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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암...”
나는 다음 날 아침, 하품을 하면서 잠자리에서 일어선다.
옆에는 아직 다연이가 자고 있었고 바깥은 조금 어둡다.
오늘은 다연이가 소풍을 가는 날이다.
친구들과 가는 첫 소풍. 그래서 도시락을 만들어주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쿠우...”
나는 다연이의 숨소리를 듣고 나서야 1층으로 향했다.
왜 인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다연이가 자고 있을 때면 가끔씩 다연이가 진짜 내 옆에 있는 건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렇게 숨소리를 확인하곤 한다.
이사를 해서 좋은 점은 이렇게 1층의 주방을 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다연이가 자고 있으니까 이렇게 하기로 했다.
다연이 도시락으로 챙겨 줄 것은 김밥이었다. 흔하기도 하고 평소에도 가끔 먹던 음식이었지만 무엇보다 다연이가 김밥을 먹길 원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일단 밥부터.”
밥을 짓고 완성되는 동안 다른 것 먼저 준비한다.
김밥만 먹으면 물릴 테니 입가심도 할 겸 해서 과일도 넣어준다.
방울토마토와 사과 몇 조각. 간단하지만 다연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사실 다연이는 뭐든 좋아하지만.
과일을 넣고 조금 기다리니 밥이 완성됐다.
도시락과 아침밥에 쓸 밥만 만드는 거라서 생각보다 금방 완성이 됐다.
김밥을 하는 건 간단하다. 간이 벤 밥에다가 갖가지 재료를 올려주고 말아주는 것.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요리에 서툰 사람은 이것마저도 쉽지 않다. 나는 늘 해오던 것이라서 괜찮았지만.
나는 김밥을 몇 줄 더 완성시켰다. 이왕 김밥을 한 김에 내가 아침으로 먹을 것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연이 몫의 아침은 다른 걸 준비할 거다. 아침에도 김밥을 먹게 된다면 소풍 때 먹을 김밥이 의미가 없을 테니까.
일단 도시락에 넣을 김밥은 다연이가 먹기 좋게 자른다.
만약 다연이가 옆에 있었다면 꼬투리를 달라고 했을 것 같다.
그런 말을 자주 들어서인지 다연이 줄 김밥을 만들 때면 늘 꼬투리를 작게 썰곤 했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지만.
“다 됐다.”
작게 썬 김밥을 통 안에 예쁘게 집어넣고 나서야 다연이의 도시락 준비가 끝났다.
아침 일찍부터 준비했지만 의외로 금방 끝난 것 같다.
물론 느낌이 그렇다는 거다. 시간은 이미 훌쩍 지나가 있었으니까.
“으, 추워.”
다연이 도시락을 한 곳에 치워두고 나니 다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요리하던 도중에 잠에서 깼는지 내려와 있었다.
아직 아침이 추웠으니 다연이도 덜덜 떨고 있다.
“오빠, 도시락 다 했어?”
“응, 추울 텐데 올라가 있어.”
“나 도시락 한 번만 볼래.”
“그래.”
나는 다연이의 말에 완성된 도시락을 보여준다.
“맛있겠다아...”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다연이는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얼른 올라가자. 추워.”
“알겠어.”
그렇게 우리는 다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위층으로 올라갔다.
.
.
.
“자, 가방.”
“응.”
다연이가 나에게서 가방을 받아가더니 단단히 맨다.
얼마 전에 산 도시락 가방이었다.
작고 크로스백처럼 매는 가방이다. 가방의 지퍼 부근에는 예나가 선물한 수박 캐릭터가 매달려 있다.
“오늘 소풍 가.”
“그래서 도시락 준비해줬잖아.”
“맞아. 김밥. 오늘 아침에도 먹었어.”
다연이에겐 소풍에 가서 먹는 김밥의 맛을 알려주려고 일부러 다연이 몫의 아침을 새로 준비했지만 다연이는 내가 먹고 있는 김밥에 관심이 있었다.
하나만 달라고 해서 줬었고.
우물거리던 다연이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엄청 맛있어서 친구들이 달라고 하면 어떡하지?”
“음... 그러면 나눠주면 되지. 다연이는 오빠가 다시 해주면 되잖아.”
“맞아.”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연이는 벌써 그 때를 상상하는 것 같다.
아직 오지도 않은 그 때를.
“만약에 그러면은... 선생님한테도 자랑해야지.”
“그래, 다연이가 그러고 싶으면.”
다연이는 벌써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응.”
오늘은 다연이가 소풍을 가는 날.
옷도 예쁘게 입혔고 도시락도 잘 됐다.
이제 다연이가 잘 놀다가 오기만 하면 된다.
.
“안녀엉.”
“안녕.”
어린이집 앞에서 다연이가 내게 손을 흔든다.
매일 있는 일이지만 오늘 다연이의 표정은 특히 밝다.
“잘 놀다 와.”
“갔다 와서 내가 소풍 이야기 해 줄게!”
“그래.”
그리고 다연이가 어린이집으로 쏙 사라졌다.
***
“선생님 말 잘 들어야 돼요.”
“네!”
다연이가 드디어 소풍을 간다.
지금 다연이는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오빠랑 놀러 간 적은 있지만 이렇게 친구들이랑 가는 것은 처음이다.
“다연아, 너는 도시락 뭐 싸왔어?”
다연이의 뒤에 있던 민재가 물었다.
민재는 다연이가 어린이집에 간 첫날에 처음으로 만났던 친구다.
민재는 다연이의 오빠가 식당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 본적은 없지만 혜원이가 맛있다고 계속 말하는 바람에 알고 있었다.
“나는 김밥!”
“나는 유부초밥이야!”
다연이의 말에 대답한 건 다연이 옆에 있던 혜원이였다.
“나중에 나눠 먹자!”
“알겠어!”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연이와 혜원이가 이야기를 나눈다.
민재는 그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하고 그냥 다연이 뒤를 따라 길만 터벅터벅 걷는다.
다연이 옆에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두 줄로 가고 있던 터라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나도 김밥인데.”
민재가 작게 중얼거렸다.
민재는 다연이가 좋다. 처음 만났을 때 들던 이상한 기분 때문이었는지 그냥 예뻐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좋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유부초밥인데.”
민재와 나란히 걷고 있던 하민이가 말했다.
쌍둥이 남자아이였다.
하민이도 저번에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다연이가 좋다고. 물론 하민이가 말한 게 아니라 쌍둥이 여자아이인 지민이가 말한 거지만.
민재는 하민이가 다른 데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발.
“우와... 꽃 예쁘다...”
다연이는 혜원이의 손을 잡은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정확하게는 하늘이 아니라 머리 위에 핀 벚꽃이었다.
“다연아, 걸을 땐 앞을 봐야지.”
“네에.”
뒤에 있던 선생님이 말했다.
길게 늘어선 아이들 앞뒤에 선생님이 있다. 아이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앞뒤로 선생님이 있는 편이 아이들을 지켜보기에 좋다.
“나는 엄마, 아빠랑 어제 왔었어. 꽃이 예뻐.”
혜원이의 말에 다연이가 대답했다.
“나는 어제 이사해서 못 봤는데.”
“이사했어?”
“응! 나 이제 식당에 살아. 2층에.”
“우와... 진짜 멋있다아...”
다연이는 그 말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실제로 다연이는 이사 간 지금 집이 꽤 마음에 들었다.
눈을 뜨면 다른 천장이 보이고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식당이라는 것이 신기하다.
그렇게 6살 아이들이 뭉쳐서 뒤뚱뒤뚱 걷고 있으니 주변의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평일이지만 거리에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 중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종종 보인다.
“쟤네 뭐야.. 너무 귀엽잖아..”
그런 사람들 틈에서 6살짜리 아이들은 단연 돋보였다.
가만히 있어도 귀여운 나이에 이렇게 뭉쳐있으니 당연하기도 했다.
“안녕...”
그러다가 교복을 입은 한 무리의 학생들이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작게 인사했다.
다연이는 그런 학생을 보고 있었다.
묘하게 눈에 익은 교복. 어디서 많이 봤다.
“아..! 예나 언니랑 같은 옷이야.”
종종 예나 언니가 학교를 마치고 식당으로 올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꼭 저 옷을 입고 있었다.
다연이는 언니가 좋다. 그래서 그 옷도 좋았다.
“안녕!”
그래서 다연이도 손을 흔들었다.
낯을 가리는 다른 아이들은 눈치만 보고 있었고 다연이는 언니 생각이 나서 손을 높이 들었다.
“우와..! 나한테 인사했어.”
“나한테 했거든?”
인사를 했던 학생들이 티격태격 하던 와중에도 다연이는 손을 흔들었다.
지난주에는 언니가 바쁘다고 해서 못 봤었는데.
“너무 귀여워...”
“특히 쟤가 엄청 귀엽다.. 손도 흔들어 주고...”
학생들은 다연이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계속 저 귀여운 아이를 보고 싶었지만 소풍 나온 것 같은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것도 이상하다. 그래서 손을 흔든 뒤, 학생들은 저멀리 사라졌다.
“우와... 엄청 언니랑 엄청 오빠였어.”
“맞아.”
혜원이의 말에 다연이가 맞장구를 친다.
“자, 여러분. 여기에서 도시락을 먹을 거예요.”
“네!”
다연이와 아이들이 멈춘 곳은 한 공원이었다.
오늘은 평일이라 그러지 않았지만 주말에, 더군다나 축제날까지 가까워지면 이 곳은 사람들로 붐빈다.
지금도 꽤 사람들이 있긴 했으나 그리 많지는 않았다.
“여기 엄청 예쁘다아...”
공원이지만 축제가 열리는 곳인 만큼 주변엔 벚꽃 나무들이 몇 그루씩 있었다.
다연이는 이 꽃을 오빠와 같이 살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 봤었다. 어쩌면 어렸을 때, 그러니까 엄마가 다연이를 데리고 미용실에 갔을 때 봤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연이의 기억에는 처음이었다.
“밥 먹자, 얘들아.”
“네에.”
선생님의 말에 따라 다연이도 도시락을 꺼낸다.
“다연이 가방 예쁘다.. 여기에 있는 수박이도 귀여워.”
혜원이가 다연이의 가방에 달린 열쇠고리를 툭툭 건드리면서 말했다.
“나도 엄마한테 사달라고 해야지..”
“이거 언니가 사준 거야.”
“응.”
다연이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선생님이 움찔거렸지만 다연이는 도시락을 꺼내는 데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싯는... 김밥..”
이미 여러 번 먹어본 오빠의 김밥이지만 그래도 기대된다.
햇빛이 비춰서 그런지 김밥이 더 맛있게 보인다. 밥알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다.
적어도 다연이의 눈에는 그랬다.
“어머, 그거 오빠가 만들어 준 거야?”
다연이가 도시락을 보면서 집중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말했다.
“네에, 오빠가 아침 일찍 얼어나서 만들어줬어요.”
“맛있겠네.”
“네! 선생님도 같이 먹어요!”
“선생님은 나중에 먹으러 갈게.”
그 말을 선생님이 오빠 식당에 놀러온다는 말로 이해한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연이는 오빠와 선생님이 친해졌으면 좋겠다.
오빠는 친구가 많이 없는 것 같으니까. 그게 다연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오빠는 다연이를 돌봐야했으니까. 하지만 선생님이랑 친구가 된다면 좋을 것 같았다.
“김밥 맛있겠다아... 다연아, 나랑 나눠먹자.”
혜원이가 자신의 유부초밥을 보여주며 말했다.
저것도 맛있을 것 같긴 하다. 그래서 다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자고 말했다.
“자, 이거 가져가.”
“나도 줄게.”
그렇게 서로의 도시락을 나눠주다가 문득 다연이의 저 멀리 예나 언니와 똑같은 교복을 입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본 다연이는 단번에 알았다. 다연이가 보고 있는 사람은 예나 언니와 같은 교복을 입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저건 예나 언니다.
“다연이..?”
언니도 다연이를 알아본 듯 그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언니!”
다연이의 외침에 혜원이도, 예나와 같이 있던 친구들도, 옆에서 다연이를 챙겨주고 있던 선생님도 다연이를 본다.
‘언니?’
그리고 선생님이 그렇게 생각했다.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