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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동생이 생겼다-46화 (46/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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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를 만드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지만 할 일은 많다.

그래도 단순해서 하다보면 금방 끝나 있을 것 같다.

"이거는 엄청 신기하게 생겼다! 오빠 휴대폰에서 봤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다연이가 당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렇게 쭉 뻗어있는 면은 거의 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 게다가 삶아내면 반투명하게 바뀔 거다.

그 모습을 본 다연이의 반응을 상상하는 것도 재밌다.

나는 필요한 채소들을 볶으면서 예전을 떠올렸다.

내가 잡채를 처음 먹었을 때.

그 때도 내 옆엔 할머니가 있었다.

그 날은 명절날이었는데 할머니는 제사 지낼 사람이 없음에도 명절 음식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왜 그러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있어. 그럴 만한 사람이.'

나중에서야 알게 됐지만 그 사람은 할머니를 처음 받아줬던 식당의 사장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 때의 인연이 지금 나에게까지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든 그 때 먹은 음식 중 하나가 이 잡채였다.

할머니를 도와 만들긴 했지만 가끔 돌아오는 명절 때마다 한 것이 전부였기에 세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 때문에 지금은 요리를 하기 전, 영상을 참고 해서 만들고 있다.

"오빠는 요리할 때가 제일 멋있어."

다연이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그럼 평소에는?"

"평소에도!"

괜히 그렇게 묻고 싶었다.

만족스런 대답이 돌아와서 다행이다.

영상을 보다보니 잡채도 김밥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생김새가 그랬다.

형형색색의 재료들. 마치 김밥을 풀어낸 것 같다.

나는 짧은 감상을 마친 뒤, 당근, 양파, 시금치 등등을 볶고 데쳐서 완성된 당면과 함께 버무려준다.

"우와... 물에 넣으니까 엄청 긴 게 말랑말랑해졌어..!"

"조금만 기다리면 완성이야."

"그러면 나도 준비할게!"

다연이는 그렇게 말한 다음 의자에서 내려와 밥을 먹기 위한 준비를 한다.

다연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봤자 테이블을 닦는 것과 내가 건네준 수저를 세팅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도와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나도 잡채를 마저 버무려준다.

"다연아, 한 번 먹어볼래?"

"응!"

나는 완벽하게 버무린 잡채를 아주 조금 집어서 다연이에게 준다.

"아..."

나를 향해 입을 벌리던 다연이가 입 안 가득 잡채를 머금고 귀엽게 오물거렸다.

"어때?"

"마시써! 엄처엉!"

다연이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완성된 잡채를 그릇에 덜어놓는다. 하나는 우리가 먹을 거고 나머지 하나는 선생님께 드릴 거다.

아직 김이 피어오르는 그릇 위에 뚜껑을 덮는다.

"됐다. 다 끝났어, 다연아."

"그러면 빨리 가자! 선생님한테 갖다 주러!"

"자, 다연이가 갖다 줘."

"알겠어!"

잔뜩 신난 다연이가 겉옷만 걸치고 신발을 신었다.

나도 그런 다연이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간다.

"선생님이 좋아하겠지?"

"다연이가 주는 거니까 좋아할 거야."

나는 다연이를 대신해서 선생님 집 문을 두드린다.

똑똑.

잠시 후,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그러자 다연이가 대답했다.

"다연이에요."

복도니까 울리지 않게 조용히 낸 소리에 문이 벌컥 열린다.

"어.. 무슨 일이세요?"

"다연이가 이거 드리고 싶다고 해서요."

내 말에 다연이가 손에 들고 있던 반찬통을 내미었다.

"이거 선생님 주고 싶어요. 잡채에요. 오빠가 한 거."

"어... 저는 정말 괜찮은데.."

다연이가 말했지만 선생님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선물 같은 음식이 그리 싫진 않은지 표정은 좋았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은 다연이를 보는 기분이다.

"둘이서 먹기엔 재료가 많아서 선생님도 드시라고 같이 만들었습니다."

"감사해요. 저도 뭐 드리고 싶은데 당장은 드릴만한 게 없네요... 대신 이거 돌려드릴 때 다른 것도 꼭 같이 보낼게요!"

이렇게 기분 좋은 얼굴을 보니 다연이 말대로 갖다드려서 다행이다.

"선생님, 좋아요?"

"응, 좋아. 고마워 다연아."

"헤.. 맛있게 먹어요!"

"그래, 다연이도 맛있게 먹어."

우리는 여러 번 인사를 나눈 다음에야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선생님이 좋아해서 다행이야!"

"그래, 다행이네."

"선생님, 진짜 좋아했어! 얼굴 빨게 질 정도로!"

그랬었나.

잘 기억나진 않았다. 그래도 좋아했다니 다행이다.

우리는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 이제야 식사를 시작한다.

다연이도 작은 젓가락으로 잡채를 가득 집었다. 그리고 한 가득 먹는다.

"오빠, 최고야! 정말 정말 맛있어!"

"처음 먹어보는 건데도 맛있나 보네."

"응! 어엄청!"

양 볼을 가득 부풀리면서 오물오물 먹는 모습이 귀엽다.

다연이는 입 안에 있는 것들을 꿀꺽 삼키고 나서 곧바로 다시 잡채가 있는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이제 다른 반찬들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어..?"

그러나 이번에는 처음처럼 매끄럽게 먹지 못했다.

잡채에 참기름을 많이 넣은 만큼 생각보다 미끄럽다.

나 같은 어른들이야 상관없지만 다연이는 조금 힘들어 보인다.

"아까는 잘 됐는데에..."

몇 번 더 시도하던 다연이는 이내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을 빼고 우울한 얼굴을 했다.

이런 표정을 짓는 것도 너무 귀엽다.

잘 볼 수 없는 얼굴이라서 그런 건가.

"그러면 이렇게 먹어보자."

나는 조금 큰 그릇을 가져와 절반엔 밥을 담고 나머지 절반에는 잡채를 담았다.

이렇게 하면 다연이도 편하게 먹을 수 있을 거다.

"우와... 이렇게 하는 것도 예뻐."

"이건 잡채밥이야. 원래 이런 메뉴가 있어."

"잡채밥..."

다연이는 그 말이 좋은지 웃으면서 작게 되뇌었다.

그리고 다시 맛있게 식사를 시작한다.

처음으로 혼자 만든 것 치고는 잘 됐다.

당면도 탱글탱글하니 잘 삶았고, 다른 채소들은 식당에서 늘 하던 것처럼 잘 볶고 데쳤다.

막상하고 보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연이도 좋아하니까 앞으로 더 자주 해줘야겠다.

"마시써..."

아예 그릇에 얼굴을 묻은 채 먹고 있던 다연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입가에 뭔가가 잔뜩 묻어 있었다.

"진짜 마시따! 이렇게 먹으니까 더 맛있어!"

"그래, 다연이가 맛있게 먹으니까 좋다."

"정말 내가 맛있게 먹으면 오빠가 좋아?"

"응."

"그러면 더 맛있게 먹어야지!"

그러곤 다시 밥을 먹기 시작한다.

"얼굴에 묻은 건 나중에 닦자."

"응!"

힘차게 대답했지만 다연이는 딱히 상관이 없는 듯 했다.

.

.

.

"후후!"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연이와 같이 어린이집으로 가는 중이다.

"어제 잡채는 엄청 엄청 맛있었따?"

맛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와중에 다연이가 어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다연이는 팔을 이만큼이나 뻗으면서 어제 먹었던 잡채가 얼마나 맛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중이다.

"오빠, 근데 어제 선생님도 맛있게 먹었을까? 나는 엄청 맛있게 먹어서 선생님도 좋아할 거 같아."

"맛있게 먹었을 거야. 다연이도 좋아했으니까."

"맞아!"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 우리는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오빠랑 이야기하니까 벌써 왔어!"

"그렇네."

그렇게 말하며 웃는 다연이의 손에는 어제 샀던 수박 캐릭터의 열쇠고리가 있었다.

이건 다연이가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싶다고 가져온 것이다.

잃어버릴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다연이는 '오늘만 가지고 가고 내일부터는 오빠 식당에 놔둘 거야!' 라고 말했다.

"수박이랑 놀다 올게!"

다연이는 열쇠고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이제는 어린이집에 가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런 날은 이미 옛날이 돼 버렸다.

내가 어린이집 문을 열자 어린이집 선생님이 나와 다연이를 맞아준다.

옆집에 사는 그 분은 아니었다.

"안녀엉!"

"안녕, 다시 데리러 올게."

"응!"

다연이는 익숙하게 인사를 하고 어린이집으로 들어간다.

다연이가 아무렇지 않게 어린이집으로 가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면서도 가슴이 조금 쓰리다.

아빠들이 이런 마음이구나.

계속 같이 있겠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빨리 가자."

이럴 땐 일이라도 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

오빠를 떠나보내고 어린이집으로 들어간 다연이의 손에는 수박 캐릭터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다연아, 안녕."

반으로 들어가는 길에 선생님들이 인사했다.

어린이집에는 여러 명의 선생님이 있었고 그 선생님들은 모두 다연이를 좋아한다.

그건 다연이도 마찬가지였다.

"안녕 하세요!"

허리 숙여서 인사를 한 다연이는 다시 고개를 들어 선생님들이 있는 쪽을 바라본다.

거기엔 어제 다연이가 잡채를 선물해줬던 그 선생님도 있었다. 정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생님.

다연이는 그 선생님에게 향했다.

"선생님!"

"응, 다연아. 왜?"

"선생님, 잡채 맛있었어요?"

"응, 맛있게 잘 먹었어. 선생님도 맛있는 거 만들어서 다시 돌려줄게."

다연이는 선생님의 말을 듣는 동안 자신의 입 꼬리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연이가 좋아하는 오빠의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다연이의 기분은 최고였다.

"우리 오빠는요. 요리를 엄청 잘해요! 그래서 선생님도 맛있는 거예요."

"그래, 맞아. 정말 맛있더라."

"헤.."

다연이가 기분 좋게 웃으면서 선생님을 바라본다.

"다연아!"

그 때 뒤에서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그러면 나는 갈게요!"

"응, 조금 있다가 선생님도 갈게."

"네!"

그리고 다연이가 도도도 달려서 사라진다.

그랬던 다연이가 사라지자마자 옆에 있던 다른 선생님들이 정인에게 물었다.

"뭐에요? 주말에 다연이 만났어요?"

"네, 같은 빌라에 살더라고요."

정인은 어제 다연이와 다연이의 오빠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그날따라 유독 예쁜 옷을 입고 있었던 다연이와 그 옆에서 있던 오빠.

그리고 그 날 저녁에 다시 만났던 때가 생각난다.

"그럼 그.. 맛있게 먹었다는 건 뭐에요?"

"아.. 다연이 오빠 분이 잡채 하신 걸 가져다 주셔서..."

"오... 정인 씨.. 능력 좋네요. 다연이 오빠 분 잘생기셨던데."

"아,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정인의 동료 선생님이 살짝 웃었다.

물론 정인도 그게 농담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다연이 오빠 분은 인상과 달리 착하신 것 같기도 했고.

정인은 동시에 어제 마트에서 우연히 들었던 다연이와 오빠 분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때 동료 선생님이 장난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어? 정인 씨. 얼굴 왜 빨게 진 거예요?"

"아.. 아니에요. 빨게 지기는 뭘.. 그럼 저는 가 볼게요..."

"네에, 수고 하세요."

분명 어제 먹었던 잡채는 맛있었다.

독립하면서는 그렇게 정성이 들어간 음식은 처음 먹어보는 것 같았다.

솔직히 혼자 살면서 잡채 같은 걸 먹을 줄은 생각도 못했었는데.

반찬통을 다시 돌려줄 때는 나름 맛있는 걸 담아서 보내줘야겠다.

그걸 다연이와 오빠 분이 맛있게 먹길 바랐고.

그런 생각을 하니 미소가 지어졌다. 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이거느은... 어제 언니가 사준 수박이야!"

6살 아이들이 모여 있는 반에서 다연이의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친구들에게 뭔가를 자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오빠도 어엄청 큰 수박 인형 사줬어!"

"우와....!"

어제 오전에 만났던 게 저거 때문이었나.

다연이의 말에 다른 아이들이 작게 환호한다.

그리고 정인이 반으로 들어갔다.

"안녕 하세요!"

"안녕!"

아이들이 인사했고 정인도 인사를 받아준다.

"선생님! 이거 오빠랑 언니가 사준 거예요!"

다연이가 수박 캐릭터의 열쇠고리를 번쩍 들면서 말했다.

"언니..?"

"네!"

다연이에게 언니는 없었던 것 같은데.

누굴까.

"응, 예쁘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청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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