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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후....”
가까이 가니 다연이가 바람 부는 소리가 들린다.
튀김이 뜨겁다고 하니 식히고 있는 중인가 보다.
“오빠, 이제 다 식은 거 같아.”
다연이의 말에 살짝 손가락을 대 보니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식었다.
지금 다연이가 먹는다고 해도 뜨겁지 않겠다.
“그런 것 같네. 그러면 먹어 볼래?”
“응, 포크 가져올게!”
그 말을 하고 다연이가 의자에서 풀썩 내려와 수저가 있는 곳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이 닿을 리는 없다. 당연하게도 주방은 성인의 키에 맞춰져 있으니까.
“다연아, 이런 건 부탁해도 돼.”
“이런 게 뭐야? 포크 가져오는 거?”
“아니, 다연이가 혼자서 못할 것 같은 거.”
못할 것 같은 건 이제 다연이 혼자서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지금 여기 있고, 앞으로도 계속 옆에 있을 거니까.
“음.... 응! 알겠어!”
나는 찬장에서 포크를 꺼낸다. 그리고 물도 한 잔 따라준다.
“자, 이제 먹어 봐. 물도 옆에 놔둘 테니까 마셔.”
“응!”
다연이는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로 포크로 튀김을 푹 찔렀다.
포크가 들어가자마자 경쾌한 튀김 소리가 들린다.
바삭, 하는 소리와 함께 다연이가 튀김을 들어올렸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잘 튀겨졌는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튀김 부스러기가 툭 떨어진다.
기름에 담궜던 탓인지 튀김에서 윤기가 흐른다.
“우오...!”
다연이가 튀김을 보면서 탄성을 지른다.
늘 그랬지만 다연이는 나와 달리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
아직 아이라서 그런 건지,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와 같이 있어서 더 그렇게 보이는 건가.
“맛있어?”
다연이의 표정에서 이미 맛있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나는 버릇처럼 물었다.
다연이의 입으로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응! 맛있어! 오빠가 해준 거 전부 엄청 맛있어!”
하긴 오늘 점심 때의 김밥과 떡볶이도 그렇고 지금 먹는 튀김도 그렇고 전부 맛있는 음식이다. 분식집에서 인기가 많은 자극적인 음식들.
다연이가 전부 맛있다고 하는 건 아직 내 건강식을 맛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늘 그렇듯 이런 건 말로 하지 않았다.
다연이는 어리니까 건강한 음식도 많이 먹어야 한다. 그건 커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성장을 위해선 중요하니까.
“다행이네.”
“엄청 달콤해. 사탕처럼은 아닌데 사탕만큼 달콤해!”
달콤하긴 한데 사탕과는 다른 달콤함이라는 건가.
어찌됐든 맛있게 먹으니 다행이다.
“아암.”
다연이가 다시 크게 물었다. 말랑한 볼이 찰랑거린다.
“물도 마셔. 목 막힐 거야.”
다연이는 입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튀김 하나만 먹고 있는데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다연이가 물을 쭉 마시고 컵을 툭 내려놓는다.
“으아... 맛있다...”
이제 튀김은 한 입 정도만 남았다.
다연이가 마지막 남은 튀김을 한 입에 전부 먹어버리려다가 문득 몸을 들썩였다.
사레라도 들린 건가.
그러다 다연이가 고개를 돌린다.
“오빠 먹어.”
튀김에 집중하다가 이제야 내가 생각난 모양이다.
“나는 안 먹어도 돼. 다연이 다 먹어.”
“그래도 돼?”
“응.”
물어보는 타이밍이 조금 늦은 것 같지만 다연이가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좋다.
“정말로 먹어도 되지? 오빠 안 먹을 거지?”
“응, 안 먹어. 그거 다 먹으면 이따 저녁으로 또 튀김해 줄게.”
“우와! 진짜?”
“그래.”
그 말에 다연이는 남아있던 튀김을 전부 먹어버린다.
우물우물 하면서 씹다가 컵 안에 있던 물도 싹 비운다.
“맛있다아!”
그렇게 말하고선 손으로 입가를 슥슥 닦는다.
“그렇게 닦으면 안 돼. 이걸로 닦아.”
“응!”
다연이는 내가 내민 휴지를 받아서 다시 입가를 닦았다.
“손 더러워졌으니까 물로 씻자.”
“알겠어.”
아직 다연이에게 가르쳐 줘야 하는 것들이 많다.
이런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그래도 다연이는 불평하지 않고 내 말을 잘 들어준다.
“오빠! 그러면 우리 저녁은 언제 먹어?”
“한 시간 뒤에.”
“우와, 한 시간 뒤에!”
다연이가 내 말을 서툴게 따라했다.
“아니면 다연이 먼저 먹을래? 손님들 오면 한 시간보다 더 늦어질지도 몰라.”
식당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점심 때도 그랬던 것처럼 제 시간에 밥을 먹을 수가 없다는 것.
아이들은 제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한다.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아이들에겐 필수였다.
다연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다면 달라지겠지만 나와 같이 있을 때에도 웬만하면 제때 밥을 먹이고 싶다.
“싫어. 나는 오빠랑 같이 먹고 싶어.”
이렇게 말할 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 알겠어.”
그럼 손님들이 최대한 빨리 오길 바라는 수밖에.
이제부터는 근처 학교의 학생들이 올 시간이다.
학생들은 분식집 매출의 상당부분을 맡고 있었기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다.
“이제부터 바쁠 거니까 다연이는 놀고 있어. 졸리면 나한테 말하고. 이불 펴 줄 테니까.”
“응.”
나는 그런 다연이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준비를 시작한다.
학생들에게선 떡볶이가 많이 팔리니 떡볶이를 더 해놔야겠다.
“읏..!”
다연이가 익숙하게 의자에 앉아서 나를 지켜본다.
지금은 다연이에게 한 눈 팔 때가 아니다. 빨리 시작해야지.
.
.
.
“안녕히 계세요.”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마지막으로 분식집을 나서자 식당은 다시 조용해졌다.
“후...”
오늘 저녁엔 손님들이 적은 편이었지만 비가 내리는 덕분에 해야 할 일은 더 많았다.
바닥이 미끄럽지 않게 계속 닦아야했고 그 일이 끝나면 다시 손을 씻고 요리를 해야 했다.
그래도 중요한 건 학생들이 모두 식당을 나갔다는 것.
저녁 시간이 끝났으니 이제 학생들은 더 오지 않을 거다.
나는 지난 요리의 흔적을 치운다.
여기저기 튄 기름들을 닦고 쌓인 그릇들을 설거지한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오빠는 할 일이 엄청 많아.”
다연이는 복도에 의자를 가져가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불이 켜진 복도에 다연이 혼자 있다.
배고프지도 않는지 밥 먹고 싶다는 말 한 마디 없다.
“나는 괜찮아. 그런데 다연이는 배 안 고파? 시간이 좀 지났는데.”
“나도 괜찮아. 아까 오빠가 튀김해줘서 괜찮아. 오빠가 힘든 게 안 괜찮아.”
“안 힘들어. 매일 하던 거라서.”
“나도 빨리 도와주고 싶은데.”
도와주고 싶다고 말하는 다연이에게서 처음처럼 초조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래서 버리지 말라는 의미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 도와줘도 돼. 내가 뭐만 잘하면 된다고 했지?”
“밥 먹는 거랑 안 아픈 거...”
“그래.”
나는 다연이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하던 것을 마무리 짓는다.
겨우 일을 끝내고 온 몸을 풀어준다.
아까는 너무 바빠서 스트레칭을 할 시간도 없었다.
“으읏...!”
뭉친 어깨와 목을 풀고 있으니 내 옆으로 다연이가 걸어왔다.
“오빠, 아픈 거야?”
다연이가 조금 걱정스런 얼굴로 말한다.
“아니, 안 아파. 그냥 뭉친 데를 푼 것뿐이야.”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
“그래.”
모르겠지.
원래 다연이 나이에는 모르는 거니까.
쭈뼛거리며 서있던 다연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빠...”
“응?”
“나 배 안 고파. 그래서 밥 안 해도 돼.”
그렇게 말하는 다연이를 보면서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이야?”
최대한 위협적으로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하려 애썼다.
그게 내 마음대로 잘 됐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오빠, 힘들었잖아... 그래서 나 밥 안 먹어도 괜찮아. 아니면 내가 해줄게!”
“....”
어쩌면 이렇게 귀여운 말만 골라서 할 수 있을까.
표정으로 드러나진 않겠지만 충분히 귀엽고 고맙다고 생각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아이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괜찮아. 다연이가 맛있게 먹으면 하나도 안 힘들어.”
“정말?”
“그래.”
진짜 그랬다. 맛있게만 먹어준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럼 지금 먹을래?”
“지금 먹어도 돼?”
“돼.”
그리고 곧바로 음식을 준비한다.
다연이가 먹고 싶은 저녁 메뉴는 단연 튀김이었다.
전에 먹은 고구마튀김도 물론 맛있게 먹었지만 다연이는 좀 더 다양한 종류를 먹고 싶어 했다.
이 곳이 집이었다면 이런 공산품이 아니라 직접 만들었을 텐데.
직접 만든 튀김이 맛있는 법인데 조금 아쉽다.
그래도 손님들이 언제 올 줄 모르니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익숙하게 튀김을 준비하면서 다연이에게 물었다.
“다연아.”
“....”
다연이는 넋을 놓은 채 기름에 떠 있는 튀김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굳이 그런 다연이의 집중을 깨지 않았지만 얼마 못 가 내가 불렀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몸을 들썩 거리며 대답했다.
“응?”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도 좋다.
“아까 전에 내가 바빴을 때, 다연이는 뭐하고 있었어?”
사실 손님을 맞는 내내 궁금했다.
종종 다연이가 있는 곳을 보긴 했지만 계속 뭘 하는지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음.... 아무것도 안 했어. 뒷마당은 너무 어두워서 복도에서 그냥 오빠보고 있었어. 아니면 계단에 있는 창문 보거나.”
“창문?”
“응, 여기에 이렇게 앉아있으면 창문으로 아주 가끔 달님이 보여.”
다연이가 직접 계단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아 계단의 창문 쪽으로 바라본다.
저녁때쯤에 비가 얼추 그치기는 했다. 그래도 비가 왔다가 안 왔다가를 반복해서 바닥을 꾸준히 닦아야 하긴 했지만.
구름이 있어서 달을 보기엔 힘들 텐데.
그래도 어차피 튀김은 조금 놔둬야 하니 나도 다연이를 따라서 계단 앞으로 향했다.
“여기에서?”
“응.”
다연이가 앉아서 내 손을 잡았다.
자기 옆에 앉으라는 의미 같다.
다연이는 내 옆에 꼭 붙어서 창문을 가리켰다.
“저기 봐. 지금은 달이 보여. 달 예쁘지?”
나는 다연이와 달리 키가 크기 때문에 고개를 한참 숙여야만 간신히 볼 수 있었지만 다연이 말대로 달은 정말 예뻤다.
아직 완전한 원형은 아닌 모양이었는데 구름에 가려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잠깐 드러난 달이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예쁘네.”
“여기서 달님이 언제 나오는지 보고 있었어.”
“그랬구나.”
반짝이는 달을 보는 것도 좋지만 내일은 다연이가 할 수 있는 뭔가를 가지고 와야겠다.
심심하지 않게.
“오빠는 그거 알아?”
“뭐?”
“달님의 모양이 매일 변하는 거.”
벌써 그런 것도 알고 있었다니. 똑똑하네.
“응, 알고 있어.”
“우와, 오빠는 뭐든 알고 있구나.”
“다연이가 물어보면 뭐든 가르쳐 줄게.”
“응.”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연이와 함께 달을 바라보다가 문득 기름 끓는 소리가 들린다.
아, 튀김하는 중이었지.
빨리 가 봐야겠다.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