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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을 따라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다연이가 튀어나왔다.
그 모습이 나도 반가웠다.
"잘 놀았어?"
"응. 어린이집도 엄청 재밌고 선생님도 좋았어! 그리고 이거 봐바. 이거 색종이로 만든 거야."
다연이는 손에 쥔 종이를 팔락거리며 말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연이는 엄청 신나 보인다.
결국엔 재밌었다는 말이었기에 나도 만족스러웠다.
"재밌었다니 다행이네."
말을 마친 다연이는 내 옆으로 다가와 내 손을 잡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던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다연이가 오늘 처음 와서 저희도 집중해서 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잘 적응했어요."
"네, 다행이네요."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다연이를 어찌나 좋아하던지."
다연이의 표정도 밝고 인기까지 좋았다니 괜히 내가 기분 좋아진다.
"그래도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관심을 충분히 둘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네, 감사합니다."
다연이는 내 손을 잡고 한 손에 쥔 종이를 보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미소를 한껏 머금고 있다.
이제 가려던 때 선생님 뒤에서 익숙한 얼굴의 아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혜원아."
혜원이가 튀어나와 고개 숙여 인사한다.
"안녕, 왜 왔어?"
"그냥, 심심해서. 그리고 다연이 오빠한테 하고 싶은 말도 있어!"
혜원이가 하고 싶은 말이라니. 뭘까.
"무슨 말?"
"고맙다고요!"
그리고 혜원이가 밝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저번에 내가 했던 말 들어줘서요!"
"..?"
"다연이 햇살 어린이집 보내달라는 말이요!"
그제야 그 때가 떠올랐다.
꼭 그것 때문에 다연이를 여기로 보낸 건 아닌데.
하지만 혜원이는 그런 건 딱히 상관없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냥 다연이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닌다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래, 다연이랑 잘 놀아줘서 고마워."
"네!"
혜원이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기에 조금 늦게 데리러 올 것 같다.
손을 흔드는 혜원이에게 우리도 손을 흔들어주고 어린이집을 빠져 나온다.
다연이가 어린이집에서 좋은 말들을 들으니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그리고 한 편으론 다연이가 어린이집에서 뭘 했는지도 궁금해졌다.
"다연아."
"응?"
"어린이집은 어땠어?"
"어린이집..!"
다연이의 눈이 조금 커졌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다.
"어린이집 엄청 좋았어. 친구들도 좋고, 선생님도 좋았어."
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정도면 정말 좋긴 좋았던 모양이다.
처음 했던 걱정이 사라져서 다행이다.
더 자신감이 높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 맞다. 그리고 이거 만들었어. 오빠 주려고."
다연이가 파란색 색종이를 내밀었다.
서툴게 접은 자국과 모형 눈이 달려있다. 종이가 흔들릴 때마다 종이에 붙어있는 검은 눈동자가 흔들거린다.
"이게 뭐야?"
대충 뭔지 감은 오지만 잘못 말해서 다연이를 실망시키면 안 되니까 우선 물어보기로 했다.
"뭘 거 같아?"
"음..."
오히려 되묻는 다연이의 말에 나는 신중히 생각했다.
눈이 달려 있는 곳이 얼굴일 것이다.
그러면 이 부분이 입이고 여기가 몸. 그러면...
"물고기?"
"맞았어."
다연이가 미소를 활짝 지으면서 좋아했다.
직접 만든 물고기인가 보다.
"근데 오빠는 물고기 본 적 있어?"
"응, 본 적 있지."
"우와, 그러면 물고기는 무서워?"
다연이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물고기가 무섭다니. 그러고 잠시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파닥대는 물고기는 아이들이 보기엔 무서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안 무서운데 다연이는 모르겠어. 무서워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우오.... 무서운 물고기."
다연이가 손에 든 물고기 종이를 파닥대면서 말했다.
"그러면 나중에 같이 물고기 보러 가자."
"알겠어. 나중에 가자."
"응."
어린이집이 갔다 온 탓인지 다연이는 조금 신나있었다.
정말이지 첫 날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이렇게 다연이가 차근차근 변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인 것 같다.
"그거는 오빠 물고기니깐 잘 가지고 있어야 돼."
"알겠어. 안 잃어버리게 잘 가지고 있을게."
파란색에 흐물거리는 색종이.
그러고 보니 색종이는 처음 만져보는구나.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기억하는 내 모습에선 색종이를 만져보는 게 처음이었다.
그 처음이 다연이가 건네준 물고기라는 건 기분 좋다.
나는 다연이와 조금 더 걷다가 예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우선은 다연이가 오늘 낯선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땠는지 물어본다.
"다연아, 오늘 새로운 친구들 처음 만났을 때 어땠어?"
"새로운 친구? 아, 민재랑 지민이랑 하민이..."
"응, 그 친구들."
"좋았어. 처음엔 조금 두근거렸는데 이야기하자마자 바로 괜찮아졌어."
"정말?"
"응, 그래서 지금은 엄청 친해. 나도 친구들이 좋고 친구들도 내가 좋대."
선생님이 다연이가 인기 좋다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다연이가 이렇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면 오늘 다른 사람이 다연이 보고 싶어 하는데 괜찮아?"
그 말에 다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다른 사람? 다른 사람 누구?"
"오빠랑 예전부터 알던 사람. 다연이한테는 언니야."
"언니...!"
언니라는 말이 신기한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오.. 나 언니 보고 싶어."
지금 다연이는 꽤 기분이 좋은 상태다.
친구도 생겼고 어린이집도 재밌어서 그런 것 같다.
"진짜? 그 언니도 다연이 보고 싶대."
"언니 한 번도 본 적 없어. 어린이집 선생님이 언니 였는데 이제 선생님 돼서."
무슨 의민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식당에 가면 그 언니 볼 수 있을 거야."
"알겠어."
다연이는 그렇게 말하다가 자신의 손에 쥔 물고기를 보고 아쉬운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언니 있는 줄 알았으면 물고기 하나 더 만들 걸."
"다연아, 그 물고기는 어린이집에서 가르쳐 준 거야?"
"응, 내가 색종이 찾았어. 그래서 이거 뭐냐고 물어봤는데 선생님이 물고기 접는 거 가르쳐 준 거야."
나는 대충 이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물고기를 만들었어. 나중에 바다 그려서 거기에 물고기 붙일 거야."
"그래, 재밌겠네."
"응, 오빠도 같이 하자."
"알겠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다연이는 미소를 가득 지으며 나를 본다.
뭔가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이다.
"나중에 오빠도 어린이집 와서 같이 놀자."
"음... 나는 안 될 것 같은데."
"왜? 어린이집도 재밌고 오빠랑 같이 있는 것도 좋으니까 오빠랑 어린이집에서 놀면 더 좋을 것 같은데."
다연이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고 있으니 그러자고 말해야 할 것 같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건 안 돼. 거기는 다연이 친구들이랑 선생님만 갈 수 있거든. 대신 어린이집 끝나고 오면 같이 놀자."
"음.... 알겠어. 어린이집 끝나고 오면 같이 노는 거야."
"그래."
그렇게 같이 길을 걸어서 식당 근처까지 간다.
다연이도 쫄래쫄래 내 걸음을 맞춰서 걷는다. 나도 그런 다연이에게 걸음을 맞추려 했고.
다연이에게서 첫 날의 그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다연이가 변한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 성격이었던 건진 모르겠다.
그냥 나와는 달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다연이구나!"
식당 앞에 도착하니 예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 언니야?"
"응."
그러자 다연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안녕하세요!"
"우와... 진짜 아저씨 동생이에요?"
"응."
예나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아저씨랑 성격이 달라요."
"응."
달라서 다행인거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다연이가 다시 일어나서 예나를 본다.
예나는 뒤늦게 다연이의 인사를 받았다.
"안녕, 네가 다연이구나?"
"네!"
예나는 그런 다연이가 신기한 듯 본다.
"아저씨처럼 낯을 많이 가릴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네요?"
"응, 다연이는 나랑 달라."
오히려 어린이집에 다녀오고 나서 다연이가 많이 밝아졌다.
친구들을 만난 것이 도움이 됐던 모양이다.
"그럼 언니 이름은 뭐예요?"
"나는 김예나. 예나 언니라고 부르면 돼."
"예나 언니..."
다연이는 그 발음이 신기한지 되뇌었다.
"들어가자. 여긴 추워."
"응."
다연이는 힘차게 대답한 다음 쪼르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예나와 나는 먼저 들어간 다연이를 보고 있었다.
"아저씨..."
"응?"
"다연이 너무 귀여운 거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너무 귀엽지."
"진짜... 너무 너무 귀여워요..."
우리는 뒤뚱뒤뚱 걸어가는 다연이의 모습을 지켜본다.
다연이가 어린이집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덕분에 낯가림도 나아진 것 같고 성격도 조금 더 활발해졌다.
물론 언제까지 저럴지는 모르겠지만 내 바람대로 변해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들어가자."
"네.."
예나는 여전히 다연이의 귀여움에 취한 채로 식당으로 들어선다.
"아저씨, 그런데 이건 뭐예요?"
예나는 내 손에 있는 파란색 종이 물고기를 보면서 말했다.
"다연이가 준 물고기."
"물고기에요."
그 말에 다연이가 밝은 얼굴로 말했다.
예나는 그런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왜 이렇게 귀엽니."
"나도 몰라요."
"그게 더 귀여워."
다연이는 예나가 싫지 않은지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대로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예나가 말했다.
"다연아, 언니한테도 오빠한테 하는 것처럼 반말해도 돼."
"정말요?"
"응, 그게 더 편하잖아."
다연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더 편하긴 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알겠어."
더 친해진 기분도 들고.
그렇게 웃고 있던 다연이가 문득 뭔가가 떠올랐는지 예나를 보면서 말했다.
"언니도 물고기 만들어 줄까? 물고기 눈은 색연필로 그리면 되니까."
"다연이가 만들어 주면 좋지."
"그러면 만들어 줄게."
어린이집에 갔다 왔다고 힘들어하는 것 같지도 않으니 이대로 둬도 되겠다.
"아, 그 전에 내가 다연이 주려고 뭐 사왔는데. 한 번 볼래?"
"뭐 사왔어?"
"다연이 줄 선물."
"선물?"
"응."
선물이라는 말에 다연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선물은 뭘 받아도 좋으니까.
"다연이는 무슨 선물이었으면 좋겠어?"
"아무거나 다 좋아. 색종이로 만든 물고기도 좋고... 장난감도 좋고... 아니면 진짜 물고기야?"
"어... 진짜 물고기는 아닌데.."
다연이의 말에 예나가 살짝 멈칫 거렸다.
"장난감도 좋아."
"장난감도 아닌데..."
다연이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양심의 가책이 생긴다.
얼른 장난감도 사주고 아쿠아리움도 데려가야겠다.
예나는 살짝 당황한 얼굴로 주머니에서 뭔가를 내밀었다.
그리고 다연이의 표정을 관찰한다.
"오..."
그걸 보고 다연이가 작게 목소리를 흘렸다.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