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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발자국.”
다연이가 뒤로 걸으면서 말했다.
물웅덩이를 지나온 탓에 바닥에는 다연이의 발자국이 남는다.
다연이는 그 발자국을 보면서 뒤로 걸었고.
“아....”
점점 식당 쪽으로 가던 다연이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누군가의 기척을 느낀 탓이다.
“...?”
우리 식당 앞에는 낡은 의자가 몇 개 놓여있다.
내가 이 곳에 올 때부터 있었던 건데 그 의자에 대해서 설명해준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예전에 여기 버스 정류장이 있었어. 이 근처에. 그런데 지금은 저 위로 옮겨졌지. 아무튼 그 때 놔둔 거야. 여기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그 때는 의자고 뭐고 없었거든.’
옛날에 이 곳은 도시와 꽤 떨어진 곳이라고 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 시절엔 버스 정류장이라고 해봐야 표지판 하나가 전부였다고 했다.
‘그런데 그걸 왜 물어봐? 빨리 일 안하고.’
그리고 열심히 일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저 의자는 그 때부터 저 자리에 있었다. 물론 의자가 망가질 때마다 바꿔가면서.
정류장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저 의자에는 할머니의 친구 분들이 앉기 시작했다.
할머니 또한 친구가 별로 없는 편이었지만 오랫동안 이 곳에서 장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친구 아닌 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가끔이었지만 오늘은 할머니의 친구 분들이 의자에 앉아계셨다.
“안녕하세요.”
나는 이 동네에서도 아는 사람이 드문 편이다. 하지만 이 분들은 알고 있었다.
할머니와 친구셔서 그런 거지만.
“어, 그래. 벌써 문 열 시간이야?”
“아뇨, 다른 일이 있어서요.”
“다른 일? 그리고 네 옆에 저 애는 누구냐?”
“어머, 조그만 애네.”
옆에 있던 다른 분이 맞장구를 쳤다.
“우리 손주도 저만 한데.”
할머니들은 다연이를 보고 저마다 한 마디씩 던지기 시작했다.
그런 할머니들은 다연이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본다.
다연이도 그런 눈빛이 싫진 않은지 내 손만 꼭 잡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다연이는 나름의 상처가 많은 아이다.
육체적인 학대는 거의 없었지만 그만큼 외로움을 더 많이 타고 낯가림도 심하다.
학대가 없었기에 사람을 싫어하거나 무서워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더 다가가기도 힘들어했다. 가까워지더라도 그 사람에게 의지를 많이 할 거라고도 생각했다.
나와 혜원이에게 그러는 것처럼.
보통의 아이들과는 이틀 만에 이렇게 친해지기는 조금 힘들다. 특히 다연이 같은 아이들과는 더더욱.
처음 만난 친구인 혜원이에게도 의지하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제 동생이요.”
“동생? 네가 동생이 있었다고?”
“네, 있었대요.”
그렇게 말하자 할머니들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연이에게 말을 건다.
“애기야, 이름이 뭐니.”
“.....”
다연이는 대답 대신 나를 올려다본다.
“대답해드려. 다연이라고.”
“...다연이에요. 이다연...”
입고 있는 커다란 후드집업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방금 전 물웅덩이에서 놀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아이구, 이름 예쁘네.”
“이름도 예쁜데 얼굴도 예쁘네.”
“그러네. 내가 어렸을 때 딱 저랬는데.”
마지막 할머니의 말에 모두가 그 할머니를 보더니 다시 다연이에게 말했다.
“너는 저렇게 늙지 마라.”
“하하하! 말 잘하네.”
할머니들은 시끌벅적하게 웃기 시작했다.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이해되지 않는 다연이만 표정을 그대로 굳힌 채 내 손을 더 세게 잡는다.
나는 그 사이 어플을 이용해서 택시의 남은 도착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은 5분쯤. 택시가 도착할 때까진 이러고 있어야겠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건 다연이를 위해서라도 꼭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할머니들 중 한 분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뭔가를 꺼냈다.
“자, 이거 캬라멜이야. 이거 먹어라.”
꺼낸 것은 갈색 캬라멜이었다.
다연이는 그 손을 보더니 다시 나를 바라본다.
“받아. 팔 아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
다연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캬라멜을 받는다.
“감사합니다.”
“그래, 맛있게 먹어.”
주변에 있던 할머니들의 시선이 온통 다연이에게 쏠렸다. 마치 더 이상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의 사람들 같았다.
그만큼 다정하고 신기해 보이는 눈빛이다. 캬라멜 먹는 아이를 처음 보는 것처럼.
캬라멜 껍질을 까는 건 사탕보다 훨씬 쉽다.
스윽 껍질을 벗겨내면 그게 끝이었기 때문이다.
다연이는 껍질을 깐 캬라멜을 잠시 동안 보고 있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오빠 먹어.”
“어머, 얘 봐라. 자기 오빠한테 먼저 주네.”
다연이의 그런 말에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다연이 먹어.”
“오빠는 안 먹어도 돼?”
“응, 많이 먹었어.”
“오빠는 이거도 많이 먹었어?”
다연이가 놀란 얼굴로 나를 본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응.”
“그럼 내가 먹어도 되는 거야?”
“그래.”
확답을 받아낸 다연이가 캬라멜을 한 입에 쑥 넣었다.
“어때? 맛있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할머니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다연이는 맛집을 감별하는 유명한 칼럼니스트처럼 캬라멜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눈을 번쩍 뜬다.
그리고 할머니를 한 번 보더니 다시 나를 본다.
“맛있어요!”
“휴, 다행이네.”
다연이의 반응을 본 할머니들은 그제야 긴장을 놓고 얘기하며 웃었다.
“지훈아.”
“네?”
할머니 한 분이 갑작스레 물었다.
“너, 할매 기일에는 찾아갈 거지?”
“네.”
뜬금없는 물음에도 나는 네, 라고 대답했다.
왜 그렇게 묻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야, 뭘 그렇게 물어봐. 알아서 잘 하겠지. 장례식 때도 지훈이가 다 했는데.”
“그래, 그런데.. 혹시나 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할머니의 피도 섞여있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남이다.
게다가 건물까지 받았으니 할머니의 친구 분들이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옆에 있던 다연이만 무슨 말인지 모른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가 애 앞에서 별 소리를 다 했네.”
“미안,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네 오빠 멋지다고.”
그제야 다연이가 살짝 미소 짓는다.
“네, 맞아요.”
할머니 중 한 분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딜 가는 길이야?”
“동생 옷 사주러요.”
"그래."
그 때 저 멀리서 오고 있는 택시가 보인다.
휴대폰으로 확인해보니 내가 부른 택시가 맞는 것 같다. 도착 시간이 맞는 걸보면 말이다.
“아, 저희는 택시가 와서 가 볼게요.”
“그래, 우리도 너네 오기 전에 갈게.”
“편하게 있으셔도 돼요.”
나는 다연이의 손을 잡았다.
“다연이도 인사 해.”
“안녕히 계세요.”
“그래, 예의 바르네.”
나와 다연이는 도착한 택시로 향했다.
다연이는 뒤뚱뒤뚱 걷다가 긴 후드가 불편했는지 손으로 올리고 걷기 시작했다.
“불편하지? 미안, 조금만 참아. 금방 새 옷 사줄게.”
“응!”
택시로 도착한 우리들은 뒷좌석에 몸을 구겨 넣었다.
“어디로 갈까요?”
나는 택시 기사님의 물음에 목적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곧이어 택시가 출발한다.
다연이는 그 속에서 신기한 눈으로 택시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다연이에게 말했다.
“이제 택시가 뭔지 알겠어?”
“응, 자동찬데 돈 내고 타는 거...”
역시 설명해주는 것보다 한 번 해보는 게 낫다.
앞으로 같이 다니면서 모르는 것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싶었다.
다연이는 쌩쌩 지나가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택시 미터기를 본다.
“저건 뭐야?”
다연이가 일반적인 자동차를 타 본 적은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택시 한 가운데 있는 미터기는 궁금한 것 같았다.
생긴 것도 신기하게 생겼고 이상한 장비들도 많이 달려 있었으니까.
“택시는 돈 내고 타는 거라고 했잖아?”
“응.”
“그 돈을 얼마만큼 낼지 표시해주는 기계야.”
“아...”
숫자가 차근차근 올라가는 미터기를 멍하니 바라본다.
옛날식 미터기였다면 달리는 말이 있었을 텐데.
그러면 더 보는 재미가 있었을 것이다.
한참 미터기를 보고 있으니 택시가 얼마 뒤 멈췄다.
나는 돈을 지불하고 다연이와 같이 택시에서 내린다.
“안녕히 가세요.”
다연이가 내 말을 작게 따라했지만 그 때는 택시가 떠난 뒤였다.
약간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내가 말했다.
“다음에는 내리기 전에 말하자.”
“응.”
이 곳은 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다.
도심처럼 바쁘진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에 이 곳에서 옷가게를 하는 거겠지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
“맞아. 길 안 잃어버리려면 내 손 꼭 잡고 있어야 돼.”
“응.”
나는 다연이의 손을 꼭 잡고 사람들 사이를 걸어간다.
이런 풍경은 나에게도 익숙하지 않다. 매일 집과 식당을 반복했으니까.
친구도 없었고 밖으로 나갈 이유도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이 세상에서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그런 이유를 핑계 삼아서 매일 하던 일만 반복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빠 손 꼭 잡아야 돼.”
다연이가 작게 말했다. 아무리 작게 말해도 다 들을 수 있었지만.
그러나 다연이가 온 뒤로 달라졌다.
이유가 생겼고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나 역시 같은 일상만 반복하면서 달라지길 바라는 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겨지진 않았다.
단순히 못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때의 나에게 그럴 수 없었다.
그런 벽이 너무 순식간에 무너졌지만. 그리고 그 이유가 다연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다 왔다. 저기야.”
“저기다.”
그렇게 우리는 한산한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가게 안은 평범했다.
어느 귀퉁이에 있는 다른 가게들처럼 공간의 대부분이 옷으로 가득 차 있었고 구석에는 카운터가 있다.
"어서 오세요."
그리고 그 속에서 옷가게의 사장님으로 보이는 여자가 걸어 나왔다.
"우리 애기 입으려고요?"
"네."
"새 옷을 입히긴 해야겠네."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선 가게 옷을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봄에 입을 옷들은 여기에 있어요. 여기서 보시면 돼요."
"네."
옷은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많았다.
"가서 보자. 예쁜 옷들이 있는지."
"응."
다연이가 내 손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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