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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친구?"
"응, 어제 혜원이가 예쁜 친구 온다고 말했어..."
심상치 않은 둘의 대화에 정인이 고개를 빼꼼 내밀어 둘을 바라본다.
뭔가가 일어날 것 같았다.
민재의 얼굴은 붉어지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민재는 시선을 돌렸다.
"혜원이도 예쁜데."
민재는 다연이의 말을 듣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할까 말까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네가 더 예뻐."
비록 다연이와 만난 지 10분밖에 안 됐지만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연이 말처럼 혜원이도 예쁘지만 다연이는 뭔가... 민재의 마음을 찌른 것 같았다.
"어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인이 작게 말했다.
온 지 10분 만에 소심하던 민재가 그렇게 말했다.
정인은 숨죽이고 다음 장면을 기다린다.
다연이는 그런 민재를 보다가 살짝 미소 지었다.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다연이가 말했다.
"고마워!"
그 말을 들은 민재는 만족한 듯 살짝 미소를 지었지만 정인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차인.. 건가..?"
민재의 고백 아닌 고백에 다연이는 너무 담담하게 말했다.
오히려 민재의 말 덕분에 긴장이 많이 풀린 것 같기도 하다.
차인 게 아니라면...
다연이는 저 말을 단순히 자신을 칭찬한다고 생각했던 건가.
민재도 다연이가 고맙다고 한 말이 좋았을 뿐이고.
"귀엽네."
정인도 살짝 웃었다.
재밌는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 때 민재가 말했다.
"아, 다연아."
"응?"
"너 오늘.. 어린이집 처음이면 내가... 어린이집 어떤지 보여줄까..?"
어린 아이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건 힘들다.
제대로 언어를 배우지도 않았고 어려운 단어들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쉬운 단어로 말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런 쉬운 단어들의 조합이 더 알아들을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건 같은 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어..... 아! 소개! 내가 어린이집 소개해 줄게."
맞는 단어를 간신히 찾아낸 민재가 자신 있게 말했다.
다연이는 그제야 말을 이해하고선 고개를 끄덕인다.
"응, 소개해줘."
"알겠어."
다연이는 민재의 뒤를 따라서 방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한 쪽에 장난감들이 있고 다른 한 쪽엔 처음 보는 것들이 놓여 있었다.
"멋있다아..."
주변을 둘러보던 다연이가 작은 소리를 흘린다.
이 방에 들어오기 전, 다연이가 겪었던 긴장감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새 친구도 사귀었고 선생님도 좋다. 게다가 이 방 안은 다연이가 처음 본 것들 투성이다.
이런 걸 가지고 논다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사실 아직 안 온 아이들이 더 많아서 살짝 걱정이 되긴 했지만 지금은 민재가 소개해주는 방을 구경하는 게 더 재밌다.
"그치...?"
민재가 그렇게 말했다.
지금 민재는 다연이의 관심을 얻고 싶다.
멋있는 걸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다연이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너 엄청 착하다."
방 안을 모두 둘러본 다연이가 말했다.
"나..?"
"응. 엄청 착하게 소개도 해줬어."
다연이가 활짝 웃었다.
민재는 그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했고.
그 때 문이 활짝 열린다.
힘찬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그것보다 더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응, 안녕. 오늘 되게 힘이 넘치네."
"네! 오늘 다연이 오거든요!"
문울 열고 등장한 건 혜원이였다.
다연이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혜원이라는 걸 금방 알아챘다.
"혜원아!"
"어! 다연이 벌써 왔네!"
혜원이가 성큼성큼 다가간다.
"응, 벌써 왔어!"
혜원이의 등장에 둘이서 찍고 있던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몰래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정인은 이제야 고개를 돌린다.
아직 아이들이 전부 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다연이가 이 공간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민재랑 이야기했던 걸 보면 다른 아이들과도 절 지낼 것 같고.
혜원이와 다연이가 둘만 알고 있는 대화를 하고 그 사이에 낀 민재가 멍하게 둘을 바라보고 있을 때쯤 다시 방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혜원이와는 정반대의 목소리.
하지만 정인은 알고 있다. 지금 이 목소리는 꽤 신난 목소리라고.
"안녕!"
"안녕."
쌍둥이 남매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누구야..?"
비슷한 옷차림과 생김새.
서로는 부정하고 있지만 닮았다. 하지만 일란성 쌍둥이처럼은 아니다.
둘은 남매고 이란성이었으니까.
하지만 다연이는 그런 복잡한 건 잘 모른다.
"지민이랑 하민이! 쌍둥이야!"
그 말에 저번에 그림을 그리면서 혜원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안녕."
"안녀엉."
그리고 저번에 오빠가 했던 말도 같이 떠오른다.
똑같이 생긴 쌍둥이가 있고 다르게 생긴 쌍둥이가 있다고.
둘은 다르게 생겼다. 닮았지만 똑같진 않다.
다연이는 그 둘이 마음에 들었다.
방금 처음 만난 건데도 말이다.
"네가 다연이야?"
"응, 나는 이다연이야. 너는?"
왜냐하면 둘의 목소리에서 오빠가 잠깐 생각났기 때문이다.
무뚝뚝하지만 정이 없진 않다.
다연이는 그런 오빠를 닮은 목소리가 좋다.
"나는 서지민이야. 얘는 서하민."
"안녕."
"안녀엉."
다연이를 잠시 보고 있던 하민이가 말했다.
"친하게 지내자."
"응."
하민이는 악수까지 하고 나서야 다연이를 떠나갔다.
그 옆에 있던 지민이는 그럼 하민이가 못마땅하다는 듯 보고 있었다.
"왜 저래."
평소 하민이 답지 않은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연이에게 한 말 만큼은 지민이도 동의했다.
"나도 친하게 지내자. 나 혜원이랑도 친해."
"우와, 정말?"
"응, 우리 매일 같이 놀아."
"맞아!"
지민이의 말에 혜원이가 크게 말했다.
지금 혜원이는 아주 기분이 좋다.
혜원이가 좋아하는 친구 둘이 모두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모여 볼까요?"
그 때 정인이 일어나서 말했다.
드디어 어린이집에서의 본격적인 날이 시작됐다.
다연이는 네, 라고 대답하면서 친구들을 따라 모인다.
친구도 좋고, 선생님도 착하고, 어린이집도 모두 다 좋다.
그래도 다연이는 오빠가 보고 싶다.
***
나는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생각에 빠진다.
여기는 다연이도, 손님도 없다.
다연이가 오기 전의 나는 이런 때에 뭘 했었지.
멍청하게 허공을 보고 있는 게 전부였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버릇처럼 다연이의 그림에 시선이 닿는다.
분명 저걸로 나를 감시하겠다고 했었지.
문득 그 말이 떠올라서 그림을 보고 있다가 나도 눈을 감아보기로 했다.
이상한 생각이었지만 왠지 지금은 그러고 싶었다.
'어차피 사람도 없는데.'
그런 생각에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럼에도 당연히 다연이가 보일 리는 없었다.
다연이와 같이 있다 보니 나도 애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다연이는 벌써 나를 잊고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감고 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저씨 뭐해요?"
나는 그 목소리에 서둘러 눈을 뜬다.
눈앞에는 아는 여학생이 서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해."
"아닌데? 원래 아저씨가 그러고 있진 않았잖아요."
여학생은 익숙하게 의자에 앉는다.
이 학생의 이름은 김예나.
나처럼은 아니지만 할머니가 편의를 봐주시던 아이였다.
편의라는 게 대단한 뭔가를 말하는 게 아니라 올 때마다 공짜로 음식을 줬다는 거다.
예나의 집은 직설적으로 말해서 가난한 편이었다.
밥 한 끼도 나라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정도로.
지금은 예전보다 집안 형편이 나아져서 나라의 지원을 받는 건 벗어났다지만 여전히 넉넉하진 않았다.
할머니는 아동급식카드를 들고 쭈뼛쭈뼛 오는 예나에게 공짜로 음식들을 내줬었다.
그게 예나가 중학생 때부터였으니 나와도 알고 지낸지 꽤 됐다.
최근엔 본 적이 없었지만.
"...."
내가 아무 말없이 있으니 예나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저씨 뭐 하고 있었어요? 말 좀 해 주세요 "
오래 동안 알고 지내다보니 말도 편하게 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종종 나를 몰아붙이곤 했다. 이러는 편이 더 재밌다나.
하지만 과하게는 하지 않는다. 딱 여기까지였다.
"아무것도 안 했어."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진 않지만... 아저씨가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죠."
"무슨 일이야. 한동안 오지도 않더니."
"아, 저기 편의점에서 알바 한다고요. 밥도 거기서 먹다보니 그랬네요. 죄송해요."
예나는 오랜만인 듯 식당 주변을 어슬렁 거렸다.
첫 만남 때의 예나는 주변을 눈치도 많이 보고 자신의 집이 못 산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배려 이후로 조금씩 달라졌고 지금에서는 그런 가정사 따윈 별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성격도 많이 변했고. 더 활발하게.
"밥 먹으러 왔어?"
"네, 오랜만에 아저씨가 만든 거 먹고 싶어서요."
그런데 시계를 보니 곧 있으면 점심시간이다.
그 말은 학생이 오면 안 되는 시간이라는 말이다.
갑작스럽게 그 사실을 떠올린 나는 예나에게 말했다.
"너 학교는 어쩌고."
그 말에 예나가 나를 빤히 본다.
그리고 말했다.
"아, 저희 학교 오늘 개교기념일이에요. 모르셨나 보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학교 사이트에서 확인했던 게 떠올랐다.
우리 식당은 바로 앞, 고등학교 학생들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고등학교 일정을 확인하곤 했었는데 잊어버린 모양이다.
오늘이 다연이가 어린이집을 가는 첫 날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응."
"뭐, 그럴 수 있죠. 그러면 저 떡볶이랑 튀김 일인분씩 주세요."
"알겠어. 조금만 기다려."
음식을 하러 주방이 들어가는 사이 식당을 돌아다니던 예나가 주방 앞을 서성이다가 내게 물었다.
"아저씨, 나 주방에 들어가도 돼요?"
"왜?"
"그냥 할 것도 없고 심심하잖아요."
"그래, 대신 저 의자에만 앉아있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의자에 앉는 예나.
할머니와 나, 둘만 있던 식당에 종종 예나가 들러서 분위기를 바꿔줬었다.
우리가 가지지 않은 걸 예나는 가지고 있었으니까.
한참 의자에 앉아 나를 보던 예나가 내게 물었다.
"아저씨, 저 그림은 뭐에요?"
나와 어울리지 않는 그림 때문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긴 다연이를 본 적 없으니까 저런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하다.
"다연이가 그린 그림. 너는 모르겠지만 나, 동생이랑 살고 있어."
"동생이요? 아저씨 외동 아니었어요?"
"나도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니더라. 어쨌든 지금은 동생이랑 살고 있고, 저건 동생이 그린 그림이고."
"와....."
예나는 내가 한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듯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말했다.
"어... 아저씨. 저, 저기 복도에 가 봐도 돼요...?"
"그래, 대신 다연이 물건도 많으니까 조심해."
"네..."
나는 예나가 복도에 가 있는 동안 음식들을 완성시켰다.
이런 떡볶이와 튀김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 먹어야 맛있는 법.
나는 예나를 불렀다.
"음식 다 됐어."
"네...."
그 말에 예나가 털레털레 걸어 나왔다.
"우와.... 아저씨 진짜였네요?"
"그래."
"그러면 아저씨. 저 아저씨 동생 보고 싶은데. 보여줄 수 있어요?"
예나가 그렇게 물었다.
살짝 들뜬 얼굴.
예나도 외동이라서 동생에 관심이 많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들뜬 얼굴을 하고 있으니 다른 마음이 들었다.
"안 돼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응, 안 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