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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나, 밤에 가는 건 처음이야."
"다연아, 밤에는 자는 사람들도 있어서 조용히 해야 돼."
"아, 맞아. 나도 원래 자야 되는데 안 자고 있는 거야."
"그래."
다연이가 자기 입을 틀어막고 조용히 말했다.
다연이는 산책할 겸 예나를 데려다주러 함께 걸었다. 처음으로 밤에 다른 길을 걷는 것이 꽤 기분 좋은 모양이다.
"언니, 언니도 내 손 잡아줘."
"응."
다연이는 기분 좋은 미소를 얼굴 가득 짓고선 양 손으로 나와 예나의 손을 잡고 걸었다.
이러고 있으니 꼭 다연이가 여왕이 된 것 같다.
귀여운 여왕.
그런 다연이에게 예나가 말했다.
"다연아, 그거 해 줄까?"
"그거가 뭐야..?"
"슈웅 하는 거."
다연이는 예나의 말이 더 이해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뭔지 모르겠어. 슈웅..?"
"나도 모르겠는데."
나 역시 예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저씨도 모르면 어떡해요. 그거 있잖아요. 이렇게 들어서 슈웅 날아가는 거. 우리 어렸을 때 부모님이 다 해줬잖아요."
"몰라."
예나의 말을 들으니 더 모르겠다.
부모들이라면 전부 아이에게 하는 뭔가 같은데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아, 죄송해요. 제가 쓸데없는 말을 했네요..."
"괜찮아."
우리 집 사정을 대충 알고 있던 예나가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괜찮다. 지금은 그 집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더 이상 상처 받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다연이도 있기 때문에 옛날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도 그 때의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슈웅이 뭐야?"
"음.. 슈웅은... 아저씨 다연이 팔 잡고 제가 숫자를 세면 동시에 이렇게 들어 주세요."
예나가 동작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그 동작을 보니 대충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알겠죠?"
"응, 알겠어."
"다연아, 기대해. 재밌을 거니까."
"기대하고 이써."
다연이가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 얼굴을 보니 나도 괜히 다연이의 반응이 기다려진다.
"자, 간다. 하나, 둘, 셋."
예나의 구령에 맞춰서 한 쪽 씩 다연이의 손을 잡고 있던 우리가 다연이를 높이 들어올렸다.
꼭 다연이가 작은 바이킹을 타고 있는 것처럼 슉 하고 공중으로 떴다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온다.
"우와, 재밌따! 이제 슈웅이 뭔지 알겠어."
다연이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지만 지금 느끼는 설렘까지 참아지진 않았다.
"나, 슈웅 또 해줄 수 있어?"
"그래, 그러면 한 번 더 한다."
"헤헤, 알겠써!"
그렇게 몇 번이나 더 하고 나서야 다연이의 슈웅이 끝났다.
"우와.. 엄청 재밌었다."
보통의 아이들은 이런 걸 하는 구나.
나는 이런 적이 없어서 몰랐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예나나 혜원이의 부모님과 가까이 지낼 필요가 있겠다.
내가 모르는 것들을 알 수 있으니까.
사실 제대로 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내가 다연이를 제대로 키우겠다는 건 조금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보통 가정의 아이들이 뭘 주로 하고, 어디 가는 걸 좋아하는지 잘 모르니까. 게다가 이것처럼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것도 못해 줄 때도 있다.
그래도.
"그럼 앞으로 많이 해 줄게."
"응!"
조금씩 알아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른 부모들도 처음부터 엄마, 아빠는 아니었을 테니까.
나는 조금 부족한 만큼 더 열심히 알아가면 되는 거다.
결국 내가 열심히 하면 되는 일이다.
"이거 혼자서는 못 하는 거잖아요."
예나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도와주면 되지. 아니면..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혼자서 할 수 있다고요?"
"응."
나는 다연이를 뒤에서 안아 공중으로 들어올렸다.
"와아!"
"재밌어?"
"응, 아까 슈웅한 거랑 비슷해."
재밌어 하는 다연이가 다시 내려와서 내 손을 꼭 잡았다.
"진짜 혼자서 할 수 있네요."
예나는 그렇게 말하고선 큭큭 거리며 웃는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 새 예나의 집에 도착해 있었다.
그 동안 다연이는 걷는 게 조금 지쳤는지 속도가 느려졌다.
다연이의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할 때 도착해서 다행이다.
그렇게 예나가 집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다시 돌아서서 물었다.
"아저씨, 그러면 아저씨는 다연이랑 계속 여기서 사는 거예요? 계속?"
"아마도, 왜?"
나는 뜬금없이 그렇게 묻는 예나에게 되물었다.
"그냥요. 오늘 재밌어서요. 그러면 제가 올 때마다 다연이가 여기 있을 거란 말이잖아요."
"응."
"그래서 오랫동안 있었으면 좋겠어서 한 말이에요."
"나도 언니랑 오래 보고 싶어."
"그래, 나도."
그 말에 다연이가 웃었다.
"이제 갈게요."
"안녕."
다연이가 열심히 손을 흔들었고 예나가 집으로 돌아갔다.
"휴.. 힘들어."
예나가 사라진 골목에서 다연이가 허리에 양 손을 올리고선 말했다.
예나의 집은 그리 멀진 않았지만 마지막에 조금 가파른 길을 지나야했다.
그것 때문에 다연이도 이런 말을 하는 것 같고.
"아까 안아달라고 하지."
"괜찮아, 나까지 안으면 오빠가 많이 힘들어."
"아니야."
"맞아."
아닌데.
이렇게 말하다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가자. 우리도 집에 가야지."
"알겠어."
그렇게 우리는 가로등이 비치는 골목을 내려간다.
원래 가파른 길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더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천천히 길을 내려갔다.
"후... 흐읏.."
다연이도 조심조심 내리막 길을 내려온다.
"힘들지?"
"... 조금."
"그러면 업어줄게."
"괜찮은데..."
다연이가 작게 말했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힘든 것이 사실이다.
다연이처럼 어린 아이가 혼자서 이런 길을 가는 건 말 그대로 힘드니까.
게다가 조금만 더 있으면 다연이는 잘 시간이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 다연이가 미안해하지 않고 업힐지 생각했다.
"...추워."
"..?"
떠오르는 말을 바로 입밖에 꺼낸 탓에 다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본다.
"오빠 추워?"
"...응."
내가 떠올린 생각은 춥다는 핑계로 다연이를 업히게 만들려고 한 것이다.
다연이가 업히면 덜 추울 거라고 말하면서.
"나는 안 추운데."
다연이의 말처럼 오늘은 추운 날이 아니다.
다연이는 그 사실이 조금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던 건지 살짝 미소 지었다.
"내가 옷 줄까? 내 옷은 너무 작아서 오빠한테 안 맞는데 그래도 이거 입으면 안 추울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오빠가 안 추운 게 좋아!"
예나가 있었다면 분명 큭큭 웃으면서 좋아했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 다연이가 업혀 볼래? 그러면 안 추울 것 같아."
"? 진짜 그러면 안 추워?"
"응."
"그러면... 업힐래."
그리고 다연이가 내 등에 털썩 업혔다.
"따뜻해?"
"응."
진짜로 따뜻하긴 했다.
실제로 딱히 춥지가 않아서 와닿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집으로 걸어가다가 다연이가 말했다.
"오빠, 예나 언니는 학교 다니지?"
"응, 학교가 뭔지 알고 있어?"
"언니가 말해줬어. 배우는 곳이래."
"맞아."
다연이가 내 목을 잡고 등에 머리를 기댄다.
"나도 나중에 학교에 다녀?"
"응."
"그러면... 학교는 재밌어?"
"음..."
솔직히 나에게 학교는 그리 재밌는 곳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힘든 곳도 아니었지만.
그냥 딱히 친하게 지낸 친구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응, 재밌을 거야. 다연이는 친구 많잖아."
그래도 다연이는 다를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와 다연이는 다르니까.
다연이가 학교에 다닐 몇 년 뒤를 떠올려봤지만 잘 상상이 되진 않는다.
이렇게 작은 애가 학교에 다닐 수 있을 만큼 크게 될 거라니.
언젠가는 예나 만큼도 클 거라는 것을 알지만 잘 믿기진 않았다.
"맞아. 혜원이도 있고 지민이도 있어."
"그래."
"근데 학교 다니면 예나 언니처럼 엄청 할 일이 많을 것 같아."
"그럴 수도 있지."
"그러면 오빠랑 못 노니까 나는 어린이집에 있는 게 더 좋아."
"그래도 언젠가는 학교에 가야 하는데?"
"알고 있어. 그 때까지는 오빠랑 놀 거야."
"그래."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어갔다.
다연이도 언젠가는 크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
.
.
"다연아, 이리 와."
여기는 집이다.
다연이와 처음 만났던 우리집.
예나와 다연이가 만나고 나서도 시간이 꽤 흘렀다.
다연이 말대로 가끔이지만 예나가 식당으로 와서 다연이와 놀아줬다.
그 동안 다연이도 많이 변해서 이제는 어린이집에 가서 놀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도 어린이집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갈 때는 늘 보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그것 말고도 달라진 건 많지만 하나하나 말할 수는 없다.
정작 나도 전부 생각나지는 않았으니까. 그 정도로 다연이는 많은 걸 바꿨다.
"응!"
요즘 다연이는 내 휴대폰에 빠졌다.
빠졌다기 보단 관심을 많이 준다, 라고 말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이지만 다연이가 내 휴대폰을 쥐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건 확실했다.
다연이는 손에 쥔 휴대폰을 내려놓고 나에게 달려왔다.
"옷 따뜻하게 입어야 해. 아니면 추워."
"알겠어."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연이의 겉옷 단추를 단단히 잠근다.
오늘은 식당이 아닌 다른 곳을 갈 예정이기 때문에 따뜻하게 입는 것이 중요하다.
"오빠도 따뜻하게 입어야 해. 아니면 감기 걸려. 저번처럼."
다연이는 그렇게 말하고선 큭큭 하며 웃는다.
사실 예나를 데려다 주고 다연이와 같이 걸어온 그 다음 날, 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감기에 걸렸었다.
다연이를 업고 오는 바람에 땀이 나기는 했다. 혹시 그 땀이 식으면서 더 추워진 걸까.
잠시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왜 감기에 걸렸었는지.
"그 때 오빠는 이거 쓰고 있었어. 이거."
그렇게 말하면서 다연이가 자기 입을 양 손으로 가린다.
열심히 가려도 웃고 있다는 것이 티가 났지만.
다연이가 말하는 건 마스크다.
내가 감기에 걸렸을 때, 다연이에게 옮기지 않기 위해서 며칠 동안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안에서든 밖에서든. 심지어 잘 때도 마스크를 썼다.
당연히 불편했지만 다연이가 감기에 걸리는 것보단 나으니까.
다행히도 다연이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었고.
"그래, 다연이 감기 걸리면 안 되잖아."
"내가 감기 걸리면 오빠가 슬퍼. 나는 괜찮은데."
"맞아."
다연이도 내 옷을 한참 정리해 주고 나서야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있다가 나가자."
"그럼 나, 그 때까지 오빠 휴대폰 보고 있어도 돼?"
"응."
다연이는 그 말에 쪼르르 달려가서 휴대폰을 가지고 다시 나에게 온다.
그리고 익숙하게 내 무릎에 앉는다.
다연이 머리에서 오늘 처음으로 바꾼 새 샴푸 냄새가 난다.
바꾸길 잘 한 것 같다. 앞으로는 이것만 써야지.
"오빠 이거 봐. 곰돌이야."
다연이가 보고 있는 영상은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 리뷰였다.
영상 속 여자가 들고 있는 건 커다란 곰인형이었고.
"곰돌이가 엄청 크다아. 맞지?"
"응, 엄청 크네."
요즘 다연이는 인형이 나오는 영상을 많이 본다.
인형에 대한 리뷰라고 해봤자 귀엽다고 하는 게 거의 전부라 별 다를 건 없었지만 그럼에도 다연이는 좋아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데도 사 달라는 소리는 한 번도 하지 않는다.
나도 그런 다연이에게 사 줄까, 라고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선물을 받는지 몰라야 더 기분 좋은 법이니까.
"아.. 다 끝났다. 이번에는 수박 인형 봐야지."
오늘은 할머니의 기일을 챙기러 가려고 한다.
따로 집에서 기일을 챙겨도 상관은 없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맞는 기일이니 직접 찾아가려고 했다.
다연이에게 할머니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당연히 다연이의 선물이 중심은 아니고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오는 길에 사려고 했다.
분식집은 휴일이 많지 않으니 만약 오늘을 놓친다면 다음 주나 되어야 살 수 있을 테니까. 오늘도 내일 있을 정기휴일을 끌어다 쓴 것이다.
"수박 인형도 귀여워."
아무것도 모르는 다연이가 영상에 푹 빠져서 중얼거렸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