내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댓글을 읽어달라는 의미다.
“보자...”
다연이는 설레는 얼굴로 나를 본다.
“나, 민우야. 아저씨 음식 엄청 맛있었어, 라고 적혀 있네.”
“민우 오빠..!”
다연이가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이 더 생긴 것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친한 사람이 많아지는 건 좋은 거니까.
“이제 감자 먹자.”
“응!”
하지만 그런 생각도 다연이의 활기찬 목소리를 들으니 금방 기억에서 잊힌다.
***
다음 날, 이 곳은 예나의 교실이다.
교실에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어두운 표정의 예나가 교실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친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요즘 예나에겐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조금 심각한 고민이다.
“야, 이번에 올라온 사진 봤어?”
“응, 엄청 귀여워...”
예나는 친구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말이다.
“이래선 안 돼...”
예나의 걱정은 이것이었다.
다연이가 인별에 사진을 올리면서 다연이를 알게 되는 친구들이 엄청 많아졌다는 것.
예나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들어...”
다연이가 유명해진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니다.
그냥.. 자신이 다연이와 가장 친하다는 것을 왜인지 모르게 드러내고 싶었다.
유치한 생각인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다연이는 귀여웠다. 조금 치명적일 정도로.
예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팔짱을 더욱 꽉 꼈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