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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는 거야?”
“아저씨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일단 휴대폰부터 주세요.”
예나의 친구들은 반짝거리는 눈을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나는 친구들의 말에 따라서 휴대폰을 건네준다.
“언니, 이거 뭐하는 거야?”
내 휴대폰을 받아서 계정을 만들고 있던 예나의 친구에게 다연이가 물었다.
“오늘 엄청 큰 언니들이 다연이가 맛있다고 해서 여기에 왔다고 했잖아?”
“맞아.”
“그 언니들이 뭐보고 온 건지 알고 있어?”
그 말에 다연이가 멍하니 허공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입이 천천히 벌어지는 것을 보면 아마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아까 알려줬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몰라.”
“이거 보고 온 거야.”
다연이의 말에 예나가 자신의 인별 계정을 보여준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는 말처럼 계정에는 사진들이 많이 있었다.
“오... 언니가 엄청 많아.”
“그래.”
다연이는 수많은 예나의 사진을 보면서 말했다.
“여기에 다연이도 사진을 올리는 거야. 언니처럼. 다연이 사진이어도 좋고 다른 사진이어도 좋아. 다연이면 더 좋겠지만...”
“오빠 사진도?”
그 말에는 내가 대답했다.
“그건 안 돼.”
“왜....”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다연이랑 같이 찍은 사진은 괜찮아.”
“와..! 그러면 나는 그거 올릴래.”
다연이가 설레는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예나가 말했다.
“어쨌든 그렇게 하는 거야. 다연이가 좋아하는 사진을 올리고 거기에 글자를 쓰고.”
“글자..! 나 글자 모르는데.”
“모르면 아저씨한테 써 달라고 해. 이건 아저씨랑 다연이 꺼니까.”
“그러면.. 일기장처럼 쓰는 거지? 나 일기장은 알고 있어. 매일매일 오늘 했던 일 쓰는 거라고 했어.”
그 말에 예나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매일매일... 좋지! 매일 써!”
예나는 매일 다연이의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 같았다.
옆에 있던 친구들도 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 매일 볼 수 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인별 들어갈 때마다 다연이 사진 있으면... 크..”
예나의 친구들이 국밥에 소주를 먹는 사람 같은 소리를 냈다.
그 말을 들은 다연이는 괜스레 설레는 얼굴을 했고.
스르르 미소 짓는 다연이를 보고선 예나의 친구들은 더욱 더 주접에 박차를 가했다.
아마도 다연이가 이런 칭찬을 계속 들으면 정말 자기들 말대로 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너무 예쁜 다연이가 나랑 같이 한 번만 더 사진 찍어주면 더 좋을 것 같아.”
“나한테는 언니 사랑해, 라고 한 마디만 해주면 진짜 녹아버릴 것 같은데..”
그 말을 내뱉은 친구들은 슬쩍 다연이의 눈치를 본다.
본인들이 생각해봐도 칭찬이 과했다고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헤헤... 정말..? 내가 전부 다 해줄 수 있는데...”
그러나 그런 걱정과는 달리 다연이의 표정은 산뜻했다. 오히려 그런 칭찬을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 같다.
다연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자신있게 말했다.
“내가 전부 다 해줄게! 언니들이 해달라는 거 전부 다 해줄 수 있어!”
“그러면 사진부터 같이 찍자.”
“응!”
친구들의 칭찬이 먹혀들었는지 다연이는 사진을 찍기 위해 환한 얼굴로 달려간다.
그 사이에 내 휴대폰을 가져갔던 친구 하나가 내게 휴대폰을 건넨다.
“아저씨가 말한 대로 아이디 만들었어요.”
“그래, 고마워.”
“제가 더 고맙죠. 매일 다연이 사진 볼 생각만 하면... 크으... 아저씨도 아시잖아요. 매일 학교랑 집만 왔다갔다 하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알지.”
나도 알고 있다.
그 두 가지를 반복하다보면 내 평생이 이대로 굳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고.
그래서 더 힘들었다. 이제 와서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가끔 다연이 보러 오는 것도 진짜 힐링이에요. 학교 마치고 다연이 볼 생각 덕분에 학교에서도 별로 스트레스를 안 받아요. 받아도 다연이 보면 금세 풀리고요.”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찬가지로 다연이에게서 힐링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저씨, 저 팔로우했어요. 빨리 사진 올려주시면 더 좋고요.”
“그래, 다연이가 그러고 싶으면 해 볼게.”
“네에.”
옆에서 같이 사진을 찍고 있던 다연이는 이제 인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예나와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다연이의 사진을 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다행히 다연이도 그 설명을 기분 좋게 듣고 있었다.
“자세한 건 아저씨한테 해달라고 하면 돼.”
“알게써! 언니들이 쓴 글자도 내가 오빠한테 읽어달라고 할 거야.”
다연이는 벌써 설레는지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
하긴 새로운 일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아..! 나 엄청 좋은 생각났어! 처음으로 올릴 사진!”
다연이의 갑작스런 외침에 예나와 친구들이 다연이를 바라본다.
다연이는 쏟아지는 시선들 속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선 말했다.
“나, 언니들이랑 같이 찍은 사진 올릴 거야! 지금 사진 찍어서!”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당당한 얼굴로 말하는 다연이.
그런 다연이는 누가 봐도 엄청 귀여웠다.
“그래, 다연이가 그러고 싶으면 당연히 해야지.”
예나와 친구들은 그렇게 말하고선 다 같이 모여들었다.
다연이는 아쉬워했지만 내가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우와... 엄청 잘 찍었어..”
다연이가 만족스럽게 말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올릴 거냐는 예나의 물음에 다연이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예나와 친구들은 그 말에 아쉬워했지만 다연이가 뿌듯한 미소를 짓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것 같다.
시간이 더 흘러서 예나와 친구들은 떠날 시간이 됐고, 다연이가 열심히 손을 흔들어 배웅해준다.
“안뇽, 언니들. 잘 가.”
“안녕.”
다연이는 그 이후에도 내 휴대폰을 꼭 안고 있었다.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듯 꼭 안고 있던 휴대폰은 내가 잠자리를 펴서야 손에서 놓았다.
“오빠, 나 사진 지금 올릴 거야.”
“그럴래? 그러면 휴대폰 줘.”
“알게써.”
나는 휴대폰을 받아서 다연이가 원하는 사진을 올릴 준비를 한다.
“오빠 엄청 잘 찍었다. 원래 나는 이렇게 안 예쁜데 엄청 예쁘게 나왔어.”
내 무릎 위에 앉은 다연이가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나는 이해가 안 되는 얼굴로 다연이를 바라본다.
“아니야. 다연이 원래 예뻐.”
“오빠가 그렇게 말하는 거면 맞아.”
다연이는 배시시 웃고선 다시 사진을 가리킨다.
“이거 올려줘. 여기에 쓸 말은 오빠가 적어줘.”
“알겠어.”
나는 다연이가 불러주는 대로 글을 써서 올린다.
[언니들이랑 사진 찍었어요.]
#안녕
“큭큭. 이거 재밌다.”
다연이가 휴대폰을 품에 안고 바닥을 뒹굴 거린다. 새로운 걸 하는 것이 재밌는 모양이다.
다연이는 그 뒤로 달리는 댓글들도 나에게 하나하나 읽어달라고 말했다.
“다연이 너무 귀여워. 그리고 다연아 언니가 내일도 갈게.”
내가 댓글들을 차례대로 읽어주자 다연이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예나와 친구들이 모이면 다연이에 대한 칭찬만 늘어놓았으니 다연이도 좋아했지만 이렇게 댓글에서까지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더 기분 좋아하는 것 같다.
“너무 좋아...”
다연이가 작게 속삭였다.
“오빠, 나도 그렇게 적어줘. 너무 좋다고!”
“그래.”
그래서 나도 다연이의 부탁대로 댓글을 쓴다.
‘나도 언니들 좋아.’
.
.
.
다연이는 그 후로도 사진을 올렸다.
처음에는 매일 올렸지만 날이 지날수록 빈도는 줄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안 올리지는 않았지만.
다연이 사진이 아니더라도 다연이가 좋아하는 사진을 찍었고, 가끔 오는 참새의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가끔씩은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다연이의 팔로워 수는 점점 늘어갔다. 그냥 다연이가 쓰는 일기장일 뿐인데도.
“오빠! 나 오늘 간식은 뭐 줄 거야?”
하지만 지금 다연이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오늘 먹을 간식이었다.
언젠가부터 다연이가 어린이집을 마치고 올 때마다 주던 간식. 어제는 참외를 깎아줬었다. 다 먹은 다음엔 아이스크림을 후식으로 줬고.
요 며칠 간, 이렇게 간단한 음식들로 때워서 오늘은 특별히 비교적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준비했다.
“삶은 감자를 넣은 샌드위치.”
“감자?”
“응, 어제 선생님이 줬었잖아.”
“아, 맞아. 선생님이 오빠 맛있게 먹으라고 줬었어.”
“그래, 오늘은 감자를 넣은 샌드위치 줄 거야. 조금만 기다려.”
“알겠어! 나, 샌드위치 엄청 좋아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샌드위치를 준비한다.
재료들은 미리 만들어 두었다. 일부러 다연이를 데리고 올 동안 감자를 식혔고.
“나는 여기서 보고 있을게. 오빠는 샌드위치 만들어 줘.”
“알겠어.”
다연이의 응원을 등에 업고 샌드위치 만들기를 시작한다.
재료를 모두 준비했으니 샌드위치 만들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장 힘든 감자의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으니.
나는 아삭한 식감을 위해 오이를 조금 꺼내서 썬다.
오이는 흔히 호불호가 조금 갈리는 재료지만 나와 다연이는 모두 좋아한다.
사실 좋아하는 음식보다 싫어하는 음식을 찾는 게 훨씬 빠를 정도로 다연이와 나는 웬만한 음식들을 모두 맛있게 먹는 편이었다.
오이를 썰고 난 다음에는 미리 삶아 놓은 계란도 으깨서 넣어준다.
굳이 넣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다연이가 조금 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
“색깔이.. 노란색이야.”
고개를 내밀어 보고 있는 다연이가 말했다.
“한 번 먹어볼래?”
“...응!”
나는 장갑을 낀 손으로 다연이에게 으깬 감자 덩어리를 먹여준다.
오물거리던 다연이가 눈을 번쩍 뜨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엄청 맛있다! 빨리 샌드위치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
“조금만 더 기다려. 거의 완성 됐으니까.”
나는 다연이의 반응에 서둘러서 샌드위치를 완성 시킨다.
재료들을 전부 섞었으니 마무리만 하면 된다.
식빵 양면에 딸기잼을 바르고 으깬 감자를 얹어준다. 그리고 다연이가 좋아하는 얇은 햄을 그 위에 덮으면 다연이가 먹을 샌드위치가 완성됐다.
“우와... 나 이거 사진 찍을래.”
“그래, 그렇게 해.”
다연이는 어느 새 예나와 친구들처럼 예쁜 것을 보면 무조건 카메라부터 들이밀었다.
“내 일기장에 올릴 거야.”
다연이가 일기장이라고 부르는 인별 계정에 올리기 위해서였다.
찰칵.
작은 소리가 여러 번 들리고, 사진에 만족한 다연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여러 장 찍은 사진들 중에서 좋은 사진을 고른 모양이다.
그리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나서 먼저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사진은 나중에 올려도 되니까 샌드위치부터 먹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샌드위치를 입에 문 순간.
딸랑.
누군가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다연이에게도 이제는 흔한 소리였지만 다연이는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는 다연이보다 한두 살 정도 많아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혼자 왔는지 주변에 어른은 보이지 않는다.
다연이는 물론이고 나도 모르는 아이였다. 다연이보다 나이가 많아보였으니 나와 같이 본 아이가 아니면 다연이도 본 적 없는 것이 당연했다.
“네가 다연이야..?”
한참 다연이를 보던 아이가 그렇게 말했다.
다연이는 아이의 눈치를 보다가 슬쩍 샌드위치를 베어 문다.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작게 말했다.
“마자."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아이에게.
그러자 남자아이가 입을 열었다.
"너 예쁘다."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