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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제가 뭘 한다고.”
“다연이 오늘 처음 어린이집 가는 날이라서 힘들 거야.”
다연이는 오늘 처음 어린이집에 갔다.
그래서 힘들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와.. 아저씨 진짜 많이 변했네요.”
“뭐가....?”
“아저씨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어요. 항상 별 관심도 없던 사람이. 나한테는 안 그랬잖아요.”
“내가 너한테 왜 그래.”
“우리가 알고 지낸지가 얼마나 지났는데.”
예나는 조금 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저나 갖다 줘요.”
“알겠어.”
나는 주방으로 다시 돌아가서 수저를 꺼내준다.
“여기.”
“네, 잘 먹을게요.”
그리고 예나가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우리 식당에 오면 늘 먹는 음식이었다. 튀김과 떡볶이.
언젠가 한 번 이유를 물어본 적도 있었다. 왜 올 때마다 같은 것만 먹냐고.
그 때 돌아온 대답은 이거였다.
‘떡볶이를 안 먹으면 계속 생각나서 한 번씩 먹어줘야 해요. 그리고 튀김은 떡볶이랑 잘 어울리잖아요?’
그러곤 와구와구 먹었다.
지금도 그 때처럼 잘 먹는다.
나는 남은 시간에 설거지를 끝내고 다시 돌아온다.
“아저씨.”
그 때 예나가 말했다.
“왜.”
“정말 오늘 아저씨 동생 못 봐요? 한 번 꼭 보고 싶은데.”
그 말에 나는 잠시 생각했다.
다연이는 어쨌든 예나를 한 번쯤은 만나야 할 거다.
다연이는 계속 나랑 같이 있을 거고 그러면 한 번쯤은 예나를 만나게 될 거니까.
“다른 날은 안 돼?”
“네, 다른 날은 학교가거나 알바 가야한단 말이에요. 인사만 하고 갈게요. 동생 올 때까지 아저씨 일도 도와줄게요.”
“음....”
인사만 하고 간다면야 괜찮을 것 같다.
다연이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고 예나는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결정을 내린 나는 예나에게 말했다.
“알겠어. 대신 다연이가 힘들어 하면 가는 거야.”
“와! 네, 알겠어요.”
그리고 예나가 힘차게 음식을 먹는다.
잘한 결정이겠지. 이렇게 말했으면서도 사실 잘 모르겠다.
다연이가 좋아하길 바라는 수밖에.
음미하면서 먹던 예나가 마지막 떡볶이를 입에 넣었다.
“와... 맛있다...”
떡볶이를 만든 입장에서 이렇게 좋은 반응을 보이니 솔직히 기분 좋다.
그래도 다연이가 맛있다고 하는 게 더 좋지만.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여기 의리로만 오는 거 아니고 진짜 맛있어서 오는 거예요.”
예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할머니한테 배웠으니까.”
“그러면... 얼마예요?”
낡은 지갑을 뒤적거리는 예나에게 말했다.
“돈 안 내도 돼. 그냥 먹어.”
왠지 오늘은 판 것보다 공짜로 내준 게 더 많은 것 같지만 괜찮다.
할머니 친구 분과 예나를 위해서니까.
"왜요, 저 이제 밥 정도는 제 돈 내고 먹을 수 있어요."
"알아, 나도."
잠시 그대로 굳어 있던 예나가 지갑을 도로 넣었다.
"그래요, 그럼 제가 주방 일 도와드릴게요. 곧 있으면 점심시간이죠? 저 어차피 시간 많아서 괜찮아요."
"아까 말했던 거 때문이면 괜찮아. 농담이니까."
"설마 동생 만나게 해주겠다는 것도 농담이었어요?"
"아니, 일 안 해도 돼. 집에 있다가 5시 쯤에 다시 와."
내 말에 잠시 생각하던 예나가 입을 열었다.
"싫어요. 그냥 도와줄게요. 어차피 할 일도 없어서 괜찮아요."
"진짜 안 도와줘도 돼. 도울 일도 없고."
그 때 문에 달린 종이 울린다.
아는 사람이 아닌, 정말 손님이었다.
예나는 머리를 묶고선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온다.
"어차피 전 요리도 못하니까 설거지 할게요."
"안 도와줘도 된다니까."
"그렇게 말해도 도와줄 거예요. 다연이 만나는 대신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예나는 끝까지 가지 않을 것 같다.
나름 고집도 있는 편이었으니까.
"알겠어, 그럼 설거지 해줘. 그리고 고맙다."
"뭘요. 그럼 나중에 그 다연이라는 애 자주 만나게 해줘요. 아저씨 동생이라고 하니까 보고 싶어요."
"그래. 다연이한테 물어보고."
그 말에 예나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진짜 아저씨 변했어요. 다연이 때문이죠?"
"아마도."
그 때 들어온 손님이 말했다.
"여기 주문이요."
"네."
나는 주문을 받기 위해 홀로 걸어갔다.
.
.
.
"쉬어."
"쉬고 있어요."
점심시간이 끝난 지 한참 지났다.
그 동안에도 예나를 집에 보내려 했는데 가질 않는다.
다연이가 올 때까지 기다릴 거라고 했다.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나중에 알바비라고 돈 주지 마세요. 안 받을 거니까."
"왜."
"음.... 그냥요. 그게 멋있잖아요?"
그리고 예나가 살짝 웃었다.
그 말에 잠시 다연이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여자가 100만원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거절했던 그 때가 문득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나는 완전 바보였다.
거의 처음 겉으로 감정을 드러낼 만큼 화가 나서 이성적인 판단이 서질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얼른 주머니에 챙겨 넣고 가라고 했을 텐데. 그래도 결국엔 돈을 받아서 다행이다.
그걸로 다연이에게 좋은 걸 입히고 책들을 살 수 있었으니까.
"안 멋있어."
내가 그렇게 말하니 예나가 뾰로퉁한 표정을 지었다.
"멋있거든요? 아무튼 전 돈 안 받을 거예요. 이미 알바도 하고 있다고요."
"그러면 일을 하지 말든가."
"아저씨도 맛있는 거 많이 해줬잖아요. 그걸로 퉁쳐요."
어차피 줘도 받지 않을 생각인 것 같으니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리고 대신 먹을 것들을 많이 챙겨줘야겠다.
오늘처럼.
잠시 그 자리에 있던 나는 다시 휴대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한다.
다연이 때문인지 오늘은 자주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4시 16분.'
다연이를 데리러 가는 시간은 4시 30분이다.
어린이집까지 다연이 걸음으로는 20분쯤 걸리고 나는 10분 조금 더 걸린다.
다행히 집과도 가깝기에 오늘 아침 등원 때도 걸어서 간 것이다.
그러면 슬슬 어린이집에 갈 준비를 해야겠다.
"지금 다연이 데리러 가야 돼."
내 말에 예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우와, 벌써요? 저도 갈래요."
같이 가는 거야 상관없지만 그래도 다연이가 얼마나 낯을 가릴지 모르기 때문에 예나에겐 여기 있으라고 말했다.
게다가 식당까지 오는 길에 언질이라도 할 수 있으니 그러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거면... 알겠어요. 그런데 아저씨, 식당은 제가 보고 있어요?"
"아니, 잠깐 문 닫고 갈 거야."
"하긴... 제가 보고 싶어도 요리를 할 줄 몰라서."
굳이 예나에게 일을 시킨다면 요리 말고도 시킬 거리는 많겠지만 예나는 알바가 아니다.
일을 시키고 싶지도 않고.
"그럼 저는 어떡하죠?"
"여기 있어. 얼마 안 걸리니까."
예나는 내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뭔가 좋은 방법이 생각난 듯 말했다.
"아! 혹시 다연이는 뭘 좋아해요?"
"좋아하는 거?"
다연이가 좋아하는 걸 잠시 생각해봤지만 고기! 라고 말하는 다연이의 모습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고기...?"
"고기?"
"아니, 고기가 아니라..."
그리고 캐러멜과 사탕을 먹었던 다연이가 생각난다.
"달콤한 거 좋아해. 그런데 왜?"
"그냥요. 그리고 다연이한테는 제가 물어봤다고 말하지 마세요."
"알겠어."
선물을 주려는 생각이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예나와 같이 밖으로 나간다.
"열쇠 줄까?"
"아뇨, 다연이 기다리면 안 되잖아요."
"맞아."
나는 그 말에 납득하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다연이를 기다리게 하면 안 되지. 나도 빨리 어린이집에 가야겠다.
***
"물고기다."
다연이가 예쁘게 접힌 종이를 들고선 말했다.
이건 물고기다. 왜냐하면 정인이 물고기 접는 방법이라고 가르쳐 줬기 때문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차이는 보육과 교육에 있다.
유치원은 교육을 하는 곳이고 어린이집은 보육을 하는 곳.
그렇기에 다연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한글이나 다른 뭔가를 가르쳐주기보단 재밌게 놀고 아이들을 잘 케어해 주는 것을 위주로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정인은 아이들에게 물고기 접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어린이집의 과정으로는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다연이가 종이로 만든 물고기를 들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다연이가 색종이를 가리키고선 이거는 뭐냐고 물어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연이 옆에 있던 혜원이가 종이 접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고 그 옆에 있었던 지민이가 자기도 하겠다고 했다.
그 결과 이 반의 모든 아이들이 색종이로 물고기를 만들게 된 것이다.
"나는 진짜 물고기 본 적 있어. 아빠랑 낚시 가서."
다연이 옆에서 종이로 만든 물고기를 보고 있던 하민이가 말했다.
하민이는 쌍둥이 남자아이다.
"우와, 진짜?"
"응, 물고기는 엄청 파닥거려."
하민이가 손으로 퍼덕거리는 물고기를 흉내내며 말했다.
"그러면 진짜 물고기랑 종이 물고기랑 똑같이 생겼어?"
다연이는 이미 사진으로 진짜 물고기를 봤지만 그럼에도 하민이에게 그렇게 물었다.
하민이는 실제로 물고기를 본 적이 있으니까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자 하민이는 종이 물고기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똑같이 생기진 않았는데 비슷해. 이게 입이고 이게 지느러미야."
"우와... 그렇구나... 그런데 물고기는 안 무서워?"
그 말에 잠시 움찔 거리면서 지민이의 눈치를 살피던 하민이가 말했다.
"응, 안 무서워. 그냥 물고기야."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던 지민이가 그 때다 싶어 말했다.
"또 거짓말 한다. 너 아빠가 물고기 보여 줬는데 무섭다고 막 그랬잖아."
"내가 언제? 나는 그런 적 없거든, 네가 그랬나보지."
"..... 다음에는 동영상 찍어서 보여줄 거야."
"네 마음대로 해라. 나는 안 그랬거든."
지민이는 열 받은 듯 가만히 있더니 하민이와 다연이 사이를 가로막았다.
"다연아, 저런 거짓말쟁이 말 듣지 마."
"...."
다연이는 아이들을 멍하니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이와 하민이는 자주 싸운다. 싸운다기 보단 다투는 거지만.
"나 거짓말쟁이 아니거든."
"그러든지."
그런 둘의 모습에도 다른 아이들은 익숙한 듯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선생님만이 다가와서 싸우지 말라고 말한 뒤 다시 돌아갔다.
지민이와 하민이는 남매라던데 자주 싸운다.
오빠랑 다연이는 안 싸우는데.
다연이는 다시 자신이 접은 물고기를 본다.
다시 봐도 잘 만든 것 같다. 이건 오빠한테 줘야지.
"다연아, 이거 봐. 눈이야!"
혜원이는 언제 그런 걸 얻어왔는지 동그란 눈 모형을 가지고 왔다.
이걸 종이에 붙이면 된다고 한다.
"짠! 됐다!"
"나도 붙였어!"
이제 완벽한 물고기가 완성됐다.
그리고 다연이는 하나 더 만들기 시작했다.
"다연아, 왜 두 개 만들어?"
오늘 다연이와 처음으로 만난 친구인 민재가 물었다.
"이거는 오빠 줄 거야! 그리고 이거는 내꺼야!"
민재는 그 말에 자기 손에 쥐고 있는 물고기를 본다.
잘 만든 물고기여서 가지고 싶었는데.
"그러면 이거 가질래? 내 물고기 잘 만들었어."
그래도 다연이에게 주는 거면 괜찮다.
물고기 하나쯤은 다시 만들면 되니까.
그런데 다연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내가 만들어서 오빠 줄 거야."
"응..."
"그래도 고마워!"
살짝 실망한 민재가 고맙다는 다연이의 말에 다시 미소 지었다.
"다연이가 필요하면 만들어 줄게!"
"응!"
잠시 후, 다연이의 양 손에는 파란색 물고기와 하늘색 물고기가 한 마리씩 쥐어져 있다.
물고기 접기를 끝낸 아이들은 그 자리에 앉아서 곧 있으면 올 부모님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 때 혜원이가 말했다.
"다연이 오빠는 우리 엄마보다 빨리 온다고 했지?"
"응, 좀 있으면 올 거야."
"힝... 다연이랑 더 놀고 싶은데...."
"나도 혜원이 엄마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던 다연이는 오늘 하루 동안 지냈던 어린이집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친구들도 좋고 선생님도 좋고, 무엇보다 재밌다.
혜원이랑 하루 종일 같이 노는 것도 좋고.
물론 그렇다고 오빠가 늦게 오길 바라는 건 아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던 다연이는 작게 소리 내어 말했다.
"오빠도 와서 같이 놀았으면 좋겠다...."
어린이집도 좋고, 오빠도 좋으니까 같이 와서 놀면 더 좋을 거다.
다연이가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선생님이 문을 열고 말했다.
"다연아, 오빠 왔어."
"네!"
다연이는 물고기 두 마리를 허겁지겁 챙기고 친구들과 인사를 했다.
어린이집도 좋지만 오빠가 더 좋다.
빨리 오빠가 보고 싶다.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