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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지만 무겁지는 않고 약간의 소음만 들린다.
우리는 금방 납골당에 왔다.
거기가 뭐하는 곳이냐고 다연이가 물었을 때 나는 돌아가신 사람의 뼈를 보관하는 곳이라고 했다.
다시 돌아온 대답은 뼈가 뭐냐는 말이었다.
"오빠, 그래서 뼈가 뭐야?"
"다연아 팔 줘 볼래?"
"응."
다연이가 팔을 내밀고 나는 그 자리에 잠시 멈춰서 다연이의 팔을 잡았다.
"여기가 뼈야. 이 안에 있는 거."
"오오... 나한테도 뼈가 있구나아.."
"그래, 다연이는 아직 어리니까 나중에 자라면서 뼈도 커지고 키도 커지고 하는 거야."
"뼈가 커지면 오빠처럼 세지는 거야?"
"아마."
다연이는 신기한 듯 자기 팔을 만졌고 예나는 웃었다.
"다연이랑 있으면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모르겠어요. 그게 재밌긴 하지만요."
나도 다연이와 이야기할 때 그런 생각들을 했다.
어른들끼리의 대화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이야기들이 다연이와 있으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예나 말처럼 그게 더 재밌는 거지만.
"오빠, 나 옷 벗어도 돼? 여기 들어오니까 더워어..."
확실히 안은 밖보다 따뜻했다.
그렇다고 겉옷까지 벗어도 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기는 그렇게 따뜻하지 않아서 겉옷 벗으면 감기 걸릴 수도 있어. 단추만 풀자."
"응."
왜 다연이만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다연이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오르막길이긴 했으나 다 같이 올라왔는데 다연이만 땀을 흘린다. 다연이는 다리가 짧아서 더 서둘러 걸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땀까지 흘렸으니 겉옷을 벗으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자세를 낮춰서 겉옷의 단추를 풀어준다.
다연이는 위에서부터 풀었고 나는 밑에서부터 풀어줬다.
"아저씨는 오빠가 아니라 아빠 같아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예나가 말했다.
"아니야, 오빠는 오빠야."
그 말에 다연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너무 단호해서 다른 아이가 말한 줄 알았다.
"그래, 미안. 오빠 맞아."
"오빠야."
왜 그렇게 말했던 건진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음... 다연아. 아니면 겉옷을 걸치고만 있을래? 이렇게 어깨에."
"이게 더 시원해."
"그래? 그러면 이렇게 하고 있어. 옷 떨어지지 않게 잘 잡고."
"응."
다연이가 그렇게 터벅터벅 걸었다.
"이렇게 보니까 다연이, 진짜 모델 같은데요? 예쁘기도 예쁘고."
다연이는 원래 예뻤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에서 봤던 모델들보다 다연이가 더 예쁜 것 같다.
"그리고.... 저 도도한 걸음이 더 귀여워..."
"응?"
예나가 작게 말했는데도 다연이는 귀신처럼 듣고선 뒤돌아본다.
"너 귀엽다고."
"헤.."
그 말에 다연이는 기분 좋은지 배시시 웃고선 다시 휙 돌아서 걸었다.
어디로 가야 되는지도 모를 텐데 걸음만은 도도했다.
"아저씨, 밖에 나가서 다연이 사진 찍어도 되죠? 저 다연이 사진 배경화면으로 쓰고 싶어요."
"사진..?"
그러고 보니 다연이를 찍은 사진이 몇 장 없었다.
일부러 찍지 않은 건 아니다. 그냥 사진을 찍는 것이 습관 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네, 제발 된다고 해주세요. 오늘 다연이 엄청 귀엽단 말이에요. 옷도 예쁘게 입었고."
"너 사진 잘 찍어?"
"그럼요. 아저씨보단 잘 찍을 거예요. 훨씬."
"그럼 나도 보내줘."
"네, 알겠어요. 그러면 다연이 사진 배경화면으로 써도 된다는 말이죠?"
"응, 대신 다른 애들한테 다연이 사진 주는 건 안 돼. 보여주는 건 상관없지만."
"알겠어요. 친구들한텐 절대로 안 줄게요."
나도 배경화면을 다연이 사진으로 해 놔야겠다.
"그런데 다연이 옷, 아저씨가 고른 거예요?"
"응, 왜?"
"아니, 아저씨가 고른 것 치곤 되게 예쁜 걸 잘 고른 것 같아서요."
"내가 왜."
"그게 아니라 아저씨는 여자애 옷 골라본 적 없었을 것 아니에요."
예나 말처럼 그렇긴 하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왜냐하면 돈이 좀 있었거든.
물론 내 돈이 아니라 여자가 주고 간 돈이었다. 이 돈은 오로지 다연이에게 쓰기로 작정하고 예쁜 옷들을 잔뜩 골라 담았다.
물론 필요 이상으로 사진 않았다.
다연이는 정말 뭐든 어울렸기 때문에 딱히 신경 써서 옷을 고를 필요도 없었고.
그냥 예쁜 옷을 사서 다연이에게 입히면 예쁜 옷을 입은 예쁜 다연이가 되는 거였다.
"다연이가 예뻐서 상관없었어."
"하긴.. 그럴 것 같아요."
예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앞을 봤는데.
"다연아?"
다연이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어디로 간 거지.
순간 머릿속에 새하얗게 물들었다. 여태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심장이 세게 뛰고 상황판단이 잘 되질 않았다.
그냥 얼른 다연이를 찾아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저씨!"
예나가 뒤에서 나를 불렀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머릿속엔 다연이에 대한 생각만 떠오른다.
여기는 그리 넓은 곳이 아니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서 다시 돌아올 때 예나가 앞에서 튀어나왔다.
"아저씨, 다연이 여기 있어요. 네? 여기 있다고요."
그 말에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주변에 다연이가 있는지 살폈다.
"오빠... 왜 그래?"
다연이가 옆에 있었다. 그제야 안심이 된다.
땀이 이마에 맺혔고 호흡이 거칠었다. 내 평생 이런 적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서웠었다.
너무 무서워서 그렇게 뛰어다녔던 것 같다.
혹시라도 다연이를 잃어버릴까봐.
"아저씨, 다연이 어디로 가는지 제가 다 봤었어요."
"오빠, 괜찮아..?"
"....응."
"미안해... 내가 말도 없이 다른 데로 가서... 미안..."
다연이가 울 것만 같은 얼굴로 말했다.
다연이를 울리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닌데. 앞으로 더 재밌는 일이 많이 남았는데 여기서 다연이를 울리기 싫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만든 나에게도 죄책감이 든다.
"나 많이 걱정했어? 없어질까봐..?"
"응."
"미안해, 오빠... 예쁜 꽃이 있어서.."
"괜찮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아이들은 금방 다른 것들에 관심이 이끌리곤 하니까.
그냥 이건 내 잘못이다. 다연이 손을 잡지 않은 잘못이다.
"울지 마, 울면 안 괜찮아져."
"응.."
다연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런 다연이의 손을 잡았다.
"가자."
"응..."
순식간에 벌어졌고 다시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분위기가 조금 어두워졌다.
그래서 나는 다연이에게 말했다.
"다연아, 눈치 안 봐도 돼."
"그래도... 내가 잘못해서 오빠가 힘들었어...."
"괜찮아, 이제는 오빠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거 알았잖아."
"응... 아니면 오빠 잃어버릴 수도 있어...."
"맞아, 그러니까 나한테 말 안하고 다른 데로 가면 안 돼. 다음부터는 말 하고 가는 거야. 알겠지?"
"응... 미안해."
"괜찮아, 이제 알았으니까 됐어."
그래도 다연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목소리도 조금 떨린다.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 일은 다연이가 잘못한 게 없지는 않았다.
나도 그것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손을 잡지 않은 내 잘못이 더 크지만.
다만 다연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렇게 잘못을 하면서 커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고 다연이는 그걸 알고 있었다.
"미안해요... 잘못 했어요..."
고개를 숙이고 있던 다연이가 작게 말했다.
"오빠... 내가 잘못했어요..."
다연이는 기어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다연이가 안 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나.. 안 버릴 거죠? 나랑 같아 있는다고 했죠..?"
많이 당황한 것 같다.
다연이는 존댓말로 말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었다.
아마도 잠시나마 옛날을 떠올리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버림받았던 옛날을.
이런 일도 다연이와 함께 살아간다면 분명 겪었어야 하는 일이었다.
언젠가는 무조건 일어났을 일이 오늘 일어난 거라고 생각했다.
많이 갑작스럽지만 뜬금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환경이기에 일어났던 일이라고 생각했다.
"응."
예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나와 다연이를 보고 있었다.
예나에겐 미안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고 온 건 아니었을 텐데.
나는 다연이를 안아들었다.
어떻게 해야 다연이가 진정할 수 있을 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우선은 안기로 했다.
"안 버려. 다연이가 아무리 잘못해도 안 버릴 거야."
".....정말요..?"
"응, 말했잖아. 계속 옆에 있을 거라고."
"응..."
그러자 다연이는 그제야 조금 진정하고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흐느끼던 소리가 점점 줄어든다.
"다연이, 오빠 말 잘 들었지? 어디 갈 때는 오빠한테 말해야 걱정 안 하지."
"맞아..."
예나가 뒤에서 다연이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했다.
"예나야, 미안. 분위기가 이상해졌네."
"전 괜찮아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죠."
"고마워."
나도 예상 못 했던 일이라 조금 당황했었는데 예나가 이렇게 이해해 주니 고마웠다.
잠시 걷던 우리들은 할머니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 앞에서 다연이를 내려놓았다.
다연이 얼굴엔 눈물자국이 희미하게 있었다.
"음... 다연이 세수부터 하고 올까?"
"응... 아까 울어써..."
다연이가 양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저씨, 제가 데리고 갔다 올게요."
"그래."
예나를 데려오길 잘한 것 같다.
다연이를 남자 화장실에 데려가는 것도 조금 힘들 것 같았으니까. 그렇다고 다연이 혼자 보내기에도 조금 걱정됐다.
잠시 후 다연이가 작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정리하면서 걸어 나왔다.
물기가 묻어서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어 있었다.
"세수 했어."
"그래, 깨끗하네."
다연이는 작게 웃어 보이고선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할머니를 모셔 놓은 곳으로 향했다.
납골당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둡다.
죽음과 관련된 곳은 전부 그렇기 마련이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는 거지 울고 싶을 정도로 무겁지는 않다.
물론 할머니도 그러길 원치 않으셨을 테고.
"할머니는 어디 있어?"
"여기."
나는 다연이의 물음에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다연이가 허공에 대고 인사를 했다.
"나는 오빠 동생이에요."
그리고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6살이고... 어... 이다연이에요."
나와 예나는 그런 다연이를 보고 있었다.
심각하게 귀여웠다.
"그리고 줄 거 있어요."
"줄 거?"
다연이가 뭘 챙겨오는 건 본 적이 없었는데 뭘 가져온 거지?
"응, 오빠 이거."
다연이가 주머니에서 꺼내 나에게 내민 것은 풀이었다.
내가 다연이에게 사준 풀.
"이게 줄 거야?"
"아니야. 그거 아니야, 이거."
주머니 속을 열심히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 들었다.
"이게 할머니 줄 거야."
그리고 다연이가 아주 작게 웃었다.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