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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언니요!”
“...?”
나는 다연이가 괜히 상관없는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선생님은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세요?”
“아... 저는 출출해서 먹을거리 좀 사러요...”
“그렇군요.”
겨우 화제는 돌렸지만 딱히 이어갈 말을 찾지 못하고 걸었다.
원래 말 수가 없는 편이기도 했지만 오늘따라 선생님도 조용하다.
그렇게 있다가 선생님이 말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 안 계시더라고요.”
“집에 오셨어요?”
“네, 뭐 좀 드리려고요. 저번에 받은 딸기는 잘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다연이를 주려고 사준 딸기였는데 다연이가 선생님도 주고 싶다고 해서 몇 개 나눠서 드린 거였다.
양도 얼마 되지 않았던 건데 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이다.
“오늘 어디 가셨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물었다.
“아, 저기 식당에요.”
“오늘 문 닫는 날 아니에요?”
“맞아요. 근데 청소할 게 있어서요.”
“주말에 청소를 할 정도로 바쁘셨나 봐요?”
“식당을 청소한 건 아니고요... 위층에 집이 있거든요. 거길 좀 청소했어요.”
그 때 다연이가 밑에서 말했다.
“예나 언니하고 같이 했어요!”
“예나 언니..”
“네!”
잠시 멍하니 있던 선생님이 말했다.
“어... 그런데 집은 왜.. 청소하신 거예요...?”
“우리 이사가거든요.”
다연이가 나 대신 대답했다.
“이사.. 가요?”
“네, 다음 주에 갈 것 같아요.”
“아.. 그렇구나..”
다연이는 우울한 얼굴을 하는 선생님을 보더니 말했다.
“선생님, 괜찮아요! 우리 어차피 식당으로 이사가는 거라서 괜찮아.”
“그래, 다연아.”
선생님은 평소처럼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우울한 얼굴의 선생님을 보니 내가 뭔가를 잘못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빌라에 도착했다.
익숙하게 3층으로 올라가니 선생님이 말했다.
“아, 드릴 거 있다고 했었는데.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안 그래도 되는데.”
하지만 선생님은 이미 집 안으로 들어가고 난 뒤였다.
아는 멍하니 서 있는 다연이에게 말했다.
“다연아, 안 피곤해?”
“쪼금. 근데 괜찮아.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을 거야.”
다연이는 손에 쥔 먹을 것들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치킨과 함께 온 것들. 남은 것도 먹을 거라면서 다연이가 들고 온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이 줄 것도 있짜나.”
“그래.”
그렇게 잡담을 나누고 있으니 선생님이 다시 나왔다.
“이거.. 별 건 아닌데요. 저번에 지훈 씨가 주신 잡채.. 맛있어서 저도 한 번 해 봤거든요.”
“잡채다아.”
선생님이 주신 건 잡채였다.
다연이가 나대신 손을 뻗어 잡채를 받는다.
“오...”
“감사합니다.”
“뭘요. 저도 맛있는 거 많이 받았는데요.”
잠시 머뭇거리던 선생님이 말했다.
“혹시... 이사는 정확하게 며칠에 가시는 거예요?”
왜 물어보는 건진 모르겠지만 나는 날짜를 가르쳐줬다.
선생님은 곧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푹 쉬세요.”
“안녕히 계세요!”
다연이의 인사에 손을 흔들어주고 나서 문을 닫았다.
다연이는 손에 들고 있는 잡채를 빤히 보고 있다.
“왜? 먹고 싶어?”
“응!”
선생님이 직접 요리를 해서 보내준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도 조금 기대가 된다.
우리는 곧장 집으로 와서 테이블에 앉았다.
빨리 선생님이 해주신 잡채를 먹고 싶다는 다연이의 말 때문이었다.
“내가 먼저 먹어볼게.”
그렇게 말한 다연이가 잡채를 입에 넣은 순간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꼭 동상 같았다.
“왜? 맛없어?”
다연이는 대답 없이 싱크대로 달려가서 입에 있는 걸 퉤하고 뱉어버렸다.
“맛업써...”
얼굴을 찡그린 다연이가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
.
.
오늘은 드디어 이사를 하는 날이다. 어제까지 짐들을 정리해놓고 옆에 차곡차곡 쌓아뒀다.
나 혼자 살았기 때문에 짐은 많이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직접 짐을 실어 나르려 한다.
냉장고도, 세탁기도 옵션이었고 심지어 매트리스도 없다.
힘들긴 하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 내가 왔다갔다 하면서 짐을 나를 것이다.
“다연아, 옷 입어.”
나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 다연이에게 옷을 입히려 하고 있다.
다연이는 식당에 있도록 할 거라서 충분히 따뜻한 겉옷을 입힐 것이다.
“나는 저거 입고 싶은데..”
다연이는 내 후드 집업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 이게 더 좋은데.”
내가 들고 있는 옷은 인터넷으로 주문한 다연이의 옷이다.
꽤 값도 나가고 안감이 털로 되어 있어서 따뜻할 건데.
“지금은 놀러 가는 거 아니잖아. 나 이거 입을래. 그리고 이게 더 커서 더 따뜻해. 이불 덮는 것 같아서.”
그래서 다연이가 내 옷을 애용하는 건가.
이불 같아서?
그래도 나는 다연이 옷까지 챙겼다.
“그러면 이것도 가져가자. 추우면 입게.”
“알겠어.”
우선은 다연이가 가지고 놀 수 있을 만한 인형이나 색칠놀이 세트를 챙긴다.
내가 일할 동안 다연이가 가지고 놀 수 있게. 그렇게 우리는 문 밖으로 나선다.
감상에 젖은 다연이는 뒤돌아서 우리가 살던 집을 보더니 문을 한 번 쓰다듬었다.
“잘 있어.”
다연이만의 인사를 하고서 집을 나선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려던 때, 복도의 가장 끝에 있는 문이 열린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집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다.
“선생님.”
이제 다연이는 그리 놀라지도 않았다.
“이사.. 하시나 봐요?”
“네.”
그리고 천천히 말을 꺼냈다.
“어... 도와.. 드릴까요?”
“아, 아뇨. 괜찮아요.”
누가 도와준다면 좋겠지만 선생님은 안 된다. 다연이의 선생님이니까.
그렇게 말했는데도 선생님은 계속해서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 선생님도 같이 해?”
다연이는 그 말에 배시시 미소를 짓고선 말했다.
지금 다연이는 그냥 새로운 사람이 같이 있는다는 게 좋은 것 같다.
“아니야, 다연아. 선생님도 쉬셔야지.”
“저는 괜찮은데...”
아무리 힘들다 해도 선생님께 도와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만약 나를 도와주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다연이를 볼 낯이 없다. 선생님도 다연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고.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을 알고 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선생님이랑 놀고 싶은데. 안 돼? 어차피 오빠는 일할 거잖아...”
내가 안 된다고 말하려 할 때 선생님이 말했다.
“어.. 다연이랑 놀아주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하시는 동안 다연이 맡길 곳 없죠..?”
없긴 했다. 솔직히 그 부분이 걱정돼서 예나에게 맡길까 생각했지만 예나는 오늘까지 알바로 바쁘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걱정되긴 하지만 식당에 두려고 했다.
그것 때문에 지금도 초조한 마음이 있었는데. 죄송하긴 하지만 다연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네.”
그러자 선생님의 표정이 갑작스레 밝아졌다.
“그러면 제가 다연이 보고 있을 게요! 할 일도 없으니까요.”
“어... 정말 그렇게 해도 될까요? 안 불편하세요?”
“네! 전 괜찮아요. 그렇게 죄송하시면 밥 사 주시면 되겠네요. 다연이랑 같이.”
그 말에 다연이가 활짝 미소 짓는다.
“나는 엄청 좋아! 오늘도 선생님이랑 논다니... 엄청 대단한 거야...”
나도 다연이처럼 생각했다. 휴일인데도 아이랑 놀아주다니.
물론 선생님께 죄송하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다.
다연이와 선생님은 우리 식당에서 있기로 했고. 선생님 댁에 있기엔 내가 너무 죄송해서 그렇게 결정했다.
“오빠, 파이팅이야!”
언제 저런 말을 배워 왔는진 모르겠지만 확실히 힘이 된다.
“고마워.”
나는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나서 일을 시작한다.
잡다한 물건들이 생각 외로 많았지만 미리 포장해뒀기에 짐을 나르는 데는 그리 힘이 들지 않았다.
다연이도 같이 살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았다. 점점 다연이 짐이 늘어나고 있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감당 가능한 수준이다.
만약 반년만 더 있었다면 나 혼자선 불가능했을 테지만.
일을 얼추 마무리 짓고 식당으로 와서 잠시 쉬었다. 그러자 놀고 있던 다연이가 내게 물었다.
“오빠! 다 끝났어?”
“응, 짐 옮기는 건 끝났어. 정리만 하면 끝나.”
“우리 짜장면 시켜써! 그러니까 먹고 해!”
“알겠어.”
점심으로는 짜장면을 먹기로 했다.
선생님이 이사한 날에는 짜장면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연이가 짜장면이라는 단어에 눈을 밝혔고.
나는 잠시 다연이가 있는 곳에서 쉬었다.
그 때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잡채는 어땠어요..? 제가 요리를 못해서 조금 걱정되긴 했는데...”
“아, 잡채요..”
그 말에 살짝 뒤에 있던 다연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늘 있었던 웃음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저었다.
다연이가 맛없어 하는 음식이라니. 그래도 그 사실을 선생님께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건 다연이도 싫어하는 것 같고.
“음.. 괜찮았어요.”
“와... 다행이네요. 조금 걱정했었어요.”
“.....다음에는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정말요?”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어제 잡채를 뱉었던 다연이에 대한 위로의 의미였지만 선생님의 표정은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리고 다연이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
잠시 후, 짜장면이 왔다.
갈색이 섞인 검은 짜장면을 열심히 섞은 다음 다연이에게 덜어준다.
다연이는 신난 듯 짜장면을 보더니 먹기 시작했다.
“이거.. 엄청 맛있어...!”
다연이는 입가에 짜장 소스를 잔뜩 묻히고선 활기차게 말했다.
그래, 원래 이게 다연이의 반응이다. 웬만한 걸 먹어도 맛있다고 말하는 다연이.
어제 그 잡채는 내가 먹어봤는데 맛이 없었다. 면은 짜고 툭툭 끊어졌다.
아무튼. 지금은 여기에 집중하자.
후루룩 하며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면. 달콤하면서도 짜장면 특유의 그 맛이 좋다.
잡채를 먹는 것과 느낌이 비슷하지만 많이 다르다.
단무지도 곁들여서 먹어주면 금상첨화다. 이렇게 짜장면과 어울리는 게 또 있을까 싶었다.
김치도 나쁘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짜장면엔 단무지지.
“나 조금 더 줘.”
그 맛에 다연이도 반했는지 그릇을 내밀었다.
내가 짜장면을 채워주니 다시 그릇에 얼굴을 묻고 호로록 면을 먹는다.
잠시 간의 식사가 끝났다. 다연이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늘 그랬던 것처럼 의자에 흐르듯 몸을 맡겼다.
배부른 모양이다.
다연이는 잠시 그 상태로 있더니 뭔가가 생각났는지 급하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누가 봐도 설레는 얼굴로 선생님께 말한다.
“선생님! 우리 내일 소풍 간다고 했었죠! 잊어버리고 있었어!”
“응, 맞아. 내일 소풍 가.”
“맞아요! 내일 나무 엄청 많은 곳에 간다고 그래써! 저기에 꽃 보고 생각나써요!”
다연이가 가리킨 것은 꽤 많이 피어있는 벚꽃 나무였다.
내일 다연이가 소풍을 간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때문에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다연이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지만 다연이의 첫 소풍인 만큼 신경 써주고 싶었다.
피곤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도시락을 안 싸줄 수도, 이사를 미룰 수도 없었다.
“다연이는 좋겠네. 오빠가 요리를 잘해서 맛있는 도시락 싸 올 수 있잖아.”
“맞아요! 오빠는 요리 엄청 잘 해! 그래서 엄청 배불러요!”
내일 가는 소풍은 벚꽃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간다고 했다.
벚꽃이 많이 폈긴 하지만 아직 축제날은 아니었다. 때문에 사람들도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축제가 열리기 전에 그 곳으로 소풍을 가려고 하는 것이다.
“엄청 재밌을 것 같아..! 선생님도 있고 친구들도 있고!”
마음 같아서 나도 같이 가고 싶지만... 당연히 그건 안 되니까.
“오빠랑도 같이 가고 싶은데... 우리는 나중에 같이 가야 해.”
“맞아. 조금만 기다렸다가 같이 가자.”
“응.”
선생님이 그런 우리를 짠하게 보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말을 하려다 말았다.
내일은 다연이의 도시락을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이사를 빨리 끝내고 얼른 쉬어야 된다.
“지훈 씨는 하던 거 하세요. 이건 제가 치울게요.”
“그래도 될 까요..?”
“당연하죠! 얻어먹는 입장인데요!”
그건 다연이를 돌봐주는 대신이었지만 나는 감사하다고 말한 뒤 2층으로 올라간다.
빨리 마무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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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는 전부 끝났다. 밤이 돼버렸지만 그래도 정리까지 모두 마쳤다.
선생님과는 헤어졌다. 이사 가도 계속 지금처럼 지내자는 말과 함께.
선생님의 시간을 뺏어놓고 대접한 건 짜장면 밖에 없었으니 조만간 선생님께 제대로 된 식사를 대접해야겠다.
“졸려어...”
내 옆을 끝까지 지키던 다연이도 이제는 한계인가보다.
얼른 씻기고 자야지. 내일은 다연이 소풍날이니까.
“소푸웅....”
다연이가 반쯤 감긴 눈을 하면서 입으로는 살짝 미소 지었다.
소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