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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연이에게 줄 저녁은 미리 생각해두었다.
바로 고기가 듬뿍 들어간 오므라이스.
처음엔 볶음밥을 하려 했지만 그냥 볶음밥보단 오므라이스가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다연이는 오므라이스를 먹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음식을 먹는 기쁨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평소 다연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보면 오므라이스도 좋아할 거다.
저녁에 몰아쳤던 손님들은 모두 나가고 식당에는 손님 몇 명만 남아있다.
복도를 살짝 훔쳐보니 다연이와 예나도 집중해서 놀고 있는 것 같고.
그럼 나는 그 동안 다연이와 예나가 먹을 오므라이스를 완성해야겠다.
"다연이가 좋아하겠지."
그 생각만 하면서 재료들을 준비한다.
오므라이스라고 해봤자 결국은 볶음밥과 비슷하다.
볶아있는 밥 위에 계란 프라이를 예쁘게 얹은 것이다.
원래는 소스도 있고 오므라이스를 더 예쁘게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많지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고 다른 손님이 오면 서둘러 끝마쳐야 하는 상황에선 이렇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재료는 여러 가지 채소들이다.
볶음밥처럼 꼭 들어가야 하는 채소들.
어떤 채소를 넣을까.
여느 식당이 그렇듯 우리도 늘 가지고 있는 채소들이 많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양파와 당근, 조각낸 대파를 꺼낸다. 마지막으로 미리 사둔 고기까지.
고기는 다연이를 위해서 사둔 것이다. 다연이가 고기를 좋아하니 다연이 먹일 고기와 식당에서 쓸 고기를 따로 나눠 놓았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맛있는 음식을 다연이에게 먹이는 거니까.
물론 채소도 많이 먹어야 되니까 이번 오므라이스엔 채소들도 많이 넣기로 한다.
나는 양파와 당근을 많이 썰어 놓는다.
어차피 다 같이 볶으면 맛있을 거니까 상관없다.
적당히 간 돼지고기도 옆에 놓아두고 프라이팬에 불을 올린다.
콰아아.
힘차게 뻗어 나오는 불.
나는 그 위에 올려놓은 프라이팬에 대파부터 시작해서 각종 채소들을 추가한다.
내가 요리를 할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맛있는 음식은 단순히 미각뿐 아니라 많은 감각을 자극한다.
특히 요리하는 입장에선 이 소리도 한몫하는 것 같다.
치이이 하고 프라이팬 위를 굴러가는 재료들의 소리가 좋다.
더 기대되기도 하고.
프라이팬 위의 재료들이 충분히 볶아졌을 때쯤, 간장과 고기를 추가한다.
그러니 색깔도 그럴싸하게 변하고 돼지고기도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익어간다.
돼지고기는 다연이의 입맛에 맞게 많이 넣었다.
결국엔 야채도 많고 고기도 많은 오므라이스가 됐지만 그래도 맛있을 거다.
맛까지 해쳐가면서 채소와 고기를 넣진 않았으니까.
그리고 준비해둔 밥을 넣는다.
오늘은 다연이와 나, 이렇게 둘이서만 먹는 것이 아니다.
예나까지 껴 있으니 충분하게 밥을 해야겠다.
턱 하고 밥을 넣으니 달궈진 프라이팬과 밥알의 수분이 만나서 더 경쾌한 소리를 낸다.
나는 그대로 프라이팬 안에 담긴 재료들을 섞어준다.
처음엔 서로 달랐던 재료들이 점점 섞이면서 좋은 색깔을 만들어낸다.
"됐다."
좋다. 맛있어 보인다.
나는 완성된 밥을 그릇에 덜어낸다.
제일 많은 건 내꺼, 그 다음은 예나, 가장 작은 그릇에 적은 밥은 다연이 꺼다.
먹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어른처럼 먹을 순 없으니까.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밥을 잠깐 놓아두고 오므라이스의 하이라이트인 계란 프라이를 할 차례다.
미리 풀어놓은 계란 물을 달궈진 프라이팬에 끼얹는다.
예쁜 노란색을 띠며 완성되어 가는 계란 프라이.
오므라이스는 계란이 중심이라도 해도 될 만큼 중요하다. 물론 외적인 부분에서 말이다. 그래서 찢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덜어 놓는다.
예쁘게 만들면 다연이도 좋아할 테니까.
다행히도 전부 좋은 모습으로 완성됐다.
내 계란은 조금 찢어져 있긴 하지만 괜찮다. 다연이 꺼만 잘 된 거면 상관없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인 케첩을 뿌려준다.
다연이 몫의 오므라이스에는 하트 모양이라도 그려줄까 잠시 생각했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너무 주책 맞는 것 같기도 해서. 그리고 예나가 놀릴 것 같기도 하고.
음식도 완성됐고 해서 이제 둘을 부르기로 한다.
"다연아, 예나야. 밥 먹어."
"응!"
그러자 이 때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다연이가 튀어나왔다.
"많이 배고팠어?"
"아니, 맛있는 냄새가 나서."
"예나는?"
"오고 있어. 아마도."
"아마도?"
"응, 나는 오빠가 오라고하자마자 빨리 나왔거든."
이게 뭐라고 이렇게나 기대하고 있는 걸까.
그런 다연이가 귀엽게 느껴졌다.
"무슨 음식을 하는 건지 모르는데도?"
"응, 그래도 맛있을 것 같아."
다연이는 그 말을 하고선 테이블로 시선을 옮겼다.
그걸 본 다연이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엄청 맛있어 보여...!"
확실히 다연이 말처럼 맛있어 보이긴 했다.
아무래도 계란이 덮여 있으니 더 그런 것처럼 보인다.
"제꺼는 안 하셔도 되는데."
뒤늦게 나온 예나가 말했다.
"다연이랑 놀아줬는데 밥은 먹고 가야지."
"점심도 얻어먹었잖아요."
"대신 일했잖아."
우리의 말에 따라서 멍하니 얼굴을 보고 있던 다연이가 말했다.
"언니! 밥 먹자. 오빠가 한 거라서 엄청 맛있을 거야."
예나는 그런 다연이를 귀여워 죽겠다는 듯 본다.
"알겠어. 다연이가 먹으라면 먹어야지."
"오빠도 먹자. 다 같이 먹어야 해."
"이거만 정리하고 갈게."
다연이는 앞에 놓인 오므라이스이 집중하면서 내가 오길 기다렸다.
"아저씨, 빨리 와요. 다연이 기다려요."
"알겠어."
예나는 오므라이스에 빠져 버릴 것만 같이 집중하고 있는 다연이가 귀엽다는 듯 바라본다.
다연이와 예나의 재촉에 서둘러 정리하고 나도 테이블에 앉았다.
"오빠, 이거 이름이 뭐야?"
"오므라이스라고 하는 거야."
"오므라이스..."
다연이는 기억 속에 새기는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이제 먹자. 식겠다."
"응, 맛있게 먹을게."
"나도 잘 먹을게요."
"그래."
나는 먼저 오므라이스를 먹기 전에 다연이가 어떻게 먹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나보단 다연이가 맛있어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호오..."
다연이는 감탄을 흘리면서 숟가락을 공중에서 휘적거린다.
그러다가 오므라이스를 푹 하고 퍼 담았다.
계란과 함께 퍼 담은 밥에선 김이 피어오른다.
"오빠, 이거 봐.."
다연이가 보라고 말하며 내민 것은 다연이 전용의 작은 숟가락 위에 올려놓은 오므라이스였다.
"맛있겠다..."
다연이는 잠시 밥을 보고 있더니 입에 왕, 하고 넣는다.
"왜 이렇게 귀엽게 먹는 거야...."
그런 다연이를 지켜보고 있는 예나가 작게 말했다.
다연이는 아랑곳 않고 입에 넣은 밥을 먹다가 스르르 미소를 지었다.
"이거 진짜 맛있따.. 정말정말 맛있어."
늘 짓던 미소였지만 다연이는 그럼에도 오므라이스가 맛있다는 듯 계속해서 얌얌, 하며 먹었다.
"케첩이 맛있어. 달콤해. 이거만 먹어도 맛있을 것 같아."
그렇게 말한 다연이는 계란 위에 뿌려놓은 케첩만 조심스럽게 숟가락으로 쓸어 담았다.
"오빠, 나 이거만 먹어도 돼?"
"밥이랑 같이 먹는 게 맛있을 텐데."
"이거만 먹어보고 싶은데.."
"그래, 그러면 그렇게 먹어 봐."
다연이가 밝게 미소 지으면서 입에 훅 집어넣었다.
옆에 있던 예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고.
맛을 느끼던 다연이는 이내 밝은 얼굴로 말했다.
"마시따!"
"맛있어?"
"응! 엄청 달콤하고.. 또 먹고 싶다!"
"그렇다고 케첩만 먹으면 몸에 안 좋아. 많이 먹으면 안 되기도 하고."
"음... 맛있는 건 많이 먹으면 안 되구나..."
"꼭 그런 건 아닌데 거의 그래. 사탕처럼."
"사탕처럼."
다연이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밥을 한 숟가락 가득 퍼서 먹었다.
"그러면 밥은 많이 먹어도 되지? 이거는 오빠가 해준 맛있는 거라서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응, 내가 담아준 거 다 먹으면 나중에 또 맛있는 거 해줄게."
"맛있는 거!"
나날이 식탐이 늘어나는 다연이가 오므라이스를 맛있게 먹는다.
"진짜 너무 귀엽다.. 나도 동생 있었으면 좋겠어..."
그걸 본 예나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예나에게 말한다.
"다연이라서 그런 거야."
"그런 것 같아요."
예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다연이처럼 밥을 먹기 시작한다.
나도 다른 아이들을 많이 봤지만 그 중에서도 다연이가 제일 귀엽다.
다연이가 내 동생이라서 그런 건지 진짜 다연이가 제일 귀여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왜?"
다연이와 눈이 마주치자 그렇게 물었다.
"아니야, 아무 것도."
그리고 우리들은 늦은 저녁을 먹었다.
.
.
.
"오늘 엄청 재밌었따!"
다연이가 텅 빈 식당에서 그렇게 외쳤다.
뿌듯한 미소도 짓고 있었고 졸리지도 않는 것 같다.
"뭐가 그렇게 재밌었어?"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았고! 예나 언니랑도 놀았어. 엄청 맛있는 초콜릿도 먹었고."
"재밌었다니 다행이네."
쌩쌩한 다연이 대신 예나가 하품을 하면서 걸어 나왔다.
지금은 시간이 늦었다.
식당 문을 닫을 시간이 더 됐으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저녁 먹고 바로 집에 가지."
"저도 그러려고 했었는데... 다연이랑 놀다보니까 가기 싫어져서.."
"예나 언니도 나랑 노는 거 재밌었지?"
"응, 엄청 재밌었어. 흐암..."
"언니, 졸려?"
"응, 조금"
"언니 졸린 줄 알았으면 그만 놀껄...."
다연이가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예나가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으이구, 괜찮아. 다연이가 더 놀고 싶으면 더 놀아달라고 말해도 돼. 지금은 그래도 돼."
"그래도... 언니 힘들어.."
"고마워, 내 생각해 줘서."
이렇게 보고 있으니 예나가 다연이의 친언니 같다.
다연이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그 만큼 많이 친해졌다는 뜻이겠지.
"예나야, 너는 어떻게 가려고?"
"뭐, 걸어가야죠. 먼 것도 아니고."
"그래도 많이 늦었는데."
"그렇긴 한데... 어쩔 수 있나요."
우리는 식당을 정리하고서 마지막으로 나와 문을 잠근다.
그 때 예나를 멍하니 보고 있던 다연이가 말했다.
"언니, 그러면 우리 집에서 자고 가. 집에 가서 나랑 같이 놀자."
순수하게 묻는 다연이의 목소리에 예나가 한동안 다연이를 바라보았다.
"그건 안 돼, 다연아. 언니도 집에 가야지.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셔."
"음..... 오빠가 나를 기다리는 것처럼?"
"응, 안 오면 걱정하겠지?"
"...응. 그럴 것 같아."
예나도 그런 다연이에게 말했다.
"미안. 집에는 가야 할 것 같아. 대신 다음에 만나면 또 놀자."
"알겠어..."
다연이는 조금 실망한 듯 말했지만 투정을 부리지는 않았다.
그냥 아쉬워 할 뿐이다.
나는 어두워진 하늘을 보면서 생각했다.
예나가 혼자 가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 그것도 다연이와 놀아주느라고 늦은 건데.
차가 있다면 금방 데려다 주면 되겠지만 아쉽게도 차는 없다.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지만 그래도 시간은 많으니 예나에게 말했다.
"데려다 줄까?"
"아뇨, 뭐 그리 멀지도 않은데요."
"다연이도 안 졸린 것 같으니까 산책할 겸 같이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응! 나 안 졸려. 그러면 같이 가는 거야?"
다연이가 신나는 얼굴로 물었다.
그리고 예나가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음... 그러면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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