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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 나 그거 뭔 줄 알아!"
혜원이가 그렇게 말했다.
김치찌개는 혜원이의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집에서 엄마가 해줬던 기억도 있고.
"나도 알아."
"엄마가 우리 집에서 해줬었어."
혜원이는 그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한 건 맛없었는데."
대부분의 어린이가 그렇듯 혜원이 역시 김치찌개를 좋아하진 않았다.
사실 김치찌개를 좋아하지 않는다기 보단 조금 맵고 너무 자극적이다. 그래서 혜원이는 왠지 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는 맛이 없었다는 것이다.
김치찌개를 그렇게 좋아하던 혜원이의 아빠도 숟가락을 내려놓을 정도로.
혜원이는 잠시 눈을 감고 그 때 엄마, 아빠가 했던 대화를 떠올린다.
'맛없어?'
엄마가 우울한 얼굴을 하며 아빠한테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아빠는 말을 더듬으면서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아.. 아니? 엄청 맛있는데?'
'정말...?'
'응, 진짜 맛있어.'
아빠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혜원이도 한 숟가락 먹어보기로 했다.
'어머, 혜원이도 먹으려고?'
'응, 아빠가 맛있다고 했어.'
혜원이의 아빠는 그 모습을 보고선 작게 고개를 저었지만 이미 김치찌개에 집중한 혜원이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후룹.
혜원이가 김치찌개를 먹자마자 양 손으로 입가를 닦았다.
'맛없어.'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요리는 아빠가 전부 맡아서 하게 됐다.
'내가 한다니까.'
엄마가 요리를 하겠다고 해도 아빠는 말릴 뿐이다.
'여보, 안 힘들어?'
'괜찮아.'
엄마가 걱정스런 얼굴로 아빠를 보고 혜원이는 거실에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지금 혜원이는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것만큼은 알 것 같았다.
엄마는 요리를 못한다고.
"우리 오빠는 요리를 엄청 잘 해!"
다연이의 목소리에 혜원이가 회상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나도 먹어봤는데 오빠가 한 건 다 맛있어."
그 말에 다연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다연이는 요리를 잘하는 오빠가 좋다.
"우리 아빠가 한 것도 맛있는데 오빠가 한 게 더 맛있어."
"응, 나는 매일 오빠가 해줘!"
다연이가 은근슬쩍 오빠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 모습을 보고선 혜원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연이는 오빠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좋아한다. 오빠에 대한 칭찬을 하면 더더욱 그렇고.
이야기를 나눌수록 김치찌개 냄새가 더욱 진해진다.
"이제 가자. 엄마가 오라고 할 것 같아."
"응."
그 말에 다연이도 고개를 끄덕이고선 같이 밖으로 걸어 나간다.
주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김치찌개도, 오빠도 없다. 홀 쪽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보니 오빠는 그 곳에 서 있었다.
"잘 나왔네, 밥 먹어."
"응."
혜원이 엄마가 혜원이에게 말했다.
그렇게 혜원이는 밥을 먹으러 갔고 다연이는 오빠 뒤를 따라가 의자에 앉는다.
지금 다연이는 기분이 좋다.
어린이집에 대한 걱정은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왜냐하면 혜원이가 오빠에 대한 칭찬을 했기 때문이다.
"오빠는 요리를 엄청 잘해, 그렇지?"
그렇게 오빠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오빠가 물었다.
"그건 왜 물어봤어?"
그 말을 들은 다연이가 밝게 웃는다.
***
"혜원이가 아까 말했는데 오빠가 한 음식은 엄청 맛있데!"
"그래서 그렇게 물어본 거야?"
"응."
다연이가 배시시 웃으면서 나를 본다.
나는 다연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닌데.
그런데도 다연이에겐 내가 제일 잘하는 모양이다.
"다연이는 점심으로 뭐 먹을래? 골라 봐."
다연이는 내가 한 음식을 좋아하니 오늘은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해줘야겠다.
특별히 다연이가 먹고 싶어 하는 걸로.
"나는...."
잠시 고민하던 다연이는 입을 열었다.
"고기..!"
"그래, 오늘 고기 해줄게."
"우와!"
다연이가 밝게 웃는다.
하긴 고기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사람들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더 적다.
그리고 우리 다연이도 고기를 엄청 좋아한다.
마침 남은 돼지고기가 있으니 구워서 줘야겠다.
잠시 후, 식사를 마친 혜원이 가족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들 표정이 밝다.
그 중 혜원이의 엄마가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걸어왔다.
다연이는 내 뒤를 졸졸 따라오다가 혜원이에게로 방향을 튼다.
"잘 먹었습니다."
혜원이의 엄마가 미소 지으면서 카드를 내밀었다.
"잘 먹었다니 다행이네요."
나는 결제를 하고 카드와 함께 영수증을 돌려준다.
영수증을 확인하던 그녀가 내게 물었다.
"어..? 계산 잘못 하신 거 같은데요. 저희 김밥도 먹었어요."
"아, 별 거 아니지만 김밥은 서비습니다. 자주 와 주셨잖아요."
"그래도 돈 문제는 천 원이라도 허투루 하는 게 아니라고 배웠는데."
"그러면 혜원이한테 주는 서비스라고 생각하세요. 다연이랑 잘 놀아줘서 고맙다고 주는 거니까요."
혜원이 엄마는 살짝 웃고선 고개를 끄덕인다.
옛날의 나와 비교하면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게다가 서비스라는 말까지 할 수 있다니.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빈 말이 아니라 진짜 맛있게 먹었어요. 뭐, 올 때마다 늘 하던 말이긴 하지만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그리고 혜원이의 엄마가 말했다.
"김치찌개 하는 방법 좀 가르쳐 주실 수 있어요?"
"네?"
"저희 남편이 김치찌개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혜원이 엄마가 지난 일들에 대해 말했다.
자기가 김치찌개를 선보인 다음부터 어째선지 남편이 요리를 도맡아 하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굳이 말로 하진 않았지만 그녀도 자신의 요리 실력이 형편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다.
"가르쳐 주는 건 당연히 되는데요, 요즘은 영상이 잘 나와 있어서 그거 보고 따라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그게... 이상하게 영상을 보고 따라 해도 안 되더라고요. 진짜 똥손인가봐요."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말로 하진 않았다.
"그러면 다음에 오실 때 제가 보여드릴게요."
"정말요..? 우와, 감사합니다!"
얼마나 요리에 대한 감각이 없어야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도저히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긴 하니까.
예를 들어서 내 그림 실력 같이. 그건 아무리 노력해도 다연이보다도 못 그리겠다.
그렇게 혜원이 가족이 식당을 나선다.
"다연아, 안녕. 지훈씨도 장사 열심히 하세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혜원이도 손을 흔들었다.
"안녕! 그럼 두 밤뒤에 보자! 내가 친구들한테 다연이 온다고 말해 놓을게!"
"응, 안녕!"
그렇게 서 있으니 혜원이 가족이 나누는 이야기가 살짝 들려왔다.
"아까 무슨 이야기했어?"
"아, 김치찌개 하는 법 물어봤어."
"왜? 나 해주려고?'
"응, 이제 맛있게 해줄게. 저번에는 맛없어 했잖아."
"아이, 내가 언제...."
변명하는 듯한 혜원이 아빠의 마지막 말을 뒤로 멀어진다.
다연이도 입구에 서 있다가 식당으로 다시 들어간다. 나도 다연이를 뒤를 따라간다.
텅 빈 식당.
점심 장사의 마지막 손님이었던 혜원이 가족이 나가자 식당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제 밥 먹을까?"
"응."
그러면 다연이 줄 고기를 준비해야겠다.
밥 먹자는 말에 다연이가 털썩 내려와서 식사를 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시킨 적도 없었고, 나는 다연이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기를 바랐지만 다연이는 스스로 나를 돕고 싶어 했다.
그래서 몇 번 같이 하다 보니 그 사이에 다연이도 익숙해진 모양이다.
먼저 다연이는 자연스럽게 테이블을 닦았다. 내가 먼저 하려고 하면 늘 다연이가 먼저 와서 테이블을 닦고 있었다.
그럼 테이블은 다연이에게 맡겨두고 수저를 꺼내놓는다. 그러자 다연이가 작은 키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선 수저를 가지고 사라진다.
다연이가 도와주니 준비가 이렇게 빨리 끝났다.
나는 서둘러 삼겹살을 꺼내고 요리를 준비한다.
김치찌개에 넣으려 사둔 거지만 다연이가 고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다연이 몫도 생각해서 충분히 사 뒀다.
고기를 먹는 날이 오늘이 될 줄은 몰랐지만.
이제 다연이는 익숙하게 의자에 앉아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우선 불부터 올린다.
프라이팬이 완전히 달궈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다연이가 내게 말했다.
"오빠, 그런데 쌍둥이가 뭐야?"
쌍둥이라니. 갑자기 묻는 질문에 살짝 멍하니 있다가 되물었다.
"쌍둥이는 왜?"
"음... 햇살 어린이집에 쌍둥이 친구가 있대. 그런데 쌍둥이가 정확하게 뭔지 모르겠어."
"아, 그렇구나. 쌍둥이는 동시에 태어난 애들을 말해."
"그런데 어떻게 동시에 태어나는 거야?"
"어...."
여기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려면 꽤 구체적으로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런다고 해서 다연이가 이해할 수도 없을 것 같고. 그래서 짧게 설명했다.
"희귀하게 쌍둥이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어. 비슷하게 생긴 아이들도 있고 다르게 생긴 아이들도 있어."
"오.... 그러면 둘은 친구인 거야?"
친구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쌍둥이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딱히 물어 볼만한 친구도 없으니까.
"음.. 둘이서 정하지 않을까? 친구처럼 있고 싶으면 친구라고 하고 아니면 다르게 부르는 거지."
"아, 그런 거구나. 유치원 친구는 오빠라고 한대."
"그래."
가끔 다연이가 이렇게 곤란한 질문을 할 때가 있다.
곤란한 질문은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물어볼 때를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도 공부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우선은 프라이팬이 충분히 달궈졌으니 고기부터 올려놓자.
치이이.
고기를 올리자마자 먹음직스런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다연이도, 나도 갑자기 조용해졌다.
고기는 모두가 아는 맛이지만 오히려 알기 때문에 더 기대가 되는 것 같다.
그 맛을 상상할 수 있으니까.
잘 익은 삼겹살을 댕겅 썰어서 다시 한 번 구워준다.
그리고 적당히 잘 구워졌을 때 접시에 덜어 놓는다.
"자, 다 됐다."
삼겹살이 담긴 접시를 테이블에 내려놓았을 때 뭔가를 잊고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아, 채소를 깜빡했네."
삼겹살엔 채소가 잘 어울린다. 상추나 깻잎 같은 것들.
다연이는 상추만 먹기 때문에 상추를 많이 준비하는 편인데 이번엔 잊었다.
그래도 뒷마당에서 따오면 되니까 서둘러 움직이기로 한다.
"다연아, 나 뒷마당에 갔다 올게."
"나도 같이 갈래."
"그래."
별 다를 것도 없지만 다연이는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뒷마당은 나에게 채소 가게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공짜로 가져갈 수 있는 가게.
물론 키우는 데에 힘은 들지만 가끔은 식당 일 외에 다른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그 곳에서 가장자리에 있는 상추와 깻잎을 딴다.
다연이도 옆에서 나를 도와 작은 손으로 상추를 똑똑 따낸다.
"잘했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선 상추를 받아들었다.
허리를 펴고 뒷마당을 둘러보니 구석에 누군가가 땅을 파놓은 흔적이 있다.
당연히 나는 그 흔적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아, 땅 다시 원래대로 해야 하는데 잊어 버렸다..."
다연이가 그 곳으로 열심히 달려가서 발로 슥슥 덮어버린다.
"미안."
"괜찮아."
나는 그 모습을 보고선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따 온 상추와 깻잎을 씻고선 테이블에 올려둔다.
밥도 푹 퍼서 각자의 자리에 놓아두었다.
윤기 나는 삼겹살과 채소들. 그리고 빠지면 섭섭한 김치와 다른 반찬들까지 모두 준비됐다.
"잘 먹을 게!"
"맛있게 먹어."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한 끼를 먹는다.
기다려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