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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축제가 끝났다.
다연이는 아주 만족한다. 선생님과 오빠랑도 친해졌고 다연이도 재밌게 놀았다.
자려고 누우면 가끔 생각날만큼. 머릿속에서 불꽃이 터지던 순간이 떠오른다.
어제는 꿈에도 나와서 와! 하고 소리 치면서 일어났던 것도 생각난다.
그래서 오빠가 일어났던 것도.
"웃겼어."
오빠가 '다연아, 왜 그래?' 라고 했었다.
다연이는 그런 오빠를 보고 뒹굴거리면서 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다연이가 아침에 먼저 일어난 것은 똑같지만 소리는 지르지 않았다. 그래서 오빠는 아직 잠들어 있다.
"흠..."
오빠의 숨소리를 들으니 웃음이 나온다. 왜 그런 건진 모르겠다.
다연이는 자고 있는 오빠에게 이불을 반듯하게 덮어주고 방을 나온다.
이사해서 가장 좋은 점은 방이 여러 개라는 거다.
그러니까 운좋게 다연이가 일찍 일어나는 오늘 같은 날에는 다연이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티비 볼 거야."
오늘 다연이는 티비를 보고 싶다.
그래서 티비를 켰는데 운이 좋게도 수박 캐릭터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이 방영 중이었다.
"우와, 수박이다."
다연이는 홀린 듯 티비를 본다.
살아 움직이는 수박이. 다연이는 그 수박이가 정말 자기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애니메이션은 거의 마지막이었는지 잠시 후 티비 속 캐릭터들은 다연이에게 안녕, 이라고 작별 인사를 한다.
"끝났써."
흥미가 식은 다연이는 티비를 툭 꺼 버린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간다.
"흠..."
아직 오빠는 꿈나라다. 말랑말랑 했던 볼을 툭 건드렸지만 오빠는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잠시 그 자리에서 고민하던 다연이는 옆에 있는 수박 인형을 가지고 밖으로 나온다.
"안녕, 수박아."
그러나 인형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대답하지도 않는다. 다연이도 대답 들을 생각은 없었다.
다시 가만히 생각하던 다연이는 옥상에 올라가 보기로 결정했다.
저번에 오빠가 혼자 올라가도 된다고 했었으니까.
"추우니까 옷 입어야 해."
다연이의 외출복은 단연 오빠의 후드 집업이었다.
엄청 커서 이불 같다. 그래서 더 좋기도 하고.
낑낑대며 옷을 입고나서 지퍼를 쭈욱 올린다. 이렇게 해야 따뜻하다고 오빠가 그랬으니까.
준비를 모두 끝마친 다연이는 수박 인형을 꼭 쥐고서 옥상으로 도도도 달려간다.
"오오.. 따뜻해애."
옥상은 생각보다 더 따뜻했다.
오빠가 이제 여름이 오고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 것 같다.
여름은 엄청 더운 거니까.
"수박아, 나랑 꼭 붙어 있어야 해."
다연이가 인형을 가지고 올라온 이유는 단순했다.
혼자 옥상에 있으면 무서우니까. 많이는 아니다. 조금. 조금 무섭다.
오빠가 있으면 괜찮은데.
인형을 꼭 안은 다연이가 옥상 전체를 천천히 순회한다.
오빠에게는 이 옥상이 좁지만 다연이에게는 엄청 넓다.
옥상을 거닐고 있으니 축제 때가 떠오른다.
"재미써찌."
엄청 재밌었다.
지금 6살 다연이의 어휘력으로는 전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연이는 엄청 똑똑하지만 그 때의 느낌을 말로 표현 못하겠다.
그냥.
"엄청 재밌었어. 와! 하는 꿈을 꿀 정도로."
이렇게만 설명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때 다연이의 설명을 듣고 있던 수박 인형이 축 쳐졌다.
아무 말도 못 알아들은 것 같다.
"몰라도 괜찮아. 다음에 같이 보면 되지."
수박이도 같이 가고 싶었지만 오빠가 들고 가는 건 안 된다고 했다.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그래서 아쉽지만 다연이는 인형과 열쇠고리를 두고 놀러 갔다.
다연이도 떼 쓰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다음에 내가 더 크면 수박이한테도 보여줄게."
그래도 인형은 여전히 웃고만 있다.
다연이는 수박이와 이야기하는 걸 그만두고 옥상 탐방을 계속한다.
인형을 앞에 꼭 쥐고서 터벅터벅 옥상을 돌아다닌다.
다연이는 난간 바깥이 보고 싶었지만 있는 힘을 다해 뛰어도 바깥은 보이지 않았다.
"휴우... 아무것도 안 보여어."
낮은 조금 따뜻해진 탓에 이마에 땀이 맺혔다. 다연이는 어설픈 동작으로 땀을 훔친다.
"덥다."
다시 이어진 탐방 끝에 멈춰선 곳은 빨강이와 파랑이가 있는 곳이었다.
빨간색과 파란색 열매가 열린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지만 아직 열매는 열리지 않았다.
"빨리 자라야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어."
다연이는 빨리 자라서 맛있는 열매를 먹고 싶다.
방울 토마토는 이미 먹어봤기에 맛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블루베리는 모른다.
오빠한테 사달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다연이는 파랑이에 맺힌 블루베리를 먹고 싶었다.
스윽.
다연이가 손을 뻗어서 맛있는 빨강이와 파랑이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많이 자라꾼."
처음 물을 줬을 때 보단 많이 자랐다.
이파리가 생기 도는 초록색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무럭무럭 자라라."
그러자 훅 하고 바람이 불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다연이의 머리카락과 이파리를 흔들었다.
"으... 바람..."
곧이어 바람이 멎고, 다연이가 고개를 들었다.
양 손으로 어설프게 휘날린 머리카락을 정리한다.
바람이 왜 갑자기 불었는진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파랑이를 본다.
"오...!"
그런데 파랑이의 이파리에 생기가 조금 더 넘쳐 보인다.
물론 다연이의 착각이었지만 다연이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무럭무럭 자라라고 하니까 진짜 자랐어..."
다연이는 그 순간 방금 봤던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자라라!' 라고 외치면 과일들이 자라나서 악당을 무찌르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래서 다연이는 하늘 높이 손를 치켜들었다.
"무럭무럭 자라라!"
그 때 다시 바람이 불었다.
"무럭무럭 자란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다연이가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곧 바람은 멎었고.
퍽.
뭔가가 옥상으로 떨어졌다.
"무럭무럭 자랐어?"
하지만 다연이의 기대와는 달리 드라마틱하게 자라진 않았다.
짹...
대신 옥상 구석에서 작은 울음소리가 들린다.
다연이는 수박 인형을 꼭 안고 살며시 구석으로 다가간다.
저게 뭘까. 혹시 악당은 아니겠지.
"악당이야...?"
그러나 구석에 있는 뭔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연이는 곧바로 도망갈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조금만 보고 가려고 마음 먹었다.
무섭긴 하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살며시 다가간 다연이는 그것이 뭔지 확인하고나서 놀란 얼굴을 했다.
"차.. 참새다아..!"
그것은 다친 참새였다.
다리가 다쳤고 날개에도 피가 조금 있었다.
왜 그런 건진 모르겠다. 다른 새한테 다친 건가?
다연이는 발을 동동 굴리면서 와다다 돌아다니다가 인형을 꼭 쥐고 다시 집으로 내려간다.
"오빠아! 참새가 아야 했어! 참새애!"
***
"참새!"
꿈 속에서 다연이가 소리친다.
그런데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린다.
왜 그런 거지.
"참새!"
"억!"
눈을 뜨니 다연이가 내가 덮은 이불 위에서 퍼덕거리고 있었다.
"다연아, 왜 그래?"
그러나 다연이는 계속해서 퍼덕거리고 있다.
이상한 말을 하면서.
"참새!"
"참새가 왜?"
다연이를 겨우 진정시키고 내 앞에 세웠다.
많이 놀랐는지 헐떡거린다.
"왜 그래?"
"차.. 참새..!"
다연이가 저 하늘을 가리키며 말을 더듬었다.
진정됐다고 생각했는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다연이의 양 볼을 잡고서 진정시킨다.
"다연아, 진정해."
"응."
후우우.
다연이가 길게 숨을 뱉어내고 눈을 천천히 깜빡인다.
그리고 말했다.
"저기 옥상에 참새가 아야 했어."
"..?"
다연이는 침착하게 설명했지만 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같이 가 보자."
"응."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덧붙였다.
"안아줘."
괜찮은 척 했지만 많이 놀란 것 같다.
나는 다연이를 안고 옥상으로 향했다. 다연이의 손에는 인형이 붙들려 있었다.
"오빠, 참새 많이 아야 했어?"
옥상에 올라온 다연이가 내 등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다연이 말대로 아픈 것 같다. 많이는 아니었지만.
다리와 날개가 조금 다쳤다. 혹시 다연이와 매일 놀던 그 새인가 싶었지만 잘은 모르겠다.
일단 치료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응, 많이는 아니고 조금 아픈 것 같아."
"그러면 병원 데리고 가야 하지?"
병원에 간다면 좋겠지만 이 근처에 조류도 치료 가능한 병원은 없다.
게다가 많이 다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렇게 많이 다치지도 않았다.
다리에 상처가 있지만 잘 걸을 수 있다. 하지만 날개가 조금 다친 덕에 퍼덕일 때마다 자세가 어색했다.
이 상처도 치료하면 금방 나을 것 같긴하다.
짹...
다만 참새도 많이 놀란 것 같다.
다연이의 설명을 들으니 천적에게 쫓기다 날개를 다치고 떨어진 것 같은데.
"아니, 집에서 치료해도 될 것 같아."
"그래? 그러면 빨리 데리고 가자."
"알겠어."
나는 참새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참새의 상처는 가벼웠다.
천적에게 당한 것 같긴 하지만 연고를 바르고 치료하면 될 듯 했다.
"참새야, 힘내..."
다연이는 가만히 누워있는 참새이게 말했다.
나는 참새를 치료하고 작은 집을 만들어 그 속에 뉘였다.
다음 날, 다연이는 어린이집에서 오자마자 참새에게로 달려갔다.
어린이집에서 오는 길에도 다연이는 계속 내게 참새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
참새는 괜찮냐고. 이제 날 수 있냐고.
"참새야아..."
나는 다연이를 따라 위로 올라간다.
참새를 먼저 찾는 모습이 조금 섭섭하긴 한데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참새야, 괜찮아?"
짹..
참새는 다연이의 말에 대답하듯 작게 울었다.
손을 뻗으니 참새가 도망가려하지 않고 가만히 다연이의 손길을 맞는다.
"예전에 인사했던 그 새야. 오빠가 오면 도망가던 참새."
다연이는 확신하듯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나는 알 수 있어. 참새랑 친구니까. 내가 참새한테 오빠도 좋은 오빠라고 말했어. 그러니까 오빠도 만져도 돼."
정말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나도 다연이를 따라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러다 살며시 눈을 감고 내 손을 받아들인다.
"참새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참새는 착하니까. 이제 오빠도 좋아하고."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참새의 쾌유를 기원하며 그렇게 며칠이 더 흘렀다.
며칠 간의 간호 끝에 참새의 상처가 완전히 나았다.
어린이집에 갔다가 돌아오자마자 참새의 상태를 확인한 다연이 덕분이었다.
"오빠...! 참새가 다 나았어!"
한창 요리를 하고 있는 나에게 다연이가 달려와서 말했다.
참새가 다 나았다고.
그 날 장사를 끝내고 다연이의 손을 잡아서 참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며칠 간의 간호에 참새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지만 참새는 멀쩡했다.
"짹...!"
다 나은 참새가 다연이를 보면서 작게 운다.
어떻게 한 건진 모르겠지만 참새가 다연이의 손바닥 위에서 총총 거리며 뛰었다.
"오빠..! 이것 봐."
그리고 다연이가 손을 하늘 높이 뻗었다.
"참새야, 날아!"
다연이의 말대로 훨훨 나는 참새.
다연이는 그런 참새를 뿌듯하게 지켜본다.
"멋있네."
집 안에서 참새가 날아다니는 모습은 내가 지금 보고 있어도 많이 이상했지만 다연이는 미소를 활딱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그리고 참새는 내가 오라고 하면 와!"
그렇게 말한 다연이는 다시 하늘 높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참새는 쉽게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다가 티비 위에 앉았다.
"아까는 잘 했잖아."
"짹."
참새는 다연이의 속도 모르고 울뿐이다.
그리고 곧 참새가 다시 날아올랐다.
"참새는 나랑 친구야!"
다시 손을 뻗은 다연이.
해맑게 웃고 있는 다연이와 무심한 얼굴의 참새가 대비된다.
하늘을 날던 참새가 다시 고도를 낮춘다.
"착한 참새야! 나한테 와!"
다연이의 의기양양한 외침에 참새가 슬쩍 시선을 준다.
"온다아....!"
참새가 말을 듣길 바라는 다연이의 눈빛이 반짝인다.
"내가 오빠한테 신기한 거 보여준다고 해써..!"
내 머리 위와 다연이의 손바닥을 왔다갔다 하며 비행하던 참새가 가까이 다가온다.
"어..! 거기 가는 거 아니야. 나한테 와야지."
그러나 다연이의 바람과는 달리 참새는 내게로 다가온다.
"참새야!"
다연이의 귀여운 외침만 집 안에 울렸다.
다연이의 일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