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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이는 옆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두 남매는 웃지 않고 웬만해선 화도 내지 않는다. 서로 싸울 때만 화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만큼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다연이는 이런 모습이 오빠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더 좋아했었지만.
그런 하민이는 우울한 얼굴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고 지민이는 웃고 있었다. 선생님이나 쌍둥이의 부모님이 본다면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의 모습이다.
“우와! 지민이가 웃었어!”
다연이는 그냥 그 상황이 재미있을 뿐이다.
지민이가 웃은 이유는 다연이를 저 멍청이 서하민에게서 지켜냈기 때문이다.
하민이가 다연이를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과 친한 다연이를 저 멍청이가 좋아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내가 지켰어.”
“응?”
다연이가 되물었지만 지민이는 고개만 도리도리 내저을 뿐이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면 우리는 나중에 같이 놀자.”
“응!”
그 때 식당에서 쌍둥이의 부모님이 나와서 말했다.
“밥 나왔어. 먹자.”
부모님도 쌍둥이와 비슷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다.
다연이는 그런 지민이의 가족이 좋았다. 오늘 처음 보는 건데도 말이다.
마치 오빠가 네 명이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알겠어!”
지민이가 크게 말했다.
의외의 모습이었지만 그 옆에서 땅 속으로 들어갈 듯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는 하민이를 보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다연아, 나중에 놀자!”
“응!”
그렇게 둘이 사라지고 나자 조금 진정된 기분이 든다.
예나는 눈앞에서 펼쳐진 드라마 같은 전개에 충분히 만족했다.
자기 오빠가 친구와 연애하는 걸 극구 반대하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 친구는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언니, 뭐해?”
“아, 미안. 생각하고 있었어.”
“무슨 생각?”
“음...”
예나는 이 문제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가 다연이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다연이는 혹시 좋아하는 친구 있어?”
“응!”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고? 이 말을 아저씨가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
혹시 화를 내려나.
“누구...?”
“어... 혜원이도 좋고! 지민이도 좋아! 어린이집 친구 다 좋아!”
“아...”
그러면 그렇지. 너무 자신 있게 말하는 걸 보고 다른 대답이 나올 것 같긴 했었다.
“음... 그거 말고, 혹시 어린이집에 다연이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친구는 없었어?”
“어.. 있었어!”
“누군데..?”
다연이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이름을 말했다.
“민재!”
“민재..?”
“응!”
분명 민재가 다연이를 좋아한다고 말했었다.
“내가 처음 어린이집에 갔을 때 민재가 나 예쁘다고 말했었고 또 좋다고 말했어!”
다연이를 좋아하는 남자애들이 생각보다 많은 듯 했다.
정작 다연이는 그런 사실을 모르는 것 같지만.
“다연이 인기쟁이네.”
“음... 맞는 것 같아.”
다연이의 멍한 얼굴을 보니 뜻은 모르고 그냥 맞다고 말하는 것 같다.
“무슨 뜻인진 아는 거야?”
“아.. 아니.”
“귀여워라.”
예나는 그런 다연이가 너무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동생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혹시 동생이 있었다면 저 쌍둥이 남매처럼 됐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언니. 근데 언니도 나랑 같이 축제 갈 거지? 오빠랑 나랑 같이.”
"응, 아저씨한테 미리 들었어. 다연이랑 같이 가려고 알바까지 미뤘는데 당연히 가야지."
"우와... 나 때문에 그런 거야..?"
"당연하지."
"언니, 고마워!"
다연이는 예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 순간 예나는 아저씨와 아는 사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평생 다연이를 몰랐을 테니까.
그랬다면 이렇게 안기지도 못했겠지. 이 기분 좋은 느낌도 몰랐을 거고.
"내가 더."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
다연이 덕분에 오늘은 너무 바빴다.
정말 눈코 뜰 새도 없었다.
다연이가 정확하게 뭘 했는진 몰라도 들어오는 손님들마다 밖에 있는 애가 누구인지 물어봤고 그 때마다 귀엽다는 말도 함께 들었다.
나중엔 손님들이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다연이에게 그만해도 된다고 말할 정도로.
"오빠! 오늘 사람들 많이 왔찌!"
잠자리에 누워서까지 다연이는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 때문에 오늘 손님들이 많이 왔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맞아. 다연이 덕분에."
"내일도 해야지!"
"내일은 예나 알바하는 날이라서 안 돼. 다연이 혼자 있으면 안 되잖아."
"내일 언니 일해..?"
"응."
그러자 다연이는 우울한 얼굴을 했다. 예나가 못 온다는 말은 다연이도 집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연이도 그 뜻을 알고선 우는 얼굴을 한 것이다.
혼자서 바깥을 돌아다니기엔 지금은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안 된다.
"내일은 집에 있자."
"응...."
다연이가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표정은 안 지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다연이에게 말했다.
"그래도 고마워. 오늘 다연이 덕분에 식당이 잘 됐으니까. 내일은 못 하겠지만."
그러자 다연이의 얼굴이 살짝 풀어진다.
다연이는 늘 그랬듯 나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러면 내일은 옆에서 오빠 지켜볼게! 잘한다고 말하고!"
"그래."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와서 다행이다.
"일단 자자. 내일 안 피곤하려면."
"알게써!"
그렇게 말했지만 다연이 얼굴을 보니 쉽게 잠들 것 같진 않았다.
내 예상처럼 그 날은 밤새 다연이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비록 평소보다 잠은 많이 못 잤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은 더 좋았다.
.
.
.
"오늘은 오빠랑 같이 축제에 갈 거야!"
다연이가 집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그 상대는 친구나 예나도 아닌 참새였다.
"참새야! 나 오빠랑 같이 놀러가!"
그 말에도 참새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다른 곳에 관심을 줄 뿐이다.
하지만 참새는 날아가진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다.
아마도 처음에 봤던 그 참새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확실하게는 알 수 없었다.
참새는 다 똑같이 생겼으니까. 다만 다연이를 피하지 않고 나를 볼 때면 날아가는 참새를 보니 그 때 봤던 그 새가 맞을 것 같다.
"아... 참새 또 날아가써."
"오빠만 보면 날아가네."
"맞아!"
나만 보면 날아갔지만 다연이와는 조금 친하다. 참새와 친하다는 표현을 쓰는 게 맞는 건진 모르겠지만.
"나, 참새 밥 주려고 했는데."
"미안."
이제는 밥까지 챙겨주는 사이가 됐다.
언젠가는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쓰다듬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니야. 내가 참새한테 말할게. 오빠도 엄청 착하다고. 그래서 안 도망가도 된다고 말해줄 거야."
"그래."
어찌됐든 다연이만 좋으면 상관없지만.
"내려가자."
"응."
오늘도 하루를 시작해야 했기에 우리는 아래층으로 향했다.
***
오늘도 해가 저물었다. 거리에 사람들이 아직 많았지만 오빠는 식당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바로 다연이와 놀러 가기 위해서였다.
마지막 날 축제에 놀러 거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오오... 기대 돼요."
"응, 나도."
다연이의 말에 옆에 있던 선생님이 대답했다.
원래는 다연이와 오빠, 둘이서만 놀러가려 했지만 갑자기 찾아온 선생님에게 다연이가 같이 놀자고 했다.
선생님은 좋다고 했고.
지금은 다연이와 선생님이 식당을 정리 중인 오빠를 기다리는 중이다.
"근데 다연아..."
"네!"
"우리 셋이서만 가는 거야?"
선생님은 묘하게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다연이는 그런 선생님에게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니요! 언니도 같이 가요! 예나 언니!"
"아.. 그렇구나..."
어깨가 축 늘어진 선생님 보고선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그 때 예나 언니가 저 멀리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언니!"
"안녕!"
뒤늦게 온 예나가 선생님보고 누구냐고 물었고 다연이는 선생님이 여기 오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안녕."
"안녕하세요."
예나를 보는 선생님의 눈빛에는 이전처럼 경계심은 없었다.
"근데 아저씨는 언제 나와?"
"음... 나도 몰라. 오빠 왜 안 나오지?"
다연이의 말에 선생님이 고개를 빼꼼 내밀어 오빠를 본다.
오빠는 뭔가 열심히 정리하고 있었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걸 보니 혼자하기엔 일이 많은 모양이다.
그래서 다연이가 도와줘도 되냐고 물어보려고 할 때, 선생님이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리고 선생님이 안으로 사라진다.
"어... 내가 오빠한테 물어보려고 했었는데에..."
다연이는 조금 아쉬웠지만 괜찮았다.
선생님이 오빠랑 친해지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아, 언니는 모르지?"
"뭘?"
다연이는 스르르 웃으면서 예나에게 다가간다.
사실 다연이는 모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다 알고 있다. 전부 다.
저번에 예나가 친구들과 같이 왔을 때 다른 친구들에게 밀려서 언니를 조금만 좋아할까봐 걱정했던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과 오빠에 대한 것도.
"사실 말이야... 선생님은 오빠를 좋아해애..."
선생님이 오빠를 좋아해서 다연이에게 잘해준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다.
다연이는 똑똑하니까.
"저.. 정말?"
다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연이가 이 사실을 언니에게 말하는 이유는 혹시 언니가 도와줄 수 있을까, 해서였다.
물론 다연이는 똑똑하지만 언니만큼은 아니다. 게다가 다연이 혼자서는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언니도 도와줘어.."
"음.. 알겠어."
사실 예나도 뭘 도와줘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저씨가 연애를 한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정작 예나도 그런 건 잘 모르니까.
"근데 오빠는 선생님이 좋아한다는 걸 몰라."
"아저씨도 모르는데 다연이는 어떻게 알았어?"
"나는 똑똑하니까!"
다연이가 자신있게 말했다.
예나도 그 부분에 대해선 인정하지만 그렇다기엔 다연이도 아저씨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다연이를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은데 정작 다연이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것 같으니까.
"맞아."
"근데 오빠가 안 똑똑하다는 뜻은 아니야. 그냥 오빠는 잘 모르는 거야."
"그래."
"나라면 전부 알 수 있을텐데. 그렇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다연이의 저 초롱초롱한 눈을 본다면 더더욱.
"그.. 그래."
그 모습을 보고 다연이와 아저씨가 정말 남매가 맞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도 똑똑한데 그것만 몰랐어."
"그게 뭔데?"
그 때 아저씨와 선생님이 식당에서 걸어나왔다. 오빠의 목소리였다.
다연이는 자신의 입을 양 손으로 틀어 막고 고개를 도리도리 빠르게 내젓는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아무 말도 안 해써!"
"무슨 말한 것 같은데."
"진짜 아니야! 맞지, 언니?"
예나는 차라리 지금 선생님이 아저씨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다연이의 말에 맞장구 치기로 했다.
"맞아."
"그래? 그런 거면 알겠어. 오빠 손 잡아, 가자."
"응!"
다연이가 달려와서 아저씨의 손을 잡았다.
그 때처럼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나, 축제 가면 맛있는 거 엄청 많이 먹을 거야! 오빠랑 사진도 찍고!"
"그래."
아저씨는 늘 그랬던 것처럼 무덤덤하게 말한다.
그런데 그 얼굴이 묘하게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저씨 웃었어요?"
"아니."
잘못 봤던 건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생각과 상관없이 아저씨와 다연이는 걸어갔다.
나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