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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동생이 생겼다-25화 (25/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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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옷을 입은 다연이와 내가 거울 앞에 서 있다.

“예쁘네! 애기는 예뻐서 뭐든 잘 어울려.”

옆에 있는 여자는 여느 옷가게의 사장님들처럼 예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지만 여자의 표정을 보니 진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표정도 그렇지만 실제로 예쁜 옷을 입은 다연이는 정말 예뻤다.

귀엽기도 귀여웠지만.

나는 사장님이 불러준 다연이의 옷 사이즈를 휴대폰에 열심히 입력하고 있었다.

“이렇게 사는 거죠?”

옷가게의 사장님이 말했다.

나는 옷 사이즈를 마저 적고 나서 대답한다.

“네, 거기에다가 아까 제가 고른 거, 주세요.”

“네에! 계산 도와드릴게요.”

내가 고른 옷은 봄철에 걸칠 수 있는 겉옷이다.

봄날은 어감과는 달리 엄청 추우니까. 특히나 다연이 같은 어린 아이들에겐 더욱 그렇다.

“오오.... 옷이 엄청 많아.”

“응, 이제부터 다연이가 입을 옷이야.”

“우오....”

다연이는 내가 고른 옷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내가 이렇게 입으면 예뻐?”

“응, 엄청.”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닌 것 같아.”

돌아오는 다연이의 대답은 조금 매정했지만.

“진짠데.”

“그러면 웃어.”

“웃고 있잖아.”

“아니야.”

다연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 상황이 재밌는지 웃고 있었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카드로 하시겠어요?”

옷가게의 사장님이 내게 물었다.

“아뇨, 현금으로 할게요.”

나는 돈을 건넸다.

앞에는 오늘 산 옷들이 놓여있다. 많이 산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손 가득 짐들이 들어온다.

서툰 움직임으로 내가 쥔 짐 하나를 챙겨들려는 다연이를 보면서 옷가게 사장님이 말했다.

“사람들이 옷을 사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뭔 줄 아세요?”

시선을 다연이의 정수리를 향해 있었지만 말은 나에게 걸고 있었다.

“아뇨.”

“물론 예쁜 옷도 좋고 가성비가 좋은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옷을 입었을 때 잘 어울려야 한다는 거예요. 예뻐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저희 같은 사람들이 옆에서 예쁘다, 예쁘다 하는 거예요.”

그런 건가.

설마 다연이에게 말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나.

“그런데 가끔 진짜 예쁜 사람들이 있어요. 뭘 입어도 예쁜 애들. 저희 가게는 아이들 옷을 파니까요. 보통 아이들은 정말 뭘 입어도 예쁘기 마련인데...”

그런데?

“이 아이는 정말 예쁘네요. 진짜 뭘 입어도 어울려요. 오빠 분이 왜 그렇게 손 꼭 잡고 있는지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꼭 그래서 손을 잡고 있는 건 아닌데.

솔직히 다연이가 어떻게 생겼든 나는 지금처럼 행동했을 거다. 다연이가 예쁜 외모로 나를 바꾼 게 아니니까.

그래도 누군가의 칭찬은 듣기 좋다.

다연이는 그 이야기를 못 들은 듯 이제야 고개를 들고 나를 본다.

깔끔한 옷에 따뜻한 겉옷까지 걸치고 있으니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춥진 않을 테니까.

게다가 사장님의 말처럼 엄청 예쁘다.

“오빠, 뭐라고 했어?”

“다연이 예쁘다고.”

그러자 다연이가 살짝 웃었다.

“가자, 이제.”

“응.”

“조심히 가세요! 또 오세요!”

“안녕히 계세요.”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직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들어올 때보다는 낫다.

“우리 이제 집에 가는 거야?”

“아니.”

아직 집에 갈 때는 아니다.

다연이에게 사 주고 싶은 것도 있고 사야할 것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근처를 다시 둘러본다.

옷을 사는데 이 곳으로 온 건 옷가게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옷도 좋지만 다연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될 때까지 식당에서 뭔가 할 것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서 그림책 같은 거.

“그럼 어디로 가?”

“음... 저기.”

나는 어느 곳을 가리켰다.

서점. 여기에선 꽤 큰 서점이다.

당연히 백화점 근처에 있는 서점처럼 엄청 크고 카페 같은 것들이 같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다연이가 원하는 책은 충분히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저기는 뭐하는 곳이야?”

“책을 사는 곳. 책은 뭔 줄 알지?”

“응, 어제 내가 읽어달라고 했던 거.”

“그래, 맞아. 그거 사러 갈 거야.”

다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별 말 없이 따른다.

“오....”

서점에 들어선 다연이가 작은 소리를 흘렸다.

사방에 가득한 책들을 보고선 내는 소리였다.

아마 책이 천장까지 쌓여 있는 모습 때문일거라 생각했다.

“가자, 손 잘 잡고.”

“응.”

우리는 사람들과 책 사이를 비집고 어린이가 볼 만한 책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

그 곳엔 수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동화책부터 시작해서 그림책들까지.

“다연이가 사고 싶은 거 사자. 식당에 있을 동안 가지고 놀 수 있는 걸로.”

“응..”

우리는 차근차근 책을 둘러본다.

다연이의 눈도 휘둥그레졌지만 어떤 책을 사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다.

그만큼 종류도 다양했고 또 화려했다.

다연이는 황홀경에 빠진 것처럼 책 이것저것에 손을 대고 있었다.

“너.. 너무 많아서 뭘 사야할지 모르겠어.”

재밌어 보이는 게 너무 많다. 그래서 대신 몇 가지를 골라주기로 했다.

“일단 그림책부터 살까?”

나는 그 중 하나를 골라서 펼쳐본다.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는 종류가 많았다. 이야기가 있는 그림책도 있었고 단순히 아이들이 쉽게 배울 수 있게 만든 그림책도 있었다.

다연이의 나이에 맞는 책이라면 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이 좋겠다.

“자, 이거 한 번 볼래?”

“응.”

다연이가 작은 손으로 천천히 책을 넘긴다.

“오.. 나무..!”

분명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일텐데 다연이는 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뭐가 어찌됐든 좋아하면 상관없지만.

“그럼 이거랑... 이거.”

나는 다연이가 흥미 있어 하는 것들을 옆에 쌓아둔다.

옷을 사고 남은 돈이 꽤 된다. 나머지로는 책도 사고 다연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도 사 둬야겠다.

차가 없어서 오늘 장난감까지 사들고 가기엔 조금 힘들지만 천천히 해 나가면 될 거다.

그 때 옆에서 가만히 책을 보던 다연이가 내 팔을 쿡쿡 찔렀다.

“오빠..!”

뭔가 상기된 얼굴이다.

“응?”

“이거 봐. 참새야!”

다연이가 내민 그림책의 표지에서 참새 한 마리가 날아가고 있었다.

새에 대한 책인 듯 했다.

단순히 새들을 소개하는 그림책이어서 타깃으로 하는 연령이 낮았다.

“그러네.”

“우리가 어제 봤던 참새랑 똑같이 생겼어!”

진짜 똑같이 생겼다.

모든 참새의 생김새가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이거도 살래!”

“그래, 여기에 놔둬.”

내 말에 다연이는 잠깐 고민했다. 쌓인 책을 보고, 다시 참새가 그려진 책을 본다.

“아니야, 이건 내가 들고 갈게.”

이렇게 말할 정도로 참새가 기억에 많이 남은 모양이다.

“그래, 그렇게 해도 돼.”

“응.”

다연이는 그 뒤로 참새가 그려진 책의 표지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이 책은 포장이 되어 있는 책이라서 안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지만 다연이는 상관없는 듯 했다.

“우와...”

그냥 참새가 좋은 것 같다.

나는 그런 다연이를 내버려두고 다른 책을 더 살펴본다.

어젯밤 미리 생각해 온 것이 있다.

앞으로 식당에서 시간을 보낼 다연이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여기 있다.”

내가 꺼낸 책은 색칠놀이를 할 수 있는 책이다.

구간으로 나누어서 색을 칠할 수 있게 되어있다.

“그건 뭐야?”

참새 사진을 보고 있던 다연이가 내게 물었다.

“여기에 다연이가 색칠할 수 있어.”

“색칠?”

“응, 색연필로 색칠.”

다연이는 그 말에 관심이 끌렸는지 참새 책을 바닥에 내려놓고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볼래.”

“응.”

다연이는 한 페이지 씩 넘기면서 찬찬히 그림을 살펴본다.

뭘 그렇게 유심히 보는지 묻고 싶었지만 근엄한 다연이의 표정에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보던 다연이가 나에게 말했다.

“이거도 사줄 거야?”

“응, 이거 좋아?”

“신기해.”

다연이가 그 말을 하면서 책을 바라본다.

귀엽다.

“그래, 그럼 사줄게.”

“우와!”

나는 다연이가 고른 책들을 주워 담는다.

옆에서 보고만 있던 다연이도 나를 돕고 싶었는지 바쁘게 움직였다.

“책, 여기에 있어.”

다연이가 마지막으로 색칠놀이 책을 내밀었다.

“고마워.”

“아니야, 내가 더 고마워.”

다연이는 왠지 어른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왜?”

“내 옷도, 책도 오빠가 다 사줬어. 그래서 고마워.”

배시시 웃으면서 내 눈을 본다.

다연이의 그런 말에 내심 기분은 좋았지만 동시에 다른 생각도 들었다.

내가 다연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이런 것들 말곤 없다는 것.

다정한 엄마 노릇도, 든든한 아빠 노릇도 못한다.

오히려 다연이에게 얻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미안, 이것 밖에 못해줘서.”

그러자 다연이가 안절부절 하면서 고개를 젓다가 말했다.

“아니야, 오빠는 엄청 많이 해줬어! 옷이랑 책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주고.”

“그래, 그렇네.”

그래도 다연이가 좋아해주니까 나도 좋다.

다연이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오빠, 진짜야..!”

“응, 알겠어. 이제 괜찮아.”

다연이는 아직 내가 미안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시선을 돌리며 잠시 생각하던 다연이가 좋은 방법이 떠오른 듯 밝은 얼굴을 했다.

“그러면 그거 해줄게.”

“그거..?”

“응, 안아주는 거.”

“여기서?”

다연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미처 잊고 있었지만 여기는 서점 안이다. 그것도 사람들이 많은 서점.

“응! 매일 안아준다고 했잖아.”

“그건 그런데..”

그 때 다연이가 나를 와락 안았다.

“매일 안아줄게!”

“그래.”

이러고 있으니 언젠가는 정말 다연이가 내게 했던 말처럼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 많으니까 이제 갈까?”

“아니! 5초 더.”

“알겠어.”

5초 동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껏 받았다.

지금은 내가 감정 표현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얼굴이 빨게 졌더라면 시선이 더 끌렸을 테니까.

“이제 됐다.”

다연이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밝았다.

만족스러워 보인다.

“오빠도 괜찮아?”

“응, 덕분에. 이제 가자.”

“응.”

나는 사둔 옷과 책들을 들었다.

다연이는 한 손엔 그림책, 다른 손에는 참새가 그려진 책이 있다.

“어디로 가?”

“저기로. 다연이가 먼저 가. 손 못 잡으니까 내가 뒤에서 지켜볼게.”

“응.”

나는 다연이 뒤에 서서 뒤뚱뒤뚱 걷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렇게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귀여워.”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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