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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는 저번에 오빠랑 언니랑 같이 할머니를 보러 갔을 때를 떠올렸다.
정확하게는 밥을 먹으러 도시로 왔을 때를.
“종이 나눠주는 것처럼 할 거야!”
“종이?”
예나는 아직도 다연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듯 되묻는다.
“응!”
다연이가 떠올린 것은 거리에서 종이를 나눠주는 사람이었다.
분명 그 때가 다연이의 수박 인형을 사러 가는 길이었던 것도 정확하게 생각난다.
수박 인형을 사러가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종이를 나눠줬었다. 오빠는 그 사람이 자기 식당에 오라고 종이를 나눠주는 거라 했었고.
“종이 나눠주는 게 뭐야?”
“저번에 봤던 아저씨처럼 종이 이렇게 나눠주는 거! 자기 식당에 오라고!”
다연이는 열심히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예나에게 설명했다.
“아.. 설마...”
“맞아! 나는 종이가 없어서 오라고 말할 거야! 오빠 식당에 사람들 오게!”
솔직히 예나는 별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오지도 않을 뿐더러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과 말로 하는 건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저씨 말에 따르면 지금은 나아졌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연이는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부끄러워했다고 말했다.
예나와 처음 만났을 땐 그러지 않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건 조금 다른 문제다.
더군다나 점심시간이 지났기도 했고.
그렇게 다연이를 말리려고 했지만 다연이는 이미 지나가는 사람의 손을 툭툭 치고 있었다.
“어.. 왜 그래?”
다연이가 처음으로 말을 건 사람은 한 커플이었다.
오빠의 또래로 보이는 한 커플. 다연이는 오빠도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스쳐지나가는 생각일 뿐이었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까.
“우리 오빠 식당에 오세요! 엄청 맛있어요!”
갑작스런 다연이의 말에 커플은 잠시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웃으면서 물었다.
“너희 오빠 식당이 어디 있는데?”
“여기요!”
다연이가 뒤에 있는 식당을 가리키자 여자가 남자에게 말했다.
“돌아다닌다고 밥도 못 먹었는데 여기서 먹고 갈까?”
“먹고 가요! 우리 오빠 요리 엄청 잘해!”
“귀여워.”
여자는 작게 중얼거리고선 다연이에게 물었다.
“혹시 이름이 뭐야?”
“다연이요!”
“그러면... 머리 한 번만 만져 봐도 돼..?”
여자는 이미 다연이의 자신만만한 귀여움에 취한 듯 웃으면서 말했다.
“오빠 식당에 오면 돼요!”
“갈게!”
그리고 다연이가 머리를 내밀었다.
여자는 스윽 머리를 쓰다듬는다.
“너무... 귀여워어....”
옆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고 다연이를 말리려고 일어서 있었던 예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식당에 올 거죠?”
“알겠어! 바로 갈게.”
다연이는 식당으로 들어가는 커플에게 손을 흔들었다.
드디어 다연이가 오빠 식당으로 손님을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했다. 거리에서 전단지를 주는 아저씨처럼!
의기양양하게 웃는 다연이.
예나는 그 모습을 보고 확실히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걸 부끄러워했다던 과거의 다연이는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아저씨가 말한 옛날의 다연이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것 같았다.
대신 지금은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만만한 다연이만 있을 뿐이다.
처음 예나를 만났던 그 때처럼.
"내가 했어! 저 언니랑 오빠를 우리 오빠 식당에 들어가게 해써!"
예나는 처음에 말리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다연이가 너무 잘했기 때문에. 거기다가 다연이의 귀여운 행동이 무기가 될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더 효과가 좋은 것 같은데. 막상 예나 본인이어도 저런 애가 저렇게 귀여운 말투로 부탁한다면 웬만해선 들어줄 것 같다.
"자.. 잘했어."
"나도 내가 잘한 거 같아!"
다연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요리하고 있는 오빠를 한 번 바라본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다연이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또 할 거야!"
자신감이 붙은 다연이가 힘 있게 말했을 때 뒤에서 오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연아, 안 해도 돼."
"응? 오빠 알고 있었어?"
다연이가 뒤돌아 오빠를 본다.
"응, 방금 온 손님이 말해줬거든. 다연이 귀엽다고."
"나, 하고 싶어! 오빠랑 나랑 잘 살려면 손님이 많이 와야 하잖아!"
다연이의 오빠는 그냥 다연이가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놀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연이는 아직 어리니까.
"다연이 하고 싶은 거 해. 예나랑 놀던지 아니면 축제 구경 가도 되고."
"축제는 오빠랑 같이 갈 거야! 그리고 나는 이거 하고 싶어."
다연이 오빠는 잠시 생각하더니 예나에게 말했다.
"예나야, 그러면 네가 다연이 좀 잘 봐줘. 무슨 일 생기면 나한테 바로 말하고."
"네, 알겠어요."
"그리고 조금만 하다가 어디 놀러가. 저 앞 공원에 가도 되고. 대신 나한테 문자만 남겨줘."
"네엡. 제가 다연이 잘 볼게요."
"그래, 고맙다."
그리고 오빠가 들어갔다.
다연이는 여전히 만족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빠를 도와줬다는 것이 생각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좋아."
다연이는 조금 더 오빠는 돕고 싶었다. 오빠가 부담가지 않을 만큼만 더.
"다연아, 언니 가까이 와서 해."
"응!"
일단 언니 말부터 잘 들어야겠다.
.
.
.
"엄청 좋아."
다연이는 잠시 후, 꽉 찬 식당을 보면서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비록 온전히 다연이의 홍보가 아니라 저녁시간이 겹쳐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예나는 다연이의 홍보 때문이 더 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줄까지 늘어설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귀여워.."
다연이의 귀여움에 반해 온 손님들은 대부분 학생이나 커플이었다.
저녁시간이 가까이 오자 다연이의 권유에 거절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다연아, 이제 그만해도 돼. 손님들이 너무 많아..."
"알게써!"
다연이의 오빠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다연이는 다시 예나에게로 돌아갔다.
예나는 이렇게 긴 줄을 여태까지 본 적이 없었다.
제대로 된 홍보도 없이 다연이가 오라고 한 것만으로 이렇게 손님들이 많이 오다니.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도 그런 다연이에게 한 마디씩 건넸다.
"다연이 말대로 진짜 맛있네. 여기 오길 잘 한 것 같아."
한 커플이 그렇게 말하자 다연이는 눈웃음을 잔뜩 짓고선 대답한다.
"네! 우리 오빠가 한 거예요!"
다연이는 식당 홍보를 하면서 사람들과도 친해졌다.
이제는 정말 예전에 낯을 가리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너무 귀여워... 진짜 여기 오길 잘한 것 같아..."
예나는 그렇게 말하는 여자를 보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예나는 저 반응을 알고 있다.
처음 다연이를 보면 누구나 하게 되는 반응이라는 것도.
"애기야... 나, 볼 한 번만 만져 봐도 돼...?"
여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나 다연이가 싫어할까 봐 더 조심하는 목소리다.
그럼에도 예나는 그 말이 싫었다. 다연이는 공공재가 아니니까.
"저기..."
안 된다고 말하려던 때 다연이가 말했다 .
"네!"
다연이가 자랑스럽게 볼을 들이민다.
다연이는 그냥 다른 사람이 자기를 좋아해 준다는 것이 더 좋은 모양이다.
“어머, 너무 귀여워!”
다연이는 그 커플이 떠나가고 나서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예나도 다연이가 좋으니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대신 열심히 일한 다연이에게 말했다.
"이제 쉬자."
"응!"
다연이는 오늘 오빠도 도와줬으니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조금만 기다리면 오빠가 맛있는 저녁도 해준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언니의 무릎에 앉아서 쉬고 있으니 저절로 눈이 감겼다.
스르르 감기는 눈에 다연이도 축 늘어졌다.
그 때, 누군가가 다연이의 이름을 부른다.
"다연아."
담담한 목소리. 예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처음 봤지만 다연이의 친구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응...?"
"안녕."
다연이는 그 목소리에 눈을 비비면서 일어선다.
예나는 다연이가 잠에 들었으면 좋았을 걸, 하며 속으로 말했다.
"지민이랑 하민이다!"
다연이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어린이집 쌍둥이 친구인 지민이와 하민이의 가족이었다.
"어... 여기 왜 왔어..?"
막 잠에서 깬 다연이의 입에서 그 말이 무심코 튀어나왔다.
그냥 순수하게 왜 여기에 있는 건지 궁금해서 한 말이었다.
"다연이 형아가 하는 곳이잖아. 내가 여기 오자고 했어."
다연이가 보기엔 하민이는 무덤덤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지만 지민이는 알고 있었다.
지금 저 얼굴은 되게 신나는 얼굴이라고.
그게 못마땅했던 지민이가 말했다.
"맞아. 집에서 막 울면서 여기 오자고 했었어. 엄마가 내일가자고 했는데 막 울어서 오늘 왔어."
"야, 내가 언제 그랬어?"
"그랬잖아. 방금 전에."
다연이는 익숙한 그 모습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뒤에 서 있던 부모님이 익숙하게 둘을 말렸다.
"맞아! 우리 오빠 요리 엄청 잘해!"
"그래서 왔어."
다연이는 기분이 좋았다. 친구들이 우리 오빠가 한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될 테니까.
쌍둥이 부모님들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두 남매는 다연이와 조금 더 놀다 들어가겠다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부모님들도 예나의 존재 덕분에 안심하고 들어갔다.
"제가 잘 보고 있을게요."
"고맙습니다."
졸지에 보모 역할을 맡게 된 예나는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것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자기들끼리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연이는 축제 안 가?"
"나는 오빠랑 같이 갈 거야!"
다연이의 그 말에 하민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나랑 같이 가자. 그리고 나서 형아랑 같이 가면 되지."
하민이의 꽤 노골적이고 담담한 데이트 신청에 예나는 드라마를 보듯 그 장면을 지켜본다.
다만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지민이였다. 지민이는 하민이가 다연이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것도.
담담한 하민이의 성격으로는 원래 절대 이러지 않았는데 어린이집에서 지민이와 친한 친구 중 하나인 다연이에게 이러는 꼴을 보기 싫었다.
그래서 지민이가 다연이에게 말했다.
“다연아, 얘 말고 나랑 같이 가. 혜원이도 불러서.”
“혜원이도...?”
다연이는 친구들이랑 다 같이 가는 축제도 좋다.
어린이집에서도 같이 놀 때 재밌었는데 축제에 가면 얼마나 재밌을까.
“오... 재밌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니 지민이랑 혜원이와 같이 가고 싶어졌다.
“재밌을 거야. 그러니까 얘 말고 나랑 같이 가자.”
“야, 내가 먼저 물어봤어.”
하민이는 다연이와 같이 축제에 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어린이집 친구인 민재도 다연이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민재보다 먼저 다연이와 더 많이 친해져야 된다.
“음...”
행복한 고민을 하던 다연이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나는 오빠랑 같이 갈 거야! 오빠랑 약속했거든! 마지막 날에 같이 가기로!”
다연이는 친구들과 같이 노는 것도 좋다. 하지만 오빠랑 노는 것도 좋다.
그리고 오빠랑은 먼저 약속했으니까 오빠랑 같이 가고 싶다.
“으응...”
그 말을 듣고선 늘 덤덤하고 지민이와 싸울 때만 화를 내던 하민이의 어깨가 보기 드물게 축 늘어졌다.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