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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벚꽃도 많이 폈고 날도 좋다.
그래서 예나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근처 공원에 가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학교를 빼고 갈 수는 없었기에 담임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나왔다.
예나의 학교는 벚꽃 축제가 열리는 곳 근처에 있었기에 선생님에 따라서 바깥나들이를 허락해주는 선생님이 있었고 아닌 선생님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예나의 담임선생님은 마음껏 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고2니까 맘껏 놀아. 대신 내년에는 열심히 해야 한다.’
예나는 그 말대로 지금 고2다. 아직까지는 알바를 해도 나름의 여유가 있었고 다연이와도 놀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예나가 지금 열심히 알바를 하는 이유는 추후의 대학 등록금을 위해서였다.
예나의 집안 형편은 그리 좋지 않다.
과거에는 더욱 그랬고. 지금은 형편이 나아졌긴 했다만 그래도 될 수 있으면 직접 돈을 벌고 싶었다.
그러는 편이 후회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공부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혹시라도 등록금이 부족해서 공부를 하지 못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이 놀지 않고 계속 알바와 공부만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쉴 새 없이 달리는 건 자동차든 사람이든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저기 애기들 봐."
예나는 친구들과 같이 근처 공원으로 놀러 나왔다.
비록 점심을 못 먹게 됐지만 여기서 대충 사먹으면 되는 문제였기에 개의치 않았다.
"뽀짝뽀짝 걷는 게 너무 귀여워.."
친구들은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예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나는 언제든지 다연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웬만큼 귀여운 아이들을 봐도 이제는 별 감흥이 들지 않았다. 그냥 귀엽다, 라고 생각하는 정도.
"그러네."
예나는 친구가 가리킨 방향을 대충 훑어보고 나서 휴대폰 배경 화면에 있는 다연이의 사진을 본다.
"너무 귀여워..."
다연이가 백 배 더 귀엽다.
친구가 가리킨 아이들을 자세히 보진 않았지만 대충 봐도 안다. 다연이가 더 귀엽다는 걸.
예나는 다연이의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아저씨의 말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냥 예나 자신이 보여주기 싫었다.
만약 사진을 본다면 누구냐고 물으면서 다연이를 직접 보고 싶어 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애기들 여기 쳐다본다."
"너무 귀여워.. 내 동생도 옛날엔 저랬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무리 봐도 왜 귀엽게 보이진 않는 거냐."
"동생이 귀엽게 보이려면 두 가지 밖에 없어. 나이 차이가 많이 나거나, 네가 미쳤거나."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도 그랬던 거구나. 예나는 외동이라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아저씨와 다연이는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났기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예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친구들이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 곳에는 조그마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조그마한 병아리들이 모여있는 것 같다. 자세히 보니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뭘 그렇게 봐? 아는 애 있어?"
진짜 아는 애가 있는 것 같다.
혹시 저거... 다연인가..?
다연이처럼 보이는 작은 뭔가도 예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다연이는 지금 어린이집에 있을 텐데.
설마 저 아이들이 다연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아이들인가.
"다연아..?"
예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렇게 말했다.
만약 저게 진짜 다연이라면 좋을 것 같은데.
요즘엔 알바 때문에 바빠서 다연이를 못 봤다.
다른 날, 예나와 같은 시간에 일을 하는 어떤 남자가 있었는데 일이 생겨서 급하게 알바를 그만 둬야 한다고 했었다.
그 빈 시간을 예나가 채우겠다고 한 거고. 어차피 일주일뿐이었기에 그 동안만 고생하면 돈을 꽤 벌 수 있었기에 그러겠다고 했었다.
안 좋은 점이라면 힘들다는 것과 다연이를 못 본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언니!"
저 작은 실루엣은 다연이가 맞았는지 손을 번쩍 들고선 소리쳤다.
"언니? 나 말하는 건가?"
예나 옆에 있던 친구들이 자기를 가리키며 말했지만 당연하게도 친구들을 부르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예나 언니!"
다연이는 신난 듯 손을 크게 흔들었다.
예나도 다연이에게 걸어간다.
"다연이랑 무슨 사이세요..?"
다연이의 선생님이 다가오는 예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것도 맞지만 정말 궁금해서이기도 했다.
"다연이 오빠랑 아는 사이에요. 다연이랑도 알고."
선생님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혹시 이 학생이 다연이가 말했던 그 언니라는 사람인가.
방금 전, 예나 언니라고 했던 걸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언니는 나랑 친해요!"
선생님은 그런 다연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는 왜 여기 있어?"
"친구들이랑 잠깐 놀러 왔어. 선생님한테 허락 받고."
"그럼 언니는 이제 바쁜 거 다 끝났어?"
"응, 내일은 식당에 갈게."
"오...! 알겠어!"
다연이와 예나는 짧은 인사를 마친 후에 다시 헤어졌다.
너무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시간이 비해 놀란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뭐야..? 너, 저 귀여운 애랑 아는 사이야?"
예나의 친구들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응, 아는 동생."
예나는 일부러 말을 아꼈다.
물어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진짜 너무 귀여운데. 근데 혹시... 너 알바 없는 날에 혼자 어디 가는 거... 설마 저 아기 때문은 아니지?"
여태까지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식당으로 가서 다연이와 놀아줬었다.
"말 안할 거야?"
친구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말 하기 싫었는데. 괜히 다연이나 아저씨를 피곤하게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말 할게."
그래도 어물쩡거리며 넘어갈 순 없었으니 말해야겠다.
다연이는 자신만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예나가 멀어졌다.
다연이와 예나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선생님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연이가 언니라고 했던 사람이 쟤였구나.’
괜히 혼자서 착각했다.
학생인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걱정을 내려놓으니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진다. 물론 선생님은 자신이 웃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지만.
“선생님, 뭐 좋은 일 생겼어요?”
그러고 있던 때 동료 선생님이 물었다.
“아뇨, 왜요?”
“아니, 매일 짓는 그 상업적인 웃음이 아닌데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긴 사람처럼 얼굴이 좋아서요.”
“그런가요?”
선생님은 아이들이 잘 있는지 둘러보다가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다연아, 맛있게 먹어.”
“네,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도 멀어진다.
자리에 앉은 다연이는 그제야 다시 도시락으로 시선을 옮겼다.
언니를 만나서 기분 좋은 건 사실이었지만 지금 당장은 도시락을 먹고 싶다.
“다연아, 저 언니 누구야?”
그 때 친구들이 다연이에게 물었다.
“이거 사준 언니.”
다연이가 보여준 것은 수박 캐릭터의 열쇠고리였다.
저번에 언니가 사준 것. 친구들에게 자랑도 했었다.
“아... 그렇구나.”
“좋겠다. 다연이는 엄청 큰 언니랑 친해서.”
“언니는 좋아. 엄청 착하고 잘 놀아줘. 나중에 혜원이랑 지민이도 언니 만나면 언니가 잘 놀아줄 거야.”
“응.”
외동이었던 혜원이는 그 때를 상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연이가 저렇게 엄청 큰 언니랑 친하다니. 조금 놀랐다.
“이제 밥 먹자.”
“응.”
다연이는 지금 밥이 너무나도 먹고 싶었다.
오빠가 만든 김밥도 좋고 혜원이가 준 유부초밥도 좋았으니까.
우선 유부초밥부터 한 입 먹는다.
“음... 마시따..”
혜원이의 유부초밥은 맛있었다.
그럴 리가 없었는데. 분명 혜원이의 엄마는 요리를 못한다고 했었다.
한 번도 먹어본 적은 없었지만 혜원이가 그렇게 말했다.
“이거 우리 아빠가 해준 거야! 맛있지?”
혜원이 아빠가 했었구나.
다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오빠한테도 해달라고 말해야겠다.
“김밥도 먹어 봐. 우리 오빠가 한 거라서 맛있을 거야.”
“알겠어.”
다연이는 도시락을 먹지 않고 혜원이의 모습을 지켜본다.
오빠가 한 음식을 얼마나 맛있게 먹을지 기대됐기 때문이다.
잠시 김밥을 음미하던 혜원이가 눈을 번쩍 떴다.
“엄청 맛있다! 식당에서 먹었던 거랑 똑같이 맛있어!”
다연이는 이렇게 과장되게 반응하는 혜원이가 좋았다.
오빠가 만든 음식이 맛있다고 하는 거니까.
“다연아, 나도 먹어봐도 돼?”
“응, 바꿔서 먹자!”
“그래.”
조금 더 자신감이 생긴 다연이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하나, 둘 김밥이 없어지고 대신 그 자리에 여러 가지 음식들이 쌓여간다.
“맛있다! 우리 엄마가 한 것보다 맛있어!”
“다연아, 김밥 맛있어.”
다연이는 쏟아지는 칭찬을 들으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다.
오빠가 가끔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야 그 뜻을 알 것 같았다.
다연이는 이제 6살인데도 그 뜻을 알게 됐다.
“우리 오빠가 한 거야!”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다연이는 결국 오빠가 만들어준 김밥을 두 개 밖에 먹지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집에 가면 오빠가 다시 해줄 거니까.
밥을 다 먹고 선생님이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여러분, 사진 찍을 거니까 여기로 모여주세요.”
“네!”
다연이도 힘차게 외치면서 선생님께 다가간다.
***
다연이는 오늘 소풍이 어땠을까. 부디 재밌었으면 좋겠다.
“오빠!”
어린이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다연이가 뛰어왔다.
표정을 보니 재밌었던 것 같네.
“가자.”
“응!”
다연이는 나와 같이 식당까지 가는 길에 소풍에서 있었던 일들을 쏟아냈다.
“오늘 소풍가서 예나 언니 만났어!”
“예나를? 학교 갔을 텐데?”
“친구들이랑 놀러 나왔대! 허락 받고! 어.. 그리도 또 친구들이 오빠가 만든 김밥 먹었는데 엄청 맛있었대! 그래서 다 먹었어. 나는 두 개 밖에 못 먹었어.”
그렇게나 인기가 좋았다니 다행이다.
사실 엄청 맛있는 건 아닌데.
“그래? 다연이 배 안 고팠어?”
“응! 대신 나도 친구들 꺼 먹었어! 그리고 오빠가 만든 김밥은 매일 먹을 수 있어서 괜찮아!”
“다행이네.”
다연이는 소풍에 가서 내가 만든 김밥을 먹었다는 사실보다 친구들이 좋아했다는 사실이 더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그래도 기분 좋은 것 같아서 다행이네.
“오빠, 우리도 나중에 꽃 보러 가는 거지?”
“응, 나중에 같이 가자.”
“오늘 사람들도 많고 꽃도 예뻤어.”
“그래.”
그렇게 다연이의 말을 들으면서 식당에 도착했다.
이제는 식당뿐이 아니라 우리 집이었지만.
“다연아, 이제 2층에서 놀아도 돼. 이사 했으니까.”
“음... 그래도 나는 여기에 있을래. 오빠랑 같이.”
“그래, 다연이 말대로 해도 괜찮아.”
나는 그렇게 다연이와 같이 식당에 있었다.
그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 진 모르겠다.
다연이와 한참 소풍과 벚꽃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던 때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안녕!”
식당에 온 손님은 늘 기분이 좋아 보이는 혜원이네 가족이었다.
만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