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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사람들이 많아졌다.
원래는 다연이랑 나, 둘이서만 가려고 했었는데.
"하나, 둘, 셋 하면 이렇게 다연이 들어 올리시면 돼요. 알겠죠?"
"응.. 한 번 해 볼게."
다연이는 그냥 이 상황이 좋은 듯 하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손을 잡고 있는 둘을 보고 있다.
"하나, 둘, 셋!"
둘의 손짓에따라 다연이가 높아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온다.
"꺄아! 재미써!"
다연이는 기분이 좋은지 방방 뛰면서 말했다.
이렇게나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즉에 놀러올 걸.
"언니랑 선생님이랑 다 있으니까 너무 좋아! 오빠도 좋지?"
"응."
뭐가 그렇게 재밌을까.
우리는 서둘러 안으로 향했다.
저녁이라 낮같은 분위기는 없었지만 가로등에 비친 꽃들도 나름대로 예쁘다.
"오빠! 나랑 같이 사진 찍자!"
"그래."
다연이는 이리저리 참새처럼 날아다니며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사진을 찍는다 던지, 고개를 올려 꽃을 본다던지 하는 것들을.
그러다 문득 그 자리에 멈춰서서 어느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오.. 나 저거 먹고 싶어!"
다연이가 가리킨 것은 닭꼬치를 파는 노점상이었다.
닭꼬치는 내가 직접해 주는 것이 힘들었기에 다연이는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다.
"나는 한 번도 안 먹어 본 거야..!"
"그렇게 해도 될까요?"
나 혼자였다면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갔을 테지만 지금은 혼자가 아니었다.
허락을 받을 필요가 있다.
"네, 당연하죠! 다연아, 지금처럼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바로 얘기해."
"네!"
다연이는 기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리다가 노점상으로 향했다.
지금은 밤이라서 조금 쌀쌀하다. 그래서 그런 건지 노점상 쪽으로 향하니 훈기가 맴돌았다.
"우와, 따뜻하다아."
다연이는 아직 키가 작아서 얼굴로는 훈기를 느낄 수 없었고 하늘 높이 손을 뻗어서 따뜻함을 느꼈다.
"안아줄까?"
"응."
다연이의 바람대로 나는 다연이를 안아서 들어올렸다.
"안녕하세요!"
"안녕."
드디어 아저씨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게 된 다연이가 밝게 인사한다.
"어..! 애기야, 너 오늘 나 본 적 있지?"
갑작스런 아저씨의 질문에 다연이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요오.. 몰라요."
다연이는 조금 당황한 듯 나에게 파고 들었다.
나도 그런 다연이의 반응을 따라서 조금 물러섰을 때 아저씨가 말했다.
"하하,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 생각해보니까 오늘 그 분식집 앞에서 만난 것 같네. 맞지?"
"오빠 식당..?"
"그래. 네가 오빠 식당이라고 했었던 것 같네."
그 말에 다연이의 표정이 살짝 풀어지더니 뭔가가 생각난듯 크게 말했다.
"기억 나요! 내가 오빠 식당에 오라고 했던 아저씨! 그래서 와써요!"
"맞아, 갔었지."
"우리 오빠에요! 음식 맛있었죠?"
다연이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저씨에게 물어본다. 그 눈빛이 마치 무조건 맛있다고 말하라고 하는 것 같다.
"무슨 협박하는 것 같네. 그래, 맛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우리 오빠는 최고니까!"
다연이의 과한 칭찬에 오히려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애기는 기억이 나는데 오빠는 잘 모르겠네."
아저씨가 고개를 돌려가며 나를 본다.
다연이와 비교하면 기억에 남지 않을 인상이긴 하지.
"지훈 씨가 금방 잊힐만한 인상은 아닌데요.."
뒤에 있던 선생님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나는 그 말을 듣고 부들부들 떨었고 다연이는 그런 예나를 보고선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쉬잇."
"그래, 쉿."
둘만 알고 있는 뭔가가 있는지 다연이의 손짓에 웃음소리도 멎는다.
"그래서, 뭐 줄까요?"
"닭꼬치 주세요. 엄청 맛있는 거!"
"그래, 우리 애기는 특별히 내가 맛있게 해 줄게."
"오...! 맛있는 거다."
특별히 맛있다는 게 어떤 건디는 잘 모르겠지만 다연이는 그게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 같다.
자기만을 위해서 뭔가를 해준다는 것이 좋은 건가.
그리고 닭꼬치 사장님이 닭꼬치를 만들기 시작한다.
달궈진 불판에 올린 닭꼬치를 충분히 굽는다.
스르르 피어오르는 연기 덕분에 이 안이 따뜻한 훈기로 가득찬다.
"따뜻하다아...."
다연이는 만족스런 얼굴로 훈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밖은 추웠어?"
"아니, 엄청 쪼금만. 그래도 여기는 따뜻해."
나는 다연이의 옷을 더욱 끌어당겨 준다.
다연이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제 따뜻하다."
"다행이네."
서서히 익어가는 닭고기.
골고루 잘 익게 사장님만의 노하우를 이용해 굽는다.
닭꼬치를 굽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이기에 나와 다연이 모두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본다.
"아주 불판에 빠지겠네."
사장님은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연이는 그 말과 상관없이 계속 불판을 보고 있었다.
"우와아..."
닭꼬치가 충분히 구워지고 마지막으로 겉에 소소를 발라준다.
닭꼬치에서 피어오르는 냄새가 소스에 덧입혀져서 더욱 먹음직스럽게 바뀌었다.
"자, 받아."
"네에."
"애기 껀 선물이야. 돈 안 내도 되는 거."
"우와..."
다연이는 감탄을 하더니 나를 보고선 말했다.
"이거 선물이래..!"
"그래, 좋겠네."
"좋아!"
뒤이어 다연이가 내려달라고 말했다.
"내 꺼가 오빠 꺼보다 더 많아. 이것 봐!"
다연이 말처럼 다연이 몫의 닭꼬치는 다른 사람들 것보다 많았다. 그것도 사장님이 신경 써준 듯 했다.
"맛있게 먹을게요, 아저씨!"
"그래, 맛있게 먹어라."
다연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닭꼬치를 한입 크게 물었다.
"우오...! 맛있어!"
나는 다연이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준다.
"조심히 먹어. 옷에 묻을라."
"맞아, 조심히..."
맛있게 먹는 다연이를 따라 나도 닭꼬치를 한 입 먹는다.
"맛있네."
오랜만에 먹어보는 닭꼬치는 여전히 맛있었다.
달콤한 소스와 언제 먹어도 맛있는 닭고기.
치킨은 언제나 옳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닭고기로 만든 모든 음식에 해당되는 말인진 몰랐다.
"선생님도 맛있죠? 언니도!"
"맛있어."
"선생님도."
모두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다연이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 또 와라."
떠나는 다연이에게 닭꼬치 사장님이 말했다.
"네, 아저씨도 또 오세요!"
"그래."
다연이는 아저씨가 다시 장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손 흔드는 것을 멈췄다.
"너무 맛있어."
"다행이네."
"아.. 근데 오빠가 한 음식 만큼은 아니야! 오빠보다는 절대 맛없어."
"그래."
나는 그렇게 말하는 다연이의 손을 잡고 다연이가 가자고 하는 곳으로 향했다.
"오빠, 나 저거 하고 싶어!"
"그래, 가자."
다연이만큼 선생님과 예나도 재밌었으면 좋겠는데.
.
.
.
"인형이 엄청 많잖아!"
다연이는 한 손에 인형을 하나씩 쥐고선 말했다.
"두 개에... 오빠가 하나.. 그리고 언니랑 선생님이 하나니까.. 하나, 둘, 셋...."
다연이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정답을 말했다.
"다섯 개! 다섯 개나 있어."
이렇게 인형이 많은 이유는 다연이가 게임을 했기 때문이다.
축제의 꽃인 인형을 상품으로 내건 작은 게임들.
물론 다연이 실력으론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해서 내가 대신 도와줬다.
"인형 많아서 엄청 좋다! 수박이 인형보단 안 귀여운데 그래도 좋아."
다연이는 방금 로또에 당첨된 부자처럼 인형 두개를 높이 들어올리며 말했다.
마치 사람들에게 자랑하려는 것처럼.
"그러면 다연이는 또 하고 싶은 거 없어?"
다연이의 선생님이 정말 선생님 같은 말투로 물었다.
선생님도 오늘 다연이와 잘 놀아줬다.
다연이의 부탁 때문에 왔기에 죄송했는데 그래도 이 자리가 불편하진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오늘 엄청 재밌었어요. 맛있는 것도 엄청 많이 먹고, 인형도 다섯 개나 가지고! 그런데 조금 졸려요오..."
다연이가 많이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이렇게나 놀았으니 졸릴 만도 하다.
다연이가 그렇게 말하자 선생님도 덩달아 축 늘어진 목소리로 대답한다.
"정말? 아쉽네..."
"진짜요? 선생님도 더 놀고 싶어요?"
".....응."
이렇게 보니 정말 선생님은 선생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다연이 눈높이에 잘 맞춰서 이야기해주니까.
"아저씨,그리고 저도 이제 가야 돼요. 알바 시간을 늦춘 거거든요."
"언니 가야 돼?"
"응, 다연아. 미안. 그래도 재밌었지?"
"응! 엄청 재밌었어! 언니 안 갔으면 좋겠는데."
"미안해. 대신 나중에 더 놀자."
"알게써."
그렇게 예나가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다연이도 아쉬워했지만 더 놀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러면 불꽃놀이는 집에 가서 볼까?"
"응!"
축제에선 불꽃놀이를 보는 재미도 있었기에 다연이랑 같이 보고 싶었다.
그래도 집 옥상에선 보일 것 같으니 같이 가서 구경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럼 선생님도 오세요!"
"나... 나도..?"
"네!"
이대로 돌려 보내는 것도 죄송했기에 나도 그러라고 말했다. 어차피 그 원룸에선 안 보이니까.
"네.... 알겠습니다아..."
묘하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나는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밤공기가 차가워지면서 추웠던 것 같다.
다연이는 선생님 손을 잡고 거의 끌 듯이 왔다.
오는 길에 먹을 거리들을 조금 샀다.
다연이가 처음 먹은 길거리 음식이었던 붕어빵이었다.
우리는 빠르게 옥상으로 향했다.
추웠을 선생님과 다연이를 위해 따뜻한 커피와 유자차를 준비한다.
"와... 여기가 지훈 씨 집이구나..."
나는 중얼거리는 선생님에게 커피를 건네준다.
"아.. 감사합니다."
"다연이도 이거 먹어. 유자차야."
"마싯는 유자차... 따뜻해애..."
다연이가 유자차를 홀짝거리면서 나를 본다.
"오빠, 그런데 불꽃놀이는 소리가 엄청 큰 거지?"
"맞아."
다연이는 불꽃놀이라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었기에 그렇게 묻는 것이었다.
내가 영상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잘 모르니까.
"얼마나 커? 펑! 이만큼?"
다연이는 입으로 소리를 내며 물었다.
내가 보기엔 너무 귀여운 장면이었지만 다연이는 진지했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였다.
"아니."
"그러면 퍼엉! 이만큼?"
"아니, 그것보다 훨씬 커 엄청."
"오... 그러면 오빠가 해줘. 얼마만큼 큰 거야?"
내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불꽃놀이가 시작했다.
펑!
다연이가 입으로 낸 소리보다 훨씬 크다. 다연이는 불꽃을 따라서 멍하니 하늘을 본다.
그러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내게 말했다.
"오빠, 나 안아줘. 잘 안 보여."
손을 뻗으며 말하는 다연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안는 것 대신 목말을 태워준다.
이러는 편이 더 잘 보일 것 같았다.
"우와... 진짜 잘 보인다아..."
"오빠 꼭 잡고 있어야 돼."
"응...!"
그리고 다연이가 내 볼을 양 손으로 잡았다.
"머리카락 잡아도 돼."
"시러. 나는 이게 좋아. 말랑말랑해서."
벌써 싫다고 말하다니. 왜 이렇게 빨리 자란 것 같지.
펑.
계속 터지는 불꽃에 다연이는 황홀경을 바라보듯 멍하니 고개를 젓힌다.
옆에 있던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미소를 지으면서 하늘을 보고 있다.
"좋아?"
"응!"
다연이를 웃음 짓게 하던 불꽃이 다연이의 얼굴을 비추고 선생님을 비추고 옥상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의 이파리를 비췄다.
벌써 6번째로 보내는 축제였지만 이렇게 제대로 구경을 한 건 처음이었다.
"오빠도 좋지?"
"응."
그래서 나도 좋았다.
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