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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응! 치킨!"
다연이가 내민 휴대폰에는 맛있게 치킨을 먹는 어떤 남자가 있었다.
[와.. 역시 배고플 때 먹는 치킨보다 맛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나도 치킨 먹고 시퍼. 한 번도 안 먹어봤잖아."
그 말처럼 다연이는 치킨을 먹어본 적이 없다.
당연히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다른 음식들을 먼저 시도하다보니 자연스레 미뤄진 것이다.
요즘 들어 기름진 음식을 종종 먹곤 했지만 그래도 평소엔 건강한 음식들을 많이 먹었으니 오늘은 치킨을 먹어도 될 것 같다.
"알겠어. 그럼 치킨 먹자."
"우아!"
다연이가 환호를 하면서 다시 예나에게 되돌아가서 휴대폰을 건네준다.
"언니! 치킨이야! 언니도 먹고 갈 거지?"
"음... 그래도.. 되나요..?"
"당연하지. 오늘 도와줬는데 그거라도 먹고 가."
"그러면 그렇게 할게요. 감사합니다."
다연이가 내 말을 듣고 다시 환호했다.
"언니도 같이 먹네!"
"그래, 일단 주문부터 하자."
나는 이 주변에 어떤 치킨 가게가 있는지 잘 모른다.
혼자 있을 땐 시켜 먹지도 않았을 뿐더러 딱히 관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예나에게 물었다.
"맛있는 곳 있죠. 저는 여기가 맛있던데."
예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휴대폰을 내밀었다.
언제 준비했는지 이 곳 근처의 가게가 적혀 있었다.
"그럼 거기로 해. 두 마리로."
"메뉴도 제가 정해도 돼요?"
"응, 나는 음식 안 가리니까. 다연이도 그렇지?"
내 말에 다연이가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맞아. 나는 오빠가 먹는 건 다 먹어."
"그럼 언니가 고른 걸로 한다?"
다연이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
"어... 매운 건 안 돼. 너무 매워서 못 먹어."
"알겠어. 그럼 그냥 후라이드 시킬게."
다연이는 예나의 휴대폰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맛있을 것 같아!"
예나는 나에게도 허락을 받은 뒤 주문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건다.
그 때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다연이가 말했다.
"언니, 내가 해도 돼..?"
"주문을 다연이가 하겠다고?"
"응."
다른 아이들이 그렇듯 다연이도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늘 물었고.
아마 지금 다연이도 호기심이 돋아난 것 같다.
"하면 안 돼?"
"그건 아닌데.. 그럼 한 번 해 봐."
예나는 다연이에게 휴대폰을 내밀다.
다연이는 설레는 얼굴로 휴대폰을 받는다.
생애 처음으로 하는 주문이다.
"뭐라고 하면 돼?"
"후라이드 하나랑 간장 하나, 그리고 콜라도 큰 거 주세요, 라고 하면 돼."
"알게써."
다연이는 결의가 넘치는 표정을 짓고선 몇 번 심호흡을 했다.
"주소는 여기 식당 말하면 돼."
"응."
그리고 전화를 건다.
뚜르르.
몇 번 신호가 가더니 건너편에서 전화 받는 소리가 들린다.
다연이는 침을 꼴깍 삼켰다.
"네, ××치킨입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 저.. 다연인데요.."
"네..?"
그 모습에 예나가 큭큭 거리며 웃는다.
"저.. 저기.. 치킨 주세요."
"장난 전화에요?"
"자.. 장난 아니에요."
다연이의 목소리에 진정성을 느꼈는지 치킨집 사장님은 잠시 대답이 없다가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럼 어떤 종류인지 말씀 부탁드려요."
"그.. 그거.. 뭐더라..?"
다연이의 눈동자가 흔들거린다.
전화하기 전에는 자신감이 넘쳤는데 막상 물어보니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후라이드 치킨이랑 간장."
예나가 웃으면서도 작게 말해줬다.
다연이는 문제지의 답안을 훔쳐보는 학생처럼 말한다.
"후.. 후라이드 치킨이랑 간장 치킨 한 개요.."
"네, 후라이드 하나랑 간장 하나... 주소는요?"
"주.. 주소..? 여기 오빠 식당인데..."
"네..?"
다시 한 번 멘붕이 온 다연이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나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나 못 하게써.."
그 모습을 보던 예나는 거의 숨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내가 할게."
나는 다연이의 전화를 받아들고 사장님께 사정을 설명했다.
동생이 주문해보고 싶어서 전화를 한 거라고.
그러자 사장님은 잠시 웃더니 알겠다고 말했다.
내가 정확한 메뉴와 주소를 말해준다.
"네, 알겠습니다. 혹시 동생 분 다시 바꿔줄 수 있나요? 저희 딸이 생각나서요."
주문이 끝나고 사장님이 말했다.
처음보다 훨씬 나긋한 목소리였다.
"네, 바꿔드릴게요."
나는 다연이에게 말했다.
"전화 받아볼래? 다연이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대."
그 말에 다연이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다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라고 말했다.
전화기에서 새어나오는 소리가 크긴 하지만 참지 못한 예나의 웃음소리에 가려서 잘 들리지 않았다.
"네에,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다연아, 뭐라고 했어?"
다연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 엄청 멋있대! 아긴데 전화도 잘 한다고!"
따지고 보면 별 말 하지 않았는데 다연이는 기분은 좋은 듯 얼굴에 기세등등함이 가득 차올랐다.
"근데 나는 아기가 아니야. 아기는 어린이집 다른 반에 있어. 엄청 작더라."
"그래."
내가 봤을 땐 다연이도 아기가 맞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솔직히 웃기다.
예나는 내 몫까지 웃어주고 있는 건지 이제 거의 바닥에 엎드려서 울고 있었다.
"오빠, 나 아기 아니지?"
"....아기 맞아. 오빠한테는."
"아기는 나보다 더 작은데? 그래도 내가 아기야?"
"응."
다연이는 부정하기보단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기는 이렇게나 큰데 왜 아기인지 궁금한 것 같다.
그렇게 조금 기다리고 나니 전화가 울렸다.
치킨이 왔다는 전화였다.
이 집에는 초인종이 없기 때문에 주문할 때 그렇게 말했었다.
"치킨 받으러 가는 거지? 나도 갈래."
예나와 같이 치킨 영상을 보고 있던 다연이가 말했다.
영상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곧바로 일어서서 겉옷을 챙겨 입었다.
"오빠 혼자 가도 되는데."
"나도 같이 갈래. 아저씨가 나 칭찬해줬잖아."
"그래. 그럼 가자."
나와 다연이는 밑으로 내려와서 문을 연다.
앞에는 배달하는 아저씨가 서 있었다.
다연이와 통화를 했던 그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안녕, 네가 아까 전화한 걔구나?"
"네, 내가 전화했어요."
다연이를 보고선 표정이 밝아진 아저씨가 미소를 잔뜩 짓고선 말했다.
"아까 전화 귀엽게 잘 하던데? 그래서 아저씨가 맛있는 거 하나 더 넣어줬어. 맛있게 먹어라."
"우와..! 감사합니다!"
"그래, 그리고 오빠한테 말해서 우리 집에 자주 시켜달라고 해."
"네!"
아저씨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인사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다연이는 그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타고 올라간다.
"치킨이다."
위층에 올라오니 예나가 준비를 모두 끝마친 상태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작은 테이블까지 준비해서 거실에 펼쳐 놓았다.
우리는 서둘러 포장을 열었다.
그러자 보이는 황금빛 치킨.
"치킨이다아..."
넋을 놓고 볼 만큼 색깔도 예뻤다.
그 옆에는 아저씨가 말한 것처럼 치킨 말고 다른 것도 있었다.
다연이는 그 포장을 열어서 안을 들여다본다.
"감쟈다..."
"우와, 아저씨. 치즈볼도 있는데요?"
"치즈볼?"
"네, 이 안에 치즈가 들어있어요. 요즘 유행인데."
다연이는 그것들을 유심히 보더니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잘해서 아저씨가 준 거야..! 그리고 귀여워서."
"그래, 잘했네."
그 말을 들은 예나가 큭큭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수록 다연이의 얼굴은 점점 더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이제 먹자!"
다연이의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치킨을 먹기 시작했다.
"앗, 뜨거."
치킨은 튀기고 나서 바로 배달했는지 다연이가 만지기엔 많이 뜨거웠다.
"만지지마. 오빠가 해줄게."
나는 뜨거워하는 다연이 대신 앞 접시에 살을 발라준다.
"후, 불어서 먹어야 돼."
"알겠어."
다연이는 후 불더니 치킨 살을 입에 넣었다.
입을 작게 모으고 오물거렸다.
"맛있어."
꽤 담백한 목소리다.
지금까지 맛있는 걸 많이 먹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오랜만에 먹는 치킨은 정말 맛있었다.
기름진 치킨을 입에 무는 것도, 그 뒤에 콜라로 시원하게 마무리 짓는 것도 좋다.
"다연아, 치킨 무 먹을래?"
"응."
나는 다연이 입에 무를 넣어주고 나도 하나 집어 먹는다.
"아저씨, 완전 다연이 아빠네요."
예나가 장난스런 말투로 말했다.
그 말에 다연이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아빠 아니고 오빠."
"알겠어, 오빠. 미안."
"괜차나."
그러고선 무심하게 치킨을 베어 물었다.
다연이는 치킨 먹는 속도가 느려서 두 조각 째 먹을 무렵 치킨은 이미 식어 있었기에 더 이상 내가 손수 발라주진 않았다.
다연이도 그러는 편을 좋아했고.
"콜라 먹어야지..."
다연이는 작게 말하면서 콜라가 담긴 컵을 집어 들었다.
그대로 컵을 들어 마시더니 상쾌한 소리를 내며 컵을 내려놓았다.
"캬아, 맛있다!"
"크큭, 다연아. 술 마셔?"
"술?"
"그런 게 있어."
아무것도 모르는 다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콜라를 마시면 이 소리가 나와."
밝은 얼굴로 설명하는 다연이가 귀여웠다.
우리는 열심히 치킨을 먹었음에도 전부 다 해치우진 못했다.
정확하게는 치킨은 다 먹었지만 치킨 집 아저씨가 서비스로 준 것들은 다 못 먹었다.
그 치킨도 거의 다 내가 먹은 거고.
"배불러... 오빠, 나 배 터질 것 같아...."
"배 안 터질 거야."
"으아..."
다연이는 치킨 네 조각과 아저씨가 준 서비스를 하나씩 먹었다.
평소 다연이의 먹성을 고려해봤을 때도 꽤 많이 먹었다.
그건 옆에 있는 예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원래 많이 못 먹어요..."
그래서 남은 건 내가 다 먹었다.
배도 불렀고 오랜만에 먹은 치킨이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맛있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다니. 앞으로는 종종 시켜 먹어야겠다.
"앉아 있어. 내가 치울게."
"아니에요, 같이 해요."
그렇게 길었던 저녁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청소도 만족스럽게 끝냈고 저녁도 맛있었다.
남은 음식은 다연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싸가기로 했다.
"오빠, 우리 오늘 또 언니 데려다 주러 가자!"
"다연이는 그러고 싶어?"
"응!"
"알겠어. 괜찮지?"
"죄송하긴 한데.. 저는 좋아요."
"가자!"
예나를 금방 데려다 주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많이 걸으니까 불룩했던 배가 다시 들어갔어."
"그렇네."
다연이가 자기 배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그렇게 잠시 걷고 있으니 다연이가 그 자리에 서서 앞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뭐지.
"다연아, 저기 뭐가 있어?"
"응, 있어!"
다연이는 그것이 뭔지 확실히 알았는지 손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선생님이다아."
다연이가 한참 손을 흔들고 있으니 저 멀리 형체만 보이던 사람이 걸어왔다.
다연이 말대로 그건 선생님이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다연이랑 어디 다녀오시는 길인가 봐요?"
다연이 선생님은 전과 달리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그 동안 맛있는 것들을 주고받은 효과가 생각보다 큰 모양이다.
"네! 언니 집에 데려다 주고 왔어요!"
다연이는 신난 듯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선생님의 그 말에 다연이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졸려 (무료 마지막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