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181 --------------
“오빠..!”
다연이가 작게 소리쳤다.
“어...”
머리 위에 작은 감촉이 느껴진다.
참새가 어디로 갔는 진 모르겠다. 갑자기 내 시야에서 사라졌으니까.
다만 신기해하는 다연이의 시선과 이상한 감촉만이 남아있었다.
짹..
머리 위에서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통통 뭔가가 뛰는 느낌이 든다.
“오... 귀여워.”
다연이가 그렇게 말했다.
내가 다연이에게 해야할 말을 다연이가 나에게 하고 있었다.
“오빠, 귀여워.”
내 머리 위에 있는 건 다연이가 그토록 바랐던 참새 같았다.
통통 튀던 새는 곧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나 그 감촉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연이는 우울해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응! 엄청!”
그리고 다연이는 뭔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눈을 크게 떴다.
“오..! 오빠, 거기 기다리고 있어!”
방으로 쪼르르 뛰어간 다연이는 손에 휴대폰을 든 채로 다시 나타났다.
“나 사진 찍을 거야. 오빠가 귀여운 건 처음이니까.”
다연이는 서툴게 사진기를 얼굴에 붙이고 말했다.
“오빠, 웃어야 돼.”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다연이가 미소를 잔뜩 띠우고선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이제 움직여도 돼?”
다연이의 말에 한동안 어정쩡한 자세를 하고 있는 내가 물었다.
그러자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응! 엄청 귀엽게 찍었어. 이거는 내가 계속 가지고 있어야지.”
조심스럽게 사진을 주머니에 넣은 다연이가 나에게 손짓했다.
“오빠, 앉아 봐. 내가 참새 집에 데려다 줄게.”
“그래, 도와줘.”
다연이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내 머리 위의 참새를 다연이의 손바닥으로 옮겼다.
얌전히 옮긴 참새는 원래 있던 집으로 데려다 놓았다.
“오빠, 작은 참새는 언제 보내줄 거야?”
참새를 데려다 놓고 나오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덮은 다음 다연이가 물었다.
“지금 보내줘도 돼.”
“음....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엄청 어둡잖아.”
상관은 없을 것 같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더 집에 있는 다고 해서 나쁠 건 없었으니까.
“알겠어. 다연이 마음대로 해도 돼.”
“그러면.. 내일 아침에 집에 보내줄래. 오늘은 여기서 자고.”
“그래.”
다연이는 조금 우울한 얼굴로 참새가 있는 집에 손을 얹었다.
“코, 자. 내일 집에 갈 거야.”
다연이가 말하자 안에서는 작게 짹하고 우는 소리가 들린다.
내일 아침, 다연이는 참새를 손에 살며시 얹고 계단을 조심스럽게 오르고 있다.
“귀여운 참새. 털이 복실복실해.”
나는 다연이 뒤에서 혹시 넘어지지 않을까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다연이가 더 귀여웠지만 다연이는 손에 쥔 참새만 바라보고 있었다.
옥상에 도착한 다연이와 나는 참새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비록 며칠 밖에 머무르지 않았지만 다연이에게 참새는 이미 반려동물 만큼 친한 사이였다.
짹.
다연이의 작은 손 안에서 우는 참새를 몇 번 쓰다듬고 나서 다연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오빠, 나 안아줘.”
“그래.”
나는 다연이를 안아들었다.
다연이는 잠시 준비를 하더니 참새를 날려 보낸다.
“잘 가, 참새야.”
처음 만났던 때와 달리 휙 하고 날아가는 참새. 다연이는 그 새를 보고 우울한 얼굴을 한다.
“오빠, 나 슬퍼.”
“괜찮아. 다시 올 거야.”
“그렇겠지?”
“응.”
다연이는 우물대다가 말했다.
“참새가 갔는데도 이렇게 슬퍼. 오빠가 가면 엄청 슬플 것 같아.”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진 모르겠다. 참새가 가면서 우울해져 그런 걸까.
“안 가. 말했잖아.”
“맞아. 근데 참새가 가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오빠가 가면 나 엉엉 울 것 같아.”
다연이가 그 말을 하면서 내 팔에 안겼다.
“엄마가 갔을 때도 나 울었는데.”
이제 잊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럴 리는 없었던 것 같다.
쉽게 잊힐 만한 기억은 아니니까.
“괜찮아. 안 갈 거야. 그리고 다연이가 오빠 잃어버려도 다시 찾을 수 있게 전화번호 다 외웠잖아.”
“맞아. 저번처럼 오빠 잃어버려도 다시 찾을 수 있어.”
“그래.”
언제 쯤 다연이가 이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쏴아아.
다시 비가 쏟아졌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벚꽃이 질 때는 늘 비가 같이 내렸다.
“슈웅. 마싰는 바나나야.”
다연이는 식당 의자에 앉아서 따뜻한 옷을 껴입고 있다.
오늘은 내 후드가 아니라 따뜻한 다연이의 옷이다.
비행기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던 바나나는 도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계속 맴돌고 있었다.
“오빠가 빨리 먹어야 돼. 그래야 바나나 비행기가 집에 갈 수 있어.”
의자에 앉은 다연이는 조각난 바나나를 먹고 있다.
어린이집에 갔다 온 다연이의 간식으로 내준 것이다.
나는 다연이가 내민 바나나를 한 입에 먹는다.
“맛있어?”
“응, 맛있네.”
“오빠가 사준 거라서 그런 거야.”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연이가 다시 포크에 바나나를 꼭 찍고선 하늘을 비행하고 있으니 문에 달린 종이 울린다.
“사람이 왔어.”
다연이 말처럼 손님이 왔다.
다연이는 그 말을 하고 마지막 바나나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의자에서 내려와 바나나를 먹던 그릇을 가지고 싱크대로 향한다.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은 여자 두 명이었다. 뭔가를 바라는 듯한 얼굴로 식당으로 들어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어서 오세요.”
“네..”
그러나 여자들은 내 말에 무덤덤하게 대답하고선 다시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 동네에서 보던 사람은 아니다. 한 번도 못 본 얼굴인데.
여자는 자기들끼리 중얼거리고 있었다.
“바나나는 엄청 맛있어.”
한편 그릇을 가져다 놓은 다연이가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걸어온다.
그릇 정도는 테이블에 놓아 둬도 되는데 다연이는 그런 것 하나까지 자기가 한다.
“어...?”
다연이가 식당에 등장하자 자기들끼리 중얼거리던 여자가 다연이를 발견하고서 작게 말했다.
그 소리를 들은 다연이도 여자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다연이를 보고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다연이는 그런 여자들을 보고선 살짝 나에게로 뒷걸음쳤다.
“혹시... 네가 다연이야..?”
다연이를 보고 있던 여자가 말했다. 의외의 말이었다.
“누구세요?”
다연이보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나였다.
저 사람들은 누구 길래 다연이를 알고 있는 건가.
“아.. 저희는 이거 보고 왔는데..”
여자가 내민 것은 SNS중 하나인 인별이었다.
아주 짧은 동영상이었는데 거기엔 다연이로 보이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우리 오빠, 음식 엄청 잘 해요!]
[정말?]
[네! 엄청 엄청 맛있어요!]
아주 짧은 영상이었다.
다연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담긴 영상.
언제 이런 영상을 찍은 걸까.
그 때 다연이가 말했다.
“이거 저번에 축제 했을 때 찍은 거야.”
“정말? 다연이한테 허락 받은 거야?”
몰래 찍은 거라면 영상을 내리게 만들 생각이었다.
얼굴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그건 안 되는 일이니까.
“응, 목소리만 나온다고 해서 내가 네! 라고 말했어.”
“그랬구나.”
다행이다. 다연이에게 허락을 받았다면 나도 딴지 걸 생각은 없다.
여자 둘은 다연이를 보다가 나를 보고선 말했다.
“그러면 이 아이가 다연이 맞는 거죠?”
“네.”
그러자 여자들은 활짝 웃으며 다연이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네가 다연이구나?”
“네!”
“다연이가 맛있다고 해서 여기까지 온 건데.”
“오... 정말요?”
“응, 당연하지!”
영상 속엔 다연이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는데 둘은 다연이의 목소리만 듣고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나는 영상 속의 댓글들을 내려 본다.
[목소리 완전 귀여워....]
[저도 거기에 있었는데 다연이 완전 귀여워요.]
이후의 댓글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비록 내 계정은 아니지만 좋은 이야기만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요.”
나는 휴대폰을 다시 돌려준다.
손님들은 음식을 시킨 이후에도 다연이와 같이 이야기를 나눴다. 다연이도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했고.
여자들이 음식을 다 먹고 계산할 때 나에게 말했다.
“다연이 오빠 분이시죠?”
“네.”
“저희 사실 벚꽃 구경하러 왔다가 저 영상 생각이 나서 온 거거든요. 혹시 다연이 볼 수 있을까 해서요.”
비가 오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다연이를 보고 싶어서 온 거라니. 그런 거라면 나도 좋다.
저기 의자에 앉아있는 다연이는 그런 사실도 모른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왔는데 볼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평소의 나와 다연이의 삶에는 이런 적이 없었기에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그 짧은 영상을 보고 식당까지 찾아오다니. 솔직히 조금 감동이다.
그렇게 여자 둘은 다연이에게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손님들이 가고 나서도 다연이는 한동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맛있다고 해서 온 거래!”
다연이는 그냥 그 사실이 좋은 것 같다.
잠시 후, 학교 수업을 끝마친 예나가 식당으로 놀러왔다.
친구들을 잔뜩 데리고 와서 다연이는 더 기분이 좋아 보인다.
“언니! 아까 엄청 큰 언니들이 내가 오빠 음식 맛있다고 해서 왔었어!”
“음.. 지금 비 오는데 축제 때처럼 했어?”
“아니! 어.. 뭐더라.. 뭐 보고 왔다고 했어.”
그 말에 내가 다연이의 어휘선택을 도와줬다.
“SNS보고 왔다고 했잖아.”
“맞아, 그거! 축제 할 때 어떤 언니가 영상 찍은 거!”
예나도 그 때 그 자리에 있었기에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걸 본 사람들이 왔어?”
“응! 내가 맛있다고 해서!”
다연이는 신난 듯 소리쳤다.
그 말을 듣고 예나의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더니 잠시 조용해졌다.
다연이는 그런 상황과 상관없이 맑게 웃고 있었고.
예나의 친구들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아저씨?”
“응?”
“혹시요.. 진짜, 정말 그냥 묻는 건데요..”
이렇게나 조심스럽게 뭘 말하려는 걸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듣는다.
“다연이요.. 인별 계정 만들어주면 안 돼요? 매일 다연이 사진 올라오면 진짜 좋을 거 같은데.”
인별? SNS 계정을 말하는 건가.
그런 건 해본 적이 없는데.
그 말에 예나가 덧붙였다.
“맞아요, 아저씨. 제발 해주세요. 진짜 매일 다연이 사진 볼 수 있으면 진짜 여기서 기절해도 좋을 것 같은데.”
“기절하면 안 돼!”
예나는 귀엽게 외치는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나저나 인별 계정이라.
생각해보니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단순하게 일상을 공유하는 것뿐이니까.
그건 다연이의 성격 변화를 위해서도, 또 나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다. 일기장 같은 느낌으로.
나가서 놀고 사진도 찍으라는 할머니의 말씀도 떠올랐다.
아무래도 인별 계정을 운영하고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움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네, 아저씨?”
“음... 알겠어. 한 번 해 볼게.”
“와!”
소소한 일상 이야기니까 괜찮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다연이와 나에게 추억이 될 수도 있고.
그리고 나와만 노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다연이가 더 좋아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다연이가 좋아하지 않으면 안 하면 되는 것이고.
그 때 예나와 친구들이 차례대로 말했다.
“그럼 당장 만들어요! 저희가 도와줄게요!”
그리고 옆에 가만히 있던 다연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