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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인데."
다연이가 내 표정과 말투를 따라하면서 말했다.
"크크, 아저씨가 그랬어?"
"응, 오빠가 비밀인데, 이렇게 말했어."
다연이는 내가 했던 그 말이 꽤 인상적이었는지 예나에게 날 따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연이는 아저씨가 그렇게 말한 게 좋아?"
"응! 오빠가 나한테 처음으로 그렇게 말했어."
다연이는 나를 보며 말했다.
"오빠, 또 그 말 해주면 안 돼? 비밀인데, 하는 거."
장난스런 말투로 말한다.
다연이와 나는 벌써 장난까지 칠 정도로 많이 친해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낯설어 했던 첫 만남이 생각난다.
그 때라면 이런 말은 하지도 못했을 텐데.
"응? 해줘."
"해줘요, 아저씨. 저도 아저씨가 그렇게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하는 건 처음 듣는데."
"...."
다연이가 내 다리를 꼭 잡고 말했다.
보통이라면 다연이가 해 달라는 건 다 해주는 편이지만.
"...싫어."
이건 싫다.
조금 부끄러운데.
"오..! 오빠가 싫어, 라고 했어!"
의외로 그 말에 다연이는 박수까지 치면서 좋아한다.
"오빠가 싫어, 라고 한 게 더 좋아!"
다연이는 그러면서 내 다리를 꽉 안았다.
"그게 왜 좋아."
"오빠가 나한테 그렇게 말한 적 없었잖아!"
"그게 싫다고 하는 건데도?"
"응! 내가 싫은 거면 나도 울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서 괜찮은 거야!"
순간 웃음이 새어 나오려 했지만 그러진 않았다.
대신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다연아, 이제 다 왔어. 비밀이라고 한 곳."
"정말? 벌써?"
"응, 벌써."
다연이는 그제야 내 다리에서 떨어져 주변을 살펴본다.
"오... 근데 잘 모르겠어. 여기가 어디야?"
"다연아, 거기가 아니라 여기를 봐야지."
내 말에 다연이는 뒤돌아서 앞에 있는 건물을 확인한다.
"와아...! 나 이거 뭔 줄 알아!"
그 건물을 보고선 감탄을 터뜨리는 다연이.
간판은 읽을 수 없었지만 문에 그려진 캐릭터는 알고 있었다.
"수박 인형이야!"
다연이가 벽에 그려진 캐릭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오늘 다연이가 오기 전에 집에서 봤었던 영상 속 캐릭터의 인형을 팔고 있는 곳이었다.
이 캐릭터는 과일들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들이었는데 아이들도 물론이고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캐릭터였다.
다연이도 좋아하는 캐릭터다.
"딸기도 있고 포도도 있어!"
그 중 다연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수박 인형이었다.
나에게 설명까지 할 정도로 좋아한다.
이 곳은 그런 캐릭터들의 상품들을 파는 곳이다. 일명 굿즈를 파는 곳.
"오빠! 비밀이 이거야?"
"응, 이거 맞아. 오늘 다연이가 수박 인형 말했잖아."
"우와... 그냥 말만 했던 건데! 진짜 수박 인형이 있어!"
매장 입구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던 다연이가 다시 말했다.
"오빠, 우리 여기 들어가는 거야?"
"응, 가자."
"오오...!"
우리들은 그 매장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 말고도 다른 손님들이 많이 있었다.
유명한 브랜드이니 그럴 만도 했다. 더군다나 오늘은 주말이니까.
"우와, 멋있따..!"
다연이는 감회에 젖은 눈빛으로 주변을 살펴보다가 예나에게 물었다.
"언니, 언니는 여기 와봤어?"
"응, 예전에 친구들이랑."
"우와.... 진짜..?"
"응, 진짜로."
"그러면 언니가 설명해줘! 나는 수박이 제일 좋아!"
어른들에게도 유명한 곳이다 보니 학생들도 많이 오는 모양이다.
물론 나는 잘 모른다.
"알겠어. 다연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수박이라면.. 언니도 다연이가 원하는 거 하나 사 줄게!"
"오.... 지.. 진짜..?"
다연이는 좋으면서도 조심스런 말투로 말했다.
"오빠... 언니가 사 준데. 어떡해..?"
어떡하냐는 말이 웃겼지만일단 다연이의 말에 예나에게 말했다.
"다연이 꺼는 내가 사줘도 되는데."
"저도 사주고 싶어요! 너무 비싼 건 안 되지만."
예나의 말이 뭘 의미하는 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자기가 사 준 뭔가를 다연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런 거라면 내가 말릴 수는 없었다.
"알겠어, 대신 부담되지 않는 걸로 해."
"네, 알겠어요."
나와 예나가 하는 말을 듣고 있던 다연이가 말했다.
"정말..? 그럼 오빠가 사주는 거랑 언니가 사주는 거랑 두 개 가질 수 있는 거야..?"
"응! 그러니까 빨리 고르러 가자."
"알겠써!"
잔뜩 신난 다연이가 발을 동동 굴렀다.
나도 다연이와 마찬가지로 이런 곳은 처음 왔기 때문에 예나 뒤를 졸졸 따라 나선다.
.
.
"수박 인형!"
우리들은 매장에서 만족스런 쇼핑을 끝내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사실 쇼핑을 한 건 다연이 뿐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다연이는 한 손에 수박 모양의 인형을 들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수박 모양 캐릭터의 열쇠고리가 있었다.
인형을 안고 좋아하는 다연이에게 예나가 물었다.
"그게 왜 그렇게 좋아?"
"수박 인형 엄청 귀엽잖아! 이거 봐!"
다연이는 인형의 팔을 붙잡고 공중에서 휘적거린다.
그러자 수박 인형이 힘없이 흔들거렸다.
"맞지!"
"응."
다연이는 머리보다 큰 수박 인형은 양 손으로 안았다.
"열쇠고리도 좋지?"
"응! 이거도 엄청 귀여워. 나도 열쇠가 있었으면 더 좋은데."
그래서 다연이는 열쇠 대신 손가락에 끼운 채로 걸었다.
"그래서 언니가 사준 거니까 잘 가지고 있을 거야! 나중에 가방 생기면 거기에 붙일게!"
"알겠어. 그 때까지 잘 가지고 있어야 돼?"
"응! 아니면... 여기 수박 인형에 붙일 거야! 여기에!"
다연이가 나에게 인형을 들이밀면서 말했다.
수박 인형에는 옆구리에 상표를 걸어놓았던 곳이 있었는데 그 곳을 가리켰다.
"여기에 붙이면 되겠지?"
"응, 그러면 좋을 것 같아."
"오빠 이거 붙여 줄 수 있어?"
"응, 걸어줄게."
나는 다연이의 말에 따라 열쇠고리를 걸었다.
수박 인형에 인형과 똑같이 생긴 열쇠고리가 달렸다.
"귀엽다!"
"다행이네."
"이렇게 하면 언니도 좋아할 거지?"
"응, 당연하지! 이거 절대 잃어버리면 안 돼."
"절때 안 잃어버려! 내가 꼭 가지고 있을 거야! 이사 갈 때도 꼭 가지고 갈 거야!"
"이사..?"
"응!"
그 말에 예나가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저씨 이사 가요?"
"응, 할머니가 살던 건물로."
"아... 난 또 다른 데로 간다는 줄 알고 놀랐네요."
"다른 데는 안 가. 할머니 식당이 여기 있잖아."
"네, 아저씨는 그럴 것 같아요."
예나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수박 인형..."
다연이는 우리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오늘 새로 산 인형을 보고 있었다.
인형은 귀여웠지만 조금 컸고 열쇠고리도 달아놨기 때문에 바닥에 닿을랑 말랑 하고 있었다.
"다연아, 이거 오빠가 들어줄까?"
"아니야! 내가 가지고 갈게! 내가 가지고 가고 싶어."
"알겠어."
인형이 많이 좋은 모양이다.
처음에 했던 걱정과는 달리 내 선물에 다연이가 만족해서 다행이다.
"어..! 아저씨, 신호 바뀌었어요. 빨리 가요!"
예나는 우리가 건너야 할 신호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잠깐 뛸까, 생각하다가 그러지 않았다.
"그냥 걷자. 조금 기다렸다 가지, 뭐."
"네, 아저씨가 그러고 싶으면 그래요."
"오... 인형.."
다연이는 그런 와중에도 인형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
.
.
"다연아, 식당 앞에 한 번 서 볼래?"
"알겠어!"
우리는 다연이의 인형을 산 뒤, 식당으로 왔다.
바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다연이는 예나의 말에 곧바로 식당 앞으로 가서 그 자리에 서 있는다.
"어... 조금만 자연스럽게 서 볼래?"
"자연스럽게..? 그게 뭔지 모르겠어."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몸에 힘을 빼고 언니보고 웃어줘."
"알겠어. 해 볼게."
다연이는 그렇게 말하고선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그리고 예나를 보면서 누가 봐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예나가 말했다.
"다연이, 너..."
"나..?"
"사진 찍는 게 처음이구나?"
"맞아.."
어깨를 더욱 늘어뜨리는 다연이에게 말했다.
"처음이라도 괜찮아. 휴대폰 보고 다시 한 번 서 볼래?"
"알게써..."
나는 축 늘어진 다연이를 보고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다연이가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이번에 찍을 사진은 내 배경화면에도 들어갈 사진이다. 이왕이면 아주 예쁘게 찍고 싶은 욕심이 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내 품에 있는 수박 인형에게 시선이 닿았다.
이거라면 다연이도 조금 긴장을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인형을 가지고 다연이에게 걸어간다.
"다연아, 이거 들고 사진 찍어 볼래?"
아니나 다를까 다연이는 인형을 품에 안자마자 순식간에 표정이 밝아졌다.
"인형 좋아...."
"어..! 다연아, 지금 표정 좋다. 이 쪽 봐줘."
"응!"
다연이는 인형을 품에 꼭 안은 채 미소 짓는다.
방금 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미소다.
"좋아! 너무 귀여워!"
다연이가 별 다른 포즈를 취하지도 않는데 예나는 연달아 사진을 찍었다.
"다연아, 혹시 내가 준 열쇠고리도 들어 줄 수 있어?"
"알겠어!"
이제 긴장은 모조리 날아간 다연이는 서툴게 열쇠고리를 뺀다.
물론 다연이 혼자는 잘 되지 않아서 내가 도와줬다.
다연이는 인형 배에 열쇠고리를 얹고선 자연스런 미소를 짓는다.
"너어무 귀여워...!"
그렇게 열정적이던 예나의 촬영이 끝났다.
"나 예쁘게 찍었어?"
"응!"
"그러면 보여줘."
"음.. 나중에 보여줄게."
"왜?"
"여기서 또 특별히 예쁜 사진을 골라야 하거든."
예나가 다연이에게 대충 보여주면서 빠르게 넘긴 사진은 이렇게 봐도 엄청 많아보였다.
내 눈엔 똑같은 사진 같은데 그런 같은 사진들이 넘겨도 계속해서 나왔다.
"나중에 예쁜 사진 고르면 아저씨한테 보내 줄게요."
"알겠어."
다연이는 인형을 꼭 안은 채 말했다.
"궁금해."
"그러면.. 아무거나 한 장 보여줄까?"
"아니야! 언니가 예쁘게 고른 거 볼래."
"알겠어, 그러면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집에 가서 얼른 보내줄게."
"응!"
다연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러면 아저씨, 저는 가 볼게요. 안녕히 가세요. 다연이도 조심히 가."
"안녀엉. 나중에 오빠 식당에서 만나자아."
"그래, 안녕."
다연이와 예나는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다연이는 예나가 사라지자 나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우리 이제 집에 갈 거지?"
"응, 왜? 조금 더 놀고 싶어?"
"음.. 오빠랑 노는 것도 좋은데 지금은 조금 졸려."
다연이가 때마침 하품을 크게 하면서 말했다.
어린이집에는 낮잠 시간도 있으니 지금쯤이면 졸릴 수도 있겠다.
"알겠어, 그러면 집에 가서 씻고 낮잠 자자."
"응! 그러고 나면 언니가 사진 보냈겠지?"
"그럴 거야."
다연이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선 뒤를 돌아 식당 건물을 본다.
"안녀엉, 내일 올게."
건물이 대답할 리는 없겠지만 다연이는 그렇게 말했다.
"오빠, 식당이 뭐라고 대답했어?"
"알겠대."
그리고 나는 다연이의 손을 잡고선 집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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