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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뭐 하면 돼?"
다연이가 내게 물었다.
우리는 거실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짐을 정리하려고 한다.
집 안 전체적인 청소는 모두 끝마쳤지만 텔레비전 위나 책 위에 있는 먼지들은 직접 손으로 치워야 했기 때문에 예나와 구역을 나눠서 청소하고 있었다.
"다연이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연이가 뭘 하면 좋을지 생각한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다연이.
솔직히 시킬 만한 것이 없었다.
지금 하고 있는 건, 위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는 건데 그걸 다연이에게 시키기는 싫다.
다연이가 먼지를 뒤집어쓰지 않았으면 했으니까.
나는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면서 뭔가 할 만한 것들을 찾는다.
그러다가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꺼내서 다연이에게 건넸다.
"이거 깨끗하게 닦아줘. 할 수 있지?"
왠지 다연이가 실망할 것 같아서 빠르고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내 마음대로 됐는 진 모르겠지만.
"어... 알겠어! 열심히 할게!"
"자, 물티슈."
"열심히 닦을 거야...!"
다행히 다연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시계를 열심히 닦는다.
다연이가 그러고 있는 사이, 나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거실에 놓인 물건들 위에 쌓인 먼지를 거의 다 닦아낼 때까지 다연이는 열심히 시계를 닦고 있었다.
입술을 꾹 닫고선 어떻게 하면 시계를 더 깨끗하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깨끗하게에...."
그 때 예나가 내게 물었다.
"아저씨, 여기 다 했어요. 저 쪽 방 청소하고 있을 게요."
"응, 알겠어."
예나가 방으로 사라진다.
시계를 열심히 닦고 있던 다연이는 곧 만족한 듯 시계를 번쩍 들었다.
"됐따! 엄청 깨끗해!"
다연이 말처럼 깨끗해졌다.
"그렇네."
"그러면 나 이제 뭐해?"
다연이는 내게 도움이 되고 싶은지 다시 물어본다.
"이것만 끝내고 방으로 들어가서 청소할 거야. 그 동안 잠시만 기다려."
"알겠써!"
다연이가 오지 않았다면 이 넓은 집을 나 혼자 썼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다연이가 내게 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거실 청소가 끝났다.
처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다.
나와 다연이는 할머니가 머물던 방으로 향했다.
"여기는 내가 오빠 사진 가져왔던 방이야.."
방으로 들어선 다연이는 방 구석구석을 훑어보면서 감상에 젖었다.
처음으로 이 곳에서 사진을 가져왔던 날이 다연이가 우리 집에 온 지 이틀 째 되던 날이었으니까.
"사진은 어디 있었어?"
"여기."
다연이가 내 손을 끌고 와서 작은 테이블을 가리켰다.
목재로 된 낮은 테이블. 벽에 딱 붙어 있었고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다연이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할머니가 적은 것으로 보이는 쪽지가 있었다.
"이거 내가 봐도 돼?"
"응, 근데..."
다연이는 글 못 읽잖아, 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다연이 나름의 생각이 있겠지.
할머니가 왜 쪽지를 써 놓았는 진 모르겠다.
원래 그러시는 성격도 아니었고.
그럼 이 쪽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여기에 있었다는 말인가.
조금만 더 일찍 봤다면 좋았을 텐데. 조금만 더 일찍 올라올 걸.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나 이거 못 읽겠어. 오빠가 읽어줘."
쪽지를 한참 들여다보던 다연이는 끝내 글자를 해석하지 못하고 내게 쪽지를 내밀었다.
나는 다연이에게서 쪽지를 받고서 담담하게 글자를 읽어 내려갔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런 말들이 쓰여 있었다.
사진 많이 찍고 많이 놀러 다니라고.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이런 말들은 평소에도 할머니가 종종 하시던 말씀이었다. 할머니가 직접 하시던 행동들은 아니었지만 내가 이렇게 하길 바라셨다.
세상은 돈이 다가 아니라고. 돈이 많으면 물론 좋겠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그런 말들이 있었다.
어느 누군가의 명언 같은 그 말도 할머니가 가끔 하시던 말씀이다.
확실히 그런 할머니의 말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연이가 없었을 때, 나는 충분한 돈이 있었다. 혼자 살기에는 넘치는 돈이.
하지만 다연이와 같이 살게 된 다음에는 그런 여유는 없었지만 솔직히 그 때보다 더 행복하다.
그것도 많이.
"오빠, 뭐라고 적혀 있어?"
"할머니가 다연이 사진 많이 찍어주래."
"정말? 할머니가 그랬어?"
"응, 그리고 여기에 사진기가 있다고 하셨는데.."
나는 쪽지에 쓰인 말을 따라서 서랍을 열었다.
그러자 그 곳에는 할머니 말씀대로 손바닥보다 큰 폴라로이드 사진기가 있었다.
다연이가 납골당에 갖다 놓았던 그 사진을 찍었던 사진기였다.
"이게 뭐야?"
"사진기. 사진을 찍으면 여기서 사진이 바로 나와."
"언니가 찍었던 것처럼 휴대폰에 있는 게 아니라?"
"응,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나와."
"우와... 엄청 신기하다아.."
다연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사진기를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우와아..!"
마치 작은 강아지를 만지는 것 같다.
"이걸로 다연이 찍어줄까?"
"진짜..? 지금? 나를?"
"응."
다연이는 사진기라는 것을 처음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긴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알겠어. 나, 찍어줘."
다연이는 식당 앞에서 사진 찍을 때처럼 어색한 미소를 짓고 뻣뻣하게 그 자리에 서 있다.
"조금만 더 자연스럽게 웃어봐."
"히히... 이렇게?"
"아니..."
다연이가 자연스럽게 행동하려면 사진을 자주 찍는 수밖에 없겠다.
할머니가 하신 말씀처럼.
자주 찍고 자주 놀러 가야겠다.
"여기 수박 인형이 있다고 생각해 볼래?"
내가 수박 인형 대신 손을 치켜들면서 말했다.
이 손을 수박 인형이라고 생각하라는 의미였다.
"수박 인형..."
그러자 다연이의 표정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한다.
이내 자연스럽게 미소 짓는다.
"헤헤... 수박이야.."
아무래도 상상력이 뛰어난 모양이다.
사진기를 누르자 플래시가 터진다.
다연이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작게 말했다.
"번쩍 했어."
"응, 원래 번쩍하는 거야."
"휴대폰은 번쩍 안 하는데 왜 이거는 번쩍해?"
그건 나도 모르는데.
뭐라고 말해야 하지.
그러다 간신히 그럴 듯한 이유를 생각해냈고 다연이에게 말했다.
"여기는 어둡잖아. 휴대폰도 할 수 있어. 그런데 안 하는 거고."
"오... 엄청 쪼금 알 것 같아."
오늘도 새로운 지식이 생긴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갈수록 똑똑해져 가고 있었다.
지이잉.
다연이를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이 나온다.
"아무것도 없어."
"원래 이런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나와."
"음..."
내 말에 사진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다연이가 다시 내게 물었다.
"얼마나 지나야 되는 거야?"
"한... 5분쯤?"
사실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그렇게 대답했다.
그 정도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 이걸로 사진 찍어도 돼?"
"뭘 찍으려고?"
"오빠."
"찍기 싫은데.."
그러자 다연이가 살짝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이런 표정의 다연이를 보는 건 그리 좋진 않지만 나도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었다.
"나는 오빠랑 찍고 시퍼..."
"알겠어. 그럼 같이 찍자."
"오오..! 알겠어!"
다연이는 곧바로 내 무릎에 앉았다.
그리고 내가 어색하게 사진을 찍는다.
"이거는 내가 가질 거야! 그리고 이거는... 오빠 가져."
다연이가 내민 것은 다연이 혼자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은 시간이 지나서 완벽하게 나타났다.
"나 이걸로 언니 찍어도 돼?"
"응, 그런데 이건 필름이 얼마 없으니까 몇 장 못 찍어. 아무거나 찍지 말고 다연이가 꼭 찍고 싶은 거 찍어야 돼."
"알겠어!"
그렇게 말하고 나서 다연이가 재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예나가 있는 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 할머니의 쪽지로 시선을 옮긴다.
할머니는 내가 이 작은 식당에서만 머물길 바라지 않았기에 이런 말을 하신 것 같다.
자신처럼 외롭고 재미없게 살지 말고 나가서 놀라고.
나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절대로 혼자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다연이가 없었으면 나는 이 작은 공간이 전부라고 생각했을 거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물건들을 정리했다.
빨리 끝내고 다연이랑 놀아야지.
.
.
.
"사진 다 썼다아..."
다연이가 거실 한가운데에 털썩 주저앉아 힘이 빠진 얼굴로 말했다.
축 늘어져서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다.
"필름 몇 장 없다고 했잖아. 남은 것도 없는데."
"찍고 싶은 게 너무 많았써.."
힘이 빠진 다연이의 한 손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쥐어져 있었다.
나와 다연이가 같이 찍은 사진부터 시작해서 예나가 있는 사진도 있었고 언제 찍었는 진 모르겠지만 참새가 정면을 보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이 사진은 도대체 어떻게 찍은 걸까.
심지어 잘 찍었다.
"나중에 필름 다시 사 줄게. 대신 이 사진기로는 정말 가지고 싶은 사진만 찍는 거야. 다른 사진들은 오빠 휴대폰으로 찍고."
"알게써... 미아내.."
"미안한 건 아니야."
"웅..."
우리는 청소를 다 끝내고 버릴 짐들을 모은 채로 거실에 앉아있었다.
나와 예나는 축 늘어진 다연이를 보면서 힐링하고 있었다.
다연이 손에 있던 사진을 꺼낸 예나가 쭉 훑어보더니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다연이에게 말했다.
"다연아, 이 사진은 내가 가져도 돼?"
예나가 고른 사진은 다연이와 예나가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
"응, 언니 주려고 했었어."
"고마워."
예나는 자신의 휴대폰 케이스 뚜껑을 열고 그 사이에 즉석사진을 끼워 넣었다.
"이러면 안 구겨지겠지."
잠시 누워있다가 기운을 차린 다연이는 다시 일어나서 주변을 걸어 다녔다.
그러다가 우리가 버리려고 모아두었던 봉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이건 왜 다 버려?"
"이제 안 쓰는 물건이거든. 안 쓰는 건 버릴 줄 알아야 돼."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던 다연이가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는지 다시 물었다.
"그럼 인형도 안 가지고 놀면 버릴 거야?"
살짝 놀란 얼굴이다.
"아니, 그건 다연이가 좋아하는 거잖아."
"휴.. 맞아. 내가 좋아하는 거야. 그리고 매일 인형 가지고 놀 거야."
왜 이런 걱정을 했는 진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지금은 안심하니 다행이다.
나는 예나에게 말했다.
"이건 내가 버리고 올 테니까 그 동안 다연이랑 놀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저녁으로 뭐 먹을지도 생각하고."
"넵."
예나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나는 짐을 짊어지고 식당을 나선다.
"휴..."
생각보다 버릴 것들이 많았는지 짊어진 짐이 무겁다.
.
.
.
버릴 것들을 버리고 난 뒤, 다시 식당으로 돌아와 잠긴 문을 열었다.
잠깐 나갔다 오는 거지만 불안한 마음에 그렇게 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다연이와 예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뭔가 재밌는 걸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제 슬슬 어두워지는 중이었다.
청소를 점심 먹고 난 뒤에 바로 시작했는데 해가 질 무렵에서야 끝났다.
그래도 예나가 도와줬기에 망정이지 혼자였다면 한참이 걸렸을 것이다.
나는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빨리 저녁을 먹고 예나를 보내야겠다.
"저녁으로 뭐 먹을지 정했어?"
내가 그렇게 물으면서 2층에 도착하니 예나와 다연이는 바닥에 엎드린 채 예나의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걸 보고 웃고 있었던 것 같다.
"응, 정했어!"
"뭔데?"
그러자 다연이가 예나의 휴대폰을 집어 들고 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치킨!"
배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