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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동생이 생겼다-44화 (4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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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오후, 다연이는 목욕을 한 뒤 오빠와 같이 잠자리에 누웠다.

원래 늘 낮잠을 자는 시간이었기 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오빠랑 같이 잠자리에 누우니 거짓말처럼 잠에 들지 않았다.

"흠...."

오빠는 벌써 잠에 들어있다.

오빠도 샤워를 했기 때문에 옆에 누워만 있어도 좋은 냄새가 난다.

다연이는 그 향기를 맡으면서 다시 눈을 감았지만 이내 다시 벌떡 일어났다.

"졸린데에..."

분명히 졸린데 이상하게 잠에는 들지 않았다.

다연이는 눈을 비비고 나서 잠자리에서 완전히 일어선다.

"흐아암."

그리고 높이가 낮은 테이블에 오빠가 놓아둔 컵을 집었다.

이건 다연이가 물을 마실 때 쓰는 컵이다. 그 옆에는 물통이 있다.

다연이는 익숙하게 물통을 들어서 컵에 따라 마신다.

"시원하다아."

물을 마시고선 입가를 슥슥 닦았다.

그러곤 잠에 들지 않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수박 인형이랑 같이 자면 좋을 텐데..."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샀던 수박 인형. 다연이는 수박 인형을 아주 좋아했다.

좋아하는 캐릭터이기도 했고 오빠가 사 준 거니까.

그런데 그 수박 인형은 지금 빨래 건조대에 힘없이 누워있다.

오빠가 그런 곳에 있었던 인형은 한 번 씻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물 떨어진다아..."

건조대에 있는 인형에게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다연이는 당장 수박 인형을 가지고 놀고 싶었지만 오빠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오늘 오빠 말을 듣지 않아서 울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연이는 떨어진 물을 손가락으로 만진다.

물에서 기분 좋은 향기가 났다. 그 향기는 건조대에 있는 인형에게서도 났다.

"냄새 좋다."

그렇게 잠깐 향기를 맡다가 다시 돌아선다. 그리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심심했다.

잠도 들지 않았고 그렇다고 다른 재미있는 것들도 없다.

다연이는 다시 일어나서 주변에 있는 것들을 툭툭 건들다가 문득 식탁 위에 놓인 예나 언니가 사준 열쇠고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맞아, 언니도 수박이 사줬었지."

다연이는 뒤늦게 떠오른 생각에 터벅터벅 걸어갔다.

저걸 손에 쥐고 자면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쇠고리가 놓인 식탁은 다연이의 키보다 높이 있었다. 당연히 손은 닿지 않았다.

"그래도 할 수 있찌."

다연이 말처럼 그래도 열쇠고리를 가져올 방법은 있다.

바로 옆에 의자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끙..."

다연이는 의자를 살짝 빼낸 뒤, 그 위에 올라가서 열쇠고리를 손에 쥐었다.

"됐따아...!"

다연이는 열쇠고리를 손에 쥔 채 아주 작게 환호를 한 다음 다시 의자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곧바로 오빠 옆으로 향했다.

이제는 잠에 들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다연이는 이불을 덮고 자리에 누웠다.

"흠...."

오빠의 숨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으니 숨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그래서 다연이는 오빠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간다.

"오..."

따뜻하다. 그래서 잠이 더 잘 들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연이는 그제야 알았다.

잠에 들려면 수박 인형이 있어야 되는 게 아니라 오빠 옆에 딱 붙어 있어야 되는 구나.

그래도 손에는 열쇠고리를 꼭 쥐고 있었다.

"흠..."

다연이는 오빠 옆으로 더 다가간다.

어느 새 옆에 찰싹 붙어 있었다.

꾸물꾸물 움직이던 다연이는 기어이 오빠의 가슴팍에 머리를 베고 눕는다.

예전에 팔베개를 해줬던 것이 기억났기에 그러고 싶었지만 오빠가 팔을 몸에 딱 붙이고 자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누웠던 거다.

"우아..."

심장소리가 들린다.

오빠가 숨 쉴 때마다 머리가 들썩들썩 거렸다.

"잘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말한 다연이는 얼마 되지도 않아서 잠에 들었다.

"쿠우..."

***

다연이와 같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개운했다.

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일어났을 땐 다연이가 나를 베고 잠에 들어 있었다.

이유를 물어봤을 땐 '잠이 안 들어서 그랬어.'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게 어찌됐든 지금 나와 다연이는 잠이 완전히 깬 상태로 내 휴대폰을 동시에 들여다보고 있었다.

낮잠을 자서 잊어버렸지만 분명 예나가 좋은 사진을 보내두겠다고 말했었다.

그 사실을 뒤늦기 기억해 낸 다연이가 '사진 보여줘!' 라고 말해서 지금은 다연이와 함께 사진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사진 몇 개나 왔어?"

"두 개."

그렇게나 많이 찍었는데 두 장 밖에 오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그 많은 사진들이 전부 좋았었는데.

"나 엄청 많이 찍었는데. 왜 두 장만 있어?"

"예나가 잘 나온 사진을 열심히 골랐나봐. 다연이 예쁘게 나온 사진 주려고."

"우아.... 무슨 말인지 알게써.."

사진 밑으로는 예나가 보낸 말이 쓰여 있었다.

'잘 나온 것 중에서도 잘 나온 걸 고른 거예요. 이거 고르는데 한 시간이나 걸렸어요.'

그리고 내가 답장을 했다.

'그래. 잘 볼게.'

그렇게 쓰고 보내려고 할 때 다연이가 옆에서 끼어들어서 말했다.

"오빠! 이거도 보내줘!"

"이거?"

"응!"

다연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예나가 보낸 이모티콘이었다.

이모티콘은 한 번도 써 본 적 없지만 다연이가 보내고 싶다니 그렇게 하기로 했다.

기본 이모티콘 페이지를 열어서 다연이한테 고르게 시켰다.

한참 웃으면서 화면을 보던 다연이는 이내 이모티콘 하나를 찍는다.

"이거 엄청 귀엽다! 내가 감사합니다! 할 때처럼 고개 숙이고 있어!"

"그럼 이거 보낼까?"

"응!"

다연이가 고른 건 캐릭터가 허리를 숙이면서 감사합니다, 라고 쓰여 있는 이모티콘이다.

글을 읽을 순 없었지만 대충 캐릭터의 행동을 보고 이해한 모양이었다.

"보낼게."

"이거 엄청 귀여워!"

다연이가 그걸 보면서 웃는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휴대폰을 보고 있는 이유는 이모티콘 때문이 아니었다.

예나가 보낸 사진이었다.

"다연아, 앉아서 같이 사진보자."

"응!"

다연이는 활기차게 말하고선 양반다리를 한 내 위에 살포시 앉는다.

"그럼 이거부터 볼게."

예나가 보낸 사진 두 장은 다연이가 한 손에 인형을 들고 있는 서 있는 사진 한 컷과 인형을 품에 가득 안은 채 열쇠고리와 함께 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나는 그 중에서 한 손에 인형을 들고 있는 사진을 먼저 고른다.

"우와아... 이게 나야...?"

"응, 다연이 맞아."

"오오..."

다연이는 마음에 든 듯 사진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나는 다연이가 한참 감상하게 놔둔 뒤 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우와! 이거도 예뻐."

다연이 말처럼 인형을 가득 안고 있는 사진도 좋다.

꼭 광고 모델 같다.

"내가... 이렇게 예뻐..?"

다연이는 감탄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나 말처럼 다연인는 자기가 예쁜 걸 아는 편이었다. 비록 예쁜 옷을 입었던 오늘만이지만.

물론 나한테는 언제나 예뻤다.

"응, 예뻐."

"우와... 언니 사진 잘 찍는다."

"그래, 엄청 잘 찍네. 나도 이렇게 잘 찍는 줄 몰랐어."

예나의 사진 솜씨는 정말로 좋았다.

사진에 문외한인 나는 이렇게 절대 못 찍는다.

예나에게 부탁하길 잘 한 것 같다.

"근데 이거 왜 찍었다고 했지..? 나 잊어버렸어."

"휴대폰 배경 화면으로 할 거야."

"나를..?"

"응. 조금만 기다려 봐. 보여줄게."

사실 배경 화면으로 설정할 사진은 이미 정해뒀다.

바로 첫 번째 사진이다.

두 번째로 보내준 사진도 좋지만 두 번째는 예나가 사준 열쇠고리가 같이 있었고 첫 번째 사진은 내가 사준 인형만 있다.

조금 유치하지만 내가 사준 인형만 들고 있는 사진이 더 좋다. 예나는 아마 나랑 반대겠지.

나는 그 사진을 배경 화면으로 설정하고 잘 됐는지 확인했다.

다연이를 가리는 어플들을 전부 치워버린다.

"됐어..?"

"응, 다연이 예쁘다. 엄청."

"진짜?"

됐다는 내 말을 듣고 다연이가 나와 휴대폰 사이로 얼굴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도 볼래."

"자."

예쁘다. 배경 화면도 그렇고 다연이도 그렇고.

사진 찍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오... 내가 여기에 있어..."

"응, 화면 켤 때마다 다연이가 있어."

나는 휴대폰 화면을 껐다 켰다를 반복하면서 다연이에게 보여준다.

"우와..! 내가 여기에 갇혀 있는 것 같아!"

다연이는 자기가 내 휴대폰 안에 있는 것이 좋은 듯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한참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 다연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해야 할 것을 떠올렸다.

내가 다연이를 내 앞에 앉힌 이유는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그러는 김에 사진도 볼 생각은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다연아."

"응?"

휴대폰을 보고 있던 다연이는 여전히 웃은 채로 나를 본다.

"왜 그래, 오빠?"

"오늘 오빠가 다연이 찾아다녔던 거 기억해?"

"응...."

다연이는 그 말을 듣자 바로 시무룩해졌다.

이런 반응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내가 다연이에게 말하려 한 건 만약에 다연이가 거리에서 나를 잃어버렸을 때 다시 찾기 위한 방법들이었다.

그리 거창한 방법은 아니지만 가르쳐 주는 것과 가르쳐 주지 않는 건 큰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미안해...."

"아니야, 그게 아니라 앞으로 다연이가 나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려고 하는 거야."

"그런 거야...?"

그제야 다연이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응."

"그건 나도 알고 싶어...! 만약에 오빠 잃어버려도 다시 찾아오고 싶으니까!"

오히려 더 열정이 차오른다.

오늘처럼 떨어지면 안 되니까.

"그러면 일단 내 전화번호부터 외우자."

"알겠어!"

"그 다음은 주소. 천천히 하면 될 거야."

"응! 꼭 외워서 오빠랑 같이 있을 게!"

"그래."

전화번호와 주소는 아이들이 외우기엔 길다.

다연이가 잘 외울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만일을 위해서 해야 한다.

"외울 꺼야!"

다연이가 자신 있게 말했다.

.

"힘들어...."

몇 번 숫자들과 주소를 외우던 다연이가 내 품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리고 내 무릎을 베개 삼아 그 자리에 눕는다.

"지금 바로 안 외워도 돼. 틈 날 때마다 하면 되지."

"바로 외우고 싶었는데... 오빠랑 헤어져도 다시 찾아와야 하잖아."

"음... 그건 맞긴 한데 천천히 하자. 어차피 한 번 만에 되는 건 아니니까."

"응..."

그렇게 한동안 누워있던 다연이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정확하게는 건조대에 넌 인형을 향해 있었다.

"인형... 다 말랐어?"

"아니, 아직 안 말랐을 거야."

"빨리 수박 인형 가지고 놀고 싶다아..."

나도 다연이 말처럼 빨리 인형이 말랐으면 좋겠지만 하루 종일은 말려야 할 것이다.

바깥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직 봄날이라 해가 빨리 진다. 완전히 어둡진 않았지만 집 안은 곧 불을 켜야 할 것 같다.

"어두워. 오빠, 우리 또 잘까?"

전혀 졸리지 않는 목소리로 다연이가 말했다.

장난스런 말투였다.

"밥 먹어야 하는데?"

"아, 맞아. 밥 먹어야 해. 나 지금 배고파."

"많이 배고파? 지금 밥 하면 좋겠어?"

"아니, 쪼금 배고파."

그래도 이제 슬슬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긴 했다.

"그러면 밥 먹을 준비해 볼까?"

"응! 그러자!"

다연이는 내 무릎에서 벌떡 일어난 다음 집 안의 불을 켰다.

"밝아져따!"

나는 형광등을 보면서 자신 있게 외치는 다연이를 보고 있었다.

같이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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