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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이렇게 오랫동안 자고 있는 건 어제 일이 힘들어서 그런 거다.
그렇다면 다연이가 해야 할 일은 그런 오빠를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의 자신이 뭔가 도움을 줄만한 건 없었다.
오빠가 하는 모든 것들은 키가 크고 힘이 세야 하니까.
지금이 다연이는 너무 작다.
그래서 다연이는 오빠가 자고 있는 동안 조그만 것부터 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서 현관문 앞에 놓인 작은 우산을 치우는 일이라든지.
현관문 앞에는 작은 우산 하나와 큰 우산 하나가 놓여 있다.
같은 점이라면 두 개 전부 선명한 노란색이라는 점이다.
“내가 골랐어.”
다연이는 괜히 뿌듯함을 느끼면 우산을 만져본다.
오빠가 그랬다. 여기에 우산을 놓는 이유는 우산에 있는 물기를 말리기 위해서라고.
그래야 오래 쓸 수 있다고 했다.
스으윽.
다연이는 우산을 한 번 손으로 훑은 뒤 자기 손을 보았다.
깨끗하다. 물기는 묻어나오지 않았다.
“됐다.”
그리고 하나씩 우산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작은 우산부터.
다연이의 우산은 순식간에 접었다. 아무래도 작고 조금이나마 익숙해서 힘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제부터였다.
“오빠 우산....”
오빠 우산은 크다. 키를 재보면 다연이와 비슷할 것 같다. 아니면 조금 작거나.
어찌됐든 다연이에게 커다란 도전이라는 건 확실했다.
“할 수 있어.”
다연이는 커다란 오빠 우산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접기 시작했다.
“끄응...”
너무 길어서 힘들다.
마치 예전에 티비 속에서 봤던 커다란 뱀 같다.
커다란 뱀이 다연이를 향해 달려들고 다연이는 필사적으로 그 뱀을 접는다.
힘들지만 거의 다 끝났다.
“잇...!”
뱀이 다연이를 삼키기 전에 간신히 노란색 우산을 접었다.
“휴우...”
상상 속에서 커다란 뱀과 사투를 벌였던 다연이는 힘이 빠진 듯 그 자리에 털썩 누웠다.
노란색 뱀. 진짜 뱀이 아니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이렇게 커다란 뱀이 나온다면 이길 자신이 없다.
그 때는 오빠를 불러야 한다.
오빠는 힘도 세고 키도 커서 이길 수 있을 테니까.
자리에서 간신히 일어난 다연이가 마무리를 짓는다.
우산에 붙어 있는 똑딱이를 걸어서 확실하게 뱀을 제압했다.
“이제 됐다.”
우산 두 개는 모두 정리했다.
다연이는 다시 잠자는 오빠를 본다.
“....”
뱀과의 사투 때 꽤 소란스러웠는데도 오빠는 깨지 않았다.
그러면 다른 일을 하러 가봐야겠다.
다연이가 한 가운데에 서서 집 안을 찬찬히 살핀다.
뭔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 오빠를 도와줄 만한 게 없는지 찾아본다.
“찾았다.”
단박에 찾아낸 다연이가 그 곳으로 순식간에 걸어간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책 한 권을 쓸어 담듯이 집어 들고는 원래 있던 책꽂이에 꽂아둔다.
그 책은 어제 다연이가 오빠한테 읽어달라고 했던 책이었다.
결국엔 한 글자도 안 읽어줬었지만 괜찮다.
다연이는 정말 그 책의 내용이 궁금했던 건 아니었으니까.
어찌됐든 할 일이 순식간에 끝났다.
뭔가 더 해야 할 일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지만 딱히 중요한 건 찾을 수 없었다.
전부 다연이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그럼에도 다연이는 포기하지 않는다. 오빠를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에.
작은 집을 몇 바퀴나 돌던 다연이는 잠자는 오빠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시선에 닿은 건 자고 있는 오빠가 아니었다.
바로 오빠 옆에 있는 휴대폰이었다.
“휴대폰.”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빠는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반대로 엄마는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연이가 만져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조금 신기했다. 그래서 다연이는 휴대폰에 손을 뻗는다.
다연이의 양 손을 합친 것보다 크다.
오빠는 어떻게 이 큰 걸 한 손으로 만졌을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휴대폰 이곳저곳을 누르다보니 화면이 켜졌다.
오빠의 휴대폰은 기본적인 배경에 꼭 필요한 어플이나 아이콘만 있었다.
물론 다연이는 그런 건 몰랐지만.
그냥 신기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꼭 작은 티비가 여기에 들어있는 것 같기도 했다.
평소에 오빠가 이걸로 뭘 했는지 떠올렸다.
“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제 오빠가 이걸로 맛있는 튀김을 보여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노릇노릇 맛있게 튀겨진 튀김. 다연이가 그 중에서 고구마튀김을 선택했던 것까지 생각난다.
“튀김.”
그렇게 생각하니 휴대폰이 더 궁금해졌다.
그 맛있는 그림을 다시 보고 싶기도 했고.
“어?”
그런데 막상 만져보려고 하니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
스으윽.
손가락으로 만져보니 화면이 넘어간다.
이 화면이 어디로 사라지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다시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니 원래대로 돌아왔다.
“오...”
정확히 뭔진 모르겠지만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오빠는 이걸로 어떻게 그 맛있는 사진을 보여줬던 걸까.
다연이는 휴대폰에 한껏 집중한다.
오빠가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다연아, 뭐해?”
“흑..!”
그리고 놀란 다연이가 붕어처럼 튀어 올랐다.
***
“으...”
덥다.
왜 이렇게 더운 거지?
덥다고 느낄 정도로 온도를 높이진 않았는데.
나는 더위 때문에 잠에서 깼다.
창문으로 밝은 햇빛이 비치는 걸보니 비는 그친 모양이다.
내 몸을 덮고 있는 이불이 무겁다. 다연이를 위해서 이불을 양보한 것도 있지만 나한테는 조금 가벼운 이불이 좋아서 이걸로 덮었는데 왜 이렇게 무거운 거지.
“어..?”
그런데 눈앞에 다연이가 있었다. 그것도 내 휴대폰을 손에 쥔 채로.
뭘 하고 있는 걸까.
“오...”
휴대폰 화면을 이리저리 넘기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뭘 찾고 싶어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다연이에게 말을 걸었다.
“다연아, 뭐해?”
“흑...!”
다연이가 잔뜩 당황하면서 나를 본다.
해선 안 될 짓을 하다가 걸린 것 같은 표정이다.
“아.. 아무것도 안 했어!”
처음 봤을 땐 정말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았는데 오히려 이렇게 말하니 더 의심이 든다.
그 말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나를 덮고 있던 이불이 후두둑 떨어진다.
내가 원래 덮고 있던 이불과 다연이가 덮고 있었어야 할 이불.
설마 내가 잠결에 다연이 이불을 빼앗아온 건가.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다연이가 휴대폰을 만진 건 순식간에 잊혀졌다.
“다연아, 혹시 내가 잘 때 다연이 이불 뺏어온 거야?”
“.....?”
다연이가 멍하니 나를 본다.
뭐라 말도 못하는 걸 보니 진짜 내가 다연이의 이불을 가져온 것 같다.
“미안... 추웠어? 감기는 괜찮아?”
“감기는 괜찮은데.... 안 추웠.....”
“미안해. 오빠가 돼 가지고 동생 이불이나 가져오고...”
정말 미안했다.
말로 담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내 생에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미안한 감정을 가진 건 할머니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감기 걸린 다연이에게서 이불을 가져오다니. 내가 다연이를 키울 자격이 있을까.
“아닌데... 오빠가 가져간 거 아니고 내가 준 건데....”
다연이가 뭐라고 말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연이의 손을 잡았다. 차갑다.
“미안...”
“진짜 아닌데에...”
.
.
.
이불도 정리했고 다연이도 나도 모두 완벽하게 준비를 끝냈다.
아침도 먹었을 뿐더러 다연이가 정리해준 우산도 잘 넣어뒀다.
나는 집을 나서기 전에 다연이에게 다시 한 번 물어본다.
“다연아, 진짜 내가 이불 가져간 거 아니지?”
“응, 아니라고 다섯 번이나 말했는데.”
다행히 아침에 있었던 일은 내가 오해한 거라고 했다.
내가 추울까봐 먼저 일어난 다연아가 이불을 덮어준 거라고 말했다.
“알겠어, 그러면 휴대폰으로 뭐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자 다연이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우물쭈물 거리다가 입을 연다.
“안 혼낼 거야..?”
“....”
다연이가 나를 흘깃 바라본다.
사실 다연이가 내 휴대폰을 만진 뒤에 건든 게 있을까 싶어서 알아봤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거의가 아니라 전혀 없다.
“응, 안 혼낼 거야.”
그러자 다연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제 오빠가 보여준 거 있잖아...”
“보여준 거?”
“네에.. 맛있는 사진... 그거 보고 싶어서 그랬어...”
맛있는 사진이라니. 설마 튀김 사진을 말하는 건가.
“튀김?”
“응...”
그런 걸로 이렇게 움츠리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다연이와 눈을 맞추고 말했다.
“다음에 또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도 돼. 다연이가 해 달라는 건 다 해줄 테니까.”
“저.. 정말?”
“응.”
고작 휴대폰 때문에 이렇게 마음 고생 했다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한테 사실대로 말했다는 것이 대견하다.
다연이는 뭐라고 대답하진 않았지만 잔뜩 미소 짓고선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는다.
“빨리 가자!”
“그래.”
오늘 우리는 다연이의 옷을 사러 가려고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 밖으로 나가는 거고.
나는 앞서 가는 다연이의 뒷모습을 본다.
옷은 나름 괜찮지만 신발은 조금 허름하다.
그래도 다연이는 옷이 많이 없으니 새 옷과 신발을 사려고 한다.
나는 내 손에 쥔 봉투를 본다. 이건 다연이의 엄마가 준 돈이다.
이걸 언제 써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지금 쓰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온전히 다연이를 위해서 쓰는 거니까.
나는 현관문을 잠그고 먼저 간 다연이를 뒤따라간다.
“천천히 가.”
“응.”
그렇게 대답했지만 다연이의 목소리는 이미 멀어져 있었다.
나도 서둘러서 밑으로 내려간다.
.
.
.
하늘은 밝고 땅은 젖어있다.
이런 햇빛을 며칠 만에 보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온종일 비가 내렸거나 아니면 먹구름에 가려져 있어서 늘 어두웠는데.
“오빠, 우리 어디로 갈 거야?”
빌라 입구에 서서 다연이가 내게 물었다.
“다연이 옷 사러. 말했잖아.”
“그거 말고. 어느 방향으로 가?”
“저기.”
나는 우리 분식집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저기에 옷 가게가 있어?”
“응, 저기로 쭉 가면 옷 가게가 있어. 다연이처럼 작은 아이들 옷을 파는 가게."
"진짜? 거기에는 오빠처럼 큰 사람은 못 입는 옷을 팔아?"
"응, 맞아."
우리가 갈 곳은 어린이들이 입는 옷을 파는 작은 가게였다.
어제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 보니 여기 근처에도 어린이 옷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여태까지는 별 관심이 없었기에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지만.
내가 백화점에 가지 않고 굳이 작은 가게로 가는 이유가 있다.
다연이에게 비싼 옷을 사주는 것이 아까운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다연이는 비싼 옷이 필요한 게 아니라 생활에서 쓸 수 있고 매일 갈아입을 수 있는 많은 옷이 필요하다.
그 많은 옷을 전부 가게나 백화점에서 산다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근처 가게에서 좋은 옷을 몇 개 사 입힌 다음, 다연이 몸에 맞는 치수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치수를 알아서 인터넷에서 다양한 종류의 옷을 구매할 계획이다.
다연이에게 입히고 싶은 정말 좋은 옷들은 나중에 백화점에서 살 생각이 있다. 가격이 얼마가 되더라도 그건 딱히 상관없다.
하지만 그 가게까지 걸어가기엔 조금 거리가 있어서 택시를 타고 가려한다.
버스를 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린이 옷을 파는 가게 근처엔 정류장도 없어서 걸어가거나 택시를 타는 편이 낫다.
다연이를 데리고 있는 나는 당연히 택시라는 선택지를 골랐다.
미리 콜택시를 부르고 나왔는데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보다.
"근데 왜 저기로 안 가?"
가만히 서 있는 나에게 다연이가 물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갈 거거든."
"택시?"
"응, 택시가 뭔 줄 알아?"
"음.... 모르겠어."
"자동차는 알고 있지?"
"응, 자동차는 알아. 쌩쌩 달리는 거."
"그래, 택시도 자동차랑 똑같은데 우리가 돈을 주고 탈 수 있는 거야."
다연이는 내 말을 듣고 멍한 얼굴을 했다. 이렇게 듣기만 해서는 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잘 모르겠어.."
"괜찮아, 나중에 타 보면 되니까."
"응."
그렇게 택시를 기다린지 1분도 지나지 않아서 다연이가 어딘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물웅덩이다!”
천진난만한 목소리였다.
“오빠, 이 위로 걸으면 안 되지..?”
다연이가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런 다연이의 부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라면 이런 물웅덩이를 좋아하니까.
그래도.
“안 돼. 양말 젖어. 그러면 감기도 더 심해지고.”
안 되는 건 안 된다.
“그러며언... 양말까지 안 젖게 조심조심 걸을게. 안 돼?”
다연이가 더욱 애절한 얼굴을 했다.
다연이와 함께 살아가려면 이런 눈빛을 해도 거절할 수 있어야 할 거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해야 하니까.
“음.. 알겠어. 대신 나랑 같이 천천히 가는 거야.”
“응!”
그래도 다연이 말은 거절 못하겠다.
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