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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읽어 줄 테니까 모르는 거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알겠어."
뭘 먹으러 온지 모르는 다연이만 특히 신나 있었다.
"자..."
그리고 예나가 메뉴판을 펼쳤다.
잠깐 눈으로 메뉴판을 읽어내려 가던 예나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다연이가 먹을 수 있는 건 하나 밖에 없네."
"응? 뭐야?"
"돈까스 어린이 세트."
"왜 나는 그거만 먹을 수 있어?"
"다연이는 아직 어려서 어른만큼 못 먹잖아. 그래서 다연이 같은 아이들이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거야."
"정말? 그럼 난 다른 건 못 먹어?"
"음... 그건 아닌데.. 아저씨가 대신 봐줄래요?"
"그래."
나는 예나에게서 메뉴판을 가져와 메뉴들을 더 살펴본다.
예나 말처럼 어린이 세트는 돈까스가 전부였다.
사실 그 이유는 이 곳이 돈까스 전문점이어서 그런 거지만. 다른 메뉴도 팔고 있긴 하지만 곁들여 먹는 음식들 뿐이다.
예나가 고른 식당은 돈까스 전문점이었다.
손님들도 꽤 있는 것이 나름 맛집이라고 불리는 곳인 것 같다.
잘 모르는 것 같은 다연이를 위해서 말해준다.
"다연아, 여기는 돈까스 전문점이야. 다른 메뉴도 있긴 한데 돈까스가 맛있을 거야."
"응? 오빠 식당처럼 엄청 많이 파는 곳 아냐?"
"그런 곳 아니야."
"오... 그렇구나... 신기하다."
다연이가 느끼기엔 우리 식당과 다른 곳은 전부 신기한 모양이다.
"다연이도 한글 공부하면 혼자서 다 읽을 수 있을 텐데."
예나의 말에 다연이가 대답했다.
"나도 한글 공부 하고 싶어."
"정말?"
다연이의 말에 내가 물었다.
이런 말은 처음 하는 것 같은데.
"응... 많이는 아니고 조금. 나도 오빠 식당에 적혀 있는 거 읽고 싶어. 그리고 책도 읽고 싶고."
"그렇구나, 그럼 말하지."
"그럴 걸. 잊어버리고 있었어."
하긴 나도 그랬다.
어린이집은 뭔가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니 내가 직접 한글 공부를 비롯해 여러 가지를 가르쳐야겠다곤 생각했지만 생각뿐이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면 여러 가지를 가르쳐야겠다.
한글 공부도 그렇고 만약 나를 잃어버렸을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방법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면 주문할게요."
"그래."
잠시 뒤, 다가온 직원에게 예나가 말했다.
"이거 두 개랑 어린이 세트 하나요."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러고 직원이 사라졌다.
"오... 여기는 오빠 식당이랑 다르다. 요리 하는 사람도 있는데 다른 사람도 있어."
다연이가 신기한 듯 주변을 살펴보면서 나에게 말했다.
"응, 달라. 파는 것도 다르고 요리하는 과정도 달라."
"오빠 식당에는 왜 다른 사람이 없어?"
"나는 혼자서 할 수 있거든. 그리고 다연이 어린이집 갔을 때 예나가 도와준 적이 있긴 한데."
"오... 정말? 언니도 저 언니처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이랬어?"
다연이가 직원의 말을 따라하면서 말했다.
"큭큭, 그래. 그랬어."
"우와... 나도 나중에 언니처럼 오빠 식당에서 일하고 싶다아..."
"정말? 다연이 일하고 싶어?"
"응, 그러면 오빠 도와줄 수 있잖아."
"기특하네."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있을 때 돈까스가 나왔다.
"음식 나왔습니다."
"네."
차례차례 우리 앞에 놓아지는 음식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다연아, 어때?"
예나는 음식보단 다연이의 반응이 먼저인 것처럼 말했다.
하긴 예나는 오늘을 위해서 식당을 찾아놨다고 말했으니까 그럴 만도 한 것 같다.
"오... 처음 보는 거야. 그리고 엄청 맛있어 보여..."
"그래? 그러면 먹어 볼래?"
"응."
다연이 껀 특별히 잘려서 나왔다.
다연이는 포크로 돈까스를 푹 찍고선 입을 와앙, 하고 벌렸다.
그리고 베어 문다.
바삭.
저번에 다연이가 튀김을 먹었을 때보다 더 화려한 소리를 낸다.
다연이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맛있어!"
"그래? 처음 먹어보는 건데도?"
"응! 이거 엄청 맛있다아."
그 말에 나는 다연이에게 장난치고 싶기도 했고 정말 궁금하기도 한 것을 물었다.
"다연아, 그러면 저번에 오빠랑 같이 먹었던 튀김이 맛있어, 아니면 이게 더 맛있어?"
"어...응..?"
그 말에 다연이가 잠깐 멈췄다.
그리고 시선을 약간 돌렸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게 이런 뜻이었구나.
다연이가 천천히 입을 벌리고 있을 때 내가 말했다.
"아니야, 다연아. 말하지 마. 일단 그거부터 다 먹자."
이미 다 안다.
돈까스가 더 맛있다는 것 정도는.
"어... 튀.. 튀김이 더 맛있어...!"
그래도 다연이는 기어이 말했다.
아닌 거 다 아는데.
"그래, 고마워."
"진짜로!"
"응, 진짜 알겠어. 괜히 밥 먹을 때 물어봤다. 일단 먹자."
"응!"
그래도 다연이가 이렇게 말해주니 괜히 기분 좋아진다.
진짜 내가 해 준 음식이 좋은 것 보단 내가 좋다는 의미니까.
나도 다연이처럼 돈까스 하나를 잘라서 입에 넣었다.
바삭, 하는 소리와 함께 돈까스의 맛이 입 안에 가득 퍼진다.
고기의 맛이 바삭한 겉과 아주 잘 어울린다.
돈까스는 이렇게 따로 먹어도 맛있다. 튀김과 비슷하다.
따로 먹어도 맛있지만 튀김 덮밥처럼 밥과 함께 먹어도 맛있다.
나는 돈까스를 먹으면 늘 생각나는 것이 밥이었다. 밥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돈까스를 먹으면 꼭 스팸을 먹는 것처럼 밥 한 술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예나야, 여기 맛있네."
"그럼요. 제가 열심히 찾았다구요."
예나가 살짝 자신감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나도 맛있어! 나, 이거 처음 먹는 건데도 엄청 맛있다?"
"처음 먹는 돈까스가 나랑 같이 먹는 거라서 나도 좋아."
다연이와 예나가 웃으면서 말했다.
둘은 얼마 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친자매 같다.
물론 영상 속 그런 자매와는 달리 싸우진 않지만 그건 나와 다연이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우리는 그 뒤로 각자의 식사에 집중했다.
식사를 마친 다연이는 의외로 돈까스를 두 조각 남겼다.
"배불러어..."
"다연이가 음식을 다 남기네. 삼겹살은 잘 먹더니."
"아까 언니 돈까스 먹어서 그런 것 같아..."
사실 다연이는 방금 전 예나의 돈까스를 먹었다.
물론 뺏어 먹은 건 아니고 예나가 '큰 것도 한 번 먹어볼래?' 라고 물었고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응!'이라고 말해서 그런 거지만.
어쨌든 우리는 모두 돈까스를 비워냈다.
다연이 몫의 두 조각만 빼고.
"이거 오빠 먹어."
"알겠어."
"대신 내가 먹여줄게."
"그래."
다연이가 한 조각을 내 입에 넣어줬다.
"와.... 귀여워.. 나도. 나도 줘 다연아."
"음.. 오빠, 이거 언니 줘도 돼?"
"응."
다연이는 내 대답을 듣고선 예나 입에 돈까스를 먹여줬다.
"다연이가 주니까 더 맛있잖아?"
"헤.. 정말?"
"응, 정말로."
예나는 진짜 그런 듯 맛있어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연이는 그 모습을 보고선 좋아했다.
"다 먹었으면 이제 갈까?"
"응!"
우리는 일어서서 카운터로 향했다.
늘 카운터에 서 있는 입장이었지만 계산하는 쪽이 되는 것도 썩 나쁘지 않았다.
"아저씨, 제가 먹은 건 제가 낼게요."
예나가 그렇게 말하면서 돈을 내밀었지만 당연하게도 받지 않았다.
"제가 먹은 건 제가 내고 싶은데."
"괜찮아. 대신 다연이랑 놀아주잖아."
"그건 제가 좋아서 그런 거고요..."
이미 카운터에 돈을 건넨 뒤라서 예나도 곧 지갑을 집어넣었다.
내가 아무리 돈이 없다고 해도 예나에게까지 돈을 받을 만큼 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주는 거면 몰라도.
"한두 번이면 되는데 아저씨한테 너무 많이 얻어먹는 것 같아요."
"상관없어."
예나가 그러는 건 딱히 상관없었다.
다연이도 내 동생이지만 예나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커 가는 걸 지켜봤으니까.
"우와! 맛있었따!"
식당 밖에서 다연이가 말했다.
다연이는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편이었으니 지금 기분은 아마 최상일 것이다.
"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이네! 열심히 찾은 보람이 있어."
"맞아! 다행이야."
다연이의 볼이 전보다 더 찰랑찰랑한 것 같은 기분이다.
"음... 이제 사진 찍고 싶은데 어디에서 찍지..?"
예나가 혼잣말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고작 휴대폰으로 찍는 사진이면서 조금 과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번 사진이 내 배경화면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예나를 따라서 주변을 둘러본다.
"오빠, 뭐 해? 뭐 찾아?"
"다연이 사진 찍을 곳. 밥 먹고 사진 찍을 거라고 했잖아."
"아, 맞다! 맛있는 고기 먹는다고 잊어버렸어!"
맛있는 고기가 사진 찍는 다는 것도 잊게 할 만큼 좋았나 보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예나야, 저기는 어때?"
"분수대 있는 저기 말하는 거 맞죠?"
"응."
"음... 더 예쁜 곳에서 찍고 싶은데... 일단 가 봐요."
우리는 예나의 뒤를 따라서 걸었다.
"근데 사진은 나 혼자 찍는 거야?"
"응."
"왜?"
"다연이 혼자 찍은 사진을 가지고 싶어서."
"오빠랑 같이 찍으면 안 돼?"
"음.. 나랑은 나중에. 일단은 다연이 혼자 찍자."
"알겠어."
예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분수대였다.
지금은 물이 있었던 흔적조차 없는 초라한 곳이지만 그래도 건물들 속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 색다른 기분이 든다.
예나는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그래도 마음에 안 드는 듯 한숨을 푹 쉬고선 말했다.
"전부 마음에 안 들어요.. 차라리 아저씨네 식당에 가서 찍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래도 돼."
"죄송해요... 그래도 휴대폰 배경 화면으로 쓸 건데 이런 데서 찍기는 싫어요..."
"괜찮아, 나도 우리 식당 앞에서 찍는 게 더 좋으니까."
우리가 그렇게 말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다연이가 말했다.
"그러면 우리 이제 집에 가는 거야?"
"음... 아니."
"아니야? 그러면 어디로 갈 거야?"
나는 그 질문에 예나를 바라본다.
축 처져 있던 예나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고개를 끄덕였다.
예나도 내가 오늘 다연이 선물을 살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 곳의 식당을 미리 찾아놓을 수 있었던 것이고.
"응? 말해줘. 궁금하단 말이야."
"비밀인데."
"비밀..?"
"응."
그러자 다연이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리고 옅은 미소를 짓는다.
"비밀이면 나, 엄청 궁금해! 말해줘!"
"그럼 일단 따라와. 그러면 알 수 있어."
"지금 알고 싶은데. 지금은 말 안 해주는 거야?"
"응, 지금은 안 돼."
"오... 오빠가 안 된다고 말하는 거 처음이야...!"
다연이는 설레는 목소리로 말하고선 내 손을 잡았다.
"그러면 빨리 가자! 나, 오빠 비밀 알고 싶어!"
"너무 귀여워.. 다연아, 내 손도 잡아줘."
"응!"
예나까지 다연이의 손을 잡은 뒤에야 우리들은 출발했다.
"오빠가 안 된다고 말하는 거면 얼마나 비밀인 거야..?"
다연이가 혼잣말을 하면서 길을 걷는다.
잔뜩 기대하고 있는지 입 꼬리가 잔뜩 올라갔다.
다연이가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일단은 가 봐야 아는 거니까.
"우리 빨리 가자!"
키가 작은 다연이의 목소리가 밑에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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