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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다아.”
집으로 돌아온 다연이는 바닥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미리 보일러 켜둔 덕에 집은 따뜻했다.
나는 그런 다연이를 놔둔 채 이불이 말랐는지 먼저 확인한다.
만져보니 확실히 젖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마른 것도 아니다. 마른 듯 마르지 않은 그런 찝찝함이 아직 이불에 묻어 있었다.
나는 이불을 걷어서 바닥에 넓게 깔았다.
“이불이다.”
“아직 덜 말랐으니까 여기서 놀면 안 돼. 감기도 걸렸으니까. 알겠지?”
“알겠어.”
“그러면 손이랑 발 먼저 씻자.”
“응.”
다연이가 입고 있던 후드를 벗기자 다시 허름한 옷이 보인다.
낡고 오래됐지만 더럽지는 않다.
다연이에게 이런 옷을 입힌다는 것이 볼 때마다 미안했으나 옷은 내일 사기로 했으니 오늘은 그냥 참기로 한다.
“이제 깨끗해졌어.”
화장실에서 나온 다연이가 양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그래.”
“그럼 이제 뭐해?”
다연이는 아직 더 놀고 싶은 것 같다.
“양치하고 씻고 자야지.”
“자기 싫은데.”
“그러면 뭐 하고 싶어?”
“오빠랑 같이 놀고 싶어.”
그렇게 말해도 잘 놀아줄 자신이 없었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랑 놀아도 재미없을 텐데.”
“그러면....”
다연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뭔가 할 것들을 찾고 있다.
그러다가 한 곳에 놓여 있는 책을 가지고 온다.
“책 읽어줘.”
“책...?”
“응.”
다연이의 손에 들려있는 책. 무슨상을 받았다던 책이다.
당연히 진짜 이 책을 읽어달라는 건 아닐 것 같다.
그냥 같이 뭔가를 하고 싶었던 건가.
“알겠어.”
“우와!”
다연이가 눈을 반짝이면서 나를 본다.
나는 그런 다연이에게 말했다.
“여기에 누워도 돼.”
나는 내 무릎을 툭툭 쳤다. 그러자 다연이의 작은 머리가 내 무릎에 살짝 닿는다.
“오빠 무릎에 눕는 거 좋아.”
다연이가 해맑게 웃으면서 나를 본다.
“나도 좋아.”
“그러면 매일 이렇게 해도 돼?”
“응, 해도 돼.”
나는 책을 읽어주려 손을 들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다연이가 원하는 건 진짜 책을 읽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냥 우리들만의 대화를 하기로 했다.
“다연아.”
“응.”
다연이는 허공을 바라보다가 눈을 치켜 올려 나와 눈을 마주한다.
“오늘 식당에서 어땠어?”
다연이가 식당에 있는 걸 좋아하는 건 알고 있지만 내가 없었을 때 어땠는진 모른다.
그래서 다연이 입으로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음... 식당에서?”
“응.”
“식당은 좋았어. 엄청 좋은 기분도 들고 참새 만난 것도 좋았어! 오빠가 인사하면 도망가는 참새!”
“그래.”
다연이가 누운 채로 웃었다.
왜 아이들이 웃는 소리를 꺄르르 라고 표현하는지 단번에 알 것 같은 웃음소리였다.
“그런데 조금 심심했어. 오빠랑 같이 있으면 좋은데 오빠가 일하면 엄청 조금 심심해.”
“그래?”
“응. 근데 많이 아니고 조금. 이만큼.”
허공에 손을 뻗고선 티끌만큼 작게 하늘을 집었다.
“그래도 다연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 괜찮을 거야. 어린이집에는 친구들이 있거든.”
“아, 혜원이처럼?”
“응, 혜원이처럼.”
문득 다연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면 오빠랑은 이제 식당에서 못 놀아? 오늘처럼?”
“아니, 놀 수 있어. 다연이 빨리 데리러 갈 거거든. 그러면 저녁도 같이 먹을 수 있어. 매일.”
“우와! 정말?”
“응, 정말.”
어느 어린이집에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다연이를 오랫동안 어린이집에 둘 생각이 없었다.
내가 회사에 다닌다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지금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그리고 나도 다연이와 같이 있고 싶다.
그러면 혼자 있을 때의 그 멍청한 삶을 더 이상 살지 않아도 되니까.
다연이는 나에게 치료제 같은 존재다.
다연이가 옆에 있으면 내 삶도 달라진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정상적인 삶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해준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본다면 고작 그런 것 하나 자기 힘으로 하지 못하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조금 다른 문제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밀어지지 않는 커다란 바위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매일 오빠 식당에서 맛있는 거 먹을래!”
“매일은 안 돼. 건강한 음식도 먹어야지. 맛있는 것만 계속 먹으면 힘도 안 세지고 키도 안 커지거든.”
나는 나름대로의 단호함을 담아서 말했다.
다연이가 골고루 먹기를 원하니까. 그래야 아프지 않고 잘 크기도 하고.
하지만 다연이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래도 괜찮아! 오빠가 만든 건 전부 다 맛있으니까!”
“정말?”
“응! 오빠가 해 주는 건 다 좋아.”
나는 누워있는 다연이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면서 그 말을 듣는다.
이렇게 있으니까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이다. 어느 날 갑자기 생긴 동생이 아니라 처음부터 같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때문인지 나답지 않게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내가 엄청 맛없는 걸 만들어줘도?”
“맛없는 거? 쓴 거 말하는 거야?”
“응, 쓴 거.”
다연이는 잠시 시선을 돌리더니 표정을 조금 찡그렸다.
그 맛을 상상하는 것 같다.
“으... 그래도 괜찮아. 오빠가 먹으라고 하면 먹을 수 있어.”
“그래? 그러면 내일 아침은 엄청 쓴 음식들을 해야겠다. 쓴 밥에 쓴 물에....”
“괜찮아! 먹을 수 있어!”
다연이가 누운 채로 손을 번쩍 들고선 말했다.
비장한 표정이었다. 누운 채로 그러고 있다는 게 조금 재밌다.
“농담이야. 쓴 밥 안 할 거야.”
“나는 오빠가 뭘 해줘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맛있는 거 많이 해 줄게. 건강에도 좋고 맛있는 거.”
“오늘 먹은 약처럼?”
약이라. 약은 맛없다.
“아니, 그건 맛없잖아.”
“맛있었어. 오빠가 줘서.”
귀여워라.
“그래.”
그렇게 우리는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얘길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딱히 기억에도 남지 않을 만큼 가벼운 이야기들이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렇게 말하고 내 무릎에 누운 다연이를 바라본다.
“으...”
다연이는 눈을 천천히 깜빡이면서 양 손으로 눈을 비비고 있었다.
잠이 오는 모양이다.
“다연아, 이제 잘까?”
“오빠가 자고 싶으면...”
다연이는 하품을 하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럼 양치하고 자자. 일어서.”
“응.”
다연이는 최선을 다해 일어서려고 했지만 졸음이 쏟아지는지 조금 비틀거렸다.
누워서 나와 대화를 하던 와중에도 종종 아무 말이 없었던 것 보면 그 때도 졸렸던 모양이다.
“안아줘...”
다연이 답지 않게 투정을 부리며 말했다.
많이 졸리긴 하나 보다.
“알겠어.”
양치도 거의 내가 다했다.
다연이는 인형처럼 축 늘어져서 내 손을 따라 움직인다.
“졸리면 말하지 그랬어.”
“.....오빠랑 이야기하는 게 더 좋아.”
“그래도 다음번엔 말해.”
“응...”
양치를 끝낸 다연이를 잠자리에 눕힌다.
그리고 바닥에 깔아놓았던 이불이 완전히 말랐는지 확인한다.
완전히 말랐다.
뽀송뽀송하니 다연이가 덮어도 되겠다.
다연이는 이미 반쯤 자고 있었다. 이불을 덮은 줄도 모르고 그 자세 그대로 눈을 감고 있다.
그래도 다연이가 졸리는 시간은 대강 알았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바로 재워야겠다.
나도 그 옆에 자리를 깔고 불을 끈다.
까만 방에는 빗소리가 들려온다. 완전히 멎은 줄 알았지만 다시 내리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 사이로 다연이의 작은 숨소리가 들린다.
“잘 자네.”
그렇게 말하고 나도 이불을 덮는다.
다연이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히 잠에 들었다.
***
“하암...”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져 내린다.
벌써 아침인가보다.
“으잇...!”
다연이가 상체를 일으키고는 기지개를 킨다.
“흐아암.”
다시 한 번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는 오빠가 있는 곳을 바라본다.
“.....”
오빠는 아직 자고 있다.
다연이는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다시 떠올려야만 했다. 왜냐하면 어젯밤 오빠와 같이 양치를 하고 난 다음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오빠한테 안겨서 화장실로 들어간 것까진 기억난다. 그리고 양치를 했던 것까지도.
“음....”
다연이가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간절하게 어제의 기억을 떠올렸다.
뭘 하다 잠이 들었는지, 그래서 양치는 끝을 냈는지.
한참 생각하던 다연이는 곧 몸을 들썩였다.
“모르겠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스윽.
다연이는 문득 손에 느껴지는 낯선 감촉에 아래를 바라본다.
“새 이불이다.”
어제 오빠가 세탁기에 넣고 돌렸던 그 이불이다.
부드러운 감촉이 꽤 마음에 든다.
다연이는 지금 자신이 놓인 상황을 둘러본다.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져 내리고 빗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드디어 비가 그친 모양이다.
그리고 다연이는 고개를 돌려 오빠가 있는 곳을 본다.
오빠가 덮고 있는 이불은 낡았다. 그래서 추울 것 같다.
“....”
여전히 자고 있는 오빠에게 다가가서 자기가 덮었던 이불을 덮어준다.
이불이 두 개면 훨씬 따뜻할 테니까.
오늘은 다연이가 먼저 일어났다.
오빠가 일어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그 동안 다연이는 집을 돌아다니기로 결정했다.
잠이 오지도 않는데 누워있으면 심심하니까.
터벅터벅.
조용한 집에서 다연이의 발소리면 들린다.
작고 귀여운 소리다.
어딘가로 쉴 새 없이 향하던 발소리가 창문 앞에서 멎었다.
다연이는 아직도 바깥에 비가 오고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다.
드르륵.
자고 있는 오빠가 깨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문을 연다.
맑게 게인 하늘. 하지만 땅은 푹 젖어있었다.
“비 안 온다.”
그래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이틀 내내 내리던 비가 드디어 끝났다.
슬슬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몸을 부르르 떨던 다연이가 다시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바닥으로 털썩 내려온다.
비도 오지 않으니 이제부터는 우산을 쓸 필요도 없다.
다연이는 오빠가 같은 색깔로 맞춘 우산이 좋았다.
하지만 비가 그친 지금, 유일하게 그 우산을 쓸 수 없다는 것만 안 좋았다.
그 때 이불 들썩이는 소리가 들린다.
“오빠?”
혹시 일어났을까 시선을 돌렸지만 오빠는 별 반응이 없다.
다연이는 혹시 오빠가 자기 말을 못 들었나 싶어서 조심조심 자는 오빠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오빠 일어났어?”
“....”
그러나 대답은 없다. 자고 있는 게 맞다.
아까는 잠꼬대였던 모양이다.
다연이는 다시 방 한 가운데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오빠를 깨우기도 싫다.
어제 잠을 잤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분명 오빠가 자신을 재웠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 힘들었겠지.
아무리 오빠가 세도 힘든 건 힘든 거다.
다연이는 털썩 주저앉은 채 생각했다.
뭔가 할 게 없을까.
그렇게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다연이가 몸을 들썩였다.
“그래!”
현관문을 바라보던 다연이는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해 달라는 건 다 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