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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동생이 생겼다-19화 (19/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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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는 다른 사람이 오면 다시 말수가 줄어든다.

지금처럼.

의자에 앉아있는 다연이가 멀뚱멀뚱 나를 보고 있다.

저렇게 불편하면 안에 들어가 있어도 되는데.

우선은 주문부터 받자.

“뭐 드시겠어요?”

“음...”

여자는 메뉴판을 뚫어지게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다연이는 고개를 돌려 그런 여자를 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나와 참새에 대해서 토론을 하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많이 밝아졌다고 생각 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선 여전히 살짝 주눅 들어 있었다.

그러다 여자가 말했다.

“저는... 튀김 1인분이랑 떡볶이 하나. 그렇게 주세요.”

“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주방으로 돌아가서 먼저 떡볶이를 담는다.

개인적으로 튀김과 떡볶이는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그냥 먹는 튀김도 물론 맛있지만 떡볶이와 곁들이면 더욱 맛있다. 오죽하면 튀김이 들어가 있는 떡볶이도 나올 정도니 말이다.

접시에 담은 떡볶이를 서빙해주고 튀김을 하기 위해 준비한다.

우리 분식집에서 파는 튀김의 종류는 그리 많지 않다.

오징어와 고구마, 그리고 야채 튀김.

여느 가게들처럼 공산품을 쓰고 있다. 공산품을 쓰지 않는다면 다른 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할머니 때부터 이렇게 해 오고 있었다.

나는 깨끗한 기름에 온도를 서서히 높이기 시작한다.

온도가 적당히 오르면 준비한 튀김들을 튀기기 시작한다.

타다닥.

튀김들이 기름 속으로 들어가자 마치 바깥에서 들리는 빗소리처럼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여기도 비 오고 있는 것 같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다연이가 작게 말했다.

나한테만 들릴 만큼 작게.

바깥에서 내리는 비와 튀기는 소리가 섞이니 다연이 말처럼 분식집 안에도 비가 내리는 것 같다.

우선 1인분의 튀김을 만들어 낸다.

종류 별로 하나씩 담고 나머지 하나는 손님이 원하는 대로.

“저는 고구마로 주세요.”

“네.”

그래서 마지막으로 고구마를 얹는다.

이렇게 손님에게 내놓은 음식들이 완성됐다.

“우와..”

다연이는 의자에 앉아서 이 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다연이가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튀김이었지만.

그러다 문득 나와 눈이 마주친 다연이가 말했다.

“색깔이 엄청 예뻐...”

노르스름한 튀김의 색깔은 그렇게 느낄 만했다.

점심에 만들었던 김밥처럼 샛노란 단무지의 색과는 다르지만 튀김 나름의 색깔도 단무지 못지않게 예쁘다.

하지만 다연이의 저 말이 단지 색깔이 예쁘다는 걸 말하지 않는 다는 건 알고 있었다.

“맛있겠다.”

다연이는 떡볶이를 덜어내는 내 모습을 봤던 그 때처럼 나지막하게 말했다.

물론 이번에는 너무 작게 말해서 입모양만 보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떤 뜻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튀김을 서빙하는 게 먼저다.

다연이는 멍하니 튀김 더미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다연이의 시선을 매단 채 여자에게 가져다 준다.

“튀김 나왔습니다.”

“우와, 감사합니다.”

여자는 다른 손님들과는 달리 투박한 말에도 고개 숙여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떡볶이와 튀김. 특히 우리 분식집의 자랑인 떡볶이를 맛있게 먹길 바라며 다시 주방으로 돌아온다.

주방 입구에는 다연이가 인형처럼 앉아있었다.

다연이는 입을 헤 벌리며 여자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다연이에게 가서 말했다.

“다연아, 튀김 먹을래?”

“튀김? 튀김 먹어도 돼? 노란색 튀김..?”

다연이는 서둘러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이미 말하는 것부터 먹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응.”

“응! 먹을래!”

“그러면 따라와.”

“응!”

다연이가 내 뒤를 쪼르르 따라온다.

방금 전에도 그랬듯이 우리 분식집에서 파는 튀김은 세 종류가 있다.

개인의 취향이 전부 다르듯이 먹고 싶은 튀김의 종류도 다른 법이다. 그래서 나는 다연이에게 물었다.

“뭐 먹고 싶어? 오징어, 고구마, 야채 튀김이 있는데.”

“음... 그게 뭔지 모르겠어..”

다연이는 많은 것들을 모른다.

특히 음식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심하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덩달아 설레는 마음도 들곤 했다.

모른다는 건 앞으로 알아 가면 되니까. 그리고 모르는 음식들에 대해서도 나와 같이 하나씩 먹어보면 된다.

그런 맛의 즐거움을 차례차례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 설렜다.

“그럼 사진으로 보여줄게.”

나는 휴대폰으로 각각 튀김의 사진들을 검색해서 보여준다.

물론 사진일 뿐이라 맛이나 자세한 것들까지는 알 수 없겠지만 없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오, 노란색이야.”

그러나 다연이는 색깔 이외의 다른 것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이 중에서 뭐가 제일 먹고 싶어?”

“음.. 모르겠어. 다 맛있을 것 같은데에.”

“다 먹으면 배부를 거야. 다연이가 세 개 다 먹기엔 조금 많거든.”

다연이는 잠시 고민 하는 듯 생각에 잠기다가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내게 묻는다.

“튀김 한 개는 얼마만큼 커?”

“이만큼.”

나는 손가락으로 길이를 대충 재서 다연이에게 보여줬다.

“앗..!”

다연이는 길이를 잰 내 손에 자기 손을 얹으며 길이를 가늠한다.

나는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대충 길이를 잴 수 있었지만 다연이는 조금 달랐다.

손가락이 너무 작아서 한 손을 쫙 펼쳐야 길이를 가늠할 수 있다.

“이만큼 세 개면.. 헉! 엄청 많아! 배부를 것 같아!”

아까 배를 쓰다듬던 건 다 먹을 수 있는지 예상하기 위해서 였던 것 같다.

“응, 다 먹으면 배부를 거야. 그래서 하나만 골라야 돼.”

“하나만.”

다연이는 휴대폰 화면을 보면서 한동안 고민에 빠지더니 결정한 듯 말했다.

“나는 이거 할래!”

다연이가 선택한 사진은 고구마였다.

고구마도 맛있긴 하지.

“이거는 바깥에도 노란색인데 안에도 노란색이야.”

“아... 그렇구나.”

그럴듯한 이유라고 생각했다.

다연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노란색의 튀김이 맛있어 보였던 거니까 이왕이면 안과 밖이 전부 노란색인 편이 좋겠지.

“맞아!”

그래. 그러면 고구마를 튀겨야겠다.

“오빠, 나 여기서 구경해도 돼?”

“응, 해도 돼.”

그러자 다연이가 낑낑대며 의자를 끌고 온다.

“내가 도와줄게.”

나는 다연이가 가지고 오던 의자를 넘겨받아서 다연이가 원하는 위치에 놓아준다.

“보는 건 되는데, 움직이면 미끄러질 수도 있으니까 얌전히 앉아있어야 돼.”

“응.”

내 말대로 의자에 앉은 채 얌전히 나를 본다.

“그래, 좋아.”

기름이 튀지 않게 거리를 둔 다음 다연이에게 튀김을 고르게 했다.

“어떤 걸로 할까?”

“음... 나는 이거!”

다연이가 가리킨 고구마튀김을 집어 든다. 그리고 온도가 적당히 올라간 기름에 담근다.

타다닥.

기름튀기는 소리가 들리고 다연이는 웃으면서 그 상황을 지켜본다.

“진짜 빗소리랑 똑같아!”

“비슷해.”

방금 전 여자와 가까이 있을 때는 말도 없고 얌전히 앉아만 있더니 나와 있을 때는 꼭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그 모습을 보고 아직은 많이 낯을 가리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한테만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도 조금 뿌듯했다.

적어도 내가 다연이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다는 말이니까.

몇 번을 휘적거리고 나서 튀김을 꺼낸다.

노릇노릇하게 튀겨졌다.

“바로 먹어도 돼?”

“아니, 이거 엄청 뜨거워. 만지면 화상 입을 수도 있어.”

“화상?”

“응, 너무 뜨거워서 상처나는 거.”

“아, 알겠어. 그러면 조금 있다가 먹을래.”

“그렇게 하자.”

완성된 튀김에서 희미한 김이 오르고 있다.

다연이는 테이블 위에 튀김을 올려놓고 김이 언제 사라지는지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많이 기다려야 돼.”

“응.”

그래도 다연이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니 앞으로 다연이에게 주고 싶은 음식들이 막 떠올랐다.

음식을 만들어 주는 입장에서 다연이처럼 반응해준다면 신나서 더 해주고 싶다.

“여기 계산이요.”

“네.”

그 때 여자가 말했다.

테이블 위에 있던 떡볶이와 튀김은 말끔하게 비어있었다.

“다연아,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아직 먹지 말고.”

“응.”

그러나 다연이는 계속해서 튀김에 집중하고 있었다.

“뜨거워.”

그래서 한 번 더 당부하듯 말했다.

“응, 알겠어. 안 먹고 볼게.”

나는 다연이의 대답을 뒤로하고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향한다.

익숙하게 값을 부르고 여자는 카드를 꺼낸다.

그런 여자의 표정이 묘하게 미소 짓고 있긴 했지만 별 다른 의미를 두진 않았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영수증도 드릴까요?”

“아, 아뇨. 그런데요...”

그렇게 묻는 여자가 살짝 웃었다.

그런 여자 너머로 여전히 튀김과 눈싸움을 하고 있는 다연이가 보인다.

“저 아이는 딸인가요? 너무 귀여워서요.”

“아뇨, 동생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죄송합니다. 아까부터 계속 보고 있었는데 너무 귀엽더라고요.”

“감사합니다.”

뜬금없는 다연이의 칭찬에 일단 고맙다고 말한다. 뜬금없긴 했지만 내가 봐도 다연이는 귀여우니 별 말 없이 넘어간다.

“아, 그렇다고 저 이상한 사람은 아니에요.”

여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린이집에서 교사로 일한지 얼마 안 됐거든요. 그래서 저렇게 귀여운 아이들한테는 저절로 눈길이 가네요.”

“감사합니다.”

할 수 있는 말이 그것 밖에 없었다.

그래도 고마운 건 사실이니까.

“귀엽기도 하고 엄청 착하네요. 여기에 자주 와야겠어요.”

여자가 웃으면서 카드를 받는다.

“아, 그리고 맛있었어요. 아이도 귀엽지만 음식도 엄청 맛있었어요.”

“그것도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

“네, 조심히 가세요.”

그렇게 여자가 식당을 떠났다.

여자는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지만 목소리를 차분했다.

나와 둘이 있을 때의 다연이처럼 활기찬 성격이지만 말을 할 때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말솜씨까지 그런 건 아니었지만.

어린이집 교사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왕이면 다연이가 다닐 어린이집의 교사라면 좋을 것 같다.

잠시간의 대화뿐이었지만 그리 나쁜 사람인 것 같진 않았으니까.

“흠...”

그런 생각은 우선 치워버리고, 지금은 다연이가 더 중요하다.

아직도 튀김을 빤히 보고 있는 걸 보면 조금이라도 빨리 먹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다연이가 있는 곳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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