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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여자 점원이 바코드를 찍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차례를 기다리면서 줄을 서 있다.
“다음 분 오시면 됩니다.”
앞 사람이 떠나가자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말없이 책을 올렸다. 점원도 늘 하는 일이어서 말없이 바코드를 찍는다.
무표정이다. 남들이 나를 보면 비슷한 느낌일까.
“이게 전부예요?”
“네.”
“아니요!”
그 때 옆에 있던 다연이가 소리쳤다.
“이거도 있어요!”
다연이는 뒤늦게 양 손에 쥔 책을 올려놓으려고 애썼다.
그러고 보니 다연이가 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잊었다.
“내가 올려줄게.”
“아니야. 내가 할게!”
마침 우리 뒤에는 사람이 없었기에 괜찮았지만 점원에게도 물어봐야 했다.
“그래도 될까요?”
그러자 무표정이었던 점원이 미소를 가득 띠우고선 대답한다.
“네, 당연하죠!”
방금 전만 해도 나랑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둔 다연이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다연이는 힘겹게 책을 들어서 위에 올려놓았다.
“그럼 이거까지죠?”
“네.”
정말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 같다.
말투로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애기가 정말 귀엽네요.”
“감사합니다.”
방금 전까지 열심히 책을 올리던 다연이는 점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 걸 알게 되자마자 내 옆으로 꼭 붙었다.
“진짜 귀여워요.”
점원은 다연이를 보면서 작게 말했다.
나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제 도와드릴게요.”
“네.”
결제까지 끝내자 점원은 아쉬운 얼굴로 작게 손을 흔들었다. 물론 다연이를 향한 인사였다.
“안녕, 다음에 또 와. 조심히 가세요.”
“네.”
멀뚱멀뚱 서 있는 다연이에게 내가 말했다.
“다연이도 손 흔들어줘. 인사하잖아.”
“응.”
그렇게 손을 흔들고선 밖으로 나선다.
뒤에서 ‘어머!’라고 하는 점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흠...”
밖은 전보다 한산했다.
아마도 지금이 점심 먹을 때라서 그런 것 같다.
우리도 빨리 돌아가서 점심을 먹고 싶었지만 아직 다연이가 쓸 색연필을 사지 않았다.
그래도 근처에 커다란 마트가 있으니 빨리 사고 와야겠다.
.
.
마트를 나서 다연이의 손에는 색연필이 쥐어져 있었다.
다연이는 색연필이 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거 빨리 써 보고 싶어.”
다연이가 약간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 돌아가면 써 보자.”
“알겠어.”
나는 식당에서 즐겁게 색칠놀이를 할 다연이를 생각하며 걷다가 중요한 뭔가를 잊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깜빡하고 택시를 부르지 않았다. 걸어가기엔 먼 거린데.
옆에 있는 다연이는 색연필을 보면서 걷다가 내게 물었다.
“이제 집에 가?”
“응, 그런데.”
“그런데..?”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아. 깜빡하고 택시를 안 불렀거든.”
다연이는 실수한 나를 이해한다는 것처럼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구나.”
나는 서둘러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가만히 서서 다연이를 내려다 본다.
동글동글한 머리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자신만만하게 이 곳으로 왔지만 사실 나는 여기에 대해서 잘 모른다.
자주 왔던 건 당연히 아니고 예전에 좀 밖에서 놀다오라는 할머니의 호통에 못 이겨 잠깐 돌아다녔던 것이 고작이다.
게다가 이 곳을 돌아다니며 알게 된 것들보다 어제 검색을 해서 알게 된 게 더 많다.
그래서 시간이 남아도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다연이 머리가 어떻게 생겼나 보고 있을 뿐이다.
“오빠, 저거는 뭐야?”
다연이의 머리카락 개수까지 알게 될 만큼 집중하고 있을 때 다연이가 말했다.
“응?”
다연이의 손가락 끝을 따라가니 붕어빵 장사를 하는 작은 점포가 있었다.
아직 초봄이라서 운영 중인 붕어빵 점포가 많이 있었다.
“붕어빵.”
“붕어랑 빵..?”
“붕어가 뭔 줄 알아?”
“아니요, 근데 빵은 뭔 줄 알아.”
나는 다시 휴대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했다.
택시가 오기까지는 조금 더 남았다.
“그러면 한 번 먹어볼래?‘
“붕어랑 빵을?”
“아니, 붕어빵.”
“그럼 붕어는 뭐야?”
“붕어는 물고기야.”
점점 옆길로 새는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다연이와 붕어빵 점포로 향했다.
“오빠, 그러면...”
“응.”
“물고기로 만든 빵인 거야?”
“음.... 아니. 그냥 물고기 모양을 한 빵이야.”
그래도 다연이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런 반응을 보일 만도 하다. 물고기랑 빵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일단 가보자. 그러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알겠어.”
탁.
붕어빵 점포에 가까이 다가가니 붕어빵 틀을 뒤집는 소리가 들린다.
“어서 오세요. 뭐 드릴까?”
붕어빵을 열심히 굽고 있던 아저씨가 물었다.
“뭐 먹을래?”
“어... 붕어빵이요.”
다연이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고 붕어빵을 굽고 있던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그러다가 빵 터지시긴 했지만.
“하하하! 그래 붕어빵. 붕어빵도 슈크림이랑 단팥이 들어있는 게 있단다. 아빠가 예쁜 애기한테 말을 안 해줬나 보네!”
아저씨가 유쾌하게 말했다.
그런 아저씨를 보고 있던 다연이는 내 옷자락을 잡고선 대답했다.
“오빠에요. 아빠 아니고 오빠.”
그 모습이 조금 심술이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이구, 알았어. 오빠야. 미안.”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고선 다시 유쾌하게 웃는다.
그러자 다연이가 내 품 속에 더 파고들었다.
“애기야, 미안해. 응?”
“네에...”
다연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한다.
“하하! 꼬맹이가 오빠를 많이 좋아하나봅니다?”
또 같은 말을 들었다.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말이다.
아저씨는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 듯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드릴까요?”
“다연이 뭐 먹을래? 슈크림은 달달한 거고 팥은...”
그러고 보니 둘 다 단 거잖아?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하하하! 그렇게 설명하시면 안 되죠. 제가 대신 설명해드려도 될까요?”
“네.”
아저씨가 밝은 얼굴로 다연이에게 말했다.
“슈크림은 말이야, 음.... 캐러멜 같이 조금 폭신하고 달콤한 맛이고 팥은 사탕처럼 많이 달달해..”
“사탕...?”
아저씨의 설명도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다연이는 의외의 단어에 반응했다.
“그래, 사탕. 사탕 알지? 맛있는 거.”
“맛있는 거....”
다연이가 멍한 얼굴을 했다.
공교롭게도 사탕도 캐러멜도 전부 얼마 전에 먹었다.
다연이는 그 맛을 떠올리듯 표정을 찡그린다.
“그러면....”
그리고 다연이가 나를 본다.
“팥 먹을래!”
“음... 그럼 팥이랑 슈크림이랑 섞자.”
“응!”
분명 팥보단 슈크림을 더 좋아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다연이가 골랐으니 섞어서 가져가기로 했다.
“팥 두 개랑 슈크림 두 개 주세요.”
“네에! 슈크림은 하나는 지금 해야 해서 조금 기다리셔야 해요.”
“네.”
그렇게 말한 아저씨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붕어빵을 굽기 시작한다.
“오... 엄청 빨라....”
다연이의 말처럼 붕어빵 틀을 뒤집는 속도는 확실히 빨랐다.
휙휙 돌아가는 틀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아저씨가 봉투를 내밀었다.
“자, 우리 애기가 너무 귀여워서 팥 하나 더 넣었어. 맛있게 먹어.”
그 말을 들은 다연이의 눈이 커졌다.
“감사합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다연이.
“또 와!”
“네에!”
아저씨와 다연이가 서로 손을 흔들었다.
“우와.. 사탕 빵이다...”
사탕 빵이라니. 어감이 조금 이상하지만 다연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사탕처럼 단맛이 있는 빵이니까.
우리는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갈 때는 빈손이었지만 올 때는 양 손 가득 짐을 들고 있었다.
다시 도착한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가게에서 사 온 옷과 책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집에 들른 것이다.
“오빠, 이거 먹어.”
집 한 가운데에 앉아있던 다연이가 붕어빵을 내밀면서 말했다.
“알겠어.”
택시를 타고 와서 그런지 아직 식지 않았다.
나는 붕어빵을 먹기 전에 다연이의 반응을 살펴본다.
바삭.
다연이가 붕어빵을 베어 물었다.
갓 구운 붕어빵이 즐거운 소리를 낸다. 그리고 그 사이로 팥이 솟아올랐다.
“오..!”
팥을 맛 본 다연이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맛있어?”
“응! 진짜 사탕 빵 같아!”
팥보단 슈크림을 더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다연이는 보통의 아이들과 입맛이 조금 다른 모양이다.
나는 슈크림 붕어빵을 집어서 반으로 가른다.
붕어빵에서 뜨거운 김이 피어올랐다.
“다연아, 이것도 먹어 봐. 맛있을 거야.”
“응.”
내 권유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붕어빵을 베어 문다.
“헉..!"
순간 다연이의 눈이 커졌다.
"이게 더 맛있어!”
슈크림을 맛 본 다연이는 팥을 먹었을 때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 슈크림을 더 맛있어 할 거라 생각했다.
“우어..! 맛있다! 이건 사탕이랑 다른데... 그래도 맛있어.”
“다행이네, 나도 슈크림을 더 좋아하거든.”
“정말? 오빠도 이거 좋아해?”
“응.”
그 말에 다연이는 잠깐 고민하더니 남은 붕어빵을 내밀었다.
“그러면 오빠 먹어. 나는 배불러.”
다연이가 손을 뻗으면서 말했다.
내가 해야 할 말인 것 같은데.
그럼에도 다연이는 붕어빵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는지 입을 쩍 벌리고 붕어빵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문득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다연이 다 먹어도 돼. 사실 나는 팥을 더 좋아하거든.”
그러자 다연이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진다.
“저.. 정말? 오빠는 팥을 더 좋아해?”
“그래, 사탕 빵이잖아.”
다연이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거짓말은 할 수 있다.
팥도 맛있으니까.
“그러면 이거는 내가 오빠한테 줄게.”
다연이는 절반쯤 남은 팥 붕어빵을 호호 불어서 나에게 내밀었다.
“안 뜨거워! 오빠 먹어!”
“고마워.”
나는 다연이가 내민 붕어빵을 입을 물었다.
천천히 밝아지는 다연이의 얼굴을 이렇게 가만히 보고 있는 것도 기분 좋다.
우리는 붕어빵을 모두 해치우고 나서 각자 할 일을 시작했다.
나는 옷 정리를 하고 다연이는 오늘 산 책을 보고.
“오빠, 오늘도 오빠 식당에 가지?”
그러다가 문득 다연이가 내게 물었다.
“응, 그럴 거야. 왜?”
“그러면 이거 들고 가도 돼?”
다연이가 들어 보인 것은 참새가 그려진 그림책과 색칠놀이 책이었다. 색연필도 같이.
“당연하지. 다연이 재밌게 놀라고 사 준 건데.”
“우와! 그러면 이거는?”
뒤이어 다연이는 내 노트를 들었다.
왜 있는지도 모를 노트. 안에 적혀있는 건 급하게 휘갈겨 적은 단어 몇 개가 전부였다.
“그건 왜?”
“여기에도 그림 그리고 싶어!”
스케치북을 사줬다면 더 좋겠지만 노트도 좋다.
“응, 가지고 가도 돼.”
“그러면 이거 여기 가방에 넣어서 갈래!”
“그래.”
다연이가 책과 색연필을 종이가방에 넣는 사이, 나는 다연이의 옷을 전부 정리한다.
원래 서랍 안에 넣었던 내 옷은 한 곳으로 몰아넣었다. 이제 이 곳은 다연이의 옷이 있을 거니까.
나 혼자 살던 때와는 다르다.
“준비됐어?”
“응!”
다연이가 종이 가방을 품에 꼭 안고 비장하게 외쳤다.
“짐은 내가 들고 갈게.”
“아니야! 올 때도 오빠가 짐 잔뜩 들고 왔으니까 이거는 내가 들게!”
안 된다고 하면 억지로라도 들고 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종이 가방은 다연이가 들어.”
“응!”
활기찬 대답과는 달리 무거워 보였지만 다연이가 하겠다고 하는데 말릴 생각은 없다.
대신.
“그러면 나는 다연이를 들고 가야겠다.”
나는 말 그대로 다연이를 훅 안아 올렸다.
“꺄아! 나 걸어갈 수 있는데!”
다연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얼굴을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래도 다연이에게 무거운 걸 들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이렇게 다연이를 안고 가는 게 마음 편하다.
“안 돼. 내가 들고 갈 거야.”
내 말에 다연이게 꺄르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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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걸어갈 게!”
“알겠어, 대신 짐은 내가 들게.”
“나도 짐들 수 있는데.”
“나도 알아, 들 수 있는 거. 그냥 내가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응.”
그렇게 우리는 터벅터벅 걸어서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앞에 할머니들은 계시지 않았다.
“들어가자.”
“응!”
다연이가 밝게 대답하고 우리들은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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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시간이 흘렀다.
다연이는 식당에 적응했고 다연이가 다닐 어린이집도 확정됐다.
아직 다연이에겐 어느 어린이집에 다니게 될지 말을 하지 않았다.
오늘 결정이 났고 방금 막 어린이집에 전화를 했으니 이제 다연이가 알 차례다.
“다연아.”
“응?”
분식집 테이블에 대고 한창 뭔가를 그리고 있던 다연이가 고개를 들었다.
“다연이가 앞으로 다니게 될 유치원이 결정 났어.”
“어...! 정말?”
다연이의 눈이 다시 동그래졌다.
안 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