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여운 동생이 생겼다-21화 (21/181)

-------------- 21/181 --------------

나를 따라서 걸어오는 다연이의 발소리가 들린다.

작은 소리. 그 소리가 내 등 뒤에서 멈췄다.

“다 된 거야?”

“응.”

내가 원했던 것보다 더 오래 튀겨지긴 했지만 이 정도면 준수하다.

“나는 뭐 도와줄 거 없어?”

“있어, 자.”

나는 다연이에게 튀김을 담은 접시를 내밀었다.

“이거 갖다 놔줘.”

“응!”

이제 다연이와 사는 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다연이는 뭐든 자신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게 처음엔 나에게서 버려지지 않으려고 그랬다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다.

그냥 도움을 주고 싶은 것 같다.

나는 밥그릇 두 개를 꺼내서 그 안에 밥을 담는다.

다연이는 얼마나 줘야 할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일단 조금만 준다.

나중에 부족하면 더 주면 되니까.

“갖다 놓고 왔어. 이제 또 할 거 없어?”

“응, 없어. 이건 뜨거워서 내가 할게.”

밥그릇은 다연이가 만지기엔 많이 뜨겁다.

나는 서둘러 그릇 두 개를 테이블로 옮겨 놓는다.

“오빠...”

그 때 나를 부르는 다연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 이거 한 번만 만져보면 안 돼?”

“뜨거운데..?”

“궁금해...”

“음...”

당장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니 알 것 같기도 했다.

아이들은 뭐든 다 궁금해 하는 법이니까.

게다가 미리 뜨거운 걸 안다면 궁금해서 뜨거운 것을 확 잡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 대신 진짜 조금만 만져야 돼.”

“조금만 어떻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다연이를 위해 몸소 시범을 보여주기로 했다.

“이렇게.”

밥그릇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선 훅 하고 다시 땠다.

혼자였다면 바보 같은 행동이었겠지만 다연이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괜찮았다.

“아, 알겠어!”

나를 보고 다연이가 똑같이 따라했다.

“앗 뜨거!”

“뜨겁지?”

“응, 엄청 뜨거워!”

역시 백 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해보는 게 낫다.

나는 뜨거워진 다연이의 손가락을 꾹 잡았다.

“찬물에 손가락 담그자.”

“응.”

사실 연약한 아이의 피부라고 하더라도 화상을 입을 정도로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다연이의 손가락을 흐르는 물에 적셨다.

다연이니까.

“괜찮아?”

“응, 괜찮아.”

조금 과잉 대응한 것 같지만 상관없다.

“그러면 이제 밥 먹어?”

“아니, 수저도 준비해야하고 반찬도 꺼내야지.”

“그러면 빨리 준비하자!”

“그래.”

그 말에 다연이와 내가 서둘러 움직였다.

내가 꺼낸 수저를 다연이가 받아서 테이블에 예쁘게 정리했고 나는 그 틈에 냉장고에서 먹을 만한 것들을 꺼내놓는다.

이건 내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먹는 반찬들이다.

가끔 식당에서 파는 메뉴가 먹고 싶지 않거나 대충 끼니를 먹고 싶을 때 꺼내는 것들이다.

“김치! 이거 김치야!”

“그래, 맞아.”

대표적으로는 김치가 있었다.

튀김과 김치는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음식들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란히 놓아둔다. 그리고 곁들여 먹을 반찬 몇 가지를 놓으니 저녁 식사를 할 준비가 끝났다.

“이제 먹자.”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먹어.”

“오빠도 맛있게 먹어!”

음식 앞에서 신난 다연이가 열심히 밥을 먹기 시작한다.

튀김은 이렇게 먹으나 저렇게 먹으나 맛있는 법이니까.

열심히 먹던 다연이가 말했다.

“이거도 맛있어! 이건 무슨 튀김이야?”

“오징어튀김.”

“우와... 이것도 엄청 맛있어.”

잘 먹는 다연이의 모습을 보니 괜히 뿌듯해진다.

다연이는 아직 너무 작아서 튀김 몇 개와 밥 몇 술을 뜨니 금세 배부르다고 말했지만.

“배부를 만큼 엄청 맛있었어!”

보통의 아이들은 부모가 밥 한 술 먹이려고 애를 쓴다는데 다연이는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오히려 먹을 것을 좋아하니 다행이다.

“다음에는 더 맛있는 튀김을 해줄게.”

“우와... 더 맛있는 게 있어?”

“응, 집에서 직접 튀기면 더 맛있을 거야.”

“이거 보다 더 맛있는 거.. 우와...”

게다가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 투성이니 반응도 좋다.

나는 감탄을 하는 다연이를 지켜보면서 밥그릇을 비웠다.

튀김은 꽤 오랜만에 먹었는데 이렇게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는 것 같다.

더 맛있는 튀김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다연이의 표정을 보는 것도 좋고.

순식간에 식사를 마친 우리는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에 서둘러 테이블을 정리한다.

처음 식사를 준비했을 때처럼 나와 다연이 모두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다연이가 일을 조금만 하길 바라면서 열심히 움직였고 다연이는 나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후다닥 움직인다.

“됐다.”

“됐다아.”

깔끔해진 테이블을 보면서 다연이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 나도 옆에 서서 빈 테이블을 바라본다.

항상 식사의 마무리는 설거지다. 그건 몇 년 동안 식당을 운영해 온 내가 늘 하던 과정이었다.

하지만 다연이에겐 비밀로 한다.

내가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면 틀림없이 도와주고 싶어 할 테니까.

다연이가 말없이 다시 의자로 돌아가 앉는다.

그리고 내가 쉬고 있는 걸 확인하더니 복도로 사라졌다. 아마도 달을 보기 위해서 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면 이제 진짜 마무리를 해야겠다.

쏴아아.

시원한 물소리가 들린다.

한참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옆에서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렸다.

“이거는 내가 못 도와주는 거야?”

그 곳에는 다연이가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언제 왔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묻는 다연이는 의외로 담담한 목소리다.

“응, 아직 키가 작아서 안 돼.”

“그러면 옆에서 보고만 있는 건 해도 돼지?”

“그건 해도 돼.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고.”

“응.”

나는 다연이의 시선을 받으면서 설거지를 이어나간다.

“거품이다.”

종종 나를 보면서 말하는 다연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평소엔 그렇게 지겹던 설거지도 빨리 끝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지막 그릇을 올려두자 다연이가 말했다.

“이제 끝난 거야?”

“그래, 끝났어.”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옆에서 한참 거품을 만지작대던 탓에 다연이의 손은 거품으로 덮여 있었다.

다연이는 손을 쥐었다가 폈다가 하면서 계속 새로운 거품을 만드는 중이다.

“후우.”

다연이는 자기 손에 있던 거품을 후 분다. 그러자 커다란 비눗방울 하나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거품이다!”

공중에 있던 비눗방울은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툭 하고 터져버렸다.

그걸 보고 한참 웃던 다연이에게 내가 말했다.

“이제 씻자.”

“응.”

그렇게 다연이의 작은 손을 닦아주던 때에 다연이가 내게 말했다.

“오빠.”

“응.”

“왜 오빠는 안 웃어?”

“....”

갑자기 이런 질문을 받으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딱히 숨기려고도 하진 않았지만 꼭 다연이에게 내 약점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다.

다연이의 표정을 보니 정말로 그냥 궁금해서 묻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애써 담담해서 대답했다.

“모르겠어, 나도.”

“안 웃겨서 안 웃는 거야?”

“아니, 웃겨. 재밌고. 그런데 웃음이 안 나오네.”

“왜...?”

다시 같은 질문이 반복됐다.

어떻게 대답해야 다연이가 납득할 수 있을까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사실 그대로 말하기로 했다.

“나도 어렸을 때 아버지랑 같이 살았거든.”

“어버지.. 아빠 말하는 거야?”

“응.”

“언제까지?”

다연이가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본다.

비록 다연이는 아버지가 좋았다고 하지만 같이 살면서 이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자연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얼굴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20살이 될 때까지 계속.”

“그러면... 아빠는 그 때도 아팠어..?”

“아니.”

그렇게 말하자 다연이가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은 짐작한 모양이다.

다연이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그런데도 그렇게 짐작할만큼 많이 똑똑한 것 같다.

“그렇구나....”

다연이가 납득한 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자, 손 다 씻었으면 수건으로 닦자.”

“응...”

다연이는 심각하게 몸을 축 늘어뜨렸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쪼그려 앉아서 다연이의 손을 닦아준다.

이미 지난 일이고 바꿀 수는 없었으니까.

지금은 다연이가 지금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 닦았다.”

그렇게 말하자마자 다연이가 내 목덜미를 껴안는다.

작은 팔이 내 목을 둘러싼다.

“왜 그래?”

나는 다연이의 등을 툭툭 두드리면서 물었다.

“오빠 많이 아팠어? 그래서 그런 거야..?”

“아니, 안 아팠어.”

괜찮은 척 말했지만 다연이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손을 놓지 않았다.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다연이는 내 목덜미를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로 다연이를 안아 올렸다.

“나는 진짜 괜찮아. 이거 놓고 오빠 봐.”

그러자 다연이가 스르르 손을 놓고 나를 본다.

“왜 울어.”

“안 울었어...”

그런 말과는 달리 다연이는 눈가를 스윽 닦아냈다.

“안 울어도 돼. 이제 괜찮으니까.”

“....”

다연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보다가 다시 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오빠 웃게 해줄게. 안 아프게 매일 안아 줄게...”

“그래, 고마워.”

내가 해야 할 말은 다연이가 했다.

그래도 그런 다연이의 말에 기분이 좋아져서 한동안 그렇게 안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안아보니까 알겠다. 생각보다 많이 따뜻하구나.

.

.

.

시간이 더 지나고 이제는 분식집 문을 닫으려 한다.

“불을 끄니까 엄청 깜깜해.”

“내 손 잡고 있으면 괜찮아.”

“응.”

나는 다연이의 손을 잡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마지막으로 문까지 잠그고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우리 이제 집으로 가는 거야?”

“응, 집으로 갈 거야.”

드디어 식당이 끝났다. 지금 바깥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

다연이도 집으로 갈 생각에 조금 들떠 있는 것 같다.

“내일도 여기로 와?”

“응, 어린이집에 다닐 때까지는 계속.”

혹시 지루했던 건가 싶었지만 이어지는 말을 듣고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와! 나는 여기가 좋아. 계속 있고 싶어.”

그렇게 잡담을 하면서 집으로 걸어간다.

다연이는 나와 같이 걷는 밤길이 신기한 듯 주변을 계속해서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다연이 때문에 늘 걷던 길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와... 비가 안 오니까 달님이 보여..”

다연이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연이 말대로 밝은 달이 보인다.

“창문으로 보던 거랑 달라.”

“그래, 달라.”

나답지 않게 하늘의 달을 감상하면서 길을 걷는다.

기계처럼 살던 삶에 다연이만 들어온 것뿐인데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구나.

“오빠는 엄청 커서 달님도 만질 수 있을 것 같아.”

다연이가 그렇게 말하고선 작게 웃었다.

“다연이가 한 번 해볼래? 달님도 만질 수 있는지.”

“응?”

나는 다연이를 번쩍 안아들었다. 그리고 달을 향해 손을 뻗는다.

“우와! 진짜 높아!”

환하게 웃는 다연이를 보고 나는 더 높이 손을 들었다.

좋은 생각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