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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빠는 계속 기다려 줄 거야.”
그 순간 조금 굳어 있던 다연이의 얼굴이 서서히 풀린다.
마치 전에 있던 긴장도 사라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다연이가 힘차게 말했다.
“내일 안 갈 거야! 오늘 갈래!”
“정말?”
“응! 내가 잊어버리고 있었어! 어린이집에서 친구 못 사귀어도 오빠는 계속 있을 거잖아! 나 기다리면서!"
내가 위로랍시고 했던 말을 다연이가 어떻게 받아들였는 진 모르겠지만 지금 다연이는 힘이 넘쳤다.
자신감이 마구 샘솟고 있었다.
"오빠는 내 옆에 계속 있는 다고 했찌!"
"응."
다연이가 내 손을 꽉 쥐었다. 최근 들어서 가장 강하게 움켜쥐고 있다.
"나는 오빠가 하고 싶은 거 할 거야! 어린이집도 가고 친구들도 많이 사귈 거야!"
"응."
"혜원이도 있으니까!"
"응."
다연이가 다시 초롱초롱해진 눈으로 나를 본다.
나날이 자신감이 자라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바로 어린이집에 가자!"
"응, 그런데 너무 무리하진 마. 다연이가 힘들 수도 있잖아."
"아니야! 나는 괜찮아. 오빠는 계속 내 옆에 있을 거니까!"
"맞아, 계속 있을 거야."
"맞아!"
내가 기다려 준다는 말에 감명을 받은 듯한 다연이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 말을 들으니 새삼 다연이에겐 내가 전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말 한 마디에 이렇게 힘을 낼 수 있다니.
그렇게 자신감이 넘친 다연이는 경보 선수처럼 힘차게 걸음을 옮겨서 금방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유아틱하게 꾸며져 있는 외관. 다연이는 그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간 듯 어린이집을 보고 있었다.
"오... 귀엽다..."
내가 봤을 땐 다연이가 더 귀여운데.
나는 어린이집 바로 앞에서 다연이에게 말했다.
"들어간다."
"응!"
이번엔 다연이가 앞장서서 문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내가 문을 열었다.
그러더니 안에서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와서 반긴다.
"아, 오늘 온다던 다연이죠?"
"네."
"다연이에요!"
여전히 자신감으로 가득 찬 다연이가 말했다.
"그래, 기분 좋아 보이네."
"네!"
정확하게는 기분이 좋아 보인다기 보단 전투에 나가는 장군처럼 힘이 넘쳐 보였다.
지금 다연이의 모습은 정말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모습을 뒤로 하고 선생님이 말했다.
"어린이집에 대해서 소개해 드려도 될까요?"
"네."
선생님은 천천히 어린이집에 대해서 소개를 했다.
어느 곳엔 뭐가 있고 또 다른 곳엔 다른 나이대의 아이들이 있다고 말한다.
주변을 얼추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다연이게 있게 될 곳으로 보내주려는데 저 너머에서 익숙한 얼굴의 여자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기억에서 잘 떠오르진 않는다.
여자도 나와 비슷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 침묵을 깬 건 다연이었다.
"저번에 오빠 식당에서 봤어."
다연이의 말을 들으니 누구인지 단번에 떠올랐다.
"어..?"
여자도 나와 마찬가지로 떠올린 것 같다.
"저기... 고등학교 앞 분식집 사장님 맞죠?"
"네, 저번에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게 됐다던 그 분이네요."
여자는 저번에 우리 식당에서 튀김과 떡볶이를 먹었던 그 여자였다.
물론 그 뒤로도 종종 들르곤 했지만 최근에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안 왔어요."
여자는 다연이의 말을 듣곤 웃으면서 대답한다.
"죄송합니다. 요즘엔 다이어트 한다고 안 간 거예요."
"그렇군요."
"그런데 이 아이가 오늘 온다던 다연이에요?"
그 말에는 처음 우리를 맞았던 선생님이 말했다.
"네, 맞아요. 아시는 분인가 봐요?"
"네, 저 앞 분식집 사장님이요."
"아.."
다연이는 손님으로 왔었던 선생님 덕분에 좋은 더 편해진 것 같다.
잡은 손에 힘도 덜 들어오고 표정도 더 편해 보인다.
처음 소개해주시던 선생님이 이제 마무리를 짓는다.
"이제 잠깐 떨어질 시간이에요. 다연이는 저 방에 가면 돼."
"네..."
떨어져야 한다는 말에 다연이의 목소리가 조금 약해졌다.
넘치던 자신감이 한 번에 날아간 것 같은 목소리다.
"오빠분하고 이야기하다가 들어가면 돼요."
"네."
나는 다연이를 보내기 전에 말했다.
긴장하지 않고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친구들이랑 잘 놀고 있어. 내가 금방 데리러 올게."
"응...."
막상 들어가야 할 때가 되니 다연이의 목소리는 다시 힘이 빠졌다.
처음보다 더 힘이 없는 것 같다.
"왜 그래? 다시 긴장 돼?"
"응..."
다연이의 얼굴을 보니 많이 긴장되긴 하는 모양이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괜찮아, 혜원이도 있잖아."
"그래도....."
다연이가 고개를 푹 숙인다.
"혜원이도 있으니까 친구 잘 사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다연이 말처럼 나도 계속 있을 거니까."
"맞아... 오빠가 계속 있겠다고 했어..."
그렇게 되뇌었지만 여전히 떨리는 모양이다.
"오빠는.. 나 데리러 언제 올 거야?"
"저녁 먹기 전에 데리러 올게."
그 말에 다연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이제 들어갈래?"
"응.. 들어갈래."
다연이를 보내는 나도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마치 가면 안 돌아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다연이는 계속해서 머뭇거리다가 나에게 슬금슬금 다가온다.
"왜? 들어가기 싫어?"
"아니...."
다연이는 쭈뼛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다가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선 나에게 말했다.
"한 번만 안아줘...."
"그래."
다연이가 살짝 나에게 안긴다.
작은 인형을 안는 것 같다.
"갔다 올게... 오빠도 나 데리러 와야 돼..."
"알겠어. 꼭 데리러 올게. 다연이는 친구들이랑 잘 놀고 있어."
"응."
그리고 다연이가 내 품을 벗어난다.
"안녀엉."
"안녕."
다연이는 끝까지 나를 보고 있다가 선생님이 가리킨 방 안으로 쏙 들어갔다.
다연이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곧바로 멍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다연이는 저녁에 다시 만날 텐데 왠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긴장하고 있는 건 다연이가 아니라 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으니 저번에 식당에서 만난 여자가 다시 걸어 나왔다.
"싱숭생숭하시죠?"
"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님들이 거의 그러시더라고요. 우시는 분도 있으셨고요. 저는 선생님이긴 하지만 아이는 없어서 정확하게 어떤 기분인진 모르겠지만요."
여자가 말처럼 눈물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긴 한다.
내가 왠지 모를 기분에 잠겨 있을 때 여자가 말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다연이도 잘 놀 거고 저희도 다연이 잘 케어할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지만 다연이도 혼자서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내가 원했던 거니까.
나는 식당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린이집 밖으로 나선다.
여자는 그런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다연이는 오늘 처음 온 만큼 저희가 신경 써서 돌볼게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 드리고요."
"네."
분식집에서의 짧은 인연이지만 그렇게라도 아는 사람을 만나니 조금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저번에 봤을 때도 나쁜 사람 같진 않았고.
"아, 그리고 음식들도 엄청 맛있었어요. 요즘은 잘 못 가고 있지만 조만간 다시 들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여자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조심히 가세요."
"안녕히 계세요."
턱.
그리고 소리 나게 문이 닫힌다.
나는 곧바로 나오려다가 다시 돌아서서 어린이집을 본다.
꽤 큰 어린이집에 놀이터도 있다. 간단한 놀이기구 밖에 없었지만 그건 놀이터가 맞았다.
"잘 지내겠지..?"
몇 번 더 생각해봤지만 역시 내 생각이 맞는 것 같다.
다연이보다 내가 더 긴장하고 있었다.
.
.
.
털레털레 걸어서 식당으로 간다.
나는 익숙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향한다.
조용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연이 목소리로 가득 찼었는데 그 때가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조용했다.
다연이가 없었을 때는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도 복도 이곳저곳에 붙어있는 다연이의 그림이 내가 여태 겪었던 것들이 꿈이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복도에 펼쳐놓은 매트를 접어서 옆에 세워둔다.
다연이가 늘 앉아있던 의자도 바르게 정리한다.
이제서야 여자가 왜 부모님들이 울었다는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다연이가 사라지고 나서야 빈자리를 체감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건 그나마 버틸 수 있지만 다연이가 있다 없으니 더 우울해진 기분이다.
"왜 이래."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고 할 일을 해나간다.
어차피 반나절뿐이다. 게다가 내가 다연이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입장에서 되려 겁을 먹다니. 그러면 안 된다.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장사 준비를 끝마친다.
"후..."
장사 준비가 끝나면 남은 건 기다림 뿐.
나는 그 시간 동안 휴대폰으로 다연이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식당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해도 이 세상의 모든 음식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어린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더더욱 모른다.
여태까지는 알 필요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특히 오늘 어린이집에 처음으로 간 날이니 더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다.
다연이가 좋아하는 걸 떠올려 보자면.
"고기랑 밥."
그것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보통의 아이들은 밥을 잘 먹지 않으려 한다지만 다연이는 다르다.
고기라면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고 밥도 곧잘 먹는다.
냠냠 하면서 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뭘 해주는 게 좋을까.
"...볶음밥?"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다.
고기도 팍팍 넣어서 먹음직스럽게.
간단하지만 다연이는 좋아할 거다.
나는 그렇게 결정하고선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할 일도 없었기에 어떤 식으로 요리를 할지 떠올리던 찰나 문에 달린 종이 울린다.
손님인가보다. 평소보다 일찍 손님 맞을 생각을 하며 인사한다.
"어서 오세요."
"그래."
익숙한 모습과 말투. 나는 손님이 누군지 단박에 알았다.
"여기 앉으세요."
"그래, 고생이 많네."
나를 받아주셨던 식당 할머니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할머니의 친구 분이셨다.
저번에 다연이와 있었을 때도 봤었던 분이셨는데 이 시간대에 오신 건 처음이다.
"그 애기는?"
"오늘부터 어린이집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
이 분은 할머니와 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들었다.
할머니가 처음 이 곳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있었던 분이다.
"물 드릴까요?"
"그래주면 고맙지."
나는 물을 건네고 주문을 받는다.
"김밥 한 줄만 줘. 따뜻한 국물이랑 해서."
"네."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우선은 주문만 한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래."
나는 주방으로 돌아간다.
아무도 없는 주방. 복도로 들어가는 입구엔 다연이가 그린 그림이 자랑스럽게 붙어 있다.
그림 속에 있는 다연이가 웃는 얼굴로 나를 본다.
그러면 일을 시작해야겠다.
다연이도 보고 있으니까.
예쁜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