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81 --------------
“베개는 내가 들고 갈게.”
“응.”
우리는 다연이가 쓰던 이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곳에 놓아두고 계속 쓰고 싶었지만 이불이 더러워질 수도 있으니까 2층에 올려두기로 했다.
내가 앞장서고 베개를 든 다연이가 나를 뒤따라온다.
툭.
나는 이불을 입구 옆에 놓아두고 다연이가 가져온 베개를 받아서 그 위에 올려둔다.
언제라도 필요하면 바로 쓸 수 있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할머니가 살던 방이 눈에 들어온다.
이불을 가져올 때도 봤던 모습이지만 그 때도 그랬듯 적응은 되지 않았다.
그 때는 다연이를 위해서 라는 생각으로 바쁘게 움직이느라 슬픈 감정에 젖어들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오빠, 여기 들어갈 거야?”
멍하니 서서 방 안을 보던 나에게 다연이가 물었다.
“아니, 내려갈 거야.”
“응.”
여기는 나중에 다시 오자.
이번에는 올라올 때와 반대로 다연이가 앞장서서 계단을 내려간다.
그러다 문득 계단 중간에서 다연이가 멈췄다.
“오빠.”
“응.”
“여기로는 뭐가 보여?”
다연이는 계단 중간 벽에 있는 창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작은 창문이었는데 다연이의 키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높이에 있었다.
“옆 건물.”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는 꽤 좋은 풍경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할머니가 잘 설명해주지 않아서 나도 모른다.
내가 있을 때부터 창문은 건물로 막혀 있었으니까.
“그러면 한 번 봐도 돼?”
“응, 돼.”
“안아줘, 오빠.”
다연이가 나를 보며 팔을 들어올렸다.
이런 모습을 종종 보긴 했지만 정말이지 이 동작은 너무 귀엽다.
남들이 보기엔 지금 내가 웃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귀여웠다.
“그래.”
나는 다연이를 안고 창문 높이까지 들어올린다.
“우와...!”
다연이는 창밖을 보기도 전에 버릇처럼 탄성을 내질렀다.
“와아....”
하지만 창밖을 보자 그 탄성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벽 밖에 안 보여...”
“원래는 좋은 풍경이 보였데.”
“정말? 사진에 있는 할머니가 그랬어?”
“응, 그랬어.”
다연이는 그 말을 듣고 창문에 더 가까이 다가가 밖을 바라본다.
열심히 봐도 옆 건물의 벽 밖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우와!”
그러다 갑자기 다시 탄성을 질렀다.
예쁜 풍경 때문은 아니었다.
“새다!”
풍경 대신 창가에 앉은 새를 보고 있었다.
“무슨 새야?”
“.....참새?”
“참새..”
창가에 앉은 참새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다.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고 귀엽다.
“참새야, 안녕.”
다연이가 참새에게 인사를 했지만 당연하게도 참새는 그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저 멀뚱멀뚱 주변을 둘러보다가 잠깐 창가를 걷는 것이 전부였다.
“참새는 말 못해.”
“나도 알아.”
혹시 다연이가 모를까봐 말해 준건데.
창가를 걷던 참새가 드디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다연이와 눈을 마주쳤다.
참새는 무섭지도 않은지 계속 다연이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딱 봐도 보통 참새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사람을 봐도 도망가지 않는 참새라니.
“참새가 우리 보고 있어!”
“그러네.”
“안녕, 참새야.”
그런 참새를 본 다연이가 다시 인사를 건넸다.
물론 이번에는 그런 다연이를 잠자코 지켜본다. 그러더니 참새가부리로 창문을 콕콕 찍었다.
“우와!”
새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도 보통 참새는 이러지 않는 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을 보면 후다닥 뛰어가거나 날아갈 텐데 어째선지 이 참새는 조금 얌전하다.
“오빠도 인사해줘!”
다연이의 말에 나도 못 이기는 척 인사를 했다.
“안녕.”
물론 진짜 참새가 듣진 못하겠지만 다연이가 하라는 대로 한다.
그러자 참새는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더니 그대로 날아갔다.
“와! 오빠가 인사했더니 참새가 날아갔어!”
“그러네.”
왜 내가 인사할 때 날아갔는진 모르겠지만 다연이가 좋아하니 다행이다.
“이제 내려줘!”
“그래.”
다연이가 원하던 풍경은 못 봤지만 그 대신 참새라도 봐서 다행이다.
지금 다연이가 이렇게 좋아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1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다연이는 아까 전보다 더 활기가 넘친다.
꺄르르 하며 웃고 있었고 표정도 밝다.
“참새가 엄청 작았어. 맞지?”
“응.”
다연이는 내게 다시 물었다. 참새가 많이 기억에 남는 모양이다.
나는 남은 시간 동안 다연이와 뭘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문득 주방 찬장에 있는 유자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겨울에 가끔 차를 만들어서 먹곤 했던 유자다.
지금 다연이는 감기도 걸렸으니 따뜻한 유자차를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참새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던 다연이에게 물었다.
“다연아, 유자차 먹을래?”
“유자차? 그게 뭐야?”
“이걸로 만든 차.”
나는 유자가 담긴 유리병을 흔들며 보여준다.
그 덕에 안에 담겨 있던 끈적한 유자가 조금씩 흔들거렸다.
“차가뭐야?”
“아...”
“자동차는 알아. 혹시 자동차야?”
“아니.”
다연이도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따뜻한 물로 만든 거.”
“...?”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다연이.
“맛있을 거야.”
“그러면 먹을래.”
“그래, 조금만 기다려.”
“응.”
다연이는 그렇게 대답하고서 다시 바깥을 바라본다.
그럼 나는 얼른 준비해서 다연이랑 유자차를 마셔야겠다.
주방엔 컵이 많다.
식당용 스테인리스 컵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컵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가끔 차를 먹기 위해 놔둔 머그컵도 있다.
나는 머그컵 두 개를 꺼내서 앞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 옆에 유자를 담은 병을 놓는다.
병은 자주 닦았기에 끈적하지는 않았다.
스르륵 하며 병뚜껑이 열리고, 나는 숟가락을 꺼내서 각자의 머그컵에 덜어 놓는다.
내 컵에는 조금 많이, 다연이 컵에는 적게.
“이거, 이대로 먹어봐도 돼?”
갑자기 들려오는 다연이의 목소리에 돌아본다.
창밖을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세 내 옆에 있었다. 오는 소리를 듣지도 못했는데.
“이거만 먹으면 맛 없을 거야.”
“그래도 궁금해...”
다연이의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조금만 먹어 봐.”
“응.”
나는 잘게 잘린 유자 조각을 다연이에게 내밀었다.
“얌.”
작은 조각을 물고 오물거린다.
“으에... 이상해.”
그러다가 표정을 찡그리고 혀를 내밀었다.
귀여워.
“여기에 뱉어.”
표정을 찡그린 다연이가 싱크대로 달려가서 퉤하고 유자 조각을 뱉었다.
“이상한 맛이야...”
그럴 거다. 그대로 먹으라고 만든 건 아닐 테니까.
“그래서 뜨거운 물이랑 섞어서 먹는 거야.”
“그래도 맛없을 것 같아...”
“그러면 내꺼 먼저 먹어볼래? 맛없으면 나만 먹을게.”
“응.”
나는 끓인 물을 가져와 내 컵에서 붓는다.
꼴꼴 하는 소리를 내며 물이 차오른다. 다연이는 그 모습을 비장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완성된 유자차를 충분히 섞어준다.
“지금 먹어보면 돼?”
“아니, 지금은 뜨거워. 조금만 기다리자.”
“응.”
나는 작은 숟가락에 차를 담아서 후후 불어 식힌다.
그리고 다연이에게 내밀었다.
“먹어 봐.”
“후...”
다연이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한 번 더 불고 난 뒤, 숟가락을 입에 가져간다.
“맛있다.”
“그래? 다행이네.”
맛있어 해서 다행이다.
나는 금세 다연이 몫의 유자차를 준비해서 건네준다.
“조금씩 먹어. 뜨거울 수도 있으니까.”
혹시 뜨거워 할까봐 미지근한 물도 조금 탔다.
“응.”
다연이는 대답하고 나서 차를 입에 가져다댄다.
후우 하고 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맛있어! 음료수 같아.”
설탕에 절였기 때문에 달달하긴 하니까.
다연이와 나는 나란히 창가에 앉아서 유자차를 마신다.
다연이는 창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것저것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저거는 자동찬데 이거는 뭐야?”
다연이가 주차된 오토바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나이대에는 궁금한 것들이 많은 법이니까 답변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토바이. 두 바퀴로 가는 거야.”
“동그라미가 바퀴야?”
“응.”
“우와! 동그라미 두 개로도 갈 수 있구나!”
다연이는 바퀴 두 개로만 앞으로 간다는 것이 신기했는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자전거도 동그라미 두 개로 가.”
“자전거는 뭐야?”
“음... 두 바퀴로 가는 거. 다연이가 조금 더 크면 탈 수 있어.”
“그렇구나.”
자동차 이야기에서 순식간에 자전거로 주제가 바뀌었다.
다연이와 이렇게 이야기 하다보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니까.
그렇게 끝을 알 수 없는 질문 공세에 빠져 들어갈 때, 다연이가 뭔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참새다!”
다연이가 가리킨 곳에는 참새가 있었다.
방금 전에 본 참새처럼 주변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아까 그 참새야?”
“모르겠어.”
“창문에 있던 참새는 입으로 창문을 툭툭 쳤었는데!”
흥분한 다연이가 말들을 두서 없이 쏟아냈다.
그리고 다시 참새에게 말을 걸었다.
“안녀엉. 참새야. 너 아까 전에 봤던 참새야?”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그 뒤로 참새와 다연이는 서로를 빤히 바라본 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다연이는 그런 참새가 신기한지 손을 흔들거나 인사를 했지만 무심한 참새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종종 창문에 몸을 비비거나 바닥에 있는 뭔가를 부리로 쪼는 것이 전부였다.
"오빠, 나 참새랑 악수하고 싶어!”
“.....”
참새와 악수를 하는 사람은 여태까지 본 적이 없었기에 그게 될까 잠시 생각에 빠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악수.... 못 할 것 같은데...”
그러다 문득 속마음이 흘러나와 버렸다.
“왜 못해?”
“음... 참새가 도망갈 것 같거든. 그래도 다연이가 하고 싶으면 악수 해봐도 돼. 대신 참새가 놀라거나 다치지 않게 해야 돼.”
“응, 알겠어!”
그렇게 나와 다연이는 다시 우산을 쓴 채 밖으로 나왔다.
잠깐 내가 뭘 하는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연이가 좋아 보이니까 다행이다.
“참새야, 안녀엉.”
그러자 참새가 뒷걸음질을 친다.
행동하는 걸로 봐선 창문에서 봤던 그 새가 맞는 것 같은데.
“오빠도 안녕, 해 줘.”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다연이의 부탁이니 나도 아까처럼 인사를 했다.
“안녕.”
그러자 그 때처럼 참새가 날아갔다.
“아, 참새 간다. 잘 가.”
다연이가 허공에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악수를 하고 싶다더니 못해도 그리 상관은 없었던 모양이다.
“참새, 내일도 올 거지?”
“응, 올 거야.”
나는 다연이의 손을 잡고 다시 식당으로 향했다.
참새와 악수하러 이 빗속에 나왔다는 사실이 조금 웃겼지만 다연이는 아무 상관없는 듯 했다.
“참새는 엄청 귀여웠어!”
오히려 그렇게 가까이서 봤다는 게 좋을 뿐이다.
“그래.”
그렇게 식당 안으로 들어오니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여자였다. 어색한 듯 시선을 옮기고 있던 여자는 우리가 들어가니 고개를 돌린다.
“죄송합니다. 일이 있어서 늦게 왔습니다.”
내가 사과를 하자 여자도 덩달아 고개를 숙인다.
“아, 안녕하세요. 식당... 하는 거죠?”
“네.”
다연이와 노느라 손님이 왔는지 몰랐던 모양이다.
“바로 주문해도 되나요?”
“네, 주문하세요.”
옆에 있던 다연이는 내 손을 잡은 채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노란색 튀김